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글리폐인! 화제의 완소 뮤지컬 미드 "글리"

최근 미국에 뜨는 뮤지컬 코미디 드라마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환희’ 또는 ‘합창단’이라는 뜻의 "글리 (Glee)"다. 지난 5월 미국 폭스(fox) TV에서 파일럿이 방송된 후, 팬들의 항의 섞인 성원이 쏟아졌다. “이렇게 재밌는 드라마를 맛만 보여주고 더 이상 제작하지 않는 저의는 무어냐?”

2009년 9월 첫 방송된 <글리>는 12월 많은 화제 속에 시즌 1을 마감했다. 그 사이, 글리의 팬들을 뜻하는 ‘글릭(gleeks: ‘glee’와 ‘geek (괴짜)’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작년 한해 페이스 북(facebook)과 트윗터(tweeter)에서 가장 회자가 된 뮤지컬 코미디 드라마가 됐고, 브로드웨이 무대 위의 스타들을 안방극장의 스타로 탄생시켰다. 자, 그렇다면 "글리", 왜 그리 대박났을까? 그 이유를 내 식대로 분석, 들어가본다.


소외된 아이들이 부르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글리"는 ‘윌리엄 맥킨지 고등학교’ 합창부(영어로 ‘glee club’이 ‘합창부’라는 뜻)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다. 1993년 전국합창대회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던 이 학교 선생 윌은 합창부가 존폐위기에 놓이자 교장에게 합창부를 맡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단원을 모집하는데, 학교 학생들의 선입견 때문에 쉽지가 않다. ‘합창부는 낙오자들의 집합소’라는 것.

고생 끝에 합창부가 꾸려지는데, 역시나 사연 없는 학생이 없다. 노래실력은 전교 최고지만 전교 왕따인 ‘레이첼’, 악기도 잘 다루고 노래도 잘 하지만 다리가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야 하는 ‘아티’, 게이라서 놀림을 받는 꾀꼬리 ‘커트’, 말을 더듬는 ‘티나’, 그리고 풋볼팀의 주장이자 킹카지만 글리 클럽에 들어오면서 풋볼 팀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핀’까지.

담당교사 윌의 사연도 딱하다. 글리클럽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구하라는 임신한 아내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결혼을 앞둔 동료 교사와 애틋한 관계에 빠진다. 게다가 글리 클럽의 최대 적수인 응원단 코치 수는 계속 방해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전국합창대회에서 우승해 글리클럽의 옛 영광을 회복하자는 하나의 목표 아래, 학생들은 한 목소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각자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하모니를 이루게 된다는, 막장드라마가 넘치는 요즘 보기드물게 착한 이야기다.

이 텔레비전 시리즈를 직접 쓰고 제작한 라이언 머피(Ryan Murphy)는 “요즘 텔레비전에는 총잡이, 공상과학물, 변호사들이 판치고 있다. 세상이 슬프고 어둡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성공한 이유는 (사람들을 이런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현실도피주의(escapism)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글리> 또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현실을 잊게하는 인간적인, 이상적인, 현실도피주의적인 쇼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화려한 쇼를 보는 재미까지 있는 드라마
음악극인 뮤지컬에서는 드라마가 진행되는 가운데 노래가 자연스럽게 시작될 수 있도록 송모먼트(song moment)를 잘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글리"의 제작자들은 그러한 뮤지컬형식을 지양하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뮤지컬 (postmodern musical)’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글리"가 뮤지컬 <맘마미아>, <저지보이스> 같은 기존의 주크박스 뮤지컬 그 이상을 넘어서진 못한 것 같다. <맘마미아>가 없었다면 또 모를까. 각 에피소드에 맞는 기존의 노래를 사용하는 형식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리"가 <맘마미아>와 다른 점을 꼽자면, '아메리칸 아이돌'을 성공모델로 삼았기 때문인지, 노래장면과 이야기 전개 장면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뮤지컬창작/ 제작의 어찌보면 까다로운 공식을 과감히 깼다. 디테일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전개시키고,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는 속시원하게 쇼를 보여준다.

즉, 드라마와 음악쇼의 접목. 쇼는 쇼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요즘 유행하는 막장드라마를 "글리" 식대로 만들면, 드라마가 진행되다가 복수의 여신이 옛 남편 앞에서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는 적당히 노래방, 카페씬 정도가 아닌 가수 2PM의 무대처럼 화려한 음악쇼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제작과정에서 에피소드에 딱 맞아떨어지는 노래선곡이 관건이라고 한다. 이 시리즈물의 작가인 라이언, 브래드 (Brad Falchuk) 그리고 이안 (Ian Brennan)은 먼저 대본을 쓴 후에 노래를 선곡하는데, 지금까지 유명가수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저작권문제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다고 한다.

실력 짱 뮤지컬 배우들이 만드는 뮤지컬 드라마
뮤지컬 드라마 "글리"에는 진짜 뮤지컬 배우들이 나온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한다. "글리"를 다른 쇼와 다른 무엇으로 완성시킨다. 놀라운 연기로, 놀라운 가창력으로, 놀라운 매력으로, 놀라운 열정으로, 그리고 놀라운 새로움으로. 실제로 제작자들은 최고의 뮤지컬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수 개월 동안 브로드웨이를 누비며 캐스팅을 했다고 한다.


특히 합창부 담당교사 윌 역의 ‘매튜 모리슨(Mathew Morrison)’은 3개월만에 찾아낸 그들의 보석. 필자가 매튜 모리슨을 처음 본 건 몇 년 전 링컨센터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라잇 인 더 피아자>에서였다. 세상을 다 녹여버릴 것 같은 그의 목소리에, ‘저런 남자라면 사랑에 빠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발견했을 때, 꺄악한 사람은 필자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교 왕따인 디바 레이첼 역의 ‘리아 미쉘(Lea Michele)’은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여주인공이었다. 어릴 때 친구가 뮤지컬 오디션을 본다기에 재미로 따라갔다가 정작 친구는 떨어지고 자기만 붙었다는 그녀, "글리" 최고의 디바다운 가창력을 뽐낸다. 맥킨리 고등학교의 유명한 쿼터벡 핀 역의 ‘코리 몬티스(Cory Montieth)’는 완전 훈남인데, 고등학생으로 출연하고 있지만 실제 나이는 열 살 정도 많다고. 그리고 패션 감각 뛰어난 꽃미남 게이소프라노 커트 역의 ‘크리스 콜퍼(Chris Colfer)’는 그만의 미성과 외모로 이미 꽤 많은 한국 글릭들을 확보한 듯 보인다. 그리고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은 각각의 개성으로 고루고루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글리> 시즌 2
시즌 1을 성공리에 마친 후, 골든 글로브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 텔레비전 시리즈 상을 수상한 "글리"는 4월에 시즌 2를 앞두고 있다. 수퍼스타 글릭들이 "글리"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속속 밝혀 시즌 2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시상식에서 저스틴 팀버랙이 “아무도 나에게 출연해달라고 하지 않는 게 좀 문제긴 하지만” 자기도 "글리"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고 ,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한 컨츄리 싱어 ‘테일러 스위프트(Tayler Swift)’도 까메오로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우리의 영원한 섹시스타 마돈나도 그녀의 전곡 저작권을 이 프로그램에 허용함은 물론 올해 시즌에서 그녀의 무대를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도 ‘글릭’이 된 이유는 보기 드문 인간적인 스토리 때문이다. 시즌 1 거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다리가 불편한 아티를 이해하기 위해 전 글리클럽 학생들이 휠체어를 타고 학교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서로에 대해 자신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냥 이렇게만 말하면, 그렇다, 상투적이다. 안다. 하지만 이렇게 상투적인 일들이 제작자 라이언의 말처럼 요즘은 상투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상투적인 것들이 이젠 특별한 것이 된 세상인 게다. 미디어가 세상에 미치는 힘 때문에 폭력이 난무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것이 상투적인 것이 돼서 난무할 수 있게 "글리" 같은 드라마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사진: 브로드웨이 닷컴(www.broadwa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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