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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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은밀한 기쁨> 추상미
배우 추상미가 5년 만의 복귀작으로 선택한 은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은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본질을 잃은 사회상을 꼬집는 이 연극에서 추상미는 주인공 '이사벨'을 맡았다. 이사벨은 아버지의 후처 캐서린을 책임지며 나름의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둘째 딸로, 경제논리를 추구하는 다른 가족들의 약삭빠른 행동에 번번이 제동을 거는 인물이다. 지난달 말 진행된 추상미와의 인터뷰는 이 작품에 임하는 그녀의 고민들을 엿보는 자리였다. 쉬는 동안 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녀는 "멈춰 서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뿐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풍토와 문화예술의 위기에 대해서까지 생각했다는 이야기는 더욱 원숙해진 그녀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비단 배우로서뿐 아니라,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쌓아가는 한 작가로서 말이다.은 어떤 작품인가. 플롯이 그렇게 복잡한 작품은 아니다. 구성이 드라마틱하면 오히려 풀기 쉬울 텐데, 이 작품은 잔잔하면서 비극적인 장면도 있고…굉장히 섬세하게 심리를 표현해야 하는 극이다. 대본에 나오는 장면과는 별개로 가져가야 하는 서브텍스트가 많다. 배우들끼리는 그걸 '보따리'라고 하는데(웃음) 각 캐릭터의 인생사나 감정선이 다층적이어서 어렵다. 특히 이사벨은 더 그렇다. 그가 가진 가치관과 정신이 이 극을 끌고 가기 때문에, 인물 자체가 무척 섬세하게 구축돼야 한다. 그런 부분이 참 매력적이면서도 배우로서 어렵고 또 도전이 된다. 이사벨은 다들 골칫덩어리로 여기는 캐서린을 끝까지 책임지려 한다. 그녀의 속내는 무엇인가. 이사벨도 캐서린이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사벨은 캐서린이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작가가 이 대사를 정말 기가 막힐 만큼 절묘한 타이밍에 잘 썼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은 취향의 문제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나. 저 사람은 호감이야, 또는 비호감이야, 저 사람은 나한테 이런 유익을 줘서 좋아, 하는 식으로. 그런데 이사벨은 혐오나 비호감을 뛰어 넘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해악만 끼치는 캐서린이라는 존재를 그냥 품고 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의 문제로 물어보면 이사벨은 대답을 할 수가 없다. 현대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지금도 간혹 있다. 주변을 보면 정말 사소해 보이는 어떤 것을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가끔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걸 절대 못 하는 거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평소 모든 면에서 선행을 하는 건 아닌데, 그 부분만 유독 지킨다. 이사벨도 그렇다. 자기가 뭔가 약속을 하고 신념을 가졌으면 그걸 죽을 때까지 밀고 나가려 하는 사람인 거다. 그게 상당히 슬프기도 하지만, 이 인물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이사벨을 통해 "이상주의자가 가진 한계도 표현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사벨은) 사실 굉장히 편협한 성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의 기준으로 봤을 때 부도덕하거나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면 그걸 꼭 꼬집어 얘기해야 하는 여자인 거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는 사람들은 많다. 의 이태석 신부님처럼. 그런데 이사벨은 그렇게 사랑과 연민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가치관을 굉장히 이성적으로 쫓아가는 사람이다. 성인(聖人)의 대열에 든 사람은 아닌 거지. 그게 이상주의자 같다. 정치적인 진보주의자, 혹은 이상주의자를 말할 때 떠오르는 모습이 있지 않나. 남에게 관대하지 않은 인물이겠다. 그렇다. 어떻게 관대할 수가 있겠나. 단점이 막 눈앞에 보이는데. 오히려 캐서린처럼 너무 약자이거나 성격 파탄자인 경우에는 그냥 감싸줄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그래도 그런 한계를 표현해야지, 이사벨을 그냥 성인으로 표현해버리면 이 인물이 극적으로 의미를 주지 못한다.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공감을 얻지도 못할 테고. 작가도 분명 그 지점에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곳곳에 이사벨의 결점이 드러나게 썼다. 함께 출연하는 이명행 배우와의 호흡은 어떤가. 명행 씨의 가장 큰 장점은 참 밝다는 거다. 성격이 굉장히 외향적이더라. 굉장히 해맑고 순수하고 선하다. 그래서 어떤 장면을 연기할 때 여과 없이 돌직구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투명함이 있다. 배우로서 굉장히 좋은 점이다. 그리고 목소리와 발음도 굉장히 좋지 않나. 배우로서 장점이 정말 많은 것 같다. 명행 씨와는 맨날 아기 이야기를 한다. 아기가 있는 사람들만의 애로사항이 있거든(웃음). 김광보 연출과는 2005년 이후 9년 만에 함께 하게 됐다. 작품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많이 나누나. 연출님이 "이 작품은 이사벨이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과 타인이 이사벨에게 끼치는 영향, 딱 그거다"라고 하셨는데 그게 맞더라. 한 마디로 사람들간의 관계, 가치관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끼리 "그래,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연출님도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인간들이 저러냐" 이런 환멸에 찬 이야기도 하시고(웃음). 나머지는 그냥 사담한다. 인생 사는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 이야기도 하고. 본인도 세속적인 가치를 좇는 사람들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끼나. 내가 이사벨을 좀 닮은 면이 있다면 남들보다 물질이나 성공 같은 것을 좀 덜 추구한다는 면일 것이다. 추구를 전혀 안 한다면 거짓말이지만(웃음). 왜냐면 그건 노예가 되는 것이니까. 돈과 물질은 다스리라고 있는 거지 노예가 되라고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돈을 좇는 것도 일종의 중독 같다. 그게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결과적으로 그런 삶이 자기에게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생각하지 않고 눈이 벌게져서 좇아가는 거지. 그런 데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이 미디어고. 그런 풍토들이 좀 불쌍하다. 그래서 난 이런 작품이 좋은 작품 같다. 요즘 대학로도 그렇다. 5년 전만 해도 이 작품 괜찮겠다, 어떤 성찰을 하게 하는 작품이겠다 싶은 포스터들이 보였는데 어제 대학로를 돌아봤더니 로맨틱 코미디만 있는 것 같더라. 문화예술은 관객들이 멈춰 서서 사회 풍토를 좀 들여다보고 성찰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냥 같이 휩쓸려서 가는 것 같았다. 예술의 위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웃음). 다 본 건 아니니까. 그간의 인터뷰를 보면 이지적이고 이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 배우로서 감성적·직관적인 면도 있을 텐데, 작품에 접근할 때는 어떤 면을 주로 활용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처음에 작품에 접근할 때는 분석을 많이 한다. 논리적인 분석이 필요한 작업을 할 때는 거기 최대한 집중하고, 지금처럼 공연을 열흘 남겨놓고 정말 그 인물이 되어야 할 때는 직관과 감정이 필요하다. 특히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꼭 돼야 하는 것은 내가 이 인물을 사랑하는 거다.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이 역할을 끝까지 갖고 가기 위해서. 내가 이 역할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고 불쌍해하고 그래야 애착이 생겨나고 열정이 생겨난다. 사실 나는 그 애착이 배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기에 재능이 아무리 많아도 인물에 대한 애착이 없으면 굉장히 드라이해지거든. 진정성이 없어지는 거다. 지금은 그 애착을 만드는 과정에 있다. 또 이러다 감정이 과잉되면 이성으로 눌러주기도 하고. 조절과 균형이 되게 중요하다. 다독가로 알고 있다. 요즘 관심 가진 책이나 작가는. 최근에 이라는 책을 봤다. 필립 로스라는 미국 작가가 쓴 책인데, 퓰리처상 등 상을 많이 받은 작가다. 요즘엔 그걸 봤다. 육아에 대한 책도 수십 권 읽었다고. 어떤 책이 제일 도움이 많이 됐나. 제일 좋았던 건 라는 책인데, 주 별로 아이의 특성들, 이상행동들이 쭉 나온다. 갓난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장통도 있고, 어떤 호르몬이 나오기도 해서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거나 하는 이상행동이 있다. 그런 걸 엄마들이 모르면 완전 황당한 거다. 외계인 하나 갖다 놓은 것처럼(웃음). 그 책을 읽고 많은 도움이 됐다. 또 도 기억에 남았다. 문성근 선배의 고모인 문은희 박사가 쓴 책인데, 엄마의 상처가 아기한테도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내 마음이 어떤 상태가 돼야 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근데 사실 육아 책을 많이 본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굉장히 힘들고 고단한 일이다. 어떤 날은 기계적으로 하게 되고, 또 난 일하던 엄마기 때문에 그런 데서 살짝 우울증이 올 수도 있고 여러 위험요소가 있지 않나. 그래서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육아 책을 많이 읽었다. 아이를 키우며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을 것 같다. 사랑에 대한 관점이 좀 바뀌었다. 나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떤 결핍이 있어서 다정한 말이나 포옹 같은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런 것들이 사랑의 첫 번째 표현방법이라는 얄팍한(웃음)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그렇지 않을 때가 많더라. 아이가 너무 예쁘지만 이 아이를 야단치고 규율을 잡아야 할 때가 있다. 나는 크리스찬인데 그러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의 매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되고. 물론 아직 매를 때리지는 않지만, 하나의 은유로서 말이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예의만 차리는 것이 좋은 건지, 경우에 따라 무슨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은 건지,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더 확대해본다면 사회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연출가·작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부분 같다. 내가 왜 사는가 하는 본질이 무너졌을 때 병이 들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지 않나. 어떤 사회적 이슈를 개인의 문제로 푸는 영화, 개인의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건드리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그래야 많은 분들이 공감도 할 수 있고. 우리는 이런 병을 앓고 있다, 지금 이런 사회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좋은 것 같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2014.02.05 / 조회 1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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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통렬한 비판을 던지다…<은밀한 기쁨> 연습현장
"슬퍼할 시간 좀 가지면 안 되는 거야?" 시골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아버지가 숨을 거둔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인 가족들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업과 결혼, 부동산 등 지극히 현실적인 사안을 두고 저마다 실속을 셈하기 시작한다. 고지식한 둘째 딸은 그런 가족들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고, 이들의 관계에는 점차 균열이 생겨난다. 가장을 잃은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본질적인 가치를 잃어가는 사회상을 날카롭게 조명한 연극 이 국내 첫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난 28일, 개막을 9일 앞둔 이 작품의 연습실을 찾았다. 영국 극작가 데이빗 해어(David Hare)가 쓴 은 19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가장의 죽음을 맞이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통적인 가치를 고수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과 세속적인 가치를 셈하며 빠르게 변화에 순응해가는 인물들간의 대립이 세밀히 그려진다. 데비빗 해어의 작품은 2010년 , 2011년 등이 먼저 국내에 소개돼 탄탄한 작품성과 문제의식으로 호평 받은 바 있다. 추상미, 유연수이번 연극 은 의 김광보 연출과 쟁쟁한 배우들의 참여 소식으로 일찍이 기대를 모았다. 그간 출산 및 육아로 활동을 중단했던 추상미가 2009년 이후 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며, 에 출연 중인 이명행이 추상미와 호흡을 맞춘다. 추상미는 죽은 아버지의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후처를 묵묵히 책임지는 둘째 딸 이사벨로, 이명행은 이사벨의 약혼자 어윈으로 분한다. 등에서 연출가로도 활동해온 유연수는 첫째 딸 마리온의 남편이자 사업가인 톰을, 의 우현주와 서정연은 이기적인 첫째 딸 마리온과 죽은 아버지의 후처인 캐서린을 각각 맡았다. 여기에 의 조한나가 마리온의 보좌관인 론다 역으로 출연한다. (위) 추상미, 서정연(아래) 우현주, 유연수이날 연습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이사벨이 언니 마리온을 맞이하는 첫 장면부터 시작됐다. 이사벨에게 아버지의 임종시 모습을 물어보던 마리온은 곧 자신이 고인에게 선물했던 반지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이기적인 언니를 탓하지 않고 순순히 반지를 돌려주는 이사벨과 그런 동생을 불편해하는 마리온의 삐뚤어진 심리가 이후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위 공무원이기도 한 마리온이 대중과 미디어를 노련하게 다루는 모습은 오늘날 정치인들의 모습을 통렬하게 꼬집는 듯 하다. 아내와 처제의 갈등에 온건히 대처하며 번번이 '주님의 뜻'을 찬양하면서도 사업상으로는 철저히 계산적인 톰, 반듯한 성품의 이사벨을 사랑하지만 세속적인 이익을 거절하지 못하는 어윈의 모습도 섬세하게 그려졌다.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와 정치,사회적 함의가 곳곳에 촘촘히 담겨 있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위) 이명행, 추상미(아래) 이명행, 조한나5년 만의 연극 출연을 앞둔 추상미는 연습 시작 전부터 차분히 앉아 맡은 역할에 집중했다. 다소 부산한 현장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이사벨을 연기해낸 그는 이 작품에 대해 "각 인물의 인생사나 감정이 굉장히 다층적이어서 대본과는 별개로 그 사람 자체를 섬세하게 구축해야 한다. 그런 부분이 참 매력적이면서도 배우로서 어렵고 또 도전이 된다"고 전했다. 이날 김광보 연출은 에 대해 "다수당의 집권으로 보편적 선보다는 명분을 따라가던 당시 영국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의 우리사회와도 같다고 보면 된다"며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던졌다. 공연은 오는 2월 7일부터 3월 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2014.01.29 / 조회 10,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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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나타> 쉽게 극복되기 힘든 모녀의 갈등
평생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좀처럼 극복할 수 없는 애증의 사이가 되기도 하는 모녀. 서로를 원하지만 보듬어 안는 방법에 서투른 엄마와 딸의 이야기, 연극 의 막이 올랐다.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의 1789년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성취욕이 강한 피아니스트 엄마 샬롯과 제대로 된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못한 딸 에바가 7년 만에 재회했으나, 숨겨왔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서로를 향한 갈등이 다시 한번 폭발하게 된다. 엄마 샬롯 역을 맡은 손숙은 “45년 넘게 아티스트로 살아온 살롯은 엄마로서는 대단히 서툴러, 딸을 사랑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설명했다. 또한 엄마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지만 결국 과거 아픈 상처의 기억에 또 다시 대립하게 되는 딸 에바 역에 나선 추상미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증오하기도 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내면의 상처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임없이 소통하려 시도하지만 용서와 화해에 쉽게 이르지 못하는 두 모녀를 중심으로 극이 펼쳐지는 이 작품을 두고 박혜선 연출은 “지금 여기서 결론을 짓기 보다는 다음 기회에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섬세하고 밀도감 있게 작품을 그려나가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와는 다른 결말이 숨겨진 연극 는 12월 10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연극 공연장면 아내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에바의 남편 빅토르."엄마에게 보낼 편지를 썼어요.""설마 했는데, 엄마가 오신데요, 그것도 빨리!"7년 만에 만난 모녀."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려요.""그건 너의 생각이지. 난 절대 그렇지 않아!""딸에게 보여주려고 예쁜 드레스를 입었지.""난 널 참 오래 생각했단다, 그렇고 말고."'그래, 사흘은 있어야겠지.'"한번도 엄마를 이기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김귀영(club.cyworld.com/docuherb)
2009.12.11 / 조회 1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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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나타> 손숙, 추상미
_엄만 사랑의 억양과 몸짓에 대해선 전문가였죠. 엄마 같은 사람은… 암적인 존재에요. 엄마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게 격리돼야 해요. 엄마와 딸, 감정과 혼돈과 파멸의 끔찍한 조합이에요!_난 엄마라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불안했어. 난 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어. 난 내가 너만큼이나 무력하고, 아니 너보다 더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네가 알아주길 바랬어.비수 같은 말의 향연이다. 7년 만에 엄마를 만난 딸은 가슴속에만 묻어뒀던 응어리를 한꺼번에 뱉어내듯 풀어놓는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이미 곪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딸의 날 선 원망에 엄마는 도망치듯 한 인간의 두려움과 나약함을 꺼내 보인다. “나도 너만큼이나 무력한 인간이었을 뿐이야”라며. 엄마로서 미숙한 한 여자와 그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은 딸의 이야기. 이 생경하면서도 알 것 같은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펼치는 이들은 47년간 연극 무대를 지켜온 손숙과, 연극 무대에 서면 더욱 예민한 연기를 펼치는 추상미다. 엄마와 딸로 분해 2시간 동안 이들이 선보이는 것은 보일듯 말 듯한 속내와 마침내 폭발하는 분노, 그리고 여운이다. “부모 자식과의 관계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이지만 사실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어떤 관계도 애증 관계라고 생각해. 거의 다. 속내까지 들여다 보면 실제로 무조건 엄마를 사랑해요? 어릴 땐 그럴 지 모르지만 철들고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자식이니까 엄마에게 바라는 게 더 많아서 그럴 수 있고.” (손숙) 등 지난 해와 올해 유독 ‘엄마’로 무대에 오른 손숙에게 이번 무대는 그녀 스스로의 이야기다. 소위 대학로를 휩쓴 무조건적이면 희생적인 모정을 벗어나 이 작품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족관계,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세 딸의 엄마이자 배우인 손숙은 극중 피아니스트 엄마 샬롯의 입장을 같은 ‘예술가 엄마’ 입장에서 이해한다. “정말 이해가 가요. 실제 나는 이 작품에 나오는 어머니와 많이 닮았어요. 딸에게 주는 애정도 서툴고 표현 방식도 서툴고, 늘 일이 많아 집을 비웠고...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 사랑했지만 애들이 느끼기에는 굉장히 부족하고, 다른 엄마하고 좀 다르고, 그런게 많았을 거에요” 샬롯의 딸이자, 엄마에게 오래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에바역을 맡은 추상미에게도 는 그녀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다. 배우였던 아버지(고 추송웅)와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고. “엄마 샬롯은 저희 엄마, 아빠를 섞어 놓은 것 같아요. 엄마와 딸의 관계에 있어서는 저희 엄마와 비슷하고, 유명인이어서 순회공연을 다니는 것은 아빠와 똑같거든요. 그런 것에 대해 에바가 느끼는 섭섭함과 서러움은 굉장히 똑같죠. 덕분에 에바를 이해하기는 빨랐는데 작품 난이도가 높다보니 힘든 건 마찬가지네요(웃음).” 는 1978년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로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작이기도 하다. "내용 자체가 공감갔지요. 나와 우리 어머니의 관계, 나와 내 아이들의 관계, 그게 다 어누 부분 닮아 있었으니까. 옛날엔 딸 쪽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세월이 흘러서 이제 딸은 못하니까 엄마 입장에 서게 됐네요. 엄마 입장에서도 참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에요."(손숙)영화 속 건조하지만 폐부를 찌르던 대사는 연극 무대에서 더 날카롭게 태어났다. 한 번에 한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대사량이지만 연습에 들어가자 좀처럼 대사가 틀리는 경우는 없다. 감정이 몰아치면 몸을 떨며 눈시울을 붉히는 두 배우 덕분에 연습실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대사의 맛을 살린 이 작품에 대한 애정에 대해 두 배우의 애정은 각별하다. 추상미는 세 번 이상 영화를 보았고, 손숙은 직접 대본을 들고 제작사를 찾을 만큼 애정이 깊다. “요즘 가벼운 코미디 이외에는 다른 연극을 찾기 힘들잖아요. 이 작품은 품격 있게, 연극을 제대로 봤다, 할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가족 관계, 엄마와 딸의 관계, 그밖에 관계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손숙) “마지막엔 감동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지체장애를 가져 엄마에게 버림받다시피 한 동생 레나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거든요. 제 생각엔 이 ‘일’이 있고 나서 모녀의 관계는 한 발자국 발전했을 것 같아요. 그게 결국 가족이니까요.”(추상미) 미리 보기 * 연습 들어가기 전, "흉내지만 완벽하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2009.12.07 / 조회 18,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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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나타> 손숙, 추상미 모녀로 만난다
47년간 무대를 지킨 연극배우 손숙과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는 실력파 배우 추상미가 연극 를 통해 모녀로 만난다.
는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1978년 영화 ‘가을소나타’를 연극으로 새롭게 각색한 작품으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샬롯, 그리고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딸 에바가 7년만에 재회한 뒤 빚어지는 갈등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려내는 작품.
이 작품에서 손숙은 피아니스트 ‘샬롯’으로, 추상미는 목사의 아내로 수수하게 살아가는 딸 ‘에바’로 분해 모녀의 갈등을 펼쳐보일 예정이다. 또한 연극과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 박경근이 에바의 남편 ‘빅토르’로, 에서 주목받은 신예 이태린이 샬롯의 또 다른 딸 ‘엘레나’ 역으로 출연한다.
는 각 씬마다 한사람의 대사가 A4 1장이 넘는 긴 대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배우의 역량이 그 어떤 작품보다 중요한 무대. 따라서 두 여배우의 연기 대결이 두고 볼만 할 것으로 보인다.
연극 는 12월 10일부터 2010 1월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2009.10.14 / 조회 2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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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버드> 날카롭게 상처를 쪼기만 할 뿐
영화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하고, 가수 최희준은 인생이 ‘나그네 길’이라고 하며,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며 인생의 상대적인 길이를 표하기도 했다. 인생은 어차피 case by case 라고 친다면 여기 연극[블랙버드](연출 이영석)의 인생은 쓰레기통이다. 먹다 버린 빵, 찌그러져 있는 음료수 캔, 찢겨진 종이 더미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방, 쓰레기통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무실 기기와 구별하기 어려운 이곳에 두 남녀 레이(최정우 분)와 우나(추상미 분)가 서 있다. 15년 만에 만난 이들은 조용하고 불편하며 날카롭다. 20대 후반의 여자와 50대 중반의 남자는 과거 성관계를 맺었던 사이. 오래 전 이별과 일방적 노력으로 이뤄진 재회는 이들의 관계가 개인들에게도 성공적이지 못했을 뿐더러 두 사람에게 충분히 예상되는 사회적인 지탄과 처벌이 따랐음을 짐작케 한다. 우연히 잡지책에 실린 광고, 그 안에 작게 실린 레이의 얼굴을 한번에 알아차린 우나는 먼 길을 운전해 그를 찾아냈다. 이름도 바꾸고 새 삶을 위해 죽도록 일하고 있다는 레이를 향해 우나는 어린 시절 옆집 아저씨로 그를 만났던 동네를 떠나지 않고 줄곧 살고 있다며 자신은 그곳에서 오롯이 모든 아픔과 고통을 받아왔다고 토로한다. ‘아버지가 당신을 찾으면 꼭 죽이겠다고 했다’고 울부짖는 우나를 보면 이 공연을 가해자 남자를 향한 피해자 여자의 복수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세상이 내린 대중적인 진실, 그리고 나조차도 모르겠는 저마다의 마음은 이들의 관계가 ‘범행’처럼 단순한 정의로 명명할 수 없음을 비친다. 간결하지만 강하게 쏟아내는 명료한 말들, 두뇌게임을 하듯 치열한 긴장을 싣다가도 과거와 현재에 아파했을 상대에게 나도 모르게 내뱉는 측은지심은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아슬하게 버텨온 저마다에 대한 위로일 지도, 상대에게서 자신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고도의 알리바이일 지도 모를 일이다. 우나는 ‘자기 집이 아닌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새끼’를 쫓아가 그것을 다시 주으라고 했다고 말한다. 누구의 잘못을 꼬집어 물을 수 없는 비확정 구역에서의 무책임한 행위에 분개하는 그녀의 행동은 그렇게 레이에게서 버려졌다는 트라우마의 발현일 것이다. 그러나 곧 이들은 쓰레기를 치워도 여전히 더러운 방안에 오히려 쓰레기통을 부으며 회피하고 싶었지만 순간 이것이 자신들의 모습임을 인정한다. 그 안에서 뛰고 쓰레기를 발로 차며 희열과 일체감을 맛보는 그들. 그리하여 과거의 서로가 순간 진실했음에 합의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도 모를 일. 연극 [블랙버드]의 압권은 밀도 있는 전개에 더해 예상되는 결말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들의 관계는 어떤 형태로 결정할 수 없으며 과거의 사건이든 현재 이들의 모습이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경 속 죄인의 눈을 쪼아먹는 새’인 블랙버드가 아물 기세가 없는 상처를 날카로운 부리로 콕콕 찍어내는 고통만 있을 뿐이다. 90분의 러닝타임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균열이 없는 꽉 찬 흑백의 공간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날카롭게 빛난다. 그들이 방을 박차고 나간 후 복도 창문에 반사된 마주선 그들의 그림자. 15년을 기억하고 7시간 동안 운전하며 현실로 달려온 우나와 15년을 외면했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레이가 앞으로 인생을 더 걸어가도 서로의 그림자는 떨어지지 않을 듯 하다. 글 : 황선아기자(인터파크ENT suna1@interpark.com)
2008.04.10 / 조회 1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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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버드] 대본과 사투하는 여인, 추상미
짧게 자른 머리에 옅은 화장. 결혼 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추상미는 한 층 싱그러운 모습이었다. 그녀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지난해 말 배우 이석준과 결혼해 이제 4개월, 한창 알콩달콩 신혼 중인 그녀가 결혼 후 처음 택한 작품은 다름 아닌 연극 [블랙버드]. 13살 소녀 때 관계를 맺은 옆 집 중년 남성을 15년 후 찾아간다는 내용으로 이번이 한국 초연인 작품이다. 2005년 [플루프] 이후 3년만의 무대다. 요즘 그녀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한창 행복할 신혼 때, 왜 이렇게 충격적인 소재의 작품을 출연하는 가다. 화사해진 추상미의 표정을 보면 사실, 지금 그녀에겐 로맨틱 코미디가 딱 어울린다. 그녀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는지 “그러게 말이에요”라며 웃어 보인다. 작품의 도발적인 매력에 3년 만에 연극 출연 “사실 이 작품은 결혼 전에 하려고 했었어요. 신혼 중에는 안 어울리지 않나 싶었거든. 그래서 힘든 건 있어요. 집에서 매일 남편하고 장난치다 나와서는 깊은 상처가 있는 여자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데…인연인 거 같아요. 놓치지 아까운 작품이거든요.” 그녀가 말한 '인연'은 스스로의 적극적인 구애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연극배우로 출발했지만, 실상 추상미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느라 무대에 자주 서지는 못했다.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던 지난해 초, 그녀는 번역작가에게 작품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중 ‘꽂힌’ 작품이 [블랙버드]였던 것. 그 당시에는 대본 없이 대강의 정보만 들었을 뿐인데도 그녀는 도발적인 재미가 있다는 감지했다. [블랙버드]는 영국의 촉망 받는 젊은 극작가 데이비드 해로우어의 화제작. 그가 만들어낸 도발적이고 허를 찌르는 대사와 분위기가 핵심이다. 때문에 추상미의 대본과의 사투는 대본을 받아 드는 순간부터 시작한 거 같다. 특히 유난히 긴 대사와 알 듯 모를 듯한 감정의 흐름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 듯. 공연을 일주일 앞에 두고 긴장감이 서려있다.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실제로 올릴 생각을 하니까…지금까지 했던 어떤 작품보다 더 떨려요. 텍스트가 연기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거든요.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정말 좋아하실 수도 있고, 혼란스러워 하실 수도 있고….그런데 막연한 믿음은 있어요. 관객들이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십대 초반에 이웃집 남자와의 관계,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의 재회. 그녀는 이 연극이 단순히 성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눠 진행이 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한다. 남녀간의 소통문제, 사회적 잣대, 사람의 감정 등이 복잡하게 얽히는 미스터리 멜로라는 것. 공연 내내 진실 공방이 펼쳐지며 마지막까지 반전이 일어나는 작품이기 때문에 두 배우의 에너지가 어떤 작품보다도 많이 소모된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진이 많이 빠졌다”라고 말한다. 작품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파고드는 체질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캐릭터 잡기가 쉽지 않아요. 대본이 수수께끼 같아…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면 안 되는 거에요. 다른 방법을 하면 그것도 또 아냐…관객만 재미있으면 되긴 하지만 배우입장에선 살얼음을 걷는거 같이 민감해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게다가 성폭행 피해자 역과 신혼을 오가다 보니 그는 "가끔 내가 왜 이래야 하나 반항심이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우로서 역할 욕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이니, 또 다시 대본을 집어 들 수 밖에 없다.성폭행 피해자 역? “그래도 너무 행복한 신혼” 대화 도중 오후 2시 연습을 앞두고 아직 빈 속인 그녀를 위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남편 이석준씨가 아침 안 차려줬냐는 농담에 “글쎄 말이에요. 요즘 주부이기를 포기했나 봐요”라며 깔깔 웃는다. 최근 드라마를 통해 털털하고 촌스러운 역할로 희석되긴 했지만 여전히 추상미 하면 똑 부러지는 명민함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의 추상미는 이성적인 강인함보다는 감성적인 부드러움을 더 많이 가졌다. 게다가 그녀 스스로 “어떤 면에 있어서는 바보처럼 모른다”라고 말할 정도로 세상물정에도 어둡단다. "생활 상식, 이런 걸 잘 모르고 세상물정도 잘 몰라요. 석준씨가 ‘넌 바보야~’ 할 정도에요. 예를 들어 연예인들도 관심 많은 재테크라던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바보에요. 공과금 같은 것도 석준씨가 챙겨줘요. 이제 공부 좀 하려고요. 부끄러워서(웃음).” 인터뷰 중간 중간 남편 이석준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남편이자 같은 배우이다 보니 일과 생활에 있어 그를 빼고 이야기 하기란 사실 어렵다. 달콤한 신혼이지만 이들 부부는 서로의 연기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한다. “어제도 내가 안 풀리는 부분이 있어 맞추다가 신랄한 평가를 들었는데, 너무 화가 나는 거에요. 하하. 우리는 반응이 전혀 달라요. 내가 석준씨를 신랄하게 평가하면 정말 좌절하는 타입이에요. 나는 막 화가 나요. 오늘 아침에도 그거 때문에 삐졌었지. 남녀가 바뀐 반응 같아요.(웃음)” 이석준은 연극 [썸걸즈]에서 다시 바람둥이로 활약을 할 예정이다. 추상미는 “부부가 한쪽은 성폭행 피해자, 다른 한쪽은 바람둥이 역할을 맡았다”라며 고개를 절래 흔든다. 하지만 신혼부부의 깨 볶는 냄새가 이 집에서는 더 폴폴 풍겨나올 것 같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깊은 거다. 추상미는 “너무 자랑인가?” 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는다. “남자 연예인들을 보면 다들 약간씩 왕자병이 있어요. 그게 어느 정도 필요하기도 하고. 그런데 석준씨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순진하고 순수해요. 그런 모습이 너무 예뻐요. 남편인데 멋있다기 보다 정말 예뻐요. 그런데 이런 남자들을 좋아하는 여자는 얼마 없지 않나요? 내가 보기엔, 요즘은 나쁜 남자가 코드니까.” 신혼부부들이 서로 다투는 이유 중 하나에 살림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부부는 그런 일로 싸울일은 별로 없을 거 같다. 둘이 영역을 정해 한다고. 이석준은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도와주고 추상미는 요리와 정리정돈을 한다. 만약 남편이 하기 싫어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자 “애교면 다 통하더라”고 깔깔 웃는다. 인터뷰 도중, 카페 안에서 그녀에게 싸인 요청이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팬들에게 싸인을 해주는 그녀는 다시 배우 추상미로 돌아와 있었다. 달달한 신혼과 파도같이 거친 작품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기도 하지만 오랜만의 연극 출연은 그녀에게 신선한 떨림으로 다가간 거 같다. “정말 원하는 역할이면 배우는 더욱 잘 소화하는 거 같아요. 몇 년 전까지 항상 지적인 역할만 해서 다른 캐릭터를 원할 때 즈음 사랑과 야망에서 정자 역할을 신나게 했고, 8월에 내리는 눈에서는 촌스럽지만 강인한 아줌마 역할을 맡았죠.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아요. 내가 하고 싶은 캐릭터에 ‘근접한’ 역할을 자주 할 수 있었으니까. 블랙버드요? 아…이건 아니에요. 하하하. 지금 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순리를 거스르는 역할이잖아요. 그래도 처음에 말했듯이,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연습실에 가기 위해, 추상미는 서둘러 일어났다. 다시 깊은 상처를 지닌 여인으로 변모해야 한다. 가벼운 코미디로 넘쳐나는 대학로에서 이번 연극을 기대하는 관객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녀도 스스로도 기대되기는 마찬가지, “떨리지만 너무 좋다”고 말한다. 수수께끼 같다는 매력적이지만 험난한 대본도 관객 앞에서 곧 풀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수께끼는 풀라고 있는 거니까. 글 : 송지혜 기자(인터파크ENT song@interpark.com) 사진 :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2008.03.14 / 조회 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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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버드] 추상미, 3년만에 무대 복귀
연극열전2의 네 번째 작품인 [블랙버드]의 기자간담회가 지난 25일 열렸다. 영국의 젊은 작가 데이비드 해로우어(David Harrower)의 작품인 [블랙버드]는 성관계를 맺었던 10대 소녀 우나와 이웃집 아저씨 레이가 15년 후에 다시 만나 벌이는 미묘하고 치열한 심리전이 압권인 작품. 이번 작품에는 2004년 [프루프] 이후 3년 만에 무대에 서는 추상미가 우나 역을, 연기파 배우 최정우가 레이 역을 맡는다. 작년 뮤지컬 배우 이석준과 결혼 후 신혼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는 추상미는 “텍스트가 탄탄하고 매력적이어서 공연에 먼저 나서게 되었다”며 작품에 대한 강한 믿음을 나타냈다. 연극열전2를 통해 공연프로그래머로 변신한 조재현은 “영국에서 작품이 공연된 후 관객들 중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는 리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며 “작품의 밀도와 그에 압도당한 관객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공연으로 만들기에 앞서 스스로가 먼저 흥분하게 되었다”며 작품 선택의 이유를 설명했다. 연출을 맡은 이영석은 “연륜이 있는 최정우가 오히려 더 열린 사고를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추상미는 꼼꼼하고 정확한 대본 분석으로 토론과정 중 연출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며 두 배우의 앙상블을 기대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블랙버드’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죄인의 눈을 쪼아 먹는 새’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나와 레이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툰 사람들]과 [늘근 도둑 이야기] 등 코믹하고 친근한 내용으로 연극열전을 시작한 것에 이어 다소 무거운 소재와 전개방법에 관객들이 낯설어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조재현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게 바로 연극열전의 존재 이유”라면서 “기존 관객들의 10~20%만 다시 공연장을 찾아와도 대성공”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개 방식이 새로울 뿐, 내용은 오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라며 난해한 내용일 것이라는 우려는 필요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2007년 올리비에 희곡상 베스트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국내 초연으로 선보이는 [블랙버드]는 오는 3월 21일부터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글: 황선아(인터파크ENT 공연기획팀 suna1@interpark.com)
2008.02.27 / 조회 2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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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빠담빠담빠담>
뮤지컬 은 1940년 대 노래 하나로 온 세계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샹송 가수 에디뜨 피아프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뮤지컬. 1977년 당시 국내 뮤지컬의 효시로 꼽히는 극단 현대극장의 ‘빠담빠담빠담’은 당시 가요계 스타 윤복희가 에디트 피아프로 출연해 ‘연극을 상업적으로 변질시켰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5일간 1만2000여명의 관객을 모으는 기록을 세워 흥행했다.
초연 이후 78년, 82년, 86년, 96년까지 모두 5차례 공연된 이 작품이 8년 만에 리메이크된다. 실제의 삶과 무대 연기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한국의 피아프’ 윤복희를 대신해 이번에 추상미와 뮤지컬배우 김선호가 2대 피아프로 나섰다. 극작가 김정숙이 극본을, 송시현이 가사를, 함춘호가 편곡을 맡아 새롭게 구성한 이번 작품은 피아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작발표회장에서 만난 추상미는 “초연 때 아버지(추송웅)가 에디트의 어린시절 친구로 출연했다”며 “어렸을 때부터 많이 봤던 작품이라 친숙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이 작품에 짙게 드리워진 윤복희의 그림자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자신의 삶처럼 연기했던 윤복희 선생님과 달리 사랑에 열정적이었던 추상미만의 에디트 피아프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녀로서는 2002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샤롯데 역에 이은 두번째 뮤지컬. 당시 고난도 발성으로 유명한 ‘베르테르’에서 가창력이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저음 역인데다 샹송이라 편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추상미는 이 작품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연인 세르당을 위해 피아프가 직접 쓰고 부른 ‘사랑의 찬가’, 이브 몽탕과의 사랑이 던져준 ‘장미빛 인생’, 영화 ‘파니 핑크’에 삽입되기도 한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등을 부른다. 이 작품에는 피아프의 샹송 외에 이브 몽탕의 ‘세시봉’, ‘고엽’ 등 1940∼50년대를 풍미했던 25곡의 샹송들이 뮤지컬 넘버로 쓰인다.
작품의 연출은 초연 당시 대표(극단 현대극장)이자 기획자였던 김의경씨의 딸 김진영이 맡았다. 장 콕토 역은 초연 때 레이몽 아소 역을 연기했던 정동환이 맡았다. 안무가이자 배우 김성녀의 동생인 김성일이 이브 몽탕 역으로 배우 데뷔무대에 오른다. 박철호, 한성식, 손광업, 서범석 등이 출연한다. ‘시인과 촌장’의 함춘호는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피아프의 샹송 제목이기도 한 ‘빠담빠담빠담’은 프랑스어로 가슴이 두근두근 고동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
-극단현대극장
2004.11.19 / 조회 13,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