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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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또 한번 만나고 싶은 그녀들 <헤비메탈 걸스>
끄으윽, 거의 신음에 가까운 웃음소리가 객석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낮에는 일, 저녁에는 회식, 16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회사 밖 세상은 꿈도 꾸지 않았던 마흔 살 여자들이 난데없이 헤비메탈을 배우느라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이 말할 수 없이 우습다가도 다음 순간 짠한 감정이 몰려오고, 또 다음 순간에는 통쾌해진다. 지난 1일 막을 내린 연극 이야기다. 의 최원종이 작/연출한 는 2013년 초연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4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 재공연 지원에 선정돼 약 1년 반 만에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김동현, 김결, 최현숙 등 초연멤버 외에 김나미, 박지아, 이봉련이 새로 합류해 지난달 13일부터 보름간 공연을 선보였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중소기업 식품개발부에 입사해 16년간 일해온 마흔 살 주영, 은주, 정민과 이름처럼 뭐든 뒤쳐지는 인생 탓에 뒤늦게 회사생활 8년차에 접어든 서른 여섯 살 부진이다. 회사에 몸담은 긴 세월 동안 임산부가 되기도, 기러기 엄마가 되기도, 노처녀가 되기도 한 이들은 회식 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몸바쳐 가무를 펼치다 믿기 힘든 소식을 듣는다. 인원감축 대상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이후 이들이 새로 부임할 사장님이 좋아한다는 헤비메탈을 배우기 위해 ‘승범웅기 음악학원’에 등록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퇴직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는 네 여성은 뱃속부터 분노를 끌어 모아 ‘퍽(Fuck)’을 외치라거나 동물처럼 걷다가 헤드뱅잉을 하라는 강사의 말에 열성적으로 따르고, 마흔 살 직장여성과 헤비메탈이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가지의 만남은 끊임없이 폭소를 자아낸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헤비메탈을 익히기 위해 그토록 노력을 기울인 주인공들은 과연 인원감축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었을까? 그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헤비메탈을 알게 된 그녀들에게 더 이상 ‘퇴사’라는 사건이 예전과 같은 절망과 당혹감을 가져다 주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오지 않는 소리를 질러대기 위해 술을 마시고, 30분 마다 ‘퍽’을 내뱉던 그녀들은 어느새 불확실한 삶 앞에서 ‘올 테면 와봐라!’라고 외칠 수 있는 깡과 여유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헤비메탈을 듣고부터 나를 좋아하게 됐어. 헤비메탈은 날 평가하지 않아.”라는 승범의 말처럼. 약 두 시간 동안 펼쳐진 연극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웃음기 빠진 진지한 분위기로 접어든다. 살짝 지루하기도 한 부분이다. 그러나 어딘지 달라진 네 여자의 모습과 또 다른 공간에서 자기만의 인생을 헤쳐나가는 승범, 웅기의 모습은 후반부에서도 여전히 질깃한 힘으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이야기의 힘이 원체 크지만, 정민 역의 박지아, 은주 역의 최현숙, 주영 역의 김나미, 부진 역의 이봉련 등 배우들의 열연이 웃음을 더한 것도 물론이다. 특히 능청스러운 얼굴로 꼭 어딘가에 정말 존재할 것만 같은 무명의 록커를 연기한 김동현이 빛났다. 다음 기회에 이들을 또 한번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길 바라본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극단 명작옥수수밭 제공
2015.03.02 / 조회 6,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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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 걸스> 김나미, 그녀가 사는 법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
플레이디비에서 인터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김나미는 인터뷰이 사상 처음으로 기자 이름과 기사를 사전 조사해왔다. 매일 밤마다 혼자서 생각하고 말하고 정리한 글을 메모장에 적어서 말하길 좋아하는데 그것이 꼭 실전 인터뷰 같았단다. 그녀는 지난 한해 개성 넘치는 역으로 무대를 누비며 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서 쉴 수가 없다는 천상 워커홀릭 김나미는 13일 개막하는 에서 16년 동안 몸 바쳐서 일하던 회사에서 잘리는 위기에 놓이지만 새로 오시는 사장님이 헤비메탈 광이라는 것을 알고 동료들을 이끌고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캐릭터, 마흔 살 만삭의 주영을 맡았다. 작품 속 주영과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최선을 다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고 말하는 당당한 김나미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Q.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까지 에도 출연했다. 내일이면 마지막 공연이고, 내일 모레에는 개막이다. 마지막 공연과 첫 공연을 한 주에 동시에 경험하는 거다. 2014년도가 계속 그랬다. 겹쳐서 공연을 이어갔다. 배우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는데 지금도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팔을 보면 멍이 이곳 저곳에 있다. 링거를 하도 맞아서 마약쟁이 같다(웃음). 그런데다 보컬 녹음 때문에 소리를 많이 질렀더니 지금은 성대 결절까지 걸린 상태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Q. 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초연 때 이 작품을 너무 재미있게 봤고 최원종 연출님이 이번에 다시 하는데 같이 해보자 말씀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 연출님이 “나이 대를 줄일 생각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배우 캐스팅이 다 완료되고 나서 그냥 그대로 가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걱정이 많았다. 주어지는 역할에 웬만해서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별로 없는데 나이대가 안 맞으면 좀 걸린다. 연기적인 연기를 안하고 싶은데 어쨌든 연기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40대라는 외적인 것 뿐만 아니라 ‘주영이라는 캐릭터가 경험한 내면의 깊이를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걱정을 좀 했었다. 실제로는 배우들 사이에서는 제일 막내지만 주영이는 밴드에서 리드보컬이라 기죽어 있으면 안되고 동료들을 이끌고 나가야 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님들이 “네가 우리 안에 섞여 있는 것이 그렇게 이질감이 없다. 너도 40대가 되면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야. 그리고 충분히 나이 들어 보인다. 그러니 부담 갖지 않아도 돼.”라고 해주셔서 마음을 좀 놓았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지만(웃음).Q. 실제로 헤비메탈를 배웠다고.헤비메탈 트레이닝을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두 시간씩 받았다. 성악가들은 몸통 안에서 고운 소리를 뽑아 낸다면 우리는 성대를 긁어서 짐승 소리 같은 거친 소리를 내야 한다. 지난주에 녹음을 했는데 너무 괜찮게 잘 나왔다고 선생님이 칭찬해주셨다. Q. 연습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헤비메탈을 무대에서 보여줘야 해서 극대화되고 조금 희화화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실제 연습 중에 개 울음소리 등 짐승소리를 낸다. 그리고 욕도 많이 하는 편이다. 다행히 소리가 내기 어렵지, 음은 하나로 가는 거라 쉬었고, 박자만 잘 맞추면 되는 거라 편한 점도 있었다.하지만 처음에 짐승 같은 소리와 욕을 해야 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어려웠다. 실제 대본에도 주영과 동료들이 헤비메탈을 배우면서 부끄러워하는데 대본에 있는 과정을 우리도 연습하면서 똑같이 겪었다. 내가 연습할 때는 잘 모르겠는데 선배들이 소리를 내는 걸 보면 웃음 찾기가 힘들다. 나도 모르게 자꾸 극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요즘은 매일 밤마다 자기 전에 욕 연습을 하느라,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가 “오밤중에 왜 친구랑 싸우냐.”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웃음). Q.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처음 이 작품의 대본을 봤을 때, ‘이들보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작품 속 캐릭터들보다 경험은 적지만 나는 아직 희망이 있고 꿈을 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연습할 때 최현숙 선배님이 “연기한 지 16년이 됐는데, 16년이나 해온 연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배우가 천직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만약 누군가 “너 이제 배우 그만해.”라고 한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 것 같다.Q. 주위에 아주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다고. 재미없으면 환불 요청하라고 말하기도 했다(웃음). 그래서 연출님이 걱정이 많으시다. 진짜 극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만큼 난 자신 있다. 이번 작품은 단일 캐스트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주영은 나 혼자뿐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마음껏 표현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다른 때보다 애정도 더 많이 간다. 이번 작품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낼 거다. 그리고 지금껏 자진해서 포스터를 붙여본 적이 없는데 우리 작품을 위해서 단골 술집에 포스터 붙여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웃음). 이 작품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공연이다. 드라마에 이 있다면 연극에는 우리 가 있다. 많은 분들이 보러 와주시면 좋겠다. 공연이 2주 동안 밖에 하지 않아 입소문이 나면 공연이 끝나니까 빨리들 오셔야 한다. 재공연 계획은 없다(웃음).Q. 트위터 자기 소개 타이틀이 연극으로 먹고 사는 여자이다.드라마와 영화도 해봤지만 무대 배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대 배우라는 자부심이 있다. 무대에서는 어디로 숨을 수가 없다. 그런 무대가 제일 편하고 자유롭다. 무대 뒤 소대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면 긴장되기 보다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빨리 관객들이 봐주시는 무대 앞에서 연기하고 싶어서다.연극하면서 성격도 많이 변했다.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그러면 연기하기 힘들다. 내가 배우가 아니라면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조용하고 싶을 때 조용하면 되는데 연습실이란 곳을 가면 그럴 수 없다. 나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가민히 있다가 연기가 딱 하고 나오는 게 아니다. 얌전 떨고 있으면 망가지기도 어렵다. 연습실을 가면 그냥 나를 내려 놓는다. Q 밝은 성격과 특유의 웃음 소리는 누구를 닮았나.할머니 웃음소리가 그렇게 크다. 여장부 할머니를 닮아서 연극하면서 그 목소리를 잘 써먹고 있다. 그리고 식구들 모두 밝고 긍정적이다. 다들 철이 없다. 특히 아버지가 가정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이신데 그런 성격의 아버지를 둔 딸은 진취적이고 낙천적이라고 나온 조사를 어디에서 본 적 있다. 내가 그 결과에 딱 들어 맞는 딸이다(웃음). 부모님은 내가 연기하는 것도 좋아하신다. 두 분은 나에게 항상 “우리 딸 너무 멋있다.”고 말씀해주신다. 심지어 공연 때 맡았던 비키라는 역은 속옷만 입고 나오는 아이라 속으로 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공연을 보신 후 부모님께서 “우리 딸 몸매 최고다.”라고 해주시고 심지어 비키 흉내도 내시고 그랬다.Q. 부모님의 든든한 지지 아래 연기를 시작한 것 같다.배우라는 직업이 이기적이지 않으면 못하는 것 같다. 내 생각만 하게 되는데, 그래서 영원히 철들지 못하는 것 같다. 부모님께 효도해야 되고 가정에 충실해야 되고. 이런 생각까지 하면 하기 힘든 일이다. 감사하게도 대학 때 연극을 전공했는데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연기와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끔 든든한 지원군을 역할을 해주셨다.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맨날 집에서 할머니랑 동생이랑 놀았는데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텔레비전 보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도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는 거다. 그때는 당연히 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커서 보니 쉬운 일이 아닌 걸 알았지만. 그때는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대사를 노트에 받아 써서 동생이랑 역할을 나눠서 연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Q. 그렇다면 배우로서 본인만의 매력은?예쁘고 웃긴 거(웃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열정이 넘치고 에너제틱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배우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절망하거나 좌절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리고 무식하게 연기를 한다. 연기 하나만 판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내일 목소리가 안 나와도 오늘 무조건 달려야 한다. 그런 모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에 올인하고 3월에는 여배우들과 여행을 떠난다. 그 이후는 스케줄을 다 비워 놨는데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서 또 들어오는 대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웃음). 그리고 처음으로 1년 가까이 연애를 쉬었는데 그래서 더 일에 매진했던 건가? 올해는 연애를 좀 해야 될 때인 것 같다. 보통 때는 털털하고 쿨하지만 연애 스타일은 영락없는 여배우다(웃음).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2015.02.13 / 조회 1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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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언니들이 다시 뭉쳤다 <헤비메탈 걸스>
연극 가 오는 13일 관객들을 찾아온다.는 회사의 인원 감축 대상이 된 40대 여직원 네 명이 사장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헤비메탈’를 배운다는 내용으로 2013년 한 차례 공연된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지난 공연에 함께 했던 김동현, 김결, 최현숙뿐만 아니라 김나미, 박지아, 이봉련이 새롭게 합류하여 더욱 단단해진 팀워크를 선사할 예정이다. 또한 작품의 특성상 헤비메탈이라는 장르를 표현하기 위해 헤비메탈 그룹 이그나이터의 기타리스트 이남우를 비롯 연극 에서 헤비메탈를 지도한 김진수, 정민화 등이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마흔 살 언니들의 헤비메탈 입문기 는 오는 13일 개막하여 3월 1일까지 대학로 예그린 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 jini21@interpark.com)사진: 극단 명작옥수수밭 제공
2015.02.03 / 조회 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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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헤비메탈’을 외치다! 연극 ‘헤비메탈 걸스’
공연을 보는 관객들의 의식이나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식상한 내용과 소재는 관객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 공연들도 그런 관객들의 요구에 응하고자 더욱 기발하고 독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법정극, 미스터리극, 공포극 등 다양한 공연들이 인기를 얻는 중 연극 ‘헤비메탈 걸스’의 등장은 참신하다. 연극 ‘헤비메탈 걸스’는 11월 15일부터 24일까지 대학로 한성아트홀 1관에서 공연한다. 검은 가죽 재킷과 화려한 분장, 반짝이는 액세서리가 나오는 포스터는 강렬하다. 연극 ‘헤비메탈 걸스’는 제목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중들에게 익숙지 않은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장르를 내건 연극 ‘헤비메탈 걸스’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 많다. 연극 ‘헤비메탈 걸스’를 쓰고 연출한 최원종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이번 공연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린다.이번 공연은 30대 후반 아줌마들이 주인공이다. 20대에 부유하게 자란 그들이 IMF 이후에 몰락을 하고 현실적인 생활력을 갖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다 회사에서 정리해고당할 위기에 놓이고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사장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헤비메탈을 배운다. 부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현실적 어려움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30대의 아줌마들의 이야기이다. - ‘헤비메탈’이라는 음악 장르를 이용한 점이 흥미롭다.헤비메탈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헤비메탈 마니아였다. ‘딥 퍼플’, ‘블랙 사바스’, ‘메탈리카’ 등의 메탈 밴드들을 좋아했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어떤 연극적인 소재를 이용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메탈을 좋아했던 추억이 떠오르며 작품에 이용해보자는 생각을 했다.전에도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전에 공연한 연극 ‘에어로빅 보이즈’는 헤비메탈보다 더 과격한 ‘데스메탈’이라는 장르를 이용했다. 데스메탈을 했던 사람들이 음악의 꿈을 접고 에어로빅 체조대회에 나가는 도전 이야기다. 이런 경험이 연극 ‘헤비메탈 걸스’를 구상하는데 일조했다. - 연극에 헤비메탈 장르를 접목시키며 고민도 많지 않았나?헤비메탈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관객들과 만나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헤비메탈은 사람들에게 낯선 장르다. 하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헤비메탈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단순히 시끄럽고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활력을 주고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선물하는 음악이다. 세상에 대한 당당함,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상징한다. 이런 헤비메탈의 매력이 30대 아줌마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진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이런 매력을 알 수 있길 바라고 이런 부분에 집중하여 공연을 제작했다. 또한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했던 관객들은 자신의 옛 모습을 추억하길 바란다.- 공연 중에 헤비메탈 음악이 연주되나?실제로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헤비메탈을 배우는 30대 후반 아줌마들의 드라마가 주된 내용이다. 이번 작품에 유명한 밴드들의 음악을 연주하지는 않지만 관련된 오프닝 영상을 공연장에서 틀 계획이다. 관객들이 유명밴드들의 모습을 보며 열광했던 시절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공연 전 하우스음악도 유명밴드들의 음악을 틀 예정이다.- 작품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헤비메탈을 배우는 게 정말 재미있는 일이란 것을 알았으면 한다. 헤비메탈이 단순히 마니악한 음악이 아니라 활력을 주는 음악이라고 인지하길 바란다. 사회적인 이야기도 전하고 싶다. 사회가 주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약자로 변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그들이 약자가 아니며 그들의 자존감과 당당함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코미디’라는 장르를 이용한 것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관객들이 즐겁게 공연을 보며 의도한 바를 편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배우들이 헤비메탈 음악을 배우며 어려워하기도 했을 것 같다.어렵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한 달 반 동안 악기를 배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헤비메탈 장르에서 주로 이용하는 발성법을 배우는데 주력했다. ‘그로울링’과 ‘샤우팅’이라는 것인데 이를 위해 헤비메탈 전문가를 초빙했다. 많은 배우들이 열심히 했고 성과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박미현 배우가 매우 잘했다. 헤비메탈 전문가가 박미현 배우에게 어려운 소리를 잘 낸다고 칭찬했다. - 공연을 준비하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헤비메탈의 ‘샤우팅’과 ‘그로울링’은 개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비슷하다. 개의 울음소리와 짖는 소리를 연습하는 게 재미있었다. 변비에 걸린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힘을 내며 외치는 소리도 헤비메탈에서 내는 소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괄약근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연습했다. 그런 순간을 공연에서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공연 이후에 어떤 계획이 있는가?헤비메탈, 데스메탈이라는 음악 장르를 소재로 공연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그 전에 연극 ‘에어로빅 보이즈’가 있었고 독회공연 ‘우리들’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년 4월에는 헤비메탈을 다룬 작품을 네 번째로 연출한다. 이시원 작가가 쓴 연극 ‘메탈홀릭’이다. 50대 아저씨들이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이야기다. 헤비메탈을 소재로 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다. 8월에는 이시원 작가가 쓴 연극 ‘좋은 하루’를 극단 ‘연우무대’와 함께 재연한다. 귀신을 좋아하는 30대 중후반 인물과 일본 유학생의 사랑 이야기다.- 연출가로서 목표는 무엇인가?드라마가 강한 코미디 연극을 만들고 그것을 연출하는 것이 목표다. 2002년에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4년 전부터 작가와 연출을 겸해 일했다. 작가로서만 활동한 시기에는 주제가 무겁고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는 잔혹한 이야기를 주로 썼다. 그러다 극작과 연출을 같이 해오면서 관객들과 만나는 대중적인 작품을 쓰는 것이 목표가 됐다. 상업극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 ‘국가대표’처럼 재미있지만 나중에는 삶에 대한 질문을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조원재 기자 newstage@hanmail.net사진_명작옥수수밭
2013.11.15 / 조회 8,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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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뭐볼까] ‘삶을 들여다 보다’, 깊이 있는 연극 두 편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보는 깊이 있는 연극 두 편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벌’은 어느 마을에서 벌어지는 3일간의 이이기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무대는 뮤지컬 ‘벽 속의 요정’, ‘피맛골연가’, 연극 ‘하얀앵두’ 등의 배삼식 작가의 신작이다.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대학로 초연을 마친 뒤 강남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 중이다. 신과의 대화 속에서 ‘삶’에 대한 위로를 얻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삶’을 담은 연극 한 편이 보고 싶다면 이 작품들은 어떨까.“사람과 생명의 이야기”연극 ‘벌’10월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재)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이 배삼식 작가의 신작인 연극 ‘벌’을 공연한다. 배삼식 작가는 연극 ‘3월의 눈’, ‘벽 속의 요정’, ‘하얀 앵두’ 등을 썼던 작가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의 첫 공동제작 작품이다. 연극 ‘벌’은 ‘꿀벌의 구제역’으로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에 착안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품은 벌의 전염병이 돌고 있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3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대 사회의 인간이 무너뜨린 자연에서 사라져 가는 토종벌을 소재로 내용이 펼쳐진다. 배삼식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생명의 순환 속 모든 생명과, 고통, 치유를 전한다. 이번 공연은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연극 ‘벌’의 오디션은 서류 심사를 통과해 한 명씩 심사위원들 앞에 서서 5분 정도의 오디션을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으로 진행됐다. 오디션은 개인 대사 읽기 및 장면 구성, 개인 안무를 포함해 그룹별로 동선과 장면 구성까지 과제로 주어졌다. 연극 ‘벌’에 참여한 배우들은 오디션장부터 인물과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최적의 배우들이다. 연극 ‘벌’의 초연에는 ‘조영진’, ‘최현숙’, ‘강진휘’, ‘정선철’, ‘박윤정’, ‘이봉련’, ‘서미영’, ‘김슬기’가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에는 배삼식 작가와 연극 ‘하얀앵두’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적 있는 ‘김동현’ 연출가가 함께한다. 또한,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예술하는 습관’, ‘디 오써’ 등의 무대를 선보였던 무대디자이너 ‘여신동’이 작업에 참여한다. “‘산다는 것’을 위로하다”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11월 27일까지 윤당아트홀 1관에서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의문의 초대장을 받은 한 중년 남성이 약속장소에서 자신이 예수라고 칭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이번 공연은 영화 ‘물고기자리’로 알려진 감독 김형태가 첫 연극 연출을 맡았다.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일반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품고 있는 의문점들을 짚어낸다. 예수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가 겪었던 다양한 일들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종교의 어긋난 부분,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비교해 다른 점, 같은 점 등을 설명한다. 이 작품 속에서 예수는 천천히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해 독자를 이해시킨다. 이 연극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진심을 함께 담아냈다. 또한, 종교적 소재를 무겁지 않게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삭막함과 외로움에 지친 현대 사회의 관객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이번 공연에는 A팀, B팀, C팀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A팀은 초연부터 함께해온 ‘최성원’이 ‘예수’를 맡고, ‘김도신’이 ‘남궁선’을 맡는다. 그 외에도 ‘김수정’, ‘김건우’, ‘이미선’이 출연한다. B팀은 ‘예수’ 역에 ‘남윤길’, ‘남궁선’ 역에 ‘강경덕’이 출연한다. 두 사람은 초연부터 호흡을 맞춰온 배우들이다. ‘박지현’, ‘이창호’, ‘김수정’이 이들과 함께한다. C팀은 ‘정태야’가 ‘예수’를, ‘김선혁’이 ‘남궁선’을 연기한다. C팀에는 ‘김아름’, ‘최우준’, ‘홍이주’가 참여한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1.10.13 / 조회 1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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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태어나고, 살고, 죽어가는 모든 생물의 아픔을 담다
구제역으로 한창 세상이 떠들썩 했던 지난 해, 소뿐만 아니라 집단으로 죽어가는 생명이 또 하나 있었다. 낭충봉아부패병. 꿀벌들의 구제역으로 불리며 벌의 애벌레가 썩어 죽는 이 전염병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왜 모든 존재는 병들어 가는가. 존재 자체가 기적인 이 세상에서 그 기적은 왜 소멸해야만 하는가. 작품의 모티브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에서 호흡을 맞춘 배삼식 작가, 김동현 연출이 신작 연극 을 준비 중이다. 소중한 생명의 한 종인 토종벌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벌의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에서의 3일을 담고 있다. 지난 22일 명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에서 배삼식 작가는 “전염병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우리나라의 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병들어 죽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벼랑 끝의 몰린 벌들의 무리가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이 세계는 무의미하고 목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견뎌야 할 것인가, 이 작품의 이야기는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말기 암 환자인 온가희를 비롯, 통풍 환자, 벌침 앨러지, 도박중독증, 만성신부전증, 향수병 등 저마다의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등장하는 이번 작품을 두고 김동현 연출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태어나서 살다 죽어가는 이야기, 그 안에서 완성될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이야기로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배삼식 작가한 여자에게 벌이 내려 앉으면서 환상의 시공간이 펼쳐지기도 할 은, 전 장의 이야기 확장, 다음 장면의 전조 등을 위해 활용되는 막간극을 비롯, 프롤로그, 에필로그가 어우러진 독특한 구조로 선보일 예정이다. 김동현 연출“죽음 이후의 세계가 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살아있다는 것 역시 비현실적이고 공백이 아주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벌이 내려 앉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결핍과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와 사랑할 수 있는 시공간이 될 예정입니다. 소위 말하는 연극적 드라마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막간극을 통해 더 풍성하게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작품의 준비를 위해 배우와 스텝들이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강의를 들으며 양봉 체험을 하기도 했으며, 안무가 안은미가 참여, 벌의 생동적인 움직임 표현을 담당한 연극 은 오는 10월 13일부터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2011.09.26 / 조회 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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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의 추억>으로 극단 작은신화 25주년 기념공연 시작
1986년 창단 후 왕성한 공연을 이어온 극단 작은신화가 25주년을 맞아 창작극 을 시작으로 총 4편의 기념 공연을 연이어 무대에 올린다.
장성희 작, 최용훈 연출로 오는 26일부터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는 은 지난 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창작팩토리 독회와 시범공연을 거쳐 우수작품 재공연 지원작으로 선정되어 올해 첫 선을 보이는 작품.
평범한 중년의 여고동창생 4명이 부자인 한 친구의 집에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한 아줌마 수다가 아닌, 현 사십 대가 처한 도덕적 붕괴와 현실에 대한 환멸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겠다는 시도이다.
등을 통해 선 굵은 연기를 선보여온 서이숙을 비롯, 박남희, 송현서, 김정영, 최현숙 등 연기파 여배우들이 호흡을 맞춘다.
6월 3일부터는 2001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120%를 기록한 이, 6월 23일부터는 빼어난 2인극이라는 평가를 받은 , 7월 15일부터는 1993년 초연 후 1999년 뮤지컬로도 공연된 가 공연 될 예정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코르코르디움 제공
2011.05.24 / 조회 16,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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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6] 패자의 승리, 연극 ‘내 심장을 쏴라’
색을 용납지 않아 화이트로 일관된 세계는 불안하며 날카롭다. 외부와 단절돼 고립된 무대 위 공간(정신병원)은 반면 역설적으로 안전하다는 이점을 얻는다. 차에 치여 객사할 일 없고 길다가 칼에 찔리는 봉변당할 일, 집구석에 꼭꼭 숨겨둔 다이아반지를 도둑맞을 일 따위도 없다. 담배 한 갑과 믹스커피 두 봉지가 하루 배급량인 이곳에서 도난이래야 머리끈 정도다. 스스로 원치는 않았으나 나무늘보와 미스 리로 합의된 이수명의 말 따라 ‘교도소 갈 일’ 없고 ‘미래가 보장된’ 곳이다. 내면의 불안을 견디는 게 쉬운가, 세상의 위협과 시선을 버텨내는 게 쉬운가. 치료과정 중 ‘나무늘보’가 된 수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진화, 두발로 멀쩡히 서서 걷는 ‘사람’이 되지만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길이만은 아직 그대로다. 칼이나 가위 등 날카로운 것에 대한 그의 공포는 과거의 어느 사건에서 기인하는데 수명은 그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다. 소설 속 여러 공간, 캐릭터를 압축해 제한된 무대 위에 펼쳐놓아야 하기에 연극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한 눈에 들어온 그들의 조화는 ‘헐’이다. 소설에서 묘사된 나무늘보가 시각화되는 순간부터 수시로 바지를 벗는 거시기 환자, 우아한 버킹엄 공주, 꼭 붙어 다니는 한이와 지은, 미쳤는데 말까지 많은 김용, 매미처럼 누군가의 등에 찰싹 붙어 생활하고 이동하는 만식, 우울한 청소부, 경보남자, 십운산선생, 거리의 악사에 끊임없이 ‘화선아’를 부르짖는 화선엄마까지 제 개성을 십분 발휘하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연극은 개인과 내면, 상처에 집중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한이가 제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는 지은에 대한 ‘사랑’과 문제집을 들여다보며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는 청소부의 ‘꿈’이 있다.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인물은 단연 주인공 수명과 승민이다. 누구의 인생이든 드라마 한 편, 소설 한 권은 되겠지만 그 중에서도 막장에 가까운 이력을 자랑하는 수명과 승민에게 세상은 ‘미칠 만 한’ 더럽고 치사하며 두렵고 무자비한 곳이다. 인물들의 독특한 행동은 가장 억제된 부분의 어쩔 수 없는 표출이라 할 수 있다. 무대 위 세계가 우리와 동떨어져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공감수위가 높은 것은 캐릭터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이어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문제인 우리가 극단으로 몰릴 때의 그림이 저들과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이 생긴다. 그들의 트위스트 한 판이 통쾌한 것도 같은 이유다. 미치지 못한 우리대신 미쳐주고, 미친 듯 흔들지 못하는 우리대신 흔들어주니 관객은 모르는 새 빚을 지고도 갚을 길 없어 무력하게도 연민할 뿐이다. 죽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평생을 수리희망병원에서 보내게 된 수명과 가족 간의 유산싸움에 휘말려 강제로 갇히게 된 승민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하지만 그들에게나 관객에게나 의미 있는 분투다. 탈출에 성공한 후 눈이 멀어가는 채로 패러글라이딩에 몸을 내맡긴 승민이 온몸으로 하늘을 느낀 후 어떻게 됐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죽은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는 우리가 알기를 거부한다. 그저 장렬하게 전사하는 시대의 영웅처럼 “이 역사적인 탈출을 후세에 길이 전해다오”, 한 문장만 남겼다. 불안한 만큼 자유로운 패러글라이딩을 바라보고 있던 수명의 손에는 승민이 남겨준 시계가 있다. 제 걸음을 멈추지 않고 누구와도 상관있게, 혹은 상관없게 또각거리는 시계는 “빼앗기지마. 네 시간은 네 거야”라고 말한다. 무려 1억 원 고료의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무대에 옮기는 작업에는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사각형 종이에 갇힌 문자라 할지라도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것은 단연 소설이다. 다소 아쉬운 연극의 스토리는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고 완성도 있는 원작으로 인해 추락하지 않는다. 병원 밖의 공간은 조명과 가장 풍부한 색을 담고 있는 흑백 영상으로 표현됐다. 공간과 내면까지 아우른 조명, 영상, 음악은 패자들의 승리를 격려하며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체험으로 전하는 힘을 발휘했다. 제대로 미쳐준 배우들은 우울과 유머, 상처와 희망, 외면과 내면 중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들과 우리의 거리감을 좁혔다. 갇힌 곳에서 끊임없는 자유를 보여주는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말한다. 우리를 멈추게 하려거든 ‘내 심장을 쏴라!’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0.10.13 / 조회 17,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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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심장이 미쳐 날뛰는(?) 막바지 연습현장
한 편의 소설이 새로운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정신병동에 수용된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 그들 중 탈출을 꿈꾸는 두 명의 젊은 청년을 주목해 보자. 2009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정유정 작가의 동명소설이 연극 무대로 부활하는 가 공연을 앞두고 남산에서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다. 소설의 희곡화를 거쳐 수정 대본이 15고가 넘는 치밀한 텍스트 작업에 더하여, 공연 시작 열흘 전을 앞둔 연습실에는 잠시의 쉬는 시간에도 말 소리를 높이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이 서려 있다. 김광보 연출(오른쪽)연극 등의 작품을 통해 호흡을 맞춰 온 김광보 연출과 고연옥 작가의 ‘또 한번의 합체’ 뿐 아니라, 연기파 배우 김영민(40)과 떠오르는 신예 이승주(30)의 변신도 눈에 띈다. * 혹시 나중에 미치더라도 여긴 오지 마세요 _ 김영민의 ‘이수명’ 정신 분열, 공황장애로 6년간 정신병원의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 해 온 수명을 두고 김영민은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으로 이야기 한다. “수명은 엄마가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어렸을 때 제대로 말도 못 배워 말더듬이로 자란 사람이에요. 나의 실수 때문에 엄마가 죽게 되는데, 그 충격으로 편집증적 사고를 갖게 되죠.” 1971년생, 올해로 마흔의 나이를 얻은 김영민이 이번에 맡은 이수명은 스물 다섯 살. 연극계 최강 동안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그는 “저 같은 얼굴이 한방에 간다는 소리도 있던데”하며 껄껄 웃어 보인다. “배우든, 사람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얼굴도 변하고 마음도 변해가잖아요. 그 변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 때가 있는데, 그런 걸 극복해야 될 시간이 분명 필요한 거고, 요즘도 그런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젊은 역을 했을 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고민하고 있어요. 어린 배역을 맡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 나, 히말라야의 독수리야 _ 이승주의 ‘류승민’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수명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보여주는 사람, 다소 위험한 불놀이를 삶의 탈출구로 지닌 재벌가의 사생아 류승민. 김영민을 비롯 “이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많다”고 입을 모으는 류승민 역은 이승주의 몫이다. KBS공채 탤런트이자 올 봄 을 통해 참신한 배우 탄생을 알린 이승주는 “승민은 철저히 환경에 의해 변하게 된 인물”이라 설명한다. “이도 저도 아닌 사생아로 태어나 주변의 견제나 의심도 많이 받은 인물이에요. 그런 세상의 분노로 어렸을 때부터 불놀이를 시작했고, 결국 계모가 정신병원에 절 넣게 되죠. 승민은 비행(패러글라이딩)을 통해 상처를 치유 받지만, 다시 격리되게 되요.”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저마다의 상처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기에 자칫 무겁고 날카로울 듯한 선입견이 생긴 게 사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는 정신병동에 다시 들어오게 되는 이수명과 그를 맞는 류승민을 비롯한 수용자들의 모습 장면에서부터 무너진다. 어눌한 말투의 이수명, 어두운 유년 시절과 의지할 가족 없는 류승민의 외향적이고 거침 없는 모습은 의외의 연속이다. “제가 가진 성향 자체가 승민의 표현 방식스럽지가 못하기도 하고.(웃음) 처음 희곡이나 소설을 읽었을 때 승민에게 무거운 느낌을 받았고, 연습 초기에 그렇게 표현 했거든요. 그런데 연출 선생님이 그런 서브 텍스트는 가지고 가되, 승민이 표현하는 방식은 그렇게 무겁진 않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조금씩 해 보면서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계속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에요.”(이승주) 김영민과 이승주는 에서 처음 만났다. 오랜 시간 대학로의 무대를 채워 온 김영민은 승주를 ‘이번에 처음 보았’으나, 이승주는 형인 김영민의 남다른 첫 인상을 살짝 털어 놓는다. “워낙 유명하시니까 형에 대해선 알고 있었죠. 이건 형한테 한번도 이야기 안 한 건데, 제가 스물 네 살 땐가? 이란 연극을 보고 ‘어린 친구가 저렇게 연기를 잘해? 난 이제서야 제대했는데?’ 그런 생각 했었어요.(웃음) 그랬던 분과 같이 연기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이번 작품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 운이 많이 따랐다며 겸손의 말을 잇던 이승주, 고등학생 때부터 우연히 운명처럼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김영민. 이 둘을 비롯 의 병동에서 만나는 개성 강한 수용자들의 모습도 놓치지 말자. '또별'을 찾아, 등만 보면 찰싹 붙어버리는 만식씨(박노식)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국민 대사 “향숙이?”를 탄생시킨 박노식은 머리 속에 기억을 뜯어 먹는 염소가 사는 만식씨로 등장하며, 가장 화려한 병동 탈출전력을 가졌으며 기가 막힌 하모니카 연주 솜씨를 지닌 거리의 악사 이용근, 거리낌없이 바지를 벗는 509호 거시기 역의 권택기, 본인이 공주라고 믿는 버킹엄 공주 역의 백지원 등도 함께 한다. 공연을 위해 정신병원에 가 사이코 드라마를 체험하고 의사를 초빙해 전문 공부도 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몸매와 소박한 덩치(?)의 소유자, 현선 엄마(최현숙)환자 괴롭히는 즐거움에 사는 병원 보호사 점박이(윤영걸)정신병동 귀여운 커플의 남다른 애정표현 "한이가 지은이를 잡아먹으려 해요"본인의 일에 충실한 간호사 최기훈(이남희)“정말로 내 심장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가, 운명이 나를 침몰시킬 때 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취직 하기도, 또 안정적인 일을 가지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 안에 응어리들이 있잖아요. 그런 현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혹이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것들을 이야기 하는 작품이 라고 생각합니다.”(김영민) “지금 뭐 하고 계세요? 이런 질문이 던져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이승주) 연극 는 오는 10월 7일부터 24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www.studiochoon.com)
2010.10.01 / 조회 1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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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김영민, 박노식 등 탈출 꿈꾸는 정신병원 환자로 변신
2009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작가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 가 오는 10월 무대에 오른다. 등에서 호흡을 맞춰 온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 콤비의 신작이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20대 중반 두 남자의 고군분투 탈출기를 담고 있는 이번 작품은,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떠올리는 인물들을 통해 비상구가 보이지 않은 이 시대를 사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 공연계 최강 동안을 자랑하는 연기파 배우 김영민이 공황장애로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온 스물 다섯 살 이수명 역을, KBS 공채 탤런트로 지난 5월 연극 으로 강렬한 인상을 선보인 이승주가 재산 싸움에 휘말려 강재로 정신병원에 갇힌 류승민 역을 맡았다. 또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향숙이를 찾던 박노식이 헬멧과 꽃무늬 트렁크를 사랑하는 만식 역으로 분해 다시 한번 인상적인 연기를 선사할 예정이다. 연극 는 10월 7일부터 24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2010.09.02 / 조회 1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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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별점리뷰] 인인인 시리즈 마지막 작품, 연극 ‘인어도시’
고선웅의 연극 ‘인어도시’는 한국인에 대한 단상을 주제로 올린 작품이지만 결국은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해 말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는 이 과정을 어찌 단적인 한국인들의 고민으로만 내팽겨 칠 수 있을까? 하지만 고선웅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삶이 사하라사막에서 자라 병들고 죽는 누구의 삶과는 다를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을 모티브로 했다. 그것이 ‘인어도시’라는 가상 세계로 은유가 됐고, 배우들은 두려움, 광기, 체념 등 복잡한 심리 상태로 죽음 직전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들은 결국 각자가 만들어낸 인어의 도움을 받아 이승 너머 깊고 나른한 죽음의 세계로 넘어간다. (이것은 본인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저수지로 넘어가는 그들의 태도가 이상하다. 세상 나만 희생했고, 죽어라 억울했고, 천박한 니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호스피스 환자 다섯 명은 죽음 앞에 돌연 자유로움을 느낀다. 생각보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환자들은 가슴에 꽉 막힌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 모두는 죽어야 한다 ★★★★☆ 자신의 밑바닥을 보는 일은 어떻게 보면 끔찍하다. 한 평생 바르고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런 사람 절대 없겠지만)이라도 자기 내면의 깊숙한 곳에는 남에게 보여주면 창피한 시커먼 욕망과 죄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연극 ‘인어도시’는 이런 자신의 진짜 실체를 마주보게 한다.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도, 외도를 일삼는 남편에 대한 증오심도, 자신이 선택이 아닌 어쩌다가 물려받은 별 볼 일 없는 혈통과 가문도 결국에는 모두 ‘내’ 것이었다. 연극 ‘인어도시’는 웃다가도 침묵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슬프다. 작가는 인어라는 환상적이고 기묘한 존재를 통해 실은 형편없고, 천박하고, 이기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철저하게 까발린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자신의 과거와 상처가 드러나고, 환자들은 자신의 밑바닥을 들킨 것 같아 괴로워한다. 인정하기 싫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에서 배우들은 결국 한 사람씩 자신의 죽음을 선서한다. 인정하고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싶다. 오히려 내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추한 사람인지 수긍하고 보니 새로운 시작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무대 메커니즘 ★★★☆☆ 배우들은 인어의 도움을 받아 인어도시로 간다. 그곳은 자아가 완전히 죽은 공간이다. 침대 다섯 개가 놓여 있던 무대는 일순간 뗏목으로 변한다. 호스피스 한 쪽 벽면이 열리고 물을 채운 무대는 저수지가 된다. 삶과 죽음이 하나의 여정으로 묘사가 된다. 또한 연극 ‘인어도시’는 주제의식이 영상과 적절하게 부합된 경우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 번씩 유리 창 너머로 희뿌연 물체가 지나간다. 이는 기묘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관객들이 극에 더 잘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연극 ‘인어도시’는 인인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각각 중국작품 ‘코뿔소의 사랑’, 일본작품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에 이어 한국인을 대표하는 연극으로 선정됐다. 고선웅이 쓰고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다섯 사람의 삶과 죽음을 통해 관객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진다. 하지만 그것이 곧 구원이란 뜻은 아니다. 이 작품은 마치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를 보여줬을 뿐이다. 오는 7월 1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0.07.12 / 조회 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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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는 그에게 동의한다, 연출가 고선웅
‘인인인 시리즈’ 마지막 연극 ‘인어도시’ 지구는 둥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네모난 지구를 상상하며 있지도 않은 모서리에 힘겹게 서 있다. 위태하다. 반면 누구보다도 현실과 환상의 모서리에 기묘하게 서 있을 것 같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둥근 지구로 공차기까지 할 만한 연출가가 있다. 지상에 정확히 발 딛고 있으면서도 우주를 만지는 남자 고선웅이 연극 ‘인어도시’를 내놓았다. 연극 ‘인어도시’는 역시나 치열하고 아름답다. 공연이 시작되면 곧 연극의 폐에서는 아가미가 생기고 등에서는 지느러미가 솟는다. 90분 동안 삶과 죽음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저는 원래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제가 죽으면 틀 노래까지 주문해놨어요.” 당첨된 곡은 블루드래곤의 ‘내 단 하나의 소원’이다. “거짓말일 수도 있는데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그렇다고 일찍 죽고 싶은 마음도 없고. 적당히 살다가 잘 죽었으면 합니다.” - 대책 ‘있는’ 낙관주의자 이상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적당한 때에 잘 죽기’를 탐구(?)하는 연출가 고선웅의 ‘인어도시’는 두산아트센터의 ‘인인인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다. “98년쯤에 제목을 정해놨어요. 처음에는 ‘저수지의 인어들’이었는데 ‘저수지의 개들’이 있더라고요.” 연극 ‘인어도시’는 ‘비가 천년 동안 내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세상 곳곳에 이끼가 끼고 눅눅하겠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적응해갈 것이다. “극중 이씨의 대사 중, 폐가 아가미로 변하고 겨드랑이에서 지느러미가 돋는다는 콘셉트는 그때 잡아놨죠. 마침 공연시기가 장마시즌이더라고요. 시즌이 참 중요해요 공연은.” 대부분이 그렇듯 고선웅의 이번 작품 역시 ‘말’이 많다. 그의 대사에서는 리듬감이 느껴진다. “이상하게 저는 말이 많아지게 되더라고요. 제 대사는 잘 들으려고 하면 안돼요. 떠들면 느낌으로 듣고 흘러가면 되지 분석할 필요는 없어요.” 그의 캐릭터들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속에 있는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밀려나와 문장을 이루고, 그 문장들이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다. “구상단계에서 인물이 만들어지면 그 후로는 제가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인물들이 말을 해요. 내 안에 안착돼 있으면 그가 말을 하는 거죠.” 할 말 많은 그는 낙관주의자다.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에 할 말도 많이 생기는 것. “경제적으로 어려워 도저히 못살 것 같아도 저는 그것 때문에 자살할 놈은 아니에요. 차라리 은행을 털고 감옥에 가더라도 죽지는 않아요. 명예의 수치로 인해 창피하다면 산에 들어가 살아요. 반성하며 글을 쓰던가 하겠죠.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는 것,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문제는 우울증인데 스스로 판단이 불가능하니 병원가서 치료를 받아야죠.” 그렇다면 그가 가장 우울할 때는 언제일까. “술을 기분 좋게 많이, 너무 많이 마신 그 다음날.” - ‘젊은’ 사십대가 부르는 사랑찬가 “어느 화가분이 저에게 이런 글을 써주신 적이 있어요. 사랑을 하면 알게 된다고. 뭔 말이야 이게. 세상 사람들은 알아야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그 말을 3년 동안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그 말이 옳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연극을 하면 분석을 하잖아요. 이를테면 햄릿의 사회적 위치, 가족관계, 주변 환경, 트라우마 등을 분석해 대사를 외우는데, 저는 분석하지 않아요. 그건 알고 나서야 이해한 거 아닙니까. 그럴 경우 창의성이 없어져요. 이해한대로만 알고 표현하는 거죠. 그게 아니라 햄릿이 돼 말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고 느낌이 와요. 사랑인거죠.” 그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연극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무조건 사랑이다. 악역조차 당연히 사랑한다. “가끔 연출가나 작가들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의식적으로 드러내요. 그건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거예요. 재주, 스킬, 지식을 교묘하게 요리해 세상에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데, 그런 작품을 보면 저는 기분이 무지하게 나빠요.” 그가 괴로울 때 역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다. “무성의 한 모습, 그 역할에 대해 치열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면 화가 나요.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나타내려는 배우들을 보면 무엇보다 안타까워요. 정말 멋지지 않거든요. 멋을 표방하는 거 다 보이니까.” - 좋은 것만 좋게 보면 좋겠다! 그나저나 도대체 연극바닥은 언제나 커질까. “어느 분이 말씀하셨어요. 대기업 총수의 딸이 연극 마니아여야 한다고.” 아무리 가난과 연극이 어울리는 한 쌍이라지만 배고픈 당사자들에게는 큰 문젯거리다. 그만큼 소통할 수 있는 관객이 적은 것. “영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공력대비 파장이 너무 없어요. 작년부터 이 공연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 준비했는데 관람할 수 있는 관객은 삼천 명 정도죠.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러나 ‘힘’을 키우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노력까지 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상업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면 재미가 없어요. 점점 누에고치처럼 연극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영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들에게 편승하고 싶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연극을 보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연극 마니아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부탁한 것도 그것. “분석하지 말고 벌어진 일들을 긍정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좋은 것만 좋게 보면 좋겠다’는 것.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대상을 보면 정말로 느낌이 괜찮잖아요. 연극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이 작품에서 이런 게 좋았다’라고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진실을 말한 거 아닙니까. 또 사람들이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 부정을 했을 때 투쟁을 안 해요. 그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고 쓰더라고요. 기자분도 좋은 것만 보쇼. 난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글, 사진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0.06.23 / 조회 17,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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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36] 불확실성의 영지, 그곳은 ‘인어도시’
깨어있으라, 인어를 만나게 될지니 지겹도록 쏟아지는 비에 모두가 지쳐가는 어느 밤의 호스피스 병실, 우비를 입은 남자가 들어와 말한다. 아귀가 물에서 튀어나와 팔을 물었다고. 호스피스 앞 저수지에 아귀가 산다고 우기는 이 남자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 묘사가 하도 자세해 미심쩍은 혼란이 온다. 표정 또한 진지하다. 사정은 둘 중 하나다. 그가 실제 기묘한 체험을 했거나 아니면 제대로 미쳤거나.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듯한 남자의 등장으로 시작한 연극 ‘인어도시’는 고선웅 작품만이 가진 특유의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당당하게 낯설다. 무대는 침대를 비롯해 사실적인 병실의 사물들로 가득하나 분위기만은 모호하다. 그 불확실함이 불쾌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인인인 시리즈’의 마지막 연극 ‘인어도시’는 호스피스병실 7002호에 사는 다섯 명의 삶을 아우른다. 태생부터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의 현재 모습이 살아온 삶에 대해 귀띔해줄 뿐이다. 살면서 너무 많은 주접을 떨었다. 팔짝 뛸 만큼 의심했고 매순간 죽도록 억울했다. 내성적이다가 거칠고 탐욕을 부리다가 자비 베풀기를 반복했다. 신을 흉내 냈다. 남들은 유별난 멋으로 아는 어느 사내의 선글라스조차 사연이 있는 게 인생이다. 미치지 않고 버티었더니 다다른 곳이 결국 죽음의 문턱이다. 연극은 이 모든 것을 연출가 고선웅 특유의 언어로 꼬집는다. 명쾌하고 깔끔하다. 그리하여 관객은 지금, 그들과 함께 아귀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병실의 환자들은 하나 둘 아귀의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듣는 이들은 그놈의 야식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 아귀에 물린 정씨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이씨는 느닷없이 깨어난다. 그들은 모두 배고픈 아귀에게 가기를 원한다. 저 까만 물속의 인어도시를 꿈꾼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 저수지, 바로 죽음이다. 그 갈망으로 얌전하던 호수에 홍수를 일으켰다. 혼돈의 흙탕물을 튀기며 걸어 나온 인어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7002호라는 숫자부터 비현실적이었던 그곳은 사실 ‘햇살방(죽기 직전 옮겨지는 병실)’이다. 그들의 무의식이 모든 환상을 만들어냈다. 마지막 발악은 죽음으로 가기 위한 의식이자 삶에 대한 집착이며, 억울함의 호소이자 위로다. 피해망상증과 은밀한 비밀에서 비롯된 강박증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 공포를 희석시키기 위해 인어가 왔다. 도대체 우리가 피해자라고 믿는 그 교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들의 토사물은 얹혀버린 삶의 응어리일지도 모른다. 연극의 팔 할은 대사로 채워졌다.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인물들의 대사가 인간의 삶을 정의한다. 강요는 없다. 잘난 척도 없다. 그것은 배반당한 삶에 대한 이해이며 소통하려는 노력의 언어다. 배우와 관객을 억압하며 암묵의 고립을 전하던 무대의 거대한 창은 마지막,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에야 열린다. 연극 ‘인어도시’는 죽음과 그 앞에선 인간들을 집요하게 그려냈다. 잔인하지만 인류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바탕으로 서 있기에 황당한 설정은 생명력을 얻는다. 체념과 죽음에 대한 수긍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우리에게 말한다.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하리라.’ 글, 사진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2010.06.22 / 조회 1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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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도시>, 죽음의 문턱 앞에 선 한국인 이야기
사랑을 통해 점점 고독해지는 중국인들의 이야기 (4.6~5.2)과 이지메, 은퇴문화를 다룬 일본인들의 이야기 (5.11~6.6)에 이은 한국인의 자회상을 담은 이야기, 가 찾아왔다. 연극 ‘인인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는 의 고선웅 연출가가 대본과 연출을 담당했다. 호스피스 간병인과 간호사의 인터뷰를 토대로 대본을 완성했다는 고선웅 연출은 ‘인인인 시리즈’ 포럼 발제문을 통해 “바쁘고 급하고 절박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에서 평안을 얻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죽음’에 포커스를 맞춘 는 죽음의 문턱에선 호스피스 환자 다섯 명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한국인들의 집착,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10년,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죽음’과 마주한 연극 는 7월 1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한다. 공연장면한 달 내내 비 호스피스 병실 7002호"내가 저수지에서 아구를 봤거든""에이, 아구는 짠물에 살죠!""남편이란 놈은 전화를 왜! 안 받는거야!"노파, "물귀신이 산다는 이야기가 있어"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셋방을 전전하고!"저수지로 가겠어!""이씨가, 이씨가 빠졌어"인어, "니들 머리가 날 꺼낸거야!""그만하자, 이제 그만"기꺼이 받아들이고, 떠납니다.다 털고 갑니다.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이미지팩토리_송태호(club.cyworld.com/image-factory)
2010.06.17 / 조회 1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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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사자> 굶주린 사자, 우리의 슬픈 단상
신나는 얼음땡 놀이 중이다. 스타 크래프트 게임도 한창이다. 즐거운 놀이 속에 넘쳐나는 웃음, 하지만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무대 바닥부터 3층 높이까지 이어진 계단은 아찔해 보인다. 수 많은 사람들 속을 9살 꼬마 이조벨은 쉼 없이 뛰어다닌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이 아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9살 꼬마의 발길이 닿는 곳은 한결 같이 구리고 감춰진 세상의 뒷골목이다.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회가 부정하고 있는 음울한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덮어져 있는 모든 것들을 들춰내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는 넘치는 긴장감을 타고 잘 흘러간다. 아내를 두고 간통을 저지르는 남편,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성직자의 부도덕성, 아동 살해 등 걸러지지 않는 뒷골목 이야기가 하나 둘 펼쳐진다. 짧게 구성된 장면은 강한 소재의 위력을 발휘하는 힘이 되준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는 시선은 얼음땡, 스타크래프트 놀이가 어울릴 9살 꼬마 이조벨이다. 아이는 거짓, 배신, 성행위가 난무하는 곳에 웅크리거나, 누워있는 자세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자신이 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고 유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은 사자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여정을 통해 자신을 죽인 것은 이성이 없는 ‘사자’가 아닌 이성이 넘치는 사람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집에 데려다 줄 구원자를 찾던 꼬마는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들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이다.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배우들의 열연과 장면 장면마다의 뚜렷한 클라이맥스가 만나 흐름은 명확하다. 비슷한 구성을 가진 연극와 비교해도 훨씬 깔끔하고 수월하다. 하지만 ‘자아를 찾아 떠나는 영혼의 오딧세이’라는 주제의 접점을 찾기는 힘들다. 9살 이조벨을 제외하고 1인 다역으로 열연하는 배우들의 열기는 부족함 없이 객석까지 전달된다. 특히 조안과 장애인 스칼렛으로 분한 윤다경의 열연, 로라, 크리스틴, 조앤으로 분한 김보영이 눈에 띄었다. 릴리, 론다로 변신한 최현숙은 다른 무대에서 조금 더 밝은 옷을 입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열연한 9살 이조벨, 배우 김해정은 커튼콜 순간에도 아이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아픔을 곱씹게 해줬다. 어두운 단면이 짜깁기 된 이 무대는 즐겁지 않다. 그래도 가짜 즐거움, 가짜 웃음이 판치는 ‘가식월드’에서 펼쳐지는 가짜쇼에서 느낄 수 없는 참 맛은 확실히 맛볼 수 있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kangjuck@interpark.com)
2009.09.18 / 조회 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