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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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참으로 뿌듯해 할 것 같은 안녕 <망각의 방법>
참으로 그, 그와 함께 했던 이들다운 모습이다, 극이다, 안녕이다.
등 많은 관객들의 눈과 머리와 가슴에 묵직한 메시지를 깊게 새겨 놓았던 연출가 김동현이 지난해 2월 뇌종양으로 눈을 감았다. 긴 투병 기간에도 꾸준히 특유의 깊이와 세밀함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수작을 선보여온 터라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에 신뢰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의 사망 소식은 더욱 큰 충격이었다.
그가 이끌던 극단 코끼리만보와, 삶과 연극의 동반자였던 부인 손원정은 급하게 울지 않았다. 고인과 뜻을 나눠왔던 사람들인 만큼 담담한 교감의 무대로 그를 기억하려는 듯 하다. 추모공연 ‘망각의 방법’을 통해서다.
김동현 1주기 추모공연 ‘망각의 방법’ 시리즈 중 첫 번째 (are you okay?)는 손원정이 연출했다. 고 김동현의 연출작 , , 등 세 편이, 역시 그의 연출작 의 흐름 속에 이어진다. 저마다 다른 작품이지만 안에 모여진 장면 조각들은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이라는 줄기 안에 손을 잡고 가만히 유영한다.
작품은 존재와 부재의 의미를 묻기 위해 그 중간 어디쯤에서 물끄러미 서 있는 ‘실종’에게 다가간다. 한 사람이 ‘있고’ ‘없는’ 것은 대단히 사사로운 일이지만, 모든 생명이 안고 있는 그 사사로움의 순환은 곧 ‘나’를 뛰어 넘어 ‘우리’로 팔을 뻗는다. 극장에 던져진 배우들의 몸짓과 노래는 ‘우리’의 역사가 되었다가 다시 저마다의 기억으로 길을 낸다. 들숨과 날숨으로 심장이 뛰고 멎는 것처럼 기억과 망각, 존재와 부재는 등을 맞대고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는 묻고 바라본다. 그가 세상을 떠 부재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과 기억들로 그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평소 고인이 집중하고 탐구해 온 주제가 오늘의 무대와 그 무대를 준비하고 선보이는 이들의 뜻과 같다는 게 놀랍다. 과거 김동현 연출의 시선과 접근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속에서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는 여러 장면들에게서 반가움과 희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는 15일부터 공연을 이어갈 은 ‘망각의 방법’ 프로젝트를 위해 배삼식 작가가 쓴 신작이다. 치열히 무대를 탐했던 고 김동현의 내면을, 혼란을 지나 극장으로 향하는 여정을 통해 비춰내고자 한다.
글: 황선아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코르코르디움 제공
2017.12.08 / 조회 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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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연출의 유작 '맨 끝줄 소년' 무대 오른다
내달 4~30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015년 초연해 관객과 평단 극찬얻어
당시 드라마투르그·윤색 손원정 연출
생전 염두에 뒀던 우미화 배우 '합류'고인이 된 김동현 연출(사진=트위터 이미지).[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이제 고인이 된 김동현 연출의 마지막 유작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예술의전당은 오는 4월 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에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맨 끝줄 소년’을 공연한다.‘맨 끝줄 소년’은 김동현 연출이 지난 2015년 연출을 맡아 이번에 공연하는 같은 장소에서 초연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얻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동현 연출을 기리며 초연에 함께 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이 뜻을 모아 참여한다. 초연 당시 드라마투르그 겸 윤색으로 참여했던 손원정이 연출을 맡고 김동현 연출이 생전에 염두에 두었던 우미화 배우가 합류한다. 김 연출의 작품 동반자이자 큰 조력자였던 손 연출이 초연 연출의도를 살려내 더욱 조밀해진 공연을 선보일 방침이다.합류하게 된 배우 우미화는 2013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으며 연극계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는 연기파 배우다. 스페인 현대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희곡이 원작이다. ‘맨 끝줄 소년’은 연극 ‘다윈의 거북이’, ‘영원한 평화’, ‘하멜린’ 등 작품마다 기발한 소재와 이야기 구성으로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해 온 후안 마요르가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2013년 국내에선 ‘인 더 하우스’(프랑스와 오종 감독)라는 제목의 영화로 먼저 소개됐다.한편 김동현 연출은 지난해 2월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91년 8월 연극 ‘굿 닥터’로 연극계에 입문한 고인은 극단 작은신화에서 연극 ‘꿈,퐁텐블로’ ‘세가비백황파전’ ‘낙원에서의 낮과 밤’ 등을 연출했다. 2007년 극단 코끼리만보를 창단하고 ‘착한사람, 조양규’ 등 독창적인 작품을 발표했으며 2008년 ‘하얀 앵두’로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 2009년 ‘다윈의 거북이’로 제11회 김상열연극상 등을 받았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맏사위이기도 하다. 지난해 한예종 연출과 교수로 임용됐으나 연말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 이후 병세가 급속히 나빠졌다.▶ 당신의 생활 속 언제 어디서나 이데일리 ‘신문 PDF바로보기’▶ 스마트 경제종합방송 ‘이데일리 TV’ | 모바일 투자정보 ‘투자플러스’▶ 실시간 뉴스와 속보 ‘모바일 뉴스 앱’ | 모바일 주식 매매 ‘MP트래블러Ⅱ’▶ 전문가를 위한 국내 최상의 금융정보단말기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3.0’ | ‘이데일리 본드웹 2.0’▶ 증권전문가방송 ‘이데일리 ON’ 1666-2200 | ‘ON스탁론’ 1599-2203<ⓒ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2017.03.15 / 조회 2,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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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욕망으로의 초대, <맨 끝줄 소년>
지루하고 갑갑한 교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년은 작문 숙제를 대신해 친구네 놀러 가서 보았던 그 집의 풍경을 글로 써내려 간다. 저녁마다 나란히 앉아 TV를 보는 친구와 그의 아버지, 종일 집에 머무르지만 그 집에 만족하지 못하는 친구의 어머니를 보는 소년의 시선은 은밀하고 집요하다. “이게 만약 소설이라면, 갈등이 부족해.”라는 문학교사의 지적에 자극받은 소년은 더욱 글쓰기에 열중하고, 그가 만들어낸 갈등과 사건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이 펼쳐지며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킨다. 지난 10일 개막한 은 교실 맨 끝줄에 앉은 소년 클라우디오의 작문 숙제를 통해 그의 문학교사 헤르만,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 클라우디오의 친구 라파와 그의 부모 등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욕망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며 여러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다. 스페인 최고의 현대 극작가로 불리는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을 의 김동현 연출이 국내 첫 무대에 올렸다. 후안 마요르가는 수학 교사로 재직했을 때 한 학생이 ‘시험 공부를 못한 이유’를 답안지에 적어낸 것을 보고 이 연극을 구상했다고 한다. “연극은 철학처럼 갈등에서 출발하며 철학자들이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는 후안 마요르가는 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정말 많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예술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이야기를 향한 욕망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독자 혹은 관객을 전율시키는 이야기의 결말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김동현 연출은 장면과 장면, 대사와 대사를 군더더기 없이 섬세하게 이어가며 작가가 묻고자 했던 그 질문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몇 개의 의자와 탁자, 은은한 조명과 투명한 막으로 단출하게 구성된 무대는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로 가득 찬다. 특히 검은 막 뒤에서 무언가를 더듬는 듯 허공에 손을 짚으며 라파의 가족을 지켜보는 클라우디오 역 전박찬의 눈빛이 여운을 남긴다. 이야기에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교사의 말을 새겨들은 클라우디오는 급기야 친구의 어머니 에스테르에게 직접 쓴 시를 건네고, 그녀와 키스를 한다. 이 아슬아슬한 사건은 과연 현실일까, 혹은 허구일까. 관객들로 하여금 소년의 불온한 상상과 욕망에 함께 빠져들게 만드는 은 내달 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DB
2015.11.11 / 조회 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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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상상하는 즐거움 <맨 끝줄 소년> 연습현장
새로운 이야기의 의미와 그 너머를 상상하는 일. 소설에 푹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소설 읽기가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인지를. 여기 학생이 써낸 작문 과제에 푹 빠진 문학교사가 있다. 그는 소년의 글에 감탄하며 읽고, 상상한다. 예술의전당 ‘SAC CUBE: Premiere’ 의 일환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처음 소개되는 연극 은 1965년 생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으로, 흥미로운 제목 그대로 교실 맨 끝줄에 앉아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 클라우디오가 주인공이다. 클라우디오가 써낸 소설 같은 작문 과제에는 같은 반 친구인 라파 가족에 대한 수상한 관찰과 욕망이 담겨 있다. 문학교사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글에서 묘한 매력을 느끼고 소년의 재능을 점점 발전시키고자 한다.이 작품은 먼저 국내에서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영화 란 제목으로 개봉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바 있다. 극단 코끼리만보의 김동현 연출이 지휘하는 이번 공연은 그가 소개하는 후안 마요르가의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자신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맨 끝줄을 선택한 소년, 클라우디오는 지난해 에서 30대의 나이로 불안한 소년 알런 역을 소화해낸 전박찬이, 문학교사 헤르만 역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 중인 박윤희가, 극 중 헤르만 교사의 부인이자 큐레이터로 등장하는 후아나 역은 의 염혜란이 맡았다. 이들을 비롯하여 극단 코끼리만보와 백수광부의 대표 배우인 백익남과 김현영이 라파의 부모로 분하며, 유승락은 그들의 아들 라파로 참여한다. 기자가 참관한 지난 20일, 김동현 연출과 전체배우들은 책을 완독하는 것처럼 대본을 꼼꼼히 분석하며 장면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헤르만과 그의 아내 후아나는 클라우디오가 써낸 글의 내용을 언급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고,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에게 글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클라우디오가 관찰하고 있는 라파 가족의 일상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연극은 시간의 흐름, 장소의 일관성 없이 허구와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펼쳐지고, 각각 장면들은 책상의 위치와 책상 위의 스탠드를 켜고 끄는 것으로 전환되어 표현이 된다. 특히 이날 빵, 뽕, 하하 등 뜻을 알 수 없는 밝고 고운 소리들이 연습실을 울렸다. 낭랑한 목소리의 끝을 따라가보니, 코러스를 맡은 배우들이 대본을 펼친 채 몸과 입으로 다양한 소리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매 공연마다 라이브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할 예정이다.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주인공 클라우디오의 글쓰기라고 설명한 김동현 연출은 “소년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나가다, 어느 순간 자기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쓰게 되죠. 내가 글의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라고 힘주어 강조했다.공연은 11월 10일부터 12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2015.10.26 / 조회 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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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단 내 스타일? 그럼 뭉쳐야지!
캐스팅과 스토리뿐 아니라 작품을 선보이는 단체와 극단의 개성은 꾸준히 공연을 관람해온 공연애호가들에게 관극 선택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마다의 인기 레퍼토리를 시리즈로 선보이는 이들 두 곳은 '극단 팬'을 거느린 대표 단체라 할 수 있다. 극공작소 마방진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극단 대표 고선웅의 개성이 가득 묻어 있는 곳이다. 기발한 상상력, 화려한 입담이 녹아 든 에너지 가득한 작품을 줄곧 선보여 왔으며, 올해 10주년을 맞아 공연하는 두 작품 역시 과거 큰 인기를 얻은 극단 대표 레퍼토리다. 8월 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는 오래전 신파극을 '화류비련극'이라는 독특한 타이틀로 구성해 냈으며, 14일부터 약 보름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주인공이 스테인레스 인간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극단 코끼리만보의 중심은 연출가 김동현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한 부분을 말의 형태, 의미, 발화의 과정과 전달 등 '말'에 집중하며 밀도 높게 담담히 작품에 담아내고 있지만, 결코 담담하지만은 않은 감흥을 관객들에게 전해왔다. 극단 코끼리만보 역시 9월에 인기 레퍼토리 세 편을 3부작 시리즈로 묶어 차례로 공연한다. 1950년대 일어난 양민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 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 살아남은 이들의 말을 죽은 자의 말과 몸을 빌어 재연하는 과, 1960년대 베트남 전쟁 파병 실종자와 1971년 창경궁에서 도주한 홍학의 흔적을 병렬로 구성한 는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9월 2일부터 16일까지 게릴라극장에서 연이어 선보인다. 9월 18일부터 10월 4일까지 역시 게릴라극장에 서는 세 번째 작품 는 7,80넌대 중동에 파견되었던 남자와 파독 간호사를 꿈꾸던 한 여자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비춰낸 2인극이다. 지난해 초연을 통해 작가 배삼식이 제8회 차범석 희곡상을, 배우 이연규가 제51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위 작품들 모두 개별 예매 가능하지만, 이들을 모두 놓칠 수 없는 팬들을 위한 패키지 티켓도 구성되어 있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두 작품 모두를 관람할 수 있는 '마방진 패키지'는 4만 8천원이며, 극단 코끼리만보 3부작을 다 관람하고 공연 프로그램까지 더해진 패키지 티켓은 4만원이다. 모두 개별 관람보다 약 40%의 할인 혜택이 더해진 셈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2015.08.04 / 조회 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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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가는 길에 선 사람들, 김동현 연출가에게 묻다
제2차 대전 당시 세계적으로 독일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일었다. 나치는 유태인들을 동원하여 선전 영화를 찍어 적십자에 보냈다.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은 이러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수용소 유태인들이 각자 주어진 역할을 맡아 구성된 대본대로 광장과 벤치에서 연기하며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연극은 11월 8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동현 연출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작품 소개 부탁드린다.연극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민간인 수용소를 방문했던 적십자 대표의 회상이다. 독일은 수용소에 방문하는 적십자단을 속이기 위해 유태인들을 이용해 연극을 만든다. 실제 독일 나치가 체코 테레진의 강제 수용소 일부를 수리해 선전 영화를 찍은 사실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이 작품은 규칙, 역할놀이 등 지극히 연극적인 요소들과 특성을 통해 비극을 부각시킨다. - 연극 ‘다윈의 거북이’, ‘영원한 평화’, ‘피리부는 사나이’에 이어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작품을 네 번째 연출한다. 애정이 남다를 것 같은데.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나와 나이가 같다. 연극 ‘다윈의 거북이’를 연출할 당시 작가가 한국에 왔다. 이틀간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마요르가 작가의 가장 훌륭한 점은 세계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을 연극이라는 장르로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피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부합하고 실제적으로 유용한 질문들을 던진다. 이런 면에서 마요르가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크다.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때가 있었는데, 개런티를 거의 안 받다시피 해준 적도 있을 만큼 인연이 깊다. - 작가가 철학을 전공했다. 작가의 작품 연출을 위한 철학 공부를 따로 했는지?연출가로서 철학 공부를 한다기보다는 철학적 명제들이 적절히 도입될 수 있도록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한다. 연출가가 작품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요르가 작가는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철학 교수다. 작가가 깊은 사유를 가진 덕분에 삶에 대한 질문을 현실과 상황에 적절하게 던진다. 물론 어떤 관객들은 작품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반면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과 연극을 결합시키며 즐기는 관객도 많이 만났다. -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작가 스스로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과거 작품들보다 부담이 더 컸다. 작품이 갖는 질문 자체가 무겁다. 하지만 유태인 학살이라는 주제가 우리 삶과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한국전쟁 때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것과 같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번갈아가며 생긴다. 무서운 것은 가해자들에게 실천의 명제가 너무나 분명해서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학대, 반감, 증오, 민간인 학살 등을 위장하는 가짜 사실이 많다. 이런 현실 위에 축적되는 질문들이 연극으로 펼쳐진다.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은 절묘한 반복을 통해 의미를 확대해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 속 증기기관차의 연기와 가스실의 연기 등 단어와 상황 모두가 이중적으로 들린다. 연극과 극장이라는 요건을 통해 의미 있는 체험을 시켜주는 작품이다. 작품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연출과 배우가 작품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러한 과정이 힘겨운 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즐겁다.- 공연 시작 초반부인데,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모든 연극을 만들고 나서 ‘충분하다, 만족스럽다’ 이런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다. 그러나 첫 공연을 보고 나서 배우들에게 개인적인 박수를 보냈다. 좋은 진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나 혼자 관객이었다. 앞으로는 모든 배우들이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면서 점점 더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다.- 향후 방향에 대해 말해 달라.내년도 작품을 구상 중이다. 극단에서 페이크다큐멘터리 연극 ‘착한사람, 조양규’, 연극적 다큐멘터리 ‘말들의 무덤’을 잇는 3부작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모두 유효하게 이중적으로 구성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다. 한국의 비극적인 근현대사 사건들을 표현하고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70~80년대 많은 한국인들이 노동인력으로 외국에 수출되다시피 했다. 역사는 사실만 기억한다. 다음 작품에서는 그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진실들을 연극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한국인이라는 태도, 지킬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 발견하고 구상해 갈 예정이다. 남가은 기자 newstage@hanmail.net사진_코르코르디움
2013.11.12 / 조회 9,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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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연극 '말들의 무덤'
역사적 사건 목격자 녹취록 구성
13명 배우가 재연한 양민학살의 참상
1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연극 ‘말들의 무덤’의 한 장면(사진=코르코르디움).[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조용한 무대 위. 한 여인이 흰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유골 감식결과 총상과 함께 무릎뼈, 턱뼈 등에서 골절상이 발견됐다. 63년 전 한국전쟁 때 학살당한 그녀의 유골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 그녀가 집어삼킨 못다 한 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적 사실과 묻힌 말들을 재구성한 연극 ‘말들의 무덤’이 15일까지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한국전쟁 중 일어난 양민학살을 목격한 증언자들의 인터뷰 자료와 실제 녹취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 서울이 아무도 없고 텅텅 비어 있었어.” “한 줄로 죽 세워놓고 총을 그냥 쏜단 말이야. 앞에서부터 하나씩 쓰러지면 나중에 다시 와서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확인을 해. 그리고 살아 있으면 쇠창살로….” “우리 어무이가 나 하나 살리겠다고 자꾸 머리를 밑으로 숙이게 했단 말이야. 잠시 기절하고 깨어났는데 우리 어무이가 피를 흘리면서 내 위에 엎드린 채 죽어 있는거야.” 작품은 포로로 잡힌 남자와 인민재판으로 처형당한 이야기 등 그동안 침묵했던 민족의 역사를 무대 위로 끌어냈다. 양민학살로 인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람, 끔찍한 죽음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과 기억을 현재에서 복원해냈다. 세월의 풍파 속에 왜곡되고 사라진 진실의 파편들이다. 이 사라진 말들을 전하는 사람은 13명의 젊은 배우들이다. 배우들은 한국전쟁 중 사라져간 영혼들의 빈 몸을 바라보며 무덤 속에 유폐된 그와 그녀들의 말을 재연한다. 실제 창작의 소스가 됐던 사진과 영상은 배경으로 사용했다. 배우 전박찬(32)은 “사실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는 아니다. 6·25에 관한 것은 책으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며 “한국전쟁을 처음엔 머리로 알았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가슴으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얀앵두’ ‘영원한 평화’ 등의 작품에서 견고한 작품세계를 보여줬던 김동현이 연출을 맡았고, 배우 이영주·백익남·강명주·오대석·우미화 등이 출연한다. 김 연출은 “역사적 사실을 재현이 아닌 재연으로 보여주고 들려주고자 했다”며 “역사를 체험하고 수십년 세월 동안 잊힌 존재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02-889-3561.▶ 당신의 생활 속 언제 어디서나 이데일리 ‘ 신문 PDF바로보기‘▶ 스마트 경제종합방송 이데일리 TV▶ 실시간 뉴스와 속보 ‘모바일 뉴스 앱’ | 모바일 주식 매매 ‘MP트래블러Ⅱ’▶ 전문가를 위한 국내 최상의 금융정보단말기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2.0’▶ 증권전문가방송 '이데일리 ON', 고객상담센터 1666-2200 | 종목진단/추천 신규오픈<ⓒ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2013.09.12 / 조회 3,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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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 관객도 공범자가 된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
최근 나주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 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논의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경찰청과 형사정책연구원이 공동 발표한 ‘2011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2,054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강간·강제추행범죄인 1만 9,393건의 10.5%를 차지하는 수치다. 이를 하루 단위로 환산하면 아동·청소년 중 매일 6명이 성범죄 피해를 입는 셈이다. 아동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각 계의 시선과 목소리는 다양하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아동이라도 사회적 무관심이나 방치 속에서 성폭력의 위험에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다. 이를 위해 시민과 민간단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서고 있는 가운데 공연계에서는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연극이 무대에 올라 주목받고 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아이들 희생 부른다”- 관객을 공범자로 만드는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후안 마요르가의 스페인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원제:하멜린 Hamelin)’를 황재헌 연출이 각색한 작품이다. 한 도시에서 발생한 아동 성추행 사건과 그림 형제의 동화로도 유명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전설을 소재로 했다. “사건의 단순한 고발이나 선동에 그치지 않고, 한국 관객에게 현실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황재헌 연출에게 작품의 특징과 사회적 의미를 물었다.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동 성폭력을 다룬 이 작품은 어떤 관계성을 맺고 있는가?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이다. 동화에서 어린아이에게 ‘쥐’는 두려운 대상이고, 두려운 대상을 없애주는 존재가 ‘피리 부는 사나이’다. 어린아이를 이용하거나 두렵게 했던 대상을 ‘쥐’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단순한 동화에 그치지 않는다. 동화의 배경에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그 원인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이들이 병을 옮긴다고 생각해 아이들을 학대했다. 수많은 아이가 어른들에 의해 화형당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했다. 이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을 무참히 희생시킨 일화다. 작가는 이것을 현대의 ‘아동 학대’ 문제와 연관 지어 이 작품을 썼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은 실화인가? 스페인에서 이런 작품이 쓰이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작품 속 사건이 실화는 아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도 2000년대 초중반에 수백만에 이르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등 아동 학대와 아동 성폭력의 문제가 심각했다. 이 작품의 원제는 ‘하멜른’이다. 작가가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이 되는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아동 학대가 자행되는 전 세계의 각 도시를 상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아동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아동 성폭력 문제는 실제 사건만 본다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다. 하지만 대개 가해자를 성도착증 환자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가해자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치부하면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러싼 주변의 가족들, 이웃들, 사회구조적으로 소외가 발생하는 이유를 한 꺼풀 벗겨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아동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는 검사 몬떼로가 주인공이다. 워커홀릭인 몬떼로는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루면서 정작 자신의 어린 아들과는 서먹하게 지낸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 아이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족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작품은 아동과 진심어린 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는 아동을 대하는 어른들에게 진정한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공연의 사회적 의미, ‘시각의 확대’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공연은 관객과 만남으로써 사회적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연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연의 가장 큰 사회적 기능은 ‘시각의 확대’다. 영화 ‘도가니’의 경우 실사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영상이 대중이 잘 알지 못했던 사회 문제를 폭로하고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는 기능을 했다. 공연은 관객이 여러 가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표현기법을 사용한다. 당면한 이슈를 관객 스스로가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문제 해결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히는 역할도 한다. 특히, 이 작품은 동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하면서 당장 눈앞에 닥친 실제의 사건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관객 자신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작품이 전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구체화한다면 어떤 것인가? ‘우리 아이와 대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동성폭력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범인이겠지만 작품은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무관심과 명령조의 일방적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를 참혹한 범죄의 피해자로 내모는 현실은 한 명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만든 것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다. 사회적 소외를 해결하고,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고 이해하기 위한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난해 영화 ‘도가니’ 열풍에 이어 ‘아동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탈의 또 다른 고발이 될 예정이다. 사회적 이슈를 바탕으로 뜨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어떻게 무대에서 드러낼지 관객의 기대를 모은다. 아동 성폭력 문제에 대한 알레고리적 질문을 던지는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9월 7일부터 9월 23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2.09.06 / 조회 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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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 처참한 비극적 운명, 이것이 나의 존재인가
레바논 태생 캐나다 작가 겸 연출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연극 이 올 6월 공연한다. 한국에서는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을린 사랑’이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그 해 최고 화제작으로 떠오른 이후 2011년 정식 개봉,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프랑스 영화감독 드니 뵐뇌브는 연극을 본 후 충격에 휩싸여 5년간의 준비 끝에 영화로 새롭게 만들어 내었다. 와즈디 무아와드가 ‘존재에 대한 질문’이라고 묘사한 바 있는 은 어머니 나왈이 남긴 유언에 따라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그녀의 자녀인 쌍둥이 남매가 자신들의 아버지와 손위 형제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잘 몰랐던 어머니의 과거를 거슬러 가는 남매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접하게 되고, 이는 곧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과정이 된다. 그리스 신화 속 비극인 오이디푸스 모티브가 현대적으로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배삼식 작가가 한국 무대를 위해 원작 희곡을 다듬고, 등의 김동현 연출이 꼼꼼하고 치밀한 연출을 다시 한번 선보일 예정. 김동현 연출제작발표회장에서 김동현 연출은 “대부분의 행동과 사건이 말로서 이어지는 작품으로, 굉장히 연극성이 강하다”고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장소는 많지만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사보다는 침묵을 강조했던 영화와 달리 강렬한 시적 대사와 탄탄한 서사 구조가 돋보이는 것이 이번 작품의 특징.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하지 않아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본 연극에서, 14세에 연인의 아이를 가진 소녀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세 명의 배우가 나누어 나왈 역을 맡는다. 순수하고 깨끗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통해 임신을 한 10대 나왈 역엔 이다아야가, 그 이후부터 3, 40대의 모습은 배해선이, 가혹한 운명 앞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60대 나왈은 이연규의 몫. 나왈 역을 맡은 이연규, 이다아야, 배해선(왼쪽부터)“처음엔 한 인물을 세 명이 나눠 하는 것에 의문을 가졌었다”는 이연규는 “나왈 역을 맡은 세 명의 배우가 동시에 한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도 있는 등 연극적 특징을 크게 갖고 있는 작품임을 깨달았다”면서 “작품 속 상황이 너무 버겁고 고통스러워서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꼈고, 이 고통은 한 인간이 살아온 역사가 다 녹아 있는 크고 깊은 이야기가 이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나왈의 유언에 따라 형과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쌍둥이 남매 시몽과 잔느 역은 김주완과 이진희가 소화할 예정이다.쌍둥이 남매 시몽, 잔느(김주완, 이진희)와남매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기를 권하는 공증인 르벨(백익남)그토록 찾아 헤맸던 첫째 아들과, 쌍둥이 남매의 아버지가 동일 인물임을 알고 비극적인 자신의운명을 침묵으로 감당했던 나왈,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몽과 잔느는 어머니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어머니의 침묵과 자신들의 존재의 근원을 깨닫게 된다. 배우 남명렬이 종군사진기자, 파힘, 말락, 샴세딘 등 4역에 나서는 등 1인 다역의 활용도 눈에 띈다. “한 명을 여러 명의 배우가 나눠 하거나 한 명의 배우가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것은 이 대본 자체가 탄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작품 속 비극이 보편적이고 편재해 있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고 아이러니한 구조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 김동현 연출의 변이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인간의 비극과 의지는 윤상, 김동률, 이적 등의 가수들과 함께 작업하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뮤지션 정재일의 음악이 더해져 전개될 예정. 와즈디 무아와드가 고국 레바논의 내전을 배경으로 쓴 ‘피의 약속’ 삼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은 6월 5일부터 7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2012.05.16 / 조회 1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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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시선으로 테러를 바라보다! 연극 ‘영원한 평화’
연극 ‘영원한 평화’가 2012년 1월 26일 목요일부터 2월 12일 일요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으로 전 세계 5개국에서 상연되었다. 연극 ‘영원한 평화’의 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는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극작가다. 작가는 테러와 함께 테러리스트의 폭발물을 찾는 탐색견의 눈에 비친 인간이라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연극 ‘영원한 평화’를 집필했다. 연극 ‘영원한 평화’는 인간이 아닌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화의 형식을 차용한다. 이번 공연은 이러한 현실에서 폭력과 싸우기 위해 폭력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과연 목적이 모든 수단을 합리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세 마리의 개를 통해 관객에게 던진다. 이번 공연의 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는 ‘하멜린 Hamelin’(2005), ‘끝줄 소년 El chico de la u??ltima fila’(2006), ‘다윈의 거북이 La tortuga de Darwin’(2008)로 막스(Max)상을 세 번 수상했다. 막스(Max)상은 스페인 작가, 출판인협회 회원들이 당해의 가장 우수한 공연물을 뽑아 시상하는 것이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아랍어, 그리스어 등 21개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 공연되고 있다. 이민아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2.02.01 / 조회 3,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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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모를 듯, 오묘한 마력의 눈동자 <디 오써> 김영필
의 스물 두 살 고등학생 청년은 간질을 앓고 있는 연상의 다방 여자와 동거를 시작하고 의 버스기사는 능글맞고 처세술에 강하다. 의 아비는 처자식은 안중에도 없이 바람 따라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며 의 남편은 허황된 영화 제작에만 골몰하고 있다. 평범하나 결코 보통의 존재는 아닌 이들을 투영해 내는 건 김영필이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화가 났는지, 외로움을 느끼는지 도통 한 단어로 명명할 수 없는 그의 표정이 무대 위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빚어낸다. 충무로에서는 떠오르는 블루칩으로 주목 받고 있으나, 대학로에서는 이미 자신만의 색으로 존재감을 심어놓은 배우. 김영필은 지금 연극 로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 중이다. 불편함을 통한 저마다의 생각, 색다른 친밀감 ‘불편함은 우리가 의도한 것’이라 (The Author)는 말한다. 2009년 영국에서 초연한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하며 출연까지 한 팀 크라우치는 “오로지 ‘말’이라는 수단만 사용하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청중을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오는 4월 26일 국내 공연을 앞두고 열린 관객 리허설 현장을 지켜보니, 객석 사이에 앉아 있는 배우들, 쉼 없이 주고 받는 말들의 관계는 듣고 보는 이들을 결코 편안하게 하지 않았다. 여가로 공연장을 찾는 이들에겐 인고의 시간이 될 수도, 새 형식의 작품을 탐하는 사람에겐 색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 “작품 안에서 또 다른 공연 이야기를 해요. 그 작품을 공연한 배우, 극작가, 관객이 저마다 경험한 것에 대한 이야기요. 요즘은 말을 위주로 하는 작품이 거의 없잖아요. 말에 대해 깊게 파고 들어가는 연출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 같아요.” 작가, 관객, 그리고 두 명의 배우 등 총 네 인물이 등장하는 에서 김영필은 배우 역을 맡았다. 배역 이름도 ‘영필’이다. “헐리우드 배우들은 영화 할 때 8, 9개월 동안 맡은 인물에 몰입하다 보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는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잖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배우라면 왜 그런 게 없겠어요. 팀 크라우치 라는 작가가 배우의 그런 마음이나 상태를 표현했다는 것이 독특한 발상이고,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대화, 이야기로 풀어지는 극이니 말하는 배우의 모습 또한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배우가 말을 잘 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래서 무대에 오르기 전 지금의 연습 과정 역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덧붙인다. “배우로서 말을 잘한다는 건,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죠. 작가가 쓴 글을 배우의 입을 통해서, 글 보다 더 힘있게 표현하는 게 배우가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에는 말을 잘하는 배우가 드문 것 같아요. 말에 대해서 습관이 되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크게 파고들어가지 않고 하게 된 달까요? 그럴 즈음에 말에 중요성에 대해 아주 충분히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소중한 작업이에요. 마지막 공연까지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자유로운 영혼? 난 그렇게 살았으니까 중 “그간 냉정하고 야비한 역을 주로 맡았다”는 영필의 대사가 나온다. 배우에 맞게 수정된 부분이다. 꾸준히 김영필을 무대 위에서 봐 왔던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겠다. “건실하면 재미 없잖아요.(웃음) 변명 같이 보일 수 있겠는데, 그런 것들을 경험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이 비슷한 역할을 맡았을 때 전혀 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박)근형 선배님이 제게서 그런 모습들을 발견하신 거겠죠.”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김영필은 ‘경험해 본 사람’ 쪽이다.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누가 그러고 싶어해요. 적당히 감추고,다 표현을 하려 해도 잘 안되고요. 그런데 근형 선배님은 배우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자유로운 것이다, 라고 계속 이야기 해 주셔서 그렇게 좀 더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들을 무대에서 보여 주면서 그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도 할 수 있고, 반대로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가라 앉는다고 할까요? 그치만 그런 정서를 계속 갖는다는 거 자체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 거에요. 저도 다른 역할 잘 할 수 있어요. 까불고(웃음). 얼마 전엔 시크콤도 한 번 해 봐야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웃음)” 극단 골목길의 배우로서, 그는 박근형 연출을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꼽았다. “집 보다는 밖에, 보통 한 곳에 머무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타고난 역마살을 인정하고 또 잡아준 것 역시 박근형 연출이었다. (위)와 (아래) 중“20대 때는 참 잘 도망 다녔던 것 같아요. 공연하다가, 연습하다가 사라져버린 적도 있고, 연습실이 숨이 꽉꽉 막혔으니까. 그런 걸 이해해 주는 사람이 근형 선배님이었어요. 선배 만나고 한 6개월 있다가 대전에 내려가서 1년 2개월을 있다가 온 적도 있죠. 마음이 정리가 되었는지, 아님 다시 연극이 하고 싶어졌는지. 그 때 다시 올라와서는 ‘이젠 도망다니지 말자’ 생각을 했어요. 그 때부터 외부작품 할 때는 어찌나 시간도 열심히 지키는지.(웃음) 지금도 미리 오는 건 아니지만, 어설프게 어설픈 분위기 속에 있는 것 보단 어디가서 내 시간을 갖고 생각도 하다가 제 시간에 들어와 같이 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고, 전 그러네요.(웃음)” 김영필은 의 청년 역을 통해 “배우로서 처음으로 뭘 보여줬던 것 같”고, 박근형은 그런 그에게서 “거기 무대 위에 서 있어보라”며 에서 없었던 역할을 김영필에게서 뽑아내었다. “ 할 때 공연 기획사 대표님부터 해서 저를 너무 잘 봐주셨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배우가 있다, 소개도 해 주시고, 그 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던 것 같아요. 이후 했던 까지 쭉 작업을 해서 대학로에 알려지기도 했고요. 배우로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봐 주는 것, 아주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가장 오랜 시간 나를 사로잡고 있는 연극 & 새로운 즐거움의 영화 늘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었던, 대단히 주관적으로 내 생각에 푹 빠져 있던 고등학생 김영필은 교회에서 성극을 접한 뒤 친구가 있던 YMCA의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게 된다. “주말마다 모였지만, 친구들은 맨날 연애만 하고(웃음) 뭔가 내 성에 차지 않았다”는 그는 대전에 유일하게 소극장을 갖고 있던 극단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에 빠지게 되었다. “처음 본 작품이 인데 너무 재미있게 봐서 푹 빠졌죠. 자율학습 안 하고 와서 노니까 얼마나 좋기도 하겠어요.(웃음) 연영과 시험을 봤는데 떨어져서(웃음) 일반 대학가서 연극반이라도 하자, 했죠.” 큰 키와 말끔한 이목구비, 알 듯 모를 듯 대상을 응시하는 호소력 짙은 눈빛은 그만의 매력이다. “워크숍 같은 거 하면 선배들이 같이 하자, 이런 이야기는 나왔죠. 자질 보다는, 제가 흔히 ‘니마이’ 같이 생겼잖아요.(웃음) 지금은 많이 망가졌지만, 그땐 아주 반듯하고 곱상하게 생기고 키도 180cm은 되겠다, 주인공 하나 생겼구나, 그랬던 거죠.(웃음)” 자라고 연극을 시작했던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2003년 극단 골목길에 입단한 그는, 이제 TV드라마, 영화로 그 무대를 좀 더 넓히고 있다. 2010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그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감독님이 와 를 첫 공연 때 보셨어요. 상업적인 걸 배제할 수 없는데 그걸 관철시키고 저로 갔다는 게, 정말 제 운이 좋은거죠. 그런데 불행히도, 그때가 근형 선배가 1년쯤 쉬어라, 할 정도로 제가 상태가 안 좋을 때라서.(웃음) 그때 감독님을 만나서 많은 훈련을 받았고, 정말 좋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감독님께 “날 질질 끌고 갔으면 좋겠다, 절대 나를 방임하면 안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는데, 정말 엄청 깨지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힘들게, 또 너무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로드무비는 배우가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그런 면에서도 아주 소중한 경험이죠. 영화, 참, 너무 재미있어요.” 연극 가 끝나면 제목부터 독특한 의 ‘조’ 역으로 새로운 스크린에 나설 참이다. 배우 김영필에게 서른 아홉의 지금은, 가장 좋은 때이다. “늦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남들은 한 물 간 거 아니냐, 그때 기회를 놓쳤다고(웃음) 그러는데, 작년에 임 감독님도 만나고. 절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때가 오면 가서 재미있게, 잘 하는 거 아닐까요?” 의 객석에 들어서면 내 옆 자리에 그가 앉아 있다 해도, 맞은편의 그와 눈이 마주쳐도 너무 놀라지 마라. 객석을 잘 안보는 그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내가 얼만큼 관객과 눈을 바로 마주할 수 있는지” 그대와 친밀해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대를 즐기며 생각하는 김영필처럼, 무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kr)
2011.04.18 / 조회 16,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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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규정하는 건 변방” <경계인 시리즈>를 주목하라
‘과학연극 시리즈’, ‘인인인 시리즈’ 등 공연장의 참신한 기획력을 통해 의미 있는 작품들을 선보여 온 두산아트센터에서 2011년 기획연극으로 ‘경계인 시리즈’를 선보인다. 지난 15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열린 '경계인 시리즈' 제작발표회에서 김요안 프로듀서는 “사회를 규정해 온 건 결국 변방이었다”고 말하며 “경계에 선 인간을 조망해 더욱 풍부한 특징과 사회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고정관념과 편견의 한계를 넘어 예술과 사회, 역사와 민족에 대한 성찰을 꾀하고자 함이다. 두산아트센터 김요안 프로듀서내년까지 이어질 ‘경계인 시리즈’ 중 올해 선보이는 작품은 총 세 편. 먼저 공개 된 두 편 중 팀 크라우치 작의 (The Author)는 2009년 영국 로열코트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예술과 현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고 관객 속에서 공연하는 독창적인 형식을 취한다. 등을 연출한 김동현이 연출가로 나서며 서상원, 김영필, 김주완, 전미도가 배우로 분한다. 의 김동현 연출과 서상원, 김영필(왼쪽부터)“무대 없이 객석만 존재하는 연극”으로 작품을 특징을 설명한 김동현 연출은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 앉아 자신들의 체험을 간접적으로 이야기 하며 관객들을 그 여정으로 초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텍스트 상에서는 관객 참여가 이뤄지지만, 근본적으로 이미 철저히 구조가 짜여진 작품”으로 관객 참여의 범주와 형태가 무엇보다 구현에 중요한 부분이라 강조했다. 두 번째 작품 은 신주쿠양산박 김수진 연출의 신작이다. 일본과 한국의 경계인으로 살아온 재일교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재일 음악가 조박의 노래 ‘백년 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조박은 이 작품의 주연으로 서며 나머지 배역은 공개 오디션을 통과한 한국 배우들이 맡는다. 김수진 연출“재일교포로 3세대가 살며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자리가 없는 이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고, 한국과 일본의 다리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 술집에 모인 사람들이 민요, 트로트, 대중가요 등을 부르며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김수진) 연극 는 오는 4월 26일부터 5월 28일까지, 은 6월 7일부터 7월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2011.03.16 / 조회 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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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개의 변주곡> 예상치 못한 다른 무언가,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었네
베토벤은 왜 자신이 ‘구둣방의 가죽조각’이라며 비하했던 디아벨리의 왈츠곡을 무려 33개의 변주곡으로 탄생시켰을까. 루게릭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둔 음악학자 캐서린은 왜 베토벤의 ‘33개의 변주곡’ 탄생 배경을 알아내려 했을까.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는 베토벤은 점점 귀가 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그 중에 악보 출판업자인 디아벨리가 부탁한 ‘변주곡 한 편’도 들어있다. 하지만 베토벤은 한 편에서 머물지 않고 오랜 시간 열정을 쏟아 서른 세 편의 변주곡을 쓰고야 만다. 21세기 뉴욕에서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 음악학자 캐서린은 이제 옷의 단추조차 꿰기 힘들 정도로 관절이 굳어간다. 걸음도 쉽지 않아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한 그녀는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일 본, 베토벤의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는 베토벤 하우스로 홀로 향한다. ‘왜’라는 물음에서 출발하는 연극 은 의문에 대한 답 보다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베토벤과 캐서린,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것 외에 자신의 신념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의 행보. 작품은 그들의 걸음이 향한 목적이 아니라 걸음 속에서 발견되는 일상의 단편들에 의미를 담는다. 변주는 하나의 테마곡이 다른 느낌과 방식의 곡으로 변하는 것, 극중 디아벨리가 “베토벤이 푸가를 썼을 리가 없어!”라고 말하듯,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창작이 변주곡이다. 베토벤은 고통스러운 창작의 고통으로 스스로를 내몰며, 모두의 예상을 깨는 서른 세 개의 창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는 자신을 부수며 예술가의 혼을 따르던 베토벤의 열정이다. 베토벤의 변주곡이 차례로 무대 위에 연주될 때마다 캐서린과 그의 딸 클라라의 관계도 변한다. 재능을 꾸준히 발하지 않고 직업을 바꿔 내내 못미더웠던 딸 클라라의 진심을, 연구를 위해 스스로를 버리는 엄마의 열정을, 서로는 조금씩 깨닫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이들 관계의 변주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더해지면서 이해와 아름다움, 기쁨의 순간들을 창조해 낸다. 작품이 어떤 의문에 대한 정답도 주진 않지만, 극 마지막에 이르면 관객들은 저마다 주관식 답안지를 뿌듯하게 채운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변주곡 33개 중 20여 개의 곡이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연주된다. 음악에 따라 바뀌는 장면들에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대단히 웅장하게 자리하는 무대가 아름답다. 영상에 투영되는 베토벤의 33개 변주곡 필사본과 수 없이 찢고 버려졌을 악보들로 채워진 벽면은 작품의 무게감에 세련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박지일은 연기 뿐 아니라 그 외형에서도 베토벤의 모습이 물씬 풍기며, 캐서린 역의 윤소정은 연륜이 뿜어내는 짙은 연기의 멋과 밀도를 유감없이 선사하고 있다. 공연 초반 보다 가지를 치고 장면을 매만진 지금, 줄어든 러닝타임을 포함해 관객들이 이해하기에 더욱 자상한 무대가 되었다. 2009년 3월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신작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2010.11.10 / 조회 1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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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8]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왈츠, 연극 ‘33개의 변주곡’
연극 ‘33개의 변주곡’은 음표를 오선지에서 해방시켰다. 이미 다섯 개의 줄에서 자유로운 베토벤의 음악이 19세기 오스트리아를 넘어 현재와 만나는 지점, 연극은 그 찰나적 경이의 순간을 부족함 없이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작품에는 베토벤의 위대함에 대한 고리타분한 병렬식 설명과 늘 보아왔던 과장된 광기의 지루한 묘사가 없다. 때문에 그의 이름이 주는 위압감과 기대감에 함몰되는 식상한 안타까움도 없다. 관객으로 하여금 오선지 위를 거닐며 19세기와 현재를, 사람과 사람을, 관계와 이해를 조심스럽게 체험하도록 만든다. 베토벤, 음악학자 캐서린, 그녀의 딸 클라라라는 세 개의 꼭짓점이 있다. 뒤를 돌아 모두를 외면할 수도, 한쪽으로 몸을 돌려 보고 싶은 것만 볼 수도, 정면을 마주하고서 모두를 담을 수도 있는 삼각구도다. 삼각형의 크기는 서로의 체취를 완벽하게 느낄 수 없지만 시야 안에 둘 수 있을 만큼의 거리다. 하나의 꼭짓점에는 개인에게 부여된 삶이 있으며 삶 속에 관계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부각되는 인물은 캐서린으로, 연극은 루게릭병에 걸린 그녀가 베토벤 말년의 삶을 되짚어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천장까지 솟은 보관대와 그 안에 빼곡히 들어찬 캐비닛은 베토벤이 누구인지, 그를 추적하는 작은 여인 캐서린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가득한 베토벤의 스케치는 사각형 종이를 넘어 영상으로 구현되며 베토벤을 관통하던 멜로디를 소리 없이 들을 수 있도록 만든다. 영상의 효과적 사용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움과 동시에 시각적 웅장함을 선사한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33개의 변주곡’이 늘어져 있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의 신경을 내리친다. 그 한가운데 선 캐서린이 몸서리치게 궁금한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정리방법이 아니라 베토벤이 왜 ‘33개의 변주곡’을 만드는데 집착했느냐다. 베토벤은 왜 자신이 ‘구두 수선공의 헝겊조각’이라고 폄하했던 디아벨리의 왈츠에 그토록 집착했는가.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을 성실하게 그려내는 동안 연극은 33개의 변주곡 더불어 인간을 조명한다. 세 개의 점을 잇는 선은 육체적 거리감이 아니라 정서적 동질감,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고뇌와 애정의 연결 통로다. 우리, 여배우의 눈물을 기억하다일곱 개의 점이 합일을 이루는 순간 한 개의 테이블이 있다. 그곳은 문서보관소의 소품이고 베토벤의 작업 공간이며 캐서린의 병원 검사대다. 그렇게 소통이 시작된다. 얇은 속옷 차림으로 고독의 추위에 아파하는 캐서린이 베토벤의 등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어떠한 대사로도 표현될 수 없는 단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와 맞닥뜨리게 된다. 예술과 인생의 만남이 이렇게 간단한 포즈 하나로 표현 가능하다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현재와 교차되는 시간이 빈번해지는 베토벤의 시대는 그녀와 베토벤, 나아가 관객과 그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린다. 한 무대에 동시 등장하며 같은 소품을 이용하는 과정들은 캐서린과 베토벤이 시대를 넘어 불가능한 우정을 나누었을 거라는, 그러길 바라는 저릿한 감동을 전한다. 차곡차곡 쌓아진 여러 가지 물음은 노력을 배반하지 않을 만큼의 밀도로 삼각형을 채운다. 존재를 증명하는 세 개의 작은 점이 하나가 되기까지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배우의 힘은 대단하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첫 선을 보이게 돼 벅차다며 가슴을 치던 배우 윤소정의 눈물을 기억한다. 중년 여배우의 과장된 카리스마가 아니라 연극에 진실한 배우의 농축된 눈물 한 방울은 거대한 대극장 무대를 잠식시키고도 남는다. 우리를 ‘진짜 베토벤’과 만나게 해준 배우 박지일과 아파서 차가운 딸 서은경, 묵직한 존재감으로 조연 없는 작품을 탄생시킨 이호성, 길해연, 박수영, 이승준 등 배우들의 호연은 대단한 원작보다 위대하다. 일곱 명의 배우 서로가 손을 잡고 왈츠를 추는 마지막 장면, 분명 손끝을 스치는 그들의 인사를 관객들이 느꼈을 거라 믿는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0.10.21 / 조회 7,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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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33개의 변주곡>의 비밀이 밝혀진다
귀가 먹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던 베토벤의 말년, 그는 왜 평범한 왈츠곡을 33편의 변주곡으로 만드는데 열중했는가. 음악학자 캐서린의 궁금증으로 연극 은 시작된다. 루게릭 병에 걸린 음악학자가 생의 마지막 열정을 쏟아 베토벤이 작곡한 ‘디아벨리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의 비밀을 풀어가는 연극 의 막이 올랐다. 영화감독이자 연극 연출가인 베네수엘라 출신의 모이시스 카우프만이 쓰고 연출해 2009년 3월 뉴욕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당시 명배우 제인폰다가 음악학자인 캐서린 브랜트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한 무대. 한국 초연 무대는 연극 등을 통해 섬세하고 깊이 있는 작품을 선보인 김동현이 연출을 맡았으며, 연기파 배우 윤소정, 박지일, 이호성이 각각 루게릭 병에 걸린 음악학자 캐서린, 베토벤, 그리고 악보 출판업자 디아벨리 역으로 나섰다. 지난 주 작품의 주요 장면을 공개하기에 앞서 김동현 연출은 “음악에 담아 있는 일상의 소중한 순간이 베토벤이 찾아낸 것임과 동시에 이 작품의 주제”라고 설명했다. 공연 준비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윤소정은 다소 울먹이는 목소리로 공연 개막에 감격해 하는 동시에 매몰된 광산에 갇혀 있다 극적으로 구출된 33인의 칠레 광부 이야기에 빗대어 “33은 행운의 숫자”라며 인상 깊은 다짐을 보여주었다. 음악 출판업자 디아벨리가 자신의 회사 홍보를 위해 작곡한 왈츠곡을 여러 유명 작곡가들에게 보내 변주곡을 써 달라는 부탁이 사건의 발단이다. 평소 왈츠를 싫어했을 뿐더러 그 왈츠곡에 악평을 더했던 베토벤이 총 33개의 변주곡을 작곡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작품에 대한 비밀은 청력을 상실해 가는 베토벤과 루게릭 병으로 생의 끝을 예감하는 음악학자의 교감, 자신을 아끼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조금씩 이해해 가는 딸 등의 드라마와 함께 한다. 무대 한 쪽에선 연극의 각 장 마다 디아벨리 변주곡이 연주된다. 토니상 무대디자인상을 수상한 스크린을 활용한 암시적인 무대도 독특하다. 연극 은 오는 11월 28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한다. 연극 공연장면 '33개의 변주곡'의 비밀을 탐구하는 음악학자 캐서린(윤소정)아픈 몸으로 베토벤 문서 보관소에 간다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딸(서은경)베토벤, 과연 그는 왜 맘에 들지 않았던 왈츠 변주곡 작곡에 힘쓰는가?살며 사랑하며, 그것이 행복. 엄마의 간호사(이승준)와 연인이 되는 딸천재와 광인 사이, 베토벤(박지일)베토벤 하우스에서 그녀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엄마를 이해해 가는 딸, 그런 딸을 다시 보게 되는 엄마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 사진: 이민옥
2010.10.19 / 조회 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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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47] 소멸의 또 다른 이름은 탄생, 연극 ‘하얀앵두’
몸 안의 지층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가늠해봐야 백 년도 채 안 되는 삶일 진데 나름 여러 개의 층이 생겼다. 그 안에는 어느 날의 잊힌 사건이 화석이 돼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처 돌아보지 못한 시간들로 가득 찬 우리 몸의 지층이 허물어지면 화석이라도 남아 다른 누군가에게 발견될 수 있을까. 안쓰러워진 몇 십 년 앞에 5억 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억’ 소리 나도록 급작스런 출현에 보잘것없는 우리의 삶은 고개를 숙이겠지만, 인자한 5억 년의 시간은 우리네 시간을 위축시키지 않는다. 가만히 그러안고 곧 우리가 그임을 나지막이 속삭인다. 1년 전도 가물가물한 우리에게 5억 년은 막연한 환상과 비슷하다. 그 길고 험난했던 시간이 하나의 화석으로 축약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경이의 순간이 찰나처럼 지나가고 우리는 곧 심드렁해질 것이다. 1년 전에 죽은 우리집 똥개의 뼈가 나왔다면 차라리 오열했을 것을. 연극 ‘하얀앵두’는 그 엄청난 시간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배짱을 발휘했으며, 놀라운 것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들어와 제 자리인 것처럼 안착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 영겁의 시간이 우리의 네모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가만히 쓰다듬는다. 성급한 위로는 없다. 연극은 마음에 구멍을 갖고 사는 어느 지질학자(권오평)가 그다지 ‘유명하지 못한’ 연극배우(하영란)에게 삼엽충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삼엽충이 길고 지난했던 5억 년의 여행을 마무리 짓고 도착한 곳은 하영란의 손바닥이다. 여배우의 남편 반아산은 ‘글 안 써지는’ 작가다. 수술 후 영월에 내려온 그는 할아버지의 정원을 되살리고자 한다. 자, 눈을 감고 할머니가 우리를 반겼던 시골의 풍경을 상상해보자. 정작 고향이라 부를 만한 시골을 경험하지 못했을지라도 상상 속 시골은 대게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강아지(상상 속 시골 강아지는 진돗개일 가능성이 크다), 나무 한 그루, 꽃, 평상 정도는 갖춰져 있다. 여기 반아산의 기억 속 할아버지의 마당 역시 그렇다. 조금 더 특이하다면 하얀앵두가 있었다는 것. 진주처럼 작은 하얀앵두가 달빛을 받고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걸,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다. 하얀앵두가 그토록 반짝거리는 이유는 현재 부재하기 때문이다. 소멸되는 것일수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이렇듯 연극 ‘하얀앵두’ 속에는 여러 시간이 교차한다. 그 간극은 상당하며 5억 년이 바라보는 인간의 시간, 인간이 바라보는 개의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인물과 시간이 무작위로 선택돼 엉켜버린 것 같은 와중에도 지층처럼 정갈하게 정돈되는 맛이 있다. 소멸과 탄생을 아우르는 인간에 집중한 탓에 연극은 싱싱하다. 연극의 두 시간가량은 황폐해진 정원을 가다듬고 식물을 심는 과정과 비슷하다. 흙을 정돈하고 기다림을 담보하는 씨앗을 뿌린다. 버석거리는 황토색 땅 깊숙한 곳에 곧 이슬 맞으며 몸을 내밀 어린잎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 간질거리는 생명력이 있다. 연극은 마지막까지 열매를 보이지는 않으나 열매를 기다리는 희망의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과학시리즈로 무대에 오른 ‘하얀앵두’는 과학과 인간, 자연과 소멸된 모든 것을 하나의 끈으로 연결시켰다. 물처럼 흘러 서로를 쓰다듬고 바다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불가능함에도 등장하는 귀신 송도지와 분명 존재함에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강아지 원백이 역시 우주의 순환 안에서 숨 쉰다. 죽음은 소멸 대신 새로운 탄생을 예고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연극 ‘하얀앵두’는 삶의 본질과 가까운 추상적 주제를 구체적인 일상으로 제시, 그들의 거대한 시간 속에 관객이 스며들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들뜨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위트로 가득한 이 작품은 농익은 배우들의 연기로 보이지 않는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5억 년 동안 긴 여행길을 지나 이곳에 다다른 화석 하나가 괜찮다, 괜찮다, 당신을 위로한다.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0.08.20 / 조회 19,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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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주를 노래하다, 극작가 배삼식
연극 ‘하얀앵두’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5억 년 전 캄브리아기 지층이 있던 강원도 영월을 배경으로 했다. 무대는 향토적인 강원도 사투리와 화석, 인물들의 이름에도 숨겨져 있는 온갖 꽃과 나무들로 채워진다. 특히 극의 제목이자 주인공 반아산(雅蒜)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 마당에서 봤다던 ‘하얀앵두’는 실제 작가 배삼식의 유년시절 기억 속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2009년 과학연극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초연됐던 연극 ‘하얀앵두’는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동안 ‘벽 속의 요정’, ‘허삼관 매혈기’ 등 원작이 있는 작품들을 주로 각색해 선보였던 작가 배삼식은 이 작품을 통해 할아버지와 ‘하얀앵두’에 대한 흐릿한 기억을 토대로 켜켜이 쌓인 지나간 시간들을 겹쳐 보인다. - 앵두가 익어가는 시간 연극 ‘하얀앵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각의 한계와 약점을 갖고 있다. 주인공 아산은 퇴물 작가이고, 그의 아내 영란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 지질학과 교수 오평은 죽은 아내에 대한 괴로움과 상처가 남아있고, 조교 소영은 그런 오평을 짝사랑한다. 아산의 딸 지연은 일곱 살 때 입양돼 길러졌다. “누구나 다 결핍이 있죠. 상처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소리 내서 우는 자만,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자만 아픔이 있는 건 아니니까. 단지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물론 삶은 고통스럽죠.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보면서 그 고통을 견뎌야 하는가, 나름대로 이런 질문들을 던진 거예요. 고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각각의 사람들이 그 결핍과 상처를 어떻게 끌어안고 사는지, 안으로 썩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견디고들 사는지 하는 것들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극 중 인물들은 각자 심각한 상황을 맞닥뜨려 괴로워하다가도 암전이 되고 조명이 켜지면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간다.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도 고통을 절절하게 표현하지도 않는다. 작가 배삼식은 “실제 우리 삶은, 제가 보는 삶은 그런 식이 아닌가. 시간이라는 것이 해결해주는 게 있기도 하잖아요. 작품 속에 갈등이 없다기 보다는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뿐인 거죠. 클라이매틱한 극 구조에 익숙한 분들은 너무 해결이 쉽지 않느냐고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고의적으로 전통적인 극 구조를 비껴간 부분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날 것 그대로의 고통을 들이대는 최근 작품의 흐름과 반대로 연극 ‘하얀앵두’는 치열한 갈등과 클라이맥스가 빠진 빈자리에 반복과 대구가 자리 잡았다. 연극적인 재미가 가득하다. “작품을 쓸 때 억지웃음은 안됐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미묘한 타이밍이나 배우 개개인의 개인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서 벌어지는 반복이나 역지사지 같은 웃음을 진지함과 함께 뒤섞어 보여주고 싶었죠. 아주 진지한 순간에도 그 사람들만 있었다면 비극이었을 거예요. 거울처럼 이 상황을 반대편에서 보는 눈들이 한 구석에 하나씩 있죠. 나름대로는 배치하면서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고, 실제로도 또 그렇고 실제 우리 삶이.” 그의 말처럼 인생은 아이러니다. 울다가도 웃고 고통스럽다가도 곧 배가 고파진다. 극 중 지질학자 권오평은 첫 장면부터 5억 년의 시간을 버텨낸 화석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영원이라는 건 이처럼 무책임하다. 술에 취한 어느 날 그는 울부짖는다. “난 영원이 싫어! 싫다고! 싫단 말이야!” 작가 배삼식은 이 작품을 통해 사라짐,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멸이라는 게 사라진다는 뜻만이 아니고 타오를 ‘소’에다가 멸할 ‘멸’자를 써서 모든 게 한 순간에 확 피었다가 사라지는 걸 의미해요. 사람들은 사라질 운명들을 될 수 있으면 안 보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무의식중에 사라지더라도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고. 그런 것을 통해서 영원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불확실하지만 가져보는 것 같아요.” 연극 ‘하얀앵두’는 그 포스터의 노란 색감만큼이나 따뜻하다. 작가 배삼식은 “작품을 쓸 때 따뜻함이라는 건 갈망으로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남아 있길 바랐죠. 저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함을 갈망하고 있고, 속이 쓰리고 외롭고, 스스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러고 있는가 하는 것들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극 중 곽씨 영감과 반아산은 집 마당가를 둘러 탱자나무를 심는다. 가을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이 메마른 가지에서도 꽃을 틔울 것이다. “영상이었다면 마지막 장면을 에덴이다 파라다이스처럼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무대에서는 상상력이 필요해요. 중극장 정도의 규모가 돼서 소켓으로 한 번에 밀고 들어와 무대를 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꽃은 관객들의 상상 속에 맡겨두고 싶어요.” 연극 ‘하얀앵두’는 오는 8월 2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글,사진_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newstage@hanmail.net)
2010.08.13 / 조회 16,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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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세토연극제> 한중일, 3국 대가들 공연이 모였다
중국의 베이징, 한국의 서울, 일본 도쿄가 뭉친 베세토연극제가 올해로 16회를 맞으며 지난 16일 막이 올랐다. 올해 서울에서 개막한 이번 연극제에서는 스즈키 타다시, 히라타 오리자 등 3국의 대표 연출가들의 화제작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주목이 된다. 하체에 무게 중심을 두며 독특한 발성을 구사하는 등의 ‘스즈키 메소드’로도 유명한 일본 연출가 스즈키 타다시는 지난 16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중일 세 나라의 대등한 공동축제라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가 깊다”고 말하며 “연극을 위한 연극제가 아니라 각기 다른 나라의 삶과 역사,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및 국내에 ‘조용한 연극’ 붐을 일으켰으며 이번 연극제에 와 함께 찾아온 히라타 오리자는 “앞으로는 국가간의 공동작업이나 젊은 연출가들의 참여를 더욱 확대해 작품이 유럽 등 나른 나라로 진출하는 가능성을 염두에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지난 해 12월 세상을 떠난 故 박광정을 “나와 동갑으로, 일본에도 이렇게 친한 친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친했던 사람”이라고 회상하며 이번 작품에는 그를 추모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을 이었다. 故 박광정은 자신이 운영하던 극단 파크를 통해 를 각색한 를 2003년 국내 초연하며 히라타 오리자와 친분을 쌓았다. 2000년대 상해화극예술센터의 히트작으로 꼽히는 의 해외 프로듀서 리셩잉은 “주제는 다소 심각하나 블랙 코미디의 요소가 들어 있어 중국 뿐 아니라 해외 공연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며 작품을 소개했다. 또한 스페인 후안 마요르가 원작의 를 연출한 김동현은 “그간 연극이 한중일 공동체를 다뤘다면 이번 공연을 통해서는 더욱 확장된 공간과 주제를 표현할 수 있었다”며 남다른 의의를 설명했다. 이미 공연이 한창인 서울시극단의 와 지난 주 금, 토요일 양일간 공연을 선보인 을 비롯, , , 등의 작품은 명동예술극장, 대학로 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 세종M씨어터 등에서 오는 21일까지 공연 될 예정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
2009.10.19 / 조회 23,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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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거북이> “200살 노파가 된 다윈의 거북이”
저명한 역사학 교수의 집에 기이한 모습의 할머니가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이 다윈이 갈라파고스 섬에서 데려왔던 거북이 헤리엇이라고 밝히며 200년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밝힌다. 그녀는 역사책에서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믿게 된 역사학 교수, 교수의 부인, 그리고 인간 진화의 비밀을 밝히려는 병원 의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녀를 도구로 이용한다.생각의 전환이 돋보이는 무대. 2008년 스페인에서 초연된 연국 가 서울시극단의 ‘세계현대연극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선정, 국내 초연무대에 올랐다. 지구상의 최장수 동물로 기네스북에 오른 실존 거북이 헤리엇을 소재로,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의 원작자인 스페인 출신 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지난 9일 열린 프레스콜을 통해 “스페인 공연보다 진지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배우들의 표현력이 좋았다”고 밝히며 “헤리엇 역할을 맡았던 여배우가 이 작품을 통해서 큰 성공을 했는데, 한국의 배우도 이 작품을 통해 큰 성공을 할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진화, 욕망의 충돌을 주제로 곳곳에 숨겨진 아이러니한 상황, 웃음코드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11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프레스콜"저는 200살이랍니다" (헤리엇, 강애심)"노망난 할머니 아냐?" (교수, 강신구)이건, 거북이 등껍질?! 다윈이 갈라파고스 섬에서 데려온 암거북이, 헤리엇!"프랑크 소세지가 좋아요!"히틀러가 죽기 직전에 했던 말이뭐죠?"할머니, 청소 깨끗이 하세요!" (베티부인, 강지은) "저 거북이는 내가 연구하겠소!" (의사, 김신기)"어머, 이 할머니 물건이네! 돈 좀 되겠어"나이, 200살! 전형적인 거북이 신체구조! 헤리엇, 어서 나에게 역사의 비밀을 말해줘요!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2009.10.12 / 조회 10,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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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앵두> “우지 마라, 꽃이 지면서 우는 거 봤나?”
형체가 있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인간이 자주 잊고 사는 이 단순한 명제를 무대는 담담하게 읊조린다. “모든 건, 사라지기 때문에 애틋하다”고.
과학연극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연극 는 과학연극이라기 보단, 철학연극에 더 가까워 보인다. 5억년 전 삼엽충을 보며 그 안에 새겨진 시간의 흐름을 신기해 하는 사람들. 그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보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찰나와 같은지 깨닫지만, 그래도 그들은 세상사 희로애락에 다시 푹 빠져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지지고 볶고 싸우다 화해하고, 사랑한다. 그리곤 삶은, 사라지기 때문에 더 찬란하지 않냐고 묻는다.
특별한 줄거리는 없다. 화석채집을 위해 강원도 산골을 들른 지질학자와 조교, 잊혀져 가는 50대 작가와 그의 연극 배우 아내, 그리고 그들의 딸과 이웃집 노인의 소소한 일상이 작은 시골 마당에서 펼쳐진다.
사람 나이로는 100살쯤 되었을 15살 개의 임종과 18살 고등학교 딸의 사고 같은 임신은 이들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다.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한 개의 죽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딸을 임신시킨 도둑 같은 (앞날의) 사위에게 분통을 터트리지만 결국 변한 건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황량한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으며 이들의 피고 짐을 바라본다.
5만년 된 삼엽충 화석은 이들의 일상에 던져진 각성과도 같다. 몇 억만년 전 적도에서 자유롭게 떠돌던 삼엽충이 지금, 그들 앞에서 시간의 작은 흔적으로 남았다. 이 시간 동안 얼마나 수많은 형체들이 나타났다, 소멸됐을까?
무대는 거창하게 삶과 죽음, 자연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고약한 술주정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가 있고, 자신의 학생을 사랑하게 된 35살 노총각과 더 이상 주목 받지 못해 힘겨워 하는 작가, 곧 여생을 마무리 하는 개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소소한 일상과 수다는 소멸해 가는 생명의 기억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애틋하고 특별하다.
이 뇌, 화학, 양자물리 등 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갔다면, 에서는 탄생과 소멸이라는 극히 철학적인 내용을 풀어나가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때론 현미경을 들이댄 듯 자세하게 묘사하며 2시간 이상 인터미션 없이 이어져 극 말미엔 관객에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의 죽음을 지켜보고, 작은 삼엽충 하나로 무한한 시간을 되돌려 보면 삶의 의미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가와 연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는 이 작품의 또 다른 힘이자 백미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2009.06.18 / 조회 9,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