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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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 쇼> 제발 내 곁에 오지마, 베키!
위태한 관계라는 것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기 전의 관계, 아직 '연(緣)'이라는 것이 맞닿아 있는 관계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오게 된 과정을 돌이킬 방법은 찾기 힘들고, 저 멀리 보이는 '나락'이라는 결말을 앞당겨 맞이하기엔 두려운 상태. 그런 위태함을 '안정'이라 자위하며 하루하루를 더해가는 사람들이 "별일 없이 산다"며 나른한 일상을 채워가는 보통의 사람들 아닐까. 그래서 베키는 가까이 하기엔 꺼림직한 존재이다. 그가 가족들과 연락이 끊기고 이성과의 사랑을 뜻대로 이뤄본 적 없으며 심지어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도 마음대로 못 가는, 이상한 옷차림의 여자여서가 아니다. 파멸의 경험이 안겨준 직감을 가지고 당신의 위태함을 정확하게 꼬집기 때문이다. "그렇죠? 그런거죠? 다 알아요."라고. 연극 의 첫 장면은 아버지 장례를 치른 6개월 후, 여전히 애도기간을 갖고 과거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수잔나(김도영 분)와 냉철한 이성과 상황 판단력으로 집안 대소사의 해결사로 나서지만 포르노를 보지 않고는 잠에 들지 못하는 맥스(신덕호 분)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유산 정리를 의논하고, 죽은 남편은 일찌감치 과거의 일로 마침표를 찍고 다리가 아픈 자신을 돌봐줄 만한 애인을 옆에 들인 엄마에 대한 이들의 걱정은, 성년이 된 두 남매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따뜻하게 보수하는 그림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는 남매라는 이름 뒤엔 부모로부터의 버림, 충격적인 아버지의 진실, 그리고 이성으로서의 사랑이 뒤엉켜 이들 스스로도 제 한 몸을 온전히 가늠하지 못할 상황이 숨어 있다. 억지로 외면하며 자신의 불안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베키는 당당하다. 비록 커튼 같아 보이는 이상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더라도 자신의 감정과 불안, 그리고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하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정상의 '비정상성'을 날카롭게 꼬집고, 베키로 인해 자신들이 지켜 온 위태로운 정상의 삶이 깨질까 봐 이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과연 누가 현실과 대면할 용기를 낼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온전한 사랑의 손을 내밀어줄 것인가. 올해 '불신시대'를 주제로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이는 첫 작품인 는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메시지로 짐짓 무거운 무대를 예상할 수도 있으나, 톡톡 튀는 대화, 불현듯 튀어나오는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행동과 상황들로 시종일관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무대 위 인물들이 베키 쇼의 등장으로 정신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관객들은 실소와 함께 씁쓸한 뒷맛을 느낄 것이다. 맛깔진 대사들이 리드미컬하게 살아나는 것이 무엇보다 를 펼쳐 보이는 매력일진대 베키 쇼 역을 맡은 강지은만이 순발력과 특유의 센스로 그 맛을 십분 살려내고 있다. 수잔 슬레이터 역의 이연규는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모습으로 베키와 대칭 혹은 접점으로 자리해 무대 균형을 맞추고 있다. 오는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2014.04.08 / 조회 9,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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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이 가능한가 <베키 쇼>
30대 남녀 4명을 중심으로 현대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연극 가 개막했다. 올해 불신시대를 주제로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준비 중인 ‘두산인문극장'의 첫 번째 작품인 는 '진정한 사랑이 가능한가'라는 주제를 유쾌하지만 진지하게 탐색한다. ‘베키 쇼’라는 여성을 둘러싼 인물들간의 관계와 양면적인 감정들을 담아낸 는 미국 TV드라마 의 작가 지나 지온프리도의 2009년 작품이다. 이번 국내 초연 무대는 로 2010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박근형이 연출을 맡아서 호텔방과 집 안으로 나뉜 무대 공간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그려낸다.연극은 아버지의 사망으로 상심한 수잔나에게 양오빠 맥스가 더 이상 눈 앞의 문제를 회피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수잔나는 몇 달 후 맥스의 충고로 떠난 여행에서 앤드류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앤드류의 직장 동료 베키 쇼와 양오빠 맥스의 소개팅을 주선하게 된다. 베키 쇼의 등장으로 수잔나·맥스·앤드류의 관계는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맥스와 수잔나, 앤드류 사이를 오가며 혼란에 빠트리고 이들 관계를 엉망으로 만드는 인물, 베키 쇼는 강지은이 맡아 엉뚱하지만 진지한 베키 쇼를 연기하며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 있으면서 맥스와 기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수잔나 슬레이터 역에는 김도영, 수잔나의 남편으로 수잔나와 베키 사이를 오가는 앤드류 포터 역에는 박윤희, 수잔나의 양오빠로 사랑을 불신하는 인물 맥스 가렛 역에는 신덕호, 수잔나의 어머니인 수잔 슬레이터 역에 이연규가 작지만 알찬 무대를 만들어 낸다. 탄탄한 구성과 위트 넘치는 대사들이 돋보이는 연극 는 오는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펼쳐진다.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2014.04.07 / 조회 8,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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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 관객도 공범자가 된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
최근 나주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 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논의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경찰청과 형사정책연구원이 공동 발표한 ‘2011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2,054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강간·강제추행범죄인 1만 9,393건의 10.5%를 차지하는 수치다. 이를 하루 단위로 환산하면 아동·청소년 중 매일 6명이 성범죄 피해를 입는 셈이다. 아동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각 계의 시선과 목소리는 다양하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아동이라도 사회적 무관심이나 방치 속에서 성폭력의 위험에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다. 이를 위해 시민과 민간단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서고 있는 가운데 공연계에서는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연극이 무대에 올라 주목받고 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아이들 희생 부른다”- 관객을 공범자로 만드는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후안 마요르가의 스페인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원제:하멜린 Hamelin)’를 황재헌 연출이 각색한 작품이다. 한 도시에서 발생한 아동 성추행 사건과 그림 형제의 동화로도 유명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전설을 소재로 했다. “사건의 단순한 고발이나 선동에 그치지 않고, 한국 관객에게 현실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황재헌 연출에게 작품의 특징과 사회적 의미를 물었다.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동 성폭력을 다룬 이 작품은 어떤 관계성을 맺고 있는가?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이다. 동화에서 어린아이에게 ‘쥐’는 두려운 대상이고, 두려운 대상을 없애주는 존재가 ‘피리 부는 사나이’다. 어린아이를 이용하거나 두렵게 했던 대상을 ‘쥐’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단순한 동화에 그치지 않는다. 동화의 배경에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그 원인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이들이 병을 옮긴다고 생각해 아이들을 학대했다. 수많은 아이가 어른들에 의해 화형당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했다. 이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을 무참히 희생시킨 일화다. 작가는 이것을 현대의 ‘아동 학대’ 문제와 연관 지어 이 작품을 썼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은 실화인가? 스페인에서 이런 작품이 쓰이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작품 속 사건이 실화는 아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도 2000년대 초중반에 수백만에 이르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등 아동 학대와 아동 성폭력의 문제가 심각했다. 이 작품의 원제는 ‘하멜른’이다. 작가가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이 되는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아동 학대가 자행되는 전 세계의 각 도시를 상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아동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아동 성폭력 문제는 실제 사건만 본다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다. 하지만 대개 가해자를 성도착증 환자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가해자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치부하면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러싼 주변의 가족들, 이웃들, 사회구조적으로 소외가 발생하는 이유를 한 꺼풀 벗겨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아동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는 검사 몬떼로가 주인공이다. 워커홀릭인 몬떼로는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루면서 정작 자신의 어린 아들과는 서먹하게 지낸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 아이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족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작품은 아동과 진심어린 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는 아동을 대하는 어른들에게 진정한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공연의 사회적 의미, ‘시각의 확대’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공연은 관객과 만남으로써 사회적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연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연의 가장 큰 사회적 기능은 ‘시각의 확대’다. 영화 ‘도가니’의 경우 실사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영상이 대중이 잘 알지 못했던 사회 문제를 폭로하고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는 기능을 했다. 공연은 관객이 여러 가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표현기법을 사용한다. 당면한 이슈를 관객 스스로가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문제 해결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히는 역할도 한다. 특히, 이 작품은 동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하면서 당장 눈앞에 닥친 실제의 사건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관객 자신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작품이 전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구체화한다면 어떤 것인가? ‘우리 아이와 대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동성폭력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범인이겠지만 작품은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무관심과 명령조의 일방적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를 참혹한 범죄의 피해자로 내모는 현실은 한 명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만든 것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다. 사회적 소외를 해결하고,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고 이해하기 위한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난해 영화 ‘도가니’ 열풍에 이어 ‘아동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탈의 또 다른 고발이 될 예정이다. 사회적 이슈를 바탕으로 뜨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어떻게 무대에서 드러낼지 관객의 기대를 모은다. 아동 성폭력 문제에 대한 알레고리적 질문을 던지는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9월 7일부터 9월 23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2.09.06 / 조회 6,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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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 처참한 비극적 운명, 이것이 나의 존재인가
레바논 태생 캐나다 작가 겸 연출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연극 이 올 6월 공연한다. 한국에서는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을린 사랑’이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그 해 최고 화제작으로 떠오른 이후 2011년 정식 개봉,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프랑스 영화감독 드니 뵐뇌브는 연극을 본 후 충격에 휩싸여 5년간의 준비 끝에 영화로 새롭게 만들어 내었다. 와즈디 무아와드가 ‘존재에 대한 질문’이라고 묘사한 바 있는 은 어머니 나왈이 남긴 유언에 따라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그녀의 자녀인 쌍둥이 남매가 자신들의 아버지와 손위 형제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잘 몰랐던 어머니의 과거를 거슬러 가는 남매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접하게 되고, 이는 곧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과정이 된다. 그리스 신화 속 비극인 오이디푸스 모티브가 현대적으로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배삼식 작가가 한국 무대를 위해 원작 희곡을 다듬고, 등의 김동현 연출이 꼼꼼하고 치밀한 연출을 다시 한번 선보일 예정. 김동현 연출제작발표회장에서 김동현 연출은 “대부분의 행동과 사건이 말로서 이어지는 작품으로, 굉장히 연극성이 강하다”고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장소는 많지만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사보다는 침묵을 강조했던 영화와 달리 강렬한 시적 대사와 탄탄한 서사 구조가 돋보이는 것이 이번 작품의 특징.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하지 않아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본 연극에서, 14세에 연인의 아이를 가진 소녀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세 명의 배우가 나누어 나왈 역을 맡는다. 순수하고 깨끗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통해 임신을 한 10대 나왈 역엔 이다아야가, 그 이후부터 3, 40대의 모습은 배해선이, 가혹한 운명 앞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60대 나왈은 이연규의 몫. 나왈 역을 맡은 이연규, 이다아야, 배해선(왼쪽부터)“처음엔 한 인물을 세 명이 나눠 하는 것에 의문을 가졌었다”는 이연규는 “나왈 역을 맡은 세 명의 배우가 동시에 한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도 있는 등 연극적 특징을 크게 갖고 있는 작품임을 깨달았다”면서 “작품 속 상황이 너무 버겁고 고통스러워서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꼈고, 이 고통은 한 인간이 살아온 역사가 다 녹아 있는 크고 깊은 이야기가 이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나왈의 유언에 따라 형과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쌍둥이 남매 시몽과 잔느 역은 김주완과 이진희가 소화할 예정이다.쌍둥이 남매 시몽, 잔느(김주완, 이진희)와남매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기를 권하는 공증인 르벨(백익남)그토록 찾아 헤맸던 첫째 아들과, 쌍둥이 남매의 아버지가 동일 인물임을 알고 비극적인 자신의운명을 침묵으로 감당했던 나왈,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몽과 잔느는 어머니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어머니의 침묵과 자신들의 존재의 근원을 깨닫게 된다. 배우 남명렬이 종군사진기자, 파힘, 말락, 샴세딘 등 4역에 나서는 등 1인 다역의 활용도 눈에 띈다. “한 명을 여러 명의 배우가 나눠 하거나 한 명의 배우가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것은 이 대본 자체가 탄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작품 속 비극이 보편적이고 편재해 있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고 아이러니한 구조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 김동현 연출의 변이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인간의 비극과 의지는 윤상, 김동률, 이적 등의 가수들과 함께 작업하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뮤지션 정재일의 음악이 더해져 전개될 예정. 와즈디 무아와드가 고국 레바논의 내전을 배경으로 쓴 ‘피의 약속’ 삼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은 6월 5일부터 7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2012.05.16 / 조회 1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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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뭐볼까] 가려운 곳 시원하게 긁어주는 풍자 연극 두 편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풍자 연극 두 편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두 소년의 가벼운 다툼으로 인해 벌어지는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의 다툼을 담는다. 소소한 부부간의 논쟁으로 부르주아 계층의 허례허식을 꼬집는다. 연극 ‘리턴 투 햄릿’은 무대 뒤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연극계의 현실을 드러내며 연극인의 무대에 대한 꿈과 열정을 보여준다.웃음 폭탄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 풍자연극 ‘대학살의 신’2012년 2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연극 ‘대학살의 신’은 두 소년의 다툼이 부모들 싸움으로 번져가는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층의 허례허식을 담아내는 블랙 코미디다. 연극 ‘아트’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이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주고받는 대사만으로 다양한 갈등의 변주를 드러낸다. 유쾌하면서도 히스테릭한 대사는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원작자인 야스미나 레자는 이 작품으로 교양과 예절이라는 가식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서로 헐뜯고 싸우기 바쁜 인간의 잔인함을 조롱한다.작품은 영국 대표 시상식인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우수 코미디 상을,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대상, 연출상, 여우주연상과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이번 공연은 초연을 함께했던 한태숙 연출가가 참여한다. 가해자 부모로는 지난 공연에서 연기를 펼쳤던 박지일과 서주희도 힘을 보탠다. 피해자 부모 역에는 이대연과 이연규가 출연한다. 신구 배우들의 앙상블은 연극 ‘대학살의 신’의 신선함을 더할 예정이다. 연극의 절망과 꿈과 희망이 모두 여기에!연극 ‘리턴 투 햄릿’2012년 4월 8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연극 ‘리턴 투 햄릿’은 연극계의 현실을 꼬집으면서 무대 뒷편에서 드러나는 배우들의 꿈과 열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4년 만에 연극 무대를 올리는 장진의 무대 복귀작이다. 이번 공연은 세계최초 연간 라인업 공연을 선보인 ‘연극열전4’의 첫 번째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연극 ‘리턴 투 햄릿’은 연극 ‘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한 극장의 분장실에서 시작된다. 작품은 배우들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보여주며 그들의 꿈과 열정, 갈등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극중극 형태의 마당극, 빠르고 오가는 대사 등 ‘장진식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연극열전’의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조재현은 연극 ‘리턴 투 햄릿’에 대해 “영화계에서는 ‘장진식 코미디’라고 말하지만, 연극계에서는 ‘장진식 연극’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그만의 독특함이 영화보다는 연극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연극 ‘리턴 투 햄릿’에는 실력파 연극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번 공연은 김원해, 양진석, 박준서, 서주환, 김대령, 박찬서, 조복래, 이 엘, 한서진, 강유나, 김슬기 등이 출연해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1.12.20 / 조회 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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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47] 소멸의 또 다른 이름은 탄생, 연극 ‘하얀앵두’
몸 안의 지층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가늠해봐야 백 년도 채 안 되는 삶일 진데 나름 여러 개의 층이 생겼다. 그 안에는 어느 날의 잊힌 사건이 화석이 돼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처 돌아보지 못한 시간들로 가득 찬 우리 몸의 지층이 허물어지면 화석이라도 남아 다른 누군가에게 발견될 수 있을까. 안쓰러워진 몇 십 년 앞에 5억 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억’ 소리 나도록 급작스런 출현에 보잘것없는 우리의 삶은 고개를 숙이겠지만, 인자한 5억 년의 시간은 우리네 시간을 위축시키지 않는다. 가만히 그러안고 곧 우리가 그임을 나지막이 속삭인다. 1년 전도 가물가물한 우리에게 5억 년은 막연한 환상과 비슷하다. 그 길고 험난했던 시간이 하나의 화석으로 축약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경이의 순간이 찰나처럼 지나가고 우리는 곧 심드렁해질 것이다. 1년 전에 죽은 우리집 똥개의 뼈가 나왔다면 차라리 오열했을 것을. 연극 ‘하얀앵두’는 그 엄청난 시간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배짱을 발휘했으며, 놀라운 것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들어와 제 자리인 것처럼 안착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 영겁의 시간이 우리의 네모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가만히 쓰다듬는다. 성급한 위로는 없다. 연극은 마음에 구멍을 갖고 사는 어느 지질학자(권오평)가 그다지 ‘유명하지 못한’ 연극배우(하영란)에게 삼엽충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삼엽충이 길고 지난했던 5억 년의 여행을 마무리 짓고 도착한 곳은 하영란의 손바닥이다. 여배우의 남편 반아산은 ‘글 안 써지는’ 작가다. 수술 후 영월에 내려온 그는 할아버지의 정원을 되살리고자 한다. 자, 눈을 감고 할머니가 우리를 반겼던 시골의 풍경을 상상해보자. 정작 고향이라 부를 만한 시골을 경험하지 못했을지라도 상상 속 시골은 대게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강아지(상상 속 시골 강아지는 진돗개일 가능성이 크다), 나무 한 그루, 꽃, 평상 정도는 갖춰져 있다. 여기 반아산의 기억 속 할아버지의 마당 역시 그렇다. 조금 더 특이하다면 하얀앵두가 있었다는 것. 진주처럼 작은 하얀앵두가 달빛을 받고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걸,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다. 하얀앵두가 그토록 반짝거리는 이유는 현재 부재하기 때문이다. 소멸되는 것일수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이렇듯 연극 ‘하얀앵두’ 속에는 여러 시간이 교차한다. 그 간극은 상당하며 5억 년이 바라보는 인간의 시간, 인간이 바라보는 개의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인물과 시간이 무작위로 선택돼 엉켜버린 것 같은 와중에도 지층처럼 정갈하게 정돈되는 맛이 있다. 소멸과 탄생을 아우르는 인간에 집중한 탓에 연극은 싱싱하다. 연극의 두 시간가량은 황폐해진 정원을 가다듬고 식물을 심는 과정과 비슷하다. 흙을 정돈하고 기다림을 담보하는 씨앗을 뿌린다. 버석거리는 황토색 땅 깊숙한 곳에 곧 이슬 맞으며 몸을 내밀 어린잎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 간질거리는 생명력이 있다. 연극은 마지막까지 열매를 보이지는 않으나 열매를 기다리는 희망의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과학시리즈로 무대에 오른 ‘하얀앵두’는 과학과 인간, 자연과 소멸된 모든 것을 하나의 끈으로 연결시켰다. 물처럼 흘러 서로를 쓰다듬고 바다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불가능함에도 등장하는 귀신 송도지와 분명 존재함에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강아지 원백이 역시 우주의 순환 안에서 숨 쉰다. 죽음은 소멸 대신 새로운 탄생을 예고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연극 ‘하얀앵두’는 삶의 본질과 가까운 추상적 주제를 구체적인 일상으로 제시, 그들의 거대한 시간 속에 관객이 스며들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들뜨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위트로 가득한 이 작품은 농익은 배우들의 연기로 보이지 않는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5억 년 동안 긴 여행길을 지나 이곳에 다다른 화석 하나가 괜찮다, 괜찮다, 당신을 위로한다.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0.08.20 / 조회 1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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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주를 노래하다, 극작가 배삼식
연극 ‘하얀앵두’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5억 년 전 캄브리아기 지층이 있던 강원도 영월을 배경으로 했다. 무대는 향토적인 강원도 사투리와 화석, 인물들의 이름에도 숨겨져 있는 온갖 꽃과 나무들로 채워진다. 특히 극의 제목이자 주인공 반아산(雅蒜)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 마당에서 봤다던 ‘하얀앵두’는 실제 작가 배삼식의 유년시절 기억 속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2009년 과학연극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초연됐던 연극 ‘하얀앵두’는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동안 ‘벽 속의 요정’, ‘허삼관 매혈기’ 등 원작이 있는 작품들을 주로 각색해 선보였던 작가 배삼식은 이 작품을 통해 할아버지와 ‘하얀앵두’에 대한 흐릿한 기억을 토대로 켜켜이 쌓인 지나간 시간들을 겹쳐 보인다. - 앵두가 익어가는 시간 연극 ‘하얀앵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각의 한계와 약점을 갖고 있다. 주인공 아산은 퇴물 작가이고, 그의 아내 영란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 지질학과 교수 오평은 죽은 아내에 대한 괴로움과 상처가 남아있고, 조교 소영은 그런 오평을 짝사랑한다. 아산의 딸 지연은 일곱 살 때 입양돼 길러졌다. “누구나 다 결핍이 있죠. 상처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소리 내서 우는 자만,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자만 아픔이 있는 건 아니니까. 단지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물론 삶은 고통스럽죠.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보면서 그 고통을 견뎌야 하는가, 나름대로 이런 질문들을 던진 거예요. 고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각각의 사람들이 그 결핍과 상처를 어떻게 끌어안고 사는지, 안으로 썩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견디고들 사는지 하는 것들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극 중 인물들은 각자 심각한 상황을 맞닥뜨려 괴로워하다가도 암전이 되고 조명이 켜지면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간다.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도 고통을 절절하게 표현하지도 않는다. 작가 배삼식은 “실제 우리 삶은, 제가 보는 삶은 그런 식이 아닌가. 시간이라는 것이 해결해주는 게 있기도 하잖아요. 작품 속에 갈등이 없다기 보다는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뿐인 거죠. 클라이매틱한 극 구조에 익숙한 분들은 너무 해결이 쉽지 않느냐고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고의적으로 전통적인 극 구조를 비껴간 부분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날 것 그대로의 고통을 들이대는 최근 작품의 흐름과 반대로 연극 ‘하얀앵두’는 치열한 갈등과 클라이맥스가 빠진 빈자리에 반복과 대구가 자리 잡았다. 연극적인 재미가 가득하다. “작품을 쓸 때 억지웃음은 안됐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미묘한 타이밍이나 배우 개개인의 개인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서 벌어지는 반복이나 역지사지 같은 웃음을 진지함과 함께 뒤섞어 보여주고 싶었죠. 아주 진지한 순간에도 그 사람들만 있었다면 비극이었을 거예요. 거울처럼 이 상황을 반대편에서 보는 눈들이 한 구석에 하나씩 있죠. 나름대로는 배치하면서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고, 실제로도 또 그렇고 실제 우리 삶이.” 그의 말처럼 인생은 아이러니다. 울다가도 웃고 고통스럽다가도 곧 배가 고파진다. 극 중 지질학자 권오평은 첫 장면부터 5억 년의 시간을 버텨낸 화석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영원이라는 건 이처럼 무책임하다. 술에 취한 어느 날 그는 울부짖는다. “난 영원이 싫어! 싫다고! 싫단 말이야!” 작가 배삼식은 이 작품을 통해 사라짐,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멸이라는 게 사라진다는 뜻만이 아니고 타오를 ‘소’에다가 멸할 ‘멸’자를 써서 모든 게 한 순간에 확 피었다가 사라지는 걸 의미해요. 사람들은 사라질 운명들을 될 수 있으면 안 보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무의식중에 사라지더라도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고. 그런 것을 통해서 영원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불확실하지만 가져보는 것 같아요.” 연극 ‘하얀앵두’는 그 포스터의 노란 색감만큼이나 따뜻하다. 작가 배삼식은 “작품을 쓸 때 따뜻함이라는 건 갈망으로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남아 있길 바랐죠. 저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함을 갈망하고 있고, 속이 쓰리고 외롭고, 스스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러고 있는가 하는 것들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극 중 곽씨 영감과 반아산은 집 마당가를 둘러 탱자나무를 심는다. 가을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이 메마른 가지에서도 꽃을 틔울 것이다. “영상이었다면 마지막 장면을 에덴이다 파라다이스처럼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무대에서는 상상력이 필요해요. 중극장 정도의 규모가 돼서 소켓으로 한 번에 밀고 들어와 무대를 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꽃은 관객들의 상상 속에 맡겨두고 싶어요.” 연극 ‘하얀앵두’는 오는 8월 2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글,사진_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newstage@hanmail.net)
2010.08.13 / 조회 16,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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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앵두> “우지 마라, 꽃이 지면서 우는 거 봤나?”
형체가 있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인간이 자주 잊고 사는 이 단순한 명제를 무대는 담담하게 읊조린다. “모든 건, 사라지기 때문에 애틋하다”고.
과학연극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연극 는 과학연극이라기 보단, 철학연극에 더 가까워 보인다. 5억년 전 삼엽충을 보며 그 안에 새겨진 시간의 흐름을 신기해 하는 사람들. 그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보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찰나와 같은지 깨닫지만, 그래도 그들은 세상사 희로애락에 다시 푹 빠져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지지고 볶고 싸우다 화해하고, 사랑한다. 그리곤 삶은, 사라지기 때문에 더 찬란하지 않냐고 묻는다.
특별한 줄거리는 없다. 화석채집을 위해 강원도 산골을 들른 지질학자와 조교, 잊혀져 가는 50대 작가와 그의 연극 배우 아내, 그리고 그들의 딸과 이웃집 노인의 소소한 일상이 작은 시골 마당에서 펼쳐진다.
사람 나이로는 100살쯤 되었을 15살 개의 임종과 18살 고등학교 딸의 사고 같은 임신은 이들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다.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한 개의 죽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딸을 임신시킨 도둑 같은 (앞날의) 사위에게 분통을 터트리지만 결국 변한 건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황량한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으며 이들의 피고 짐을 바라본다.
5만년 된 삼엽충 화석은 이들의 일상에 던져진 각성과도 같다. 몇 억만년 전 적도에서 자유롭게 떠돌던 삼엽충이 지금, 그들 앞에서 시간의 작은 흔적으로 남았다. 이 시간 동안 얼마나 수많은 형체들이 나타났다, 소멸됐을까?
무대는 거창하게 삶과 죽음, 자연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고약한 술주정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가 있고, 자신의 학생을 사랑하게 된 35살 노총각과 더 이상 주목 받지 못해 힘겨워 하는 작가, 곧 여생을 마무리 하는 개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소소한 일상과 수다는 소멸해 가는 생명의 기억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애틋하고 특별하다.
이 뇌, 화학, 양자물리 등 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갔다면, 에서는 탄생과 소멸이라는 극히 철학적인 내용을 풀어나가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때론 현미경을 들이댄 듯 자세하게 묘사하며 2시간 이상 인터미션 없이 이어져 극 말미엔 관객에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의 죽음을 지켜보고, 작은 삼엽충 하나로 무한한 시간을 되돌려 보면 삶의 의미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가와 연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는 이 작품의 또 다른 힘이자 백미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2009.06.18 / 조회 1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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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늪 > 헤스터의 서이숙
헤스터의 색깔을 물들인
백지장 서이숙
의 서이숙을 이야기 하기 전에 에 대해 잠시 상식적인 내용에서 짚고 넘어가 보자. 은 희곡의 혁명을 불러 일으킨 세계적인 극작가로 활동중인 마리나 카의 대표작이다. 아일랜드 서사시의 분명함과 순수함을 결합시키는 현대적인 희랍비극이다. 이야기를 잠깐 훔쳐 보면 아일랜드 한 농가의 습지에서 시작한다. 떠돌이 헤스터 스웨인은 어린 시절 자기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잊지 못해 고향인 습지를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 10여 년 전 10살 연하의 애인, 카사지를 만나 딸 조시를 낳고, 빈농이던 그의 경제적 성공을 돕지만 세월에 흘러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된 그는 그녀를 버리고 이웃 부농의 어린 딸과 결혼을 하겠다며 헤스터에게 떠나달라고 요구한다. 어머니에 이어 남편에게 또 다시 버림을 받게 된 헤스터는 절망과 상심으로 무너져 간다. 남편 카싸지는 결혼식 전에 마을을 떠나라 최후통첩을 하고, 어린 딸마저 빼앗기게 된 헤스터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된다.
"이 작품에 왜 저를 선택했을까? 하고 많이 생각했어요. '헤스터'라는 인물은 모든 배우들이 탐을 내는 배역이고 탐을 내는 배우들이 많거든요. 저에게 주어진 이상 제가 가지고 있는 이성과 감성을 겸비해서 감성적으로 무대 위에 풀어 놓는 것이 아니라 절묘하게 절충되고 기존에 가지고 있지 않는 어떤 다른 에너지를 꺼내 놓아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은 여자배우라면 한 번쯤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헤스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다. 이유는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이성과 감성만이 아닌 자신 안에 있는 미묘한 에너지까지 꺼내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배역을 맡은 것보다 배가 더 힘들다. '헤스터'라는 인물은 캐릭터로 보통내기의 인물은 아니다. 떠돌이에 즉흥적이고, 원시적이고, 자아도 강하다. 한 사람이 여러 종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헤스터'는 여러 종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한 사람 안에 다중적인 인물들을 그려내야 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본성의 헤스터라는 인물에서 다중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해도 근본은 헤스터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무대도 적은 무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연기력으로 1시간 30분 동안 큰 무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헤스터라는 인물이 보통 인물은 아니에요. 아일랜드에서의 '떠돌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딱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잖아요. 정서도 틀리고. 그래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여러가지 이유와 해석을 붙이기 시작했어요. 다변하는 성격이거든요. 집착하고 광기있고, 여성적인 면도 드러내고,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요. 절충해서 각 장마다 두드러지고 강조되는 부분을 밀착시키려고 노력했어요. 배우가 이 작품을 해내면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역할이고 또 작품인 것 같아요. 1시간 30분 내에 다양한 상황에 헤스터의 상황을 표현해 내는 것이 저에게는 큰 숙제이죠.”
연출과 배우는 서로에 대한 역할에 충실히 집요하게 장점을 끌어내고 있다.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서이숙을 연출 한태숙은 디테일한 작업에 들어가 서이숙의 다른 정서나 에너지를 끌어내고 있다. 은 긴장을 늦추고 갈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배우가 그만큼 밀도 깊게 가져가야 한다. 그것은 연출이 가져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기에 배우가 무대 위에서 긴장감과 밀도를 조절하면서 가야 하는 부분이다. 연출은 단지 그 기를 실어 주는 작업을 무대 위에 오르기 전까지 전달해 줄 뿐이다.
"연출 선생님이 경계선을 잡아 주세요. 남성성, 중성성, 원시성, 여성성 등을 잡아 주시는 거죠. 한 쪽만 부각시키게 되면 다른 쪽은 다 죽게 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면서도 극 속에 헤스터는 즉흥적으로 삶을 살고 있다. 계획이라는 것이 없다. 이런 환경과 저런 환경에 쉽게 길들여지는 그런 여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여자에게 화두는 엄마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 큰 화두인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날 때까지 헤스터가 말한 것이 진심이었는지 모를 것 같아요. 자기가 말하면서도 진심이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엄마에 대해 버림받았다는 불안감이 집착으로 엄마의 끈을 놓지 못하는 헤스터의 세계를 이해할지 모르겠어요.”
서이숙은 자아를 논할 정도로 헤스터에 대해 분석이 되어 있다. 본능적인 욕구라던가 자기의 근본에 대한 원시성까지도. 여자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자기가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투쟁을 하는 헤스터를 머리 속에서 가슴 속에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늪이라는 것이 습지잖아요. 빨아들이는 것. 운명에 대해서 타고난 운명을 벗어나고 싶은데 무엇인가 나를 끌어 들이는 곳. 그것이 고양이늪이죠."
서이숙은 고양이 늪을 우리식으로 풀고 있다. 헤스터의 떠돌이, 집착, 남성성, 여성성 그리고 중성성. 한 인간이 지고가는 업보라고 생각한단다. '한'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인지 헤스터라는 인물을 서이숙은 잘 그려낼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느낌이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던 그녀가 졸업하고 처음으로 연극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연극을 본 서이숙은 실업팀에 코치로 들어갔다가 모든걸 그만 두고 극단 단원모집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본 후 그녀는 극단으로 입단하게 된다. 화술이 좋다는 평을 받으면서 그녀는 3년 동안 극단에서 공연을 하며 전국연극제에서 수상도 하게 된다. 3년이 지나고 극단을 떠나와 서울로 무조건 상경하여 극단 미추로 들어 간다. 3개월 연수를 받으면서 훈련을 받고 미추에서 작품을 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작품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중앙대학교에 만학도가 되었고,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1986년 대한민국연극제 신인연기상 수상을 시작으로 하여 2003년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과 2004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서이숙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한 작품 중 주목받는 작품은 에서 대범한 아내 허옥란 역으로 주목 받았고, 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늑대대장 사마루 역, 에서 최승희의 마지막을 지키는 신비의 여인 역을 통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감탄해요. '이렇게 완벽한 작품이 있을 수가 있나', '이 배역은 나랑 정말 맞아.'하면서 작품마다 푹 빠지는 것 같아요. 건방지다 할지 모르겠는데 작품하고 연애하는 것 같아요. 연애하면 즐겁잖아요.”
작업을 할 때 어려운 점도 많다. 그러나 그녀는 연애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서이숙은 배우로서 백지장 같은 인물이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색깔의 물을 들인다 그리고 다시 백지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물을 들이는 배우이다. 그녀의 매력은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은 역에서부터 큰 역을 맡을 때의 그녀의 마음 가짐은 언제나 한결 같다.
"모든 관객이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무대에 서요. 원칙적인 것과 배우로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서 뿌리가 굳건해지면 배우의 길이 험난하다고 해도 걸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녀가 배우로서 생각하는 것을 함축하여 말하고 있다. 자기 것만 표현하기 위해 자기만 앞서가는 작품은 언제나 망가진다. 모든 배우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끝까지 뭉쳐서 한 마음으로, 극에 대한 자세의 일치점을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야만 관객들과의 만남에서도 그 열정과 에너지를 뿜어 낼 수 있는 것이고 관객들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서로 힘이 된다면 좋은 작품, 좋은 배우가 나온다는 생각을 서이숙은 가지고 있다.
“삶의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가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냥 연극 잘하면서 살고 싶죠. 즐기면서 살고 싶고요.” 서이숙은 참 단순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단순함에 깊이가 있다. 그의 한도 끝도 없는 연기의 세계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만이 알고 있겠지만 그녀도 그 깊이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녀 안에 잠재하고 있는 것이 아직 안에 많이 남아 있어 그 열정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한다. 색다른 연극에 여자 작가, 연출, 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또한, 무대미학과 사람의 심리를 조합하고 있는데 무대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서이숙은 에서 백지장에 어떤 색깔을 물들이고 무대 위에 서는지 확인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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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이대훈 (wonderfuliee@naver.com)
2005.11.04 / 조회 12,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