뉴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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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2011’, 이자람?김소진?이승희가 말하다-①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는 한국 판소리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2007년 초연했다. 이 작품은 자신이 느끼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소리꾼 ‘이자람’에 의해 시작됐다. ‘사천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을 원작으로 한국적 각색을 통해 새롭게 탄생했다.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신랄하게 풀어내며 5년째 관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작품의 시발점이었던 ‘이자람’을 비롯해 2009년 ‘사천가’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여해 극찬받은 소리꾼 ‘이승희’와 ‘김소진’이 참여한다. 더욱 단단해진 구성과 깊이를 더한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의 소리꾼 ‘이자람, 김소진, 이승희’를 만났다. -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김소진 : ‘사천가’는 판소리입니다.(웃음) 작품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담았어요. 내용은 대한민국 사천에 사는 착한 뚱녀 ‘순덕’의 이야기예요. 순덕은 대한민국 사천에 살아요. 세 명의 신이 나타나 그녀에게 착하게 살라고 큰돈을 주고 떠나죠. 하지만 순덕은 이 돈을 가지고도 주변의 상황 때문에 착하게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런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현실적인 내용이에요. 이 작품은 소리꾼 한 명과 기존의 판소리에 쓰이지 않았던 악기들이 많이 사용됐어요. 배우까지 함께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죠. - ‘사천가’는 판소리지만 소리꾼 한 명이 다양한 역을 맡아 연기해요. 소리가 아닌 다른 장르에 도전한다는 압박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승희 : 연기적으로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연출님이 저희의 연습을 봐주시잖아요. 저희에게 연기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 말하는 것처럼 하라고 지도를 해주세요. 근데 그렇게 하고 싶지만 잘 안되니까.(웃음) 연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잘 안돼요. 감정이 잘 안 드러날 때는 겉으로라도 해야 하니까요. 그럴 때 조금 힘든 것 같아요. 이자람 : 저는 없어요. ‘판소리’를 평생 해 왔잖아요. 판소리 장르 자체가 이미 연기를 포함한 장르예요. 완창을 준비하다 보면 내가 ‘춘향이, 이도령, 향단이’일 때의 감정, 행동들도 모두 달라져요. 선생님께서도 발림을 가르쳐주시면서 ‘방자가 촐랑거리며 걷지, 묵직하게 걷겠니’라는 말씀을 하세요. 그것 자체가 장르 안에 연극성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연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승희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 이예요. 이것은 연기자뿐 아니라 모든 연희자의 고민일 거예요. 무대 위에서 ‘내가 정말 말하고 있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니까요. 소리꾼뿐만 아니라 연기자, 노래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자신의 능력으로 보는 사람에게 ‘말’을 하는 거잖아요.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가가 어려운 것이지 판소리꾼이 연기한다는 것에서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아요.김소진 : 판소리 안에는 모든 요소가 충족 돼 있어요. 하지만 현재 판소리계에는 이런 요소들을 만족하는 판소리꾼이 많이 없어요. 개별로 레슨을 받을 때, 선생님들께서도 세세하게 지도해주지 못할 때가 많아요. ‘방자의 느낌이 어떤 것 같니’라고 물어보지 않고, 기술적인 부분을 체크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 것처럼 저는 현재 연기력을 갖춘 소리꾼이 많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천가’ 처음 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저도 나름 발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웃음) ‘말’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제 마음은 순덕이라고 해도 밖으로 표현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요. 연출님도 ‘네 마음은 알겠는데 나한텐 안 보인다’고 하시거든요. 이것을 깨는 연습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어려워요. 이자람 : 두 친구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잘한다, 잘한다’하는 소리 듣던 사람들인데 ‘사천가’에 와서 다른 것들에 대해 지적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그 시간을 버티고 버틴 만큼 올해는 더 잘할 거예요. 정말 기대가 돼요. 이 친구들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이들의 팬들이 될 거예요. 그럴 ‘예정’이고요.(웃음) 저는 이 친구들의 공연이 ‘판소리만들기 자’의 입장, ‘예술감독’의 입장에서도 정말 기대돼요. 두 사람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한국에서 소리하는 사람들아, 이 친구들 좀 봐’, ‘판소리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좀 봐’ 하는 마음이에요. 개.봉.박.두!(웃음)- 그렇다면 연기 외에 어려웠던 부분은 없으셨나요?이자람 : 승희는 체력?이승희 : 네, 힘든 건 체력밖에 없습니다.(웃음) 공연을 할 때 이렇게 많은 액션을 한 적이 없어요. 소리를 할 때는 한 자리에 서서 하거든요. 많이 움직여야 한 발짝, 두 발짝이에요.(일동 웃음) ‘사천가’는 춤을 추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체력이 달리더라고요. 조금 더 익숙해지고 연습을 더 하면 체력은 붙을 거예요. 무대에 가면 연습할 때보다 훨씬 큰 에너지가 나와요. 그래서 버티면서 연습하고 있어요.이자람 : 저도 체력이 항상 걱정이에요. ‘사천가’는 소리꾼의 몸 상태가 공연의 퀄리티로 직결되는 공연이에요. 소리꾼이 얼마나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고, 얼마나 잠을 푹 잤는지가 그날 공연의 질을 바꿔버려요. 다른 것들도 어우러져야 하지만 소리꾼의 상태가 정말 중요해요. 그렇다 보니 체력도 관리해야 하고, 감기도 걸리면 안 되거든요. 장기 공연 들어가면 최선의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우리 즙 시켰죠?(일동 웃음)김소진 : 저는 최근에 어려움을 느꼈어요. 국악 장단은 여섯 개 정도가 있어요. 그 장단에 제가 너무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음악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음악을 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사천가’는 그 박자 외에도 삼바 리듬, 스윙, 왈츠 리듬이 있어요. 처음에는 ‘나는 그런 것도 잘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니까 그 박자를 못 찾겠더라고요. 그 점에서 제 감정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자람 씨는 ‘사천가’의 처음부터 참여했던 분이시잖아요. 이승희 씨와 김소진 씨는 2009년부터 참여했던 걸로 알고 있고요. 처음 ‘사천가’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김소진 : 저는 연락받았을 때 별생각이 없었어요. 이자람 : 보통 캐스팅 연락받으면 별생각이 없지.김소진 : 맞아요.(웃음) 사실은 제가 잘 몰랐던 것도 있어요. 그것도 문제예요. 판소리로 만들어진 ‘사천가’라는 작품이 유명한데 전통 국악을 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있었잖아요. 희곡 ‘사천의 선인’으로 하는 공연이 있다는데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자람 씨는 ‘사천가’를 어떤 생각으로 시작하셨어요?이자람 : 2007년 ‘사천가’의 시발점은 제가 가장 오랫동안 스킬이자 가장 잘하는 ‘판소리’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착하게 사는 것이 왜 버겁고, 세상이 왜 살기 힘들지에 대해서요. 원래는 ‘사천의 선인’이 아니라 직접 글을 써보려고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 ‘사천가’의 남인우 연출님께 말했죠. 공연을 만들고 싶은데 연출을 해달라고요. 연출님은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라고 물으셨고, 저는 ‘사는 게 힘들어요’라고 말했어요. 써보라고 하셔서 썼는데 초고를 보더니 안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기존의 희곡을 찾아보자 해서 ‘사천의 선인’을 하게 됐어요. 당시 희곡수업을 청강했었는데 어떤 배우가 ‘사천의 선인’을 발표하더라고요. 수업 듣고 나오는 길에 연출님께 ‘사천의 선인’ 어떠냐 했더니 좋다고 해서 작업에 들어간 거죠. ‘사천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하는 ‘판소리라는 장르에 담아보자, 과연 될까?’에서 시작했어요. 이런 장르의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서 작품이 나왔을 때 정말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이자람 : 어안이 벙벙했었어요. 공연도 잘 올라갔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줬고요. 시원하고 좋더라고요. 판소리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새로운 장이 열렸어요. 2007년 초연은 저에게 인생의 한 챕터를 열어준 공연이었죠.- 이승희 씨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이자람 : 이 친구는 안 한다고 그랬었어요.(웃음) 제가 전화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이승희 :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못했어요. 언니 말대로 한번 튕겼었죠. 못하겠다고요.(웃음)이자람 : 저는 이런 친구를 처음 봤어요. 소진이는 학교 후배라서 몇 번 마주쳤었어요. 소리를 잘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딱 봐도 전형적인 국악인의 느낌이었어요. 승희는 처음 봤을 때 ‘국악하는 친구 중에 이런 아이가 있나?’ 했어요. 이 친구는 굉장히 모던하고 세련됐어요. 소리하는 아이들은 보통 인간적인 느낌이거든요. 그것과는 동떨어진 국악인의 이미지를 처음 봤어요. 승희를 보면서 우리는 ‘국악계의 김희애’가 나타났다고 그랬어요.(웃음) 사람이 만나는 건 다 인연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연락 온 친구들도 많았는데 승희는 일정도 안 되는데 붙잡고 싶더라고요.- 왜 그렇게 거절을 하셨어요?이자람 : 그때 승희가 일정이 안됐어요.이승희 : 네, 일정이 있어서 이 작품에 올인을 할 수가 없었어요. ‘사천가’도 어떻게 보면 자람 언니에게 판소리처럼 전수를 받는 거잖아요. ‘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가’가 굉장히 결정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러다 계속되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하겠다고 했죠.(②편에 계속) 글,사진_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1.10.21 / 조회 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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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2011’, 이자람?김소진?이승희가 말하다-②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2011’은 판소리계를 이끌어 갈 소리꾼 세 사람이 참여한다. ‘이자람’은 판소리 장르의 다양한 방향성을 실험과 시도를 통해 선보여 왔다. 뮤지컬 ‘서편제’부터 ‘아마도 이자람밴드’,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등 한국 소리계에 심상치 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승희’는 맑고 고운 목소리와 탁월한 발림, 사람 냄새나는 발군의 연기가 돋보이는 소리꾼이다. ‘김소진’은 어린 나이와는 상반된 깊이 있는 소리와 특유의 당당함이 엿보이는 연희자다. 세 명의 소리꾼은 ‘사천가’ 속 전혀 다른 매력으로 즐거움과 감동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2011’의 이모저모에 대해 세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세분이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계시지만 연기하는 사람이 다른 만큼 매력도 다를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의 연기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앉아계신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해볼까요? 먼저 이승희 씨가 이자람 씨의 ‘사천가’ 매력을 말씀해 주세요.이승희 : 언니의 매력은 아무래도 ‘오리지널리티’가 아닐까요? ‘사천가’ 자체가 언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잖아요. 물론 저희도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언니가 더 열렬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한발 짝 뒤에서 전수를 받은 거고요. ‘사천가’에 담긴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도 있지만, 언니가 더 깊게 전달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자람 언니는 정말 노련해요. 무대 위에서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저도 저 공연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려요. 자람 언니의 공연을 보면 정말 즐거워요. - 이번에는 이자람 씨가 김소진 씨의 ‘사천가’ 매력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이자람 : 소진이는 지금 고민이 너무 많아요. 이 아이가 스물넷이에요. 제가 ‘사천가’를 처음 만들었던 게 스물여덟이었어요. 그리고 ‘사천가’를 통해 무대 위에서 말을 한다는 것을 배운 것도 스물여덟이었고요. 이 친구는 저보다 4년이나 앞섰고 ‘사천가’를 만난 시점으로 치면 6년을 앞섰어요. 저는 소진이의 앞날이 기대돼요. 정말 굉장한 소리꾼이 될 거에요. 그런데 지금 다른 동료가 자신만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보니 너무 조급해 해요. 저는 소진이를 인정하는 이유가 그 조급한 가운데서도 ‘사천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다 익히고 있어서예요. ‘이승희’에게서 배울 것, ‘이자람’에게서 배울 것 그리고 이 전체에게서 배울 것 하나하나를 자기 알 속에 품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알’이 있잖아요. 그 알을 깨느냐 마느냐가 사람이 한 꺼풀 벗느냐 마느냐인데 소진이는 잘 해 나가고 있어요. 잘 싸우고 있고요. 승희는 지금 ‘사천가’ 초기와 지금이 달라요. 알 하나가 깨졌고 멋진 도약을 했어요. 소진이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한번 주둥이로 툭툭 쳐 알에 금을 그었거든요. 이 시간이 1, 2년 정도 더 있을 거예요. 어제 연습만 해도 이 친구가 얼마나 성장했고 자기화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어요. 저는 언니로서 이 조급함을 제어해주고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줘야죠. 계속 바라보고 싶은 친구예요. 소진의 ‘사천가’의 매력은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의 깊이감이 있는 소리와 함께 이 친구 나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싱그러움이 무대에서 빵빵 터져요. 관객이 ‘우쭈쭈’ 하면서 보게 되는 거죠. 어린 나이지만 어떻게 저렇게 소리를 잘할까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또한, 소진이가 뿜어내는 무대 위의 그 재주가 그 몇십 년이라는 소리 연습을 통해 생긴 공력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자람 씨의 말만 들어도 두 분의 ‘사천가’가 정말 기대가 돼요. 김소진 씨는 이승희 씨의 ‘사천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소진 : 승희언니의 ‘사천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소리가 굉장히 맑다는 점이에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국악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승희언니는 그것을 깨고 등장인물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살짝 자기화 시켜서 연기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모두가 생각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톡톡 튀어나올 때의 재미가 있어요. 이자람 : 이승희지, 이승희.김소진 : 맞아요.(웃음) 승희언니 공연을 보면 ‘이승희’의 공연이라는 것이 딱 보여요. 그리고 언니가 말을 못한다고 하지만 정말 잘해요. 맑은 음성으로 본인만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이자람 : 승희는 반전의 매력이 있어요. 처음에 나와서 ‘이산 저산~’하고는 대목이 끝나면 ‘안녕하세요, 이승희입니다’하고 툭 던져요. ‘순덕’의 이미지나 비주얼 그리고 ‘이승희’만의 느낌을 무대 안에서 충분히 살리면서 ‘저 친구가 저런 면도 있네?’라고 관객에게 계속 발견하는 재미를 줘요. 판소리 공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 외의 것들을 얹어주는 것 같아요. 승희 ‘사천가’는 그래서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인간이 가진 매력에 더해 그 매력을 가진 ‘이승희’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반전의 매력까지요.- 출연하는 소리꾼에 따라 작품의 매력도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작품 자체의 매력도 있잖아요. 이러한 점을 유심히 본다면 관객이 ‘사천가’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점에 대해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이승희 : 지금은 판소리가 옛날 음악이지만 그 당시에는 유행가처럼 불렸던 소리잖아요. 현재를 담고 있는 거죠. ‘사천가’도 소리꾼의 재간이 볼만하겠지만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거든요. 이야기에 더 집중해서 이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이자람 : 저는 이번 2011년 사천가에 한해서는 김소진과 이승희의 ‘사천가’를 눈여겨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사천가’가 큰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대한민국에 이런 소리꾼이 있어서 놀라워’가 아니라 ‘한국에는 이런 소리꾼이 이렇게 많아?’였어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민족주의는 아니지만 판소리라는 장르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생각해요. 이번 공연에서는 대한민국에 이렇게 훌륭한 연희자들이 있다는 것을 관객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친구는 어떤 순덕이고, 세상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들의 놀라운 테크닉과 매력,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낸 시간을 확인하셨으면 합니다.김소진 : 전통 판소리는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사천가’는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사천가’에서 중점적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부분은 순덕의 감정변화예요. 작품의 핵심이자 굉장히 명확하게 나타나는 부분이에요. 순덕의 변화나 감정만 관객분들이 잘 보셔도 본인의 이야기, 나도 느껴봤던 것들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사천가’가 해외에서도 큰 성과를 얻고 왔잖아요. 해외 관객이 얼마나 이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어요. 직접 겪어보신 해외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요?김소진 :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어요. 자막처리를 한다 해도 얼마나 잘 이해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외국 관객들이 정말 잘 이해하세요. 오히려 더 솔직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와요. 우리 판소리의 발성법에 대해서도 놀라워하고 좋아해요. 이런 연기를 혼자서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라고요. 이자람 : 제가 외국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들이 판소리라는 장르의 테크닉을 아프리카의 원주민 춤을 보듯이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한 테크닉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정말 많이 받아요. 어떤 프랑스 여자 관객은 “작품 속의 문제는 지구 끝 마그마서부터 오는 문제다. 이것을 당신이 표면에 올려 이야기해줘 정말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 자존심 높다는 프랑스 여자들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사천가’를 해외에서 반기는 이유는 그게 해외든, 서울이든, 부산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야기고 그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저도 ‘사천가’가 담고 있는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참 깊이 있게 다가오더라고요. 이승희 씨는 ‘사천가’의 어떤 대목이 가장 감동적이라고 생각하세요?이승희 : 좋은 장면이 정말 많아요. 제가 관객으로서 두 분의 공연을 볼 때 감동을 느끼는 대목은 순덕이가 아기를 지키려는 마음이 가득 담긴 장면이에요. 가장 기억에 남아요. 뱃속에 아이가 생겼다는 것이 기뻐서 자장가를 불러주는 대목인데 주변 상황을 생각하니 암담한 거죠. 하지만 ‘나는 널 지켜주겠어’라는 장면이에요. 그 장면이 보는 관객에게 가장 하이라이트고 명장면이에요.- 마지막으로 ‘사천가’가 이루어낸 성과에 대한 질문을 드릴게요. 세분이 판소리 ‘사천가’가 국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이승희 : ‘사천가’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창작판소리는 계속하고 있었어요. 여러 사람이 한 작품에 참여하는 방식으로요. 그런데 ‘사천가’는 혼자 하잖아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 등장인물로 왔다갔다하면서요. ‘사천가’는 혼자서 서서 소리하는 판소리의 전통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모습을 보고 소리하는 사람들이 ‘혼자서 왜 못해, 나도 창작판소리를 할 수 있어’라는 생각과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우리 현재의 이야기를 가지고요. ‘사천가’가 판소리의 새로운 롤모델이 된 것 같아요. 김소진 : ‘사천가’는 현대의 내용을 담고 있잖아요. 저는 이게 가장 큰 성과 같아요. 지금 이 시대 이야기를 담아서 잘 만들었고 그래서 인정을 받은 것이요. 저는 ‘사천가’가 전통 판소리 오대가처럼 현대판 오대가가 되지 않을까 해요. 작품의 내용이 요즘 사람들이 가장 크게 공감하는 이야기거든요. 이렇게까지 공감이 잘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이 있을까 해요. ‘사천가’를 통해 판소리계도 큰 파장이 왔대요. 현대 판소리가 전수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저희가 자람언니에게 배워서 전수받고 있잖아요. 판소리계도 그런 부분을 크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의 ‘사천가’는 현대 판소리의 시발점이 되는 것 같아요.이자람 : ‘사천가’의 가장 큰 성과는 ‘관객’이에요. 국악계에도 물론 영향을 미칠 거예요. 좋은 모델을 제시해 주는 거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관객이 사라진다면 그 장르는 죽어버려요. 판소리는 관객을 잃어가고 있던 시점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천가’는 판소리라는 장르로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기 시작했어요. ‘사천가’를 만났던 사람들이 ‘억척가’를 보러 오고, ‘허세가’를 보러오기도 하거든요. 내적 성과를 말하기 전에 관객이 성장하고 있고, 생겨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완창 공연까지 오고 있다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 시대에 판소리 관객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사천가’가 가장 잘하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다른 소리꾼들에게 힘이 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글,사진_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1.10.21 / 조회 1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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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오픈리허설 현장속으로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가 10월 10일 오후 5시 국립극단에서 오픈리허설을 열었다. 이번 오픈 리허설은 ‘이자람, 이승희, 김소진’의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연습 현장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남인우’ 연출가는 직접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며 열정적인 연습 현장을 공개했다. 가장 먼저 연습을 시작한 ‘김소진’은 스물넷이라는 어린 나이를 잊게 할 만큼 깊은 소리로 좌중을 압도했다. 연습 내내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장내의 분위기를 밝게 했다. ‘이승희’는 차분한 외모와는 다르게 세심한 요소들을 살려 소리와 연기를 동시에 시원하게 소화했다. 맑고 고운 목소리와는 상반된 묵직하고 구성진 연기를 선보였다. ‘이자람’은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의 초연 무대부터 섰던 경력만큼 파괴력 있는 연기와 소리를 풀어냈다. 세 명의 소리꾼 중 가장 맏언니인 만큼 연습을 내내 후배 소리꾼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는 올해로 5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한국을 넘어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작품은 판소리와 마임, 막간극, 타악을 결합해 만든 새로운 형식의 국악 공연이다.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적인 서사극 ‘사천의 선인’을 바탕으로 창작됐다. 작품은 장소를 대한민국 ‘사천’으로 옮겨 뚱뚱한 처녀 ‘순덕’이 말하는 ‘착하게 살기 어려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전과 현대를 넘어서는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는 오는 10월 20일부터 10월 30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한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1.10.11 / 조회 1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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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it] 꿋꿋이 제 길 걸어온 소리꾼의 얼굴, 이자람의 ‘사천가’
한 여자가 웃고 있다. 누군가를 유혹하는 듯 혹은 부끄러운 듯도 하다. 사근사근한 소녀 같기도 하고, 삶의 깊이를 이해한 성숙한 여인 같기도 하다. 턱을 살포시 가린 부채에서는 도도함도 엿보인다. 목 전체를 감싼 옷에서는 정숙함이 풍겨 나온다. 포스터 속 웃고 있는 이 묘령의 여인, 누굴까. 포스터 속의 여인은 소리꾼 ‘이자람’이다. ‘이자람’은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를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번 공연은 국내 관객에게 7번째로 선보이는 무대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 등의 공연을 통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천가’는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 기립 박수를 받기도 하고, 전석 매진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포스터에는 ‘사천가’ 앞에 붙은 ‘판소리 브레히트’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판소리’는 그렇다 하더라도 ‘브레히트’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사천가’는 20세기 서양 연극사를 대표하는 희곡작가 연출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인 ‘사천의 선인’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제목의 ‘브레히트’는 작가의 원작의 작가 이름을 딴 것이다. 포스터의 지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판소리’라는 단어에서 자동으로 연상되는 ‘한복’이 보이지 않는다. 목 끝까지 채워진 옷깃이 현대적이면서 서양적인 느낌을 드러낸다. ‘사천가’는 21세기 한국적 상황에 맞춰 재구성된 작품이다. 뚱뚱한 백수 처녀 ‘순덕’의 이야기를 담는다. 사천이라는 도시에 수상한 세 명의 신이 찾아온다. 이들은 착한 사람을 찾아 헤매다 뚱뚱한 여자 ‘순덕’의 선함에 감동해 돈을 주고 떠난다. ‘순덕’은 그 돈으로 분식집을 차린다. 하지만 온갖 사람들이 몰려와 그녀를 못살게 굴고 파산 직전에 처하자 ‘사촌오빠’로 변장해 냉정하게 그들을 몰아낸다. 겨우 안정을 찾은 ‘순덕’은 불우한 이웃들을 도우며 살려 한다. 하지만 몰려드는 거지들 때문에 계속해서 악독한 ‘사촌오빠’로 변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사천가’는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착하게 살기 어려운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천가’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기 어려운 작품이다. 한 사람의 소리꾼이 극을 이끌어 가는 ‘판소리’와 마임을 섞은 ‘막간극’, ‘타악’을 결합했다. 원작과는 또 다른 색깔로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새로운 개념의 공연이다. 이 공연은 포스터의 오른쪽 상단에 표기된 ‘판소리 만들기 자’라는 단체가 제작했다. ‘판소리 만들기 자’는 작품의 대본과 소리도 만들었다. 또한, ‘사천가’에는 한국 국악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젊은 소리꾼 ‘이자람’과 ‘사천가’, ‘억척가’로 세계적인 호평을 얻은 연출가 ‘남인우’가 함께한다. 이번 공연에는 ‘사천가’의 공연을 가장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최고의 소리꾼들이 함께한다. ‘이자람’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방위적 예술가다. 그는 소리꾼, 작, 작창, 음악 감독과 함께 뮤지컬 ‘서편제’의 무대에 서며 배우로서의 도전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포스터의 아래쪽으로는 출연진의 이름이 보인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또 다른 소리꾼 ‘이승희’와 ‘김소진’, 작품을 빛내줄 ‘오대석, 오유진, 이윤재, 장혁조, 이향하’ 등의 이름이 함께 자리 잡았다. ‘이승희’와 ‘김소진’은 풍부한 경력의 소리꾼들이다. ‘이승희’는 올해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 ‘사천가’에서 소리꾼으로 활약했다. 가늘고 풍성한 고음으로 부채의 발림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김소진’은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오프 ‘사천가’와 2009, 2010년에서도 ‘사천가’의 소리꾼으로 참여했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나이답지 않은 노련미로 관객에게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는 10월 20일부터 10월 30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한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1.09.28 / 조회 9,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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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 2011 <사천가> 공연
판소리 공연의 편견을 깬 판소리극 이자람의 가 다시 한 번 찾아온다. 는 2007년 초연 이후 꾸준히 재공연 무대에 오르며 시카고, 뉴욕 APAP 마켓 초청 공연, 프랑스 리옹 국립극장, 파리 시립극장 공연, 폴란드 콘탁 국제연극제 최고의 여배우상 수상의 쾌거를 거뒀었다. 브레히트 희곡 ‘사천의 선인’을 원안으로 21세기 한국적 상황에 맞춰 재구성 뚱뚱한 백수 처녀 ‘순덕’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외모지상주의, 청년실업, 학력지상주의, 돈과 권력에 흔들리는 2011년 대한민국의 세태를 꼬집는 판소리극 2011 에는 작, 작창으로 참여한 이자람과 이승희, 김소진이 소리꾼으로 참여하고 이윤재, 오대석, 오유진 등이 출연한다. 2011 는 오는 10월 20일부터 30일까지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공연한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2011.09.27 / 조회 10,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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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가> 그 무엇도 진보한 놀라운 감격
판이 커졌다. 공간의 의미가 아니다. 무대를 향한 호흡은 담대했고, 시야는 넓어졌다. 오밀 조밀 맛있는 재미에 더하여 파도가 일고 폭풍이 몰아쳤다. 거대한 소용돌이 끝에는 커다란 한숨을 파안대소로 받아치는 해학의 맛이 꿈틀거리며 살아 숨쉬었다. 는 이자람과 판소리 모두 이전의 어떤 모습보다 진보했음을 보여주는 무대다.
커다란 달구지를 끌고 전쟁터를 누비며 버려진 잡동사니들을 줍거나 사들여 되파는 전쟁상인 억척네,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가 담아 낸다.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원작으로 하나, 이야기의 뼈대만 가지고 왔을 뿐 표정도 의미도 다르다.
뚜렷한 이념이나 투철한 자기 의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착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한 사람, 꽃 다운 열 여섯에 시집 온 김순종이 김안나, 억척네로 이름을 바꿔 다는 과정에서 우리들이 목격하는 그녀의 가치 파멸과 몰락. 불우한 시대가 낳은 기구한 개인사로 끝날 법한 이야기가 시공을 막론하고 생을 사는 인간 전체의 숙명으로 투영되고 있음에 는 개성 넘치는 창작극으로 새롭게 서고 있다.
주어진 생을 살아내고 있는 본능 이전의 본능, 의지 이전의 의지. 쉬이 형용할 수 없는 생명, 인간, 삶의 관계가 이자람의 몸짓과 소리로 그려진다. 전작인 가 매 장면 인물변신과 소소한 반전의 재미가 일품이었다면, 에서는 커다란 그림을 관통하는 선 굵은 전개가 돋보인다.
전쟁통에 자식들을 차례로 잃고, 벼랑 끝에 몰려 구슬프고도 오싹하게 절규하는 억척이의 울음에 소름이 끼친다. 그러다 암전 후 어느새 눈물을 닦아낸 그녀가 “그러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을 때 오그라든 마음이 순식간에 풀리니, 이자람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아는 사람임이 확실하다.
북, 장구, 드럼, 베이스, 퍼커션 등 국악과 양악이 어울려 음악을 만들어 흥을 돋구고 긴장을 더한다. 경계를 허문 이 모든 조화는 이야기, 배역, 작품, 작품이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판소리가 아닌 막내 딸 추선이의 노래가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올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첫 선을 보여 LG아트센터에서 6일간 서울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나 이미 전석 매진이다. 벅찬 감동을 주는 잘 만들어진 작품에 기립 박수를 칠 수 있는 기쁨은 관객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 특권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씁쓸한 위로를 건내본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LG아트센터 제공
2011.06.16 / 조회 8,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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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대충하지 않았다는 뿌듯함, <억척가> 이자람
빠른 질주는 바람의 흔적을 남기고, 또박또박 디뎌 걷는 걸음은 묵직한 발자국을 새긴다. 세상의 상대적인 눈빛에 혼란스러울 스스로를 다잡고 쉽게 질주하지 않겠다는 다짐. 소리꾼 이자람은 이것이 맞는 것 아니겠냐고, 나지막이 이야기 한다. 는 그녀 스스로의 믿음이 낳은 또 하나의 보물이 될 것 같다. 해 볼만 하다는 느낌, 이것뿐이었다. 에 이어 다시 브레히트 원작의 작품이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하 ‘억척어멈…’)을 읽고 “괜찮다!”라고 했을 때 연출이 엄청 반대를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또 브레히트 작품이고, 사람들이 또 왜 브레히트와 판소리냐고 물어볼 테니까.(웃음) 그런 후 2년 동안 고대 희극부터, 셰익스피어 작품 등 스터디를 했는데 결국 브레히트로 돌아왔다. 브레히트를 선택한 게 아니라 그가 쓴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 이야기만큼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좋은 뼈대가 없었고 해 볼만하다는 느낌이 오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2008년 업그레이드가 끝났을 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들었다 놓은 게 2009년이고, 그 때부터 스터디를 엄청나게 했다. 희곡 공부를 하다가 결국 억척가를 다시 잡은 게 2010년 11월이다. 일단 부담이 너무 컸고, 머리로는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본능이나 마음이 머리를 따라가는 데엔 밟아야 될 시간이 꼭 있지 않느냐. 그 시간을 겪고 난 후 11월 쯤에는 해야겠다고 밀어 붙인 것이다. ‘억척어멈…’ 과 같은 메시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면 정해진 것 없이 마음에 닿는 이야기를 찾았던 것인가. 사실 하고 싶은 소재는 다른 것이었다. 그 소재에서 이야기를 발전시키려다 보니 계속 뜬구름을 잡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중심을 이야기 하는 곁가지가 중심보다 더 중요해져 있었다. 그걸 다시 부수면서 깨달은 건, 내가 당시 명확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다, 였다. 그렇다면 내가 뭘 하고 싶은가,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이란 시원한 거, 나 대신 누구 욕도 해주고 울어줬으면 좋겠고, 봤을 때 가슴이 막 어쩔 줄을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사건 사고가 너무나 많고, 그 일들 속에서 다들 자잘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다. 그걸 관통하는 것이 곧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일 터이고. 인터넷에 ‘억척’을 검색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산다는 것에 대해 푸념을 하고 있었다. 다시 ‘억척어멈…’의 희곡을 든 이유는 결국 ‘억척’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에서 ‘억척’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는가? ‘억척’에 대한 태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 모습들, 모순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느냐. 그것에 대한 통쾌함, 위로를 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엔 그저 끌려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연출도 제목이 마음에 드니 해보자! 한 것이고.(웃음) 희곡의 배경은 유럽 전쟁이나 는 중국을 무대로 했다. 당연히 처음엔 한국 전쟁을 찾아봤다. 조사를 하다 보니, 6.25는 아직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과거인 걸 깨달았다. 그 때를 겪은 살아계시는 분들에겐 너무 아팠고, 나라를 잃을 뻔 했고, 안전한 삶에 대한 갈망이 컸던 현재의 일이었다. 전쟁에서 벌어진 이권 다툼들, 일본, 중국, 미국 사이의 우리나라가 여전히 불쌍했다.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잔재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 마치 원자핵 중앙을 잘못 건드려 방사능만 맞게 되는, 그런 선택이 될 것 같았다. 결국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나에게 모든 전쟁은 허구인데, 가장 자신있게 엮을 수 있는 허구가 적벽가 속의 삼국 전쟁이었다. 적벽가를 5년간 배우고 연습하고 완창하면서 인물들을 뛰어 놀게 했던 전쟁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국을 배경으로 하게 되었다. 가 뚜렷한 인간 군상에 대한 충돌이었다면, 는 상황 속에 놓인 인물의 이야기 같다. 억척어멈에게 느낀 건, 살아남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교육시켰을 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행동패턴이다. 달구지를 지켜야 하고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아들의 목숨보다 달구지, 이런 선택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선택 가치가 잘못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보험금 때문에 가족을 죽인다든가, 먹고 사는데 취하는 선택들, 중요 가치들의 우선순위가 엉키지 않았는가. 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엉켰을 때 초래하는 가장 큰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억척 어멈은 뒤엉킨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사람다운 가치로 매겨보자, 그렇게 살아보자, 하면서 극이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는 ‘억척어멈…’과는 다르다. 대충하지 않았다는 뿌듯함, 이런 삶이 좋다.직접 이야기도 쓰고 작창도 하고 배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작업이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 같다. 대본 쓸 때는 정말 드라마에 집중해서 딱 대본만 쓰고, 작창가로 대본을 앞에 둘 때는 또 다른 시간이다.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 작창이 다 나온 후엔 배우 모드로 돌입한다. 그 때 그 때 집중해야 하는 게 다르다. 그래서 한 6개월 정도는 만 하는 셈이다. 작품 하나 나오는 게 너무나 힘들지만, 이런 삶이 좋은 것 같다. 작품을 낳아 놨을 때 어떤 뿌듯함이나 대견함, 떳떳함이 있다. 대충하지 않았다, 계속 열심히 하고 있고, 앞으로 이렇게 키울 것이다, 하는 것들이 다 갖춰졌을 때 부끄럽지 않다는 그런 마음들. 이제는 우리의 가치를 우리가 알아주자, 하는 다짐도 있다. 판소리가 너무 척박한 장르로 인식되어 있어 가 자리를 잡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계속 그 싸움이었다. 내가 평생을 갈고 닦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무엇과 견주어도 자신 있고 부끄럽지 않다는 것. LG아트센터의 초대권 없는 정책이 너무나 좋다. 물론 가족들이나 보여드리고 싶은 분의 티켓을 내가 직접 사야 하지만(웃음) 내 공연이라도 직접 공연 티켓 사는 게 나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열심히 만들었고, 그렇게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는 해외공연도 많이 했다. 올해도 아비뇽에 가고 폴란드의 한 페스티벌과 협의 중이다. 최근 리용 공연은 셋업 기간이 거의 일주일로 너무 충분했고, 극장에서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가니 정말 작품의 힘이 달랐다. 관객도 최고였고, 극장도 최고였고. 해외공연이 다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때론 소모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외든 한국이든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공연,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곳에서 공연하는 게 건강한 순환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서야 될지, 서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하다. 스스로 무대에 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관객이나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 공연을 해치우면 되는 거, 공연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거, 그런 무대는 가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하면 되니까. 공연을 잘 올리고 싶은 극장, 잘 해보고 싶은 관계자들, 이 공연이 보고 싶은 관객들이 일 순위가 된다. 그래서 나의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의 퀄리티를 지키고 있다면, 이 고집이 타당하다면, 아주 조금씩 변화가 생길 수 있을 테니까. 는 나에게 굉장히 달콤한 콘텐츠였다 지난 해 뮤지컬 를 했다.(그녀는 작곡과 주인공 송화 역을 동시에 맡았으며,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경험이었다. 이지나라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존중해주고 끝까지 믿어준 그런 예술가를 만난 것도 큰 기쁨이고, 그리고 더 많은 대중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었고. 는 나에게 굉장히 달콤한 콘텐츠였다. 그런데 달콤하면 독이 된다. 난 나의 갈길 가야 한다. 그런데 가장 달콤한 게 뭔지 아는가? 무대에 살아 있는 배우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진짜 행복했었다. 특히 서범석 같은 배우는 무대에서 주고 받는 것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무대에서 받아주고 받은 만큼 또 준다. 난 그걸 또 받아먹고. 그 맛있음을 아니까 인간적으로도 서로 아끼게 되고. 이런 관계를 맺는 게 너무너무 좋았다. 난 진짜 범석 아저씨 너무 좋다.(웃음) 제작하면서 고생이 많았다고 하던데.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나는 판소리를 좋아하고 그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지만, 그걸 몰라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고. 또 정말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뮤지컬을 만드는데 망할까 봐 다들 발을 동동 구르고.(웃음) 그 분들은 나보다 뮤지컬에서 타협할 게 더 많을 거 아니겠는가, 그 타협의 과정에서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정말 많았다. 고생이란 결국 두려움과 싸우는 것이다. 너무 큰 두려움과 싸운 것 같다. 앞으로 다른 뮤지컬 참여 계획은 있는가? 내가 꼭 필요한 자리라면, 나의 필요조건이 맞으면 갈 테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내 삶에서 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 테고. 중간에 뮤지컬로든 영화로든 여행은 다닐 수 있겠지만. 그런데 내 본능과 마음과 이성이 다 허락할 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달콤함과 스스로 생각하는 가치가 부딪칠 때, 많이 싸우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로서 그 달콤함까지 채우고 싶은 것이다. 그게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한다. 별명이 무엇인가? 연출님이 ‘이잘난’이라고.(웃음) “에라이 이 잘난아, 너 잘났다”(웃음) 내가 굉장히 솔직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채찍질만은 엄격하다. 자칫하면 너무 난삽해지기 때문이다. 정신을 안 차리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테고, 지금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게 삶에 언제나 필요한 것 같다. 이자람밴드 공연 계획도 궁금하다. 할 때 만난 이영미 언니 때문에(웃음) 7월 3일에 구로아트락페스티발에서 한 꼭지 하게 되었다. 언니랑 범석 오빠랑 제일 친하다. 같이 밥도 먹으러 가고 그런다. 멋지다는 말, 많이 들을 것 같다. 그렇다. 이렇게 말하니 나 되게 재수 없네.(웃음) 멋지려고 노력한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멋지기 때문에,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생각나는 사람 말하면 되게 웃을 텐데, ‘최고의 사랑’ 독고진?(웃음) 사실 를 하고 얼마나 내가 유명해졌고 더 컸는지, 그런 건 잘 모른다. LG아트센터에서 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내게 승승장구 한다는 말도 하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삶은 변한 게 없는 데 사람들이 날 그렇게 느끼는구나, 싶어 참 신기하다. 보통 나 를 통해 달리는 나의 삶의 속도가 40km라면, 는 120km를 밟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달리는 속도는 40km가 맞는 것 같다. 괜한 스피드에 내 욕심과 욕망을 내는 게 올바른지, 별로 멋지지 않은 욕망인지, 이 욕망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되는지를 잘 보려 한다. 굉장히 피곤할 것 같지 않은가?(웃음)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2011.06.10 / 조회 16,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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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가> “이 시대에 분노하고 있어요” 서른 한 살 예솔이
하소연 할 창구도 없이, 누구도 원망하지 못하고, 운명이라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높은 벽에 막힌 요즘. 쓴맛 나는 세상을 향한 작지만 뜨거운 소리를 내는 젊은 소리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민 손녀’ 예솔이로 불렸던, 이자람이 있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25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부름에 후다닥 달려나가던 5살 꼬마는 19살 때 8시간 동안의 춘향가 완창을 통해 기네스북에 올랐고, 국악 뮤지컬 극단을 결성했었다. 공중파 라디오 DJ 경력, ‘아마도 이자람밴드’라는 인디밴드의 리드보컬까지. 그리고 지난 4일부터는 세 번째 무대에 오르는 에서 음악감독, 극작, 소리꾼의 역할로 1인 4역을 소화하고 있다. ‘전방위적 예술가’인 그녀가 펼치는 는 판소리에 젊은 감각을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10%, 비인기 장르인 판소리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90%의 칭찬을 받을만하다. ‘은근한 비꼬기의 본좌’인 판소리 속에 ‘오늘’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의 2009 버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재미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지난번 공연을 준비할 때만 해도 이 작품을 하면서 무서움이 없었어요. 자유로웠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아, 또 이 만큼 시대가 변했구나’ 라는 걸 느끼고. 이 작품이 작년보다 지금,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착하게 살기는 하늘에 별따기.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살기 어려워요. 저는 너무 뚱뚱해서 취직하기도 어렵고요, 어디 알바라도 하고 싶지만 뚱뚱한 여자는 아르바이트도 힘들어요. 국민소득 2만불인들 배고픈 건 여전하고요.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도 내 몸 뉘일 곳은 없어요. 착하게 잘 살고 싶지만 모든 게 그렇게 비싼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나요.” - 2009 대사 중 는 브레히트 희곡 ‘사천의 선인’을 모티브로 현 시대의 상황에 대학 풍자, 해학이 담겨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브레히트와 판소리의 만남에 집중하지만 저는 텍스트가 가장 먼저였어요. 20대 후반쯤 되면 ‘어떻게 살지, 뭘 해서 벌어먹고 살지?’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리잖아요. 이 작품을 처음 생각한 게 딱 그 나이 때였어요, 스물 아홉 살. 5년 간 이어온 단체의 대표를 그만두면서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든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사천의 선인’이 딱 제 이야기더라고요. 돈이라는 권력 앞에서 착하게 살기는 참 힘들다는 거. 돈과 착하게 산다는 게 대치되는 건 아니지만 반대편에 있는 건 맞거든요. 내가 취하는 만큼 누군가는 빈자가 되어야 하는 거니까. ‘사천의 선인’이 브레히트의 작품이라서, 훌륭한 희곡이라서 선택한 게 아니고 이게 우리 이야기다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이 텍스트를 선택했어요.” 세 번째 무대인 이번 공연에는 2009년에 맞는 대사와 상황들이 추가됐다. “지난 공연과 비교해서 연설하는 장면, 돈 때문에 자식을 버리는 대사 등 부분적인 수정이 있어요. 여전히 똑같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걸 저를 비롯해서 연출, 배우들이 다같이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죠. 준비하는 동안 변한 게 많죠, 개인적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 국가적으로 슬픔도 있었고. 지난 공연에서 찾지 못한 분노도 나오고, 또 희열도 느끼고 있어요.” "분노가 가장 먼저 입니다" “얼마 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셨잖아요. 그날도 연습을 했는데,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연습 들어가기 전에 매번 “안녕하세요, 이자람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하고 시작하거든요. 그 날은 “오늘 김대통령님이 돌아가셨고, 지금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가슴이 아픈 날이지만 이럴 때 일수록 더 노래하고 싶습니다”하고 본론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발끝에서부터 떨리는 거에요, 연습하는데. 저는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더라고요. 이게 분노인지, 슬픔인지, 억울함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노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진정이 안 되는 상태였는데 이게 점점 힘이 됐어요. 그 날 연습은 좋았어요, 끝나고 나서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 날 연습할 때의 마음으로 쭉 공연을 이어나가면 될 것 같아요. "착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에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이번 공연의 주제에요.”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가지고 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강단 있음이 고마웠다. 시국에 착착 맞게 감기는 의 유연성은 소위 ‘유도리’있는 판소리의 구성에 있다. ‘국민손녀’ 이자람이 ‘명창 이자람’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판소리를 배우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이자람은 고 은희진 선생님의 첫 제자가 되면서 국악중학교, 국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국악고등학교, 자퇴서 문제아는 아니었다. 다만 ‘예솔’이라는 게 문제였다. “어려서부터 주목 받는 인생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스포트라이트가 굉장히 애매했어요. 흔히 이쪽 업계 사람들한테는 ‘뭐, 동요했던. 그냥 그런 애’ 였는데 일반 대중들에게는 연예인은 아닌데 뭔가 아는. 고등학교가 분위기가 굉장히 엄격했어요. 그런데 뭔가 이자람 주변에서 ‘예솔이’를 통하는 시끌벅적한 일이 자꾸 일어나니까 작은 일에도 많이 혼났어요. 자율학습 시간에 잡지를 보는데 “야, 네가 예솔이면 다야?”이렇게 혼났다니까요. 전 억울한거죠, 제가 “예솔이면 다야” 하면서 잡지 봤냐구요. 그냥 잡지 본걸 가지고 혼내시면 되는데. 이런 일들이 계속 쌓였어요. 그래서 “학교 도움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저는 검정고시 보겠습니다” 하고 자퇴서를 냈어요.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 부르시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판소리를 할 때 학교라는 제도가 너를 보호 해줄 거다, 험한 세상에서 네 재능이 아까워질 수 있다”라고 말씀을 해주시는데. 선생님이 바지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줄도 모르시고, 바지를 줬다, 폈다 하면서 말씀을 해주시는 거에요. 일개 학생에 불과한 제 앞에서 바지가 무릎까지 올라온 줄도 모르고 말씀을 해주시는 걸 보고 선생님이 정말 진심으로, 나한테 애정을 가지고 걱정해주시는구나 라는 걸 느꼈죠. 그래서 잠자코 있었어요(웃음). 저한테는 굉장한 은인이세요.” 예솔이, 서울대 트라우마 이자람은 '예솔이'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학창시절에는 굉장히 싫었죠.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은희진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판소리를 1년 정도 안 했어요. 솔직히 그 때까지는 저에게는 선생님 자체가 판소리여서 한 거였지 이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 건지 잘 몰랐거든요. 그렇게 선생님을 잃고 나서 1년 정도 방황하다가 ‘아, 이제 내가 혼자서 판소리를 껴안아야 하겠다’고 느꼈어요. 그 때부터 판소리를 하는 이자람 이라고 제대로 선 것 같아요. 혼자서 정확히 서고 나니까 예솔이는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그 이야기를 해도 ‘나는 언젠가는 이자람으로 인식 될거야’라고 스스로 되새겼거든요. 요즘은 예솔이의 영역보다 이자람의 영역이 커지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서울대학교로 이어지는 그녀의 ‘국립’ 생활은 그야말로 탄탄대로 엘리트 코스이다. 영화 ‘서편제’의 송화는 눈 먼 한을 판소리로 승화하지 않았던가? 솟구치는 한을 풀어내는 것이 판소리 아니냐, 고속도로만 밟아온 인생이기에 판소리의 덕목인 한을 녹여내기는 쉽지 않겠다는 말을 건넸다. “어, 재미있다. 어제 꿈에 ‘이자람은 괄호 때문에 판소리를 한다’는 질문을 받았거든요. 그랬더니 누군가가 ‘이자람은 신명으로 판소리를 한다’라는 답을 괄호 안에 넣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한(恨) 이라고 그러시네(웃음). 판소리는 신명, 한 만을 가지고 하는 건 아니에요. 인간사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죠. 제가 엘리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국립, 국립, 국립을 나왔기 때문에 굉장히 편안한 생활을 했다, 쟤는 권력이다 이런 말을 들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런 말을 해줬어요. 똑같은 고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울분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가는 개개인의 차이다. 경험이 재산이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한 태도가 재산이라는 말을 해주더라고요. 그 때 서울대 트라우마를 벗었어요. 그래, 괜찮다. 국악고등학교도 괜찮고, 서울대도 괜찮고. 제가 “저 서울대 나왔는데 옥탑 살고 있어요”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거에요. 옥탑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삶을 어떤 자세로 사는가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학벌이나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경험에 대한 태도가 문제인거죠.” 이자람, 그리고,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서른 한 살의 이자람은 공연을 끝내고 ‘아마도 이자람 밴드’ 활동에 올인 할 예정이다. “솔직히 밴드는 제대로 활동을 못했어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고 아직은 창피하지만 정말 잘하고 싶어요. 밴드 (이)민기를 장기하가 뺏어갔는데(아마도 이자람밴드로 활동했던 이민기는 현재 장기하와 얼굴들 활동 중이다). 농담이고요(웃음). 민기가 우리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거든요. 그 만큼 우리 밴드에 대해서도 애정이 많기 때문에 제대로 재정비를 하고 들어가면 언제든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정규앨범도 나올 거고, 를 잘 끝내고 가장 먼저 할 일은 밴드의 재정비에요.” 대중들과 한결 가까워진 를 판소리 쪽 선생님들이 전해주는 피드백이 없었다는 건 아쉽지만 많은 소리꾼들이 이야기와 판소리의 역할에 대해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쪽 팔리지 않게 살고 싶다’는 소망도 안고 있다.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수 많은 경험을 했고, 이뤄낸 성과도 많은 그녀에게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한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자부심이 있나? 아, 정말 어려워요.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죠. 글쎄, 연애? 저 연애 빼면 시체거든요(웃음).” 치열하게 일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그녀가 세상에 대한 화끈한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돈 아깝지 않아요. 올 해 들어서 여러 가지 시국에 한 번이라도 분노한 적이 있다면, 무조건 오시는 게 좋을 거에요, 꼭 오세요.” 속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성토의 자리를 만들어놓은 이자람. 그녀의 당부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 ">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2009.09.08 / 조회 11,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