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앙> 고요한 열정의 힘, 김다현


제법 많은 사람들은, 실제 자신들의 눈과 귀로 보고 듣지 못한 것들을 세상이 전해주는 수 만가지 방법으로 예측하고 판단하여 사실화 시킨다. 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할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다’에서 ‘할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로의 변신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큰 파장을 갖는지 아는가.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있어 이러한 오류가 더욱 빈번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적어도 김다현에게는 더욱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단지 그의 이름 앞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 나섰던 ‘꽃다현’이라는 한 마디로 그를 무척이나 익숙하다고, 남들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정정한다. 내가 그를 보고, 그의 말을 듣기 전에 저질렀던 실수라고. 생각지 못한 의외성이 만나 배우 김다현으로 모아지는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신감 있게,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지난 2월 성남에서 한 달간 <돈 주앙> 공연을 마치고 7월 서울 무대를 펼칠 참인 그와의 만남이 더욱 기대되었던 건, 성남 공연 전 열린 쇼케이스장에서 본, 굉장히 자신감에 찬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사실은 좀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다른 배우들보다 좀 늦게 합류해서 막 가사를 다 외웠을 때였는데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건 성급한 것 같다고 했죠. 그런데 연출가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거기에 힘을 받아서 자신감 있게 하려고 했어요. 실은 그 곡들만 집중적으로 연습한 것도 있고요(웃음).”

오만함이 두드러지는 옴므파탈 돈 주앙 역에 선 배우들 중 그는 가장 부드러워 보였다. 강렬한 인상이나 거친 말투는 본디 그의 것이 아닌 듯 했다. 하지만, 그는 극과 극에서 위태로이 변화하는 돈 주앙의 모습을 누구보다도 관객들에게 잘 설득시켰다고 이야기 되었다.

“돈 주앙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그 인물에 많이 젖어 있어야 하고, 여자, 쾌락에 빠진 라이프 스타일을 충분히 즐겨야 되잖아요. 여유와 긴장, 두 가지 모습이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텐션과 릴렉스가 같이 오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돈 주앙이 변화해 가는 모습이 포인트 인데 자칫 잘못하면 이 사람이 왜 죽는지도 파악이 안 될 수 있을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일단 변화되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고, 죽음의 타당성, 인물들간의 관계를 잘 표현하려고 했어요. 공연평 올라오는 것을 보면, 김다현 공연을 보면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들 하셔서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스페인의 정렬을 담고 있는 소재와, 음악이 더욱 강조되는 프랑스극의 특징, 그리고 플라멩코 댄서들의 화려한 춤 등은 자칫 극의 기본 구조인 ‘서사’를 느슨히 할 수 있는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성남 때는 아무래도 저희가 한국사람이다 보니 스페인 귀족의 삶에서 풍기는 체취? 그런 것들이 바로 나오기가 쉽지 않았는데 스페인 댄서분들과 지내면서 그들의 생활패턴, 문화, 즐기는 모습 등을 보면서 스페인 냄새를 많이 풍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무대와 객석 사이도 충무가 더 가까워서 밀도도 높아지고, 감정표현도 더 잘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돈 주앙은 안무가 없는데 저는 사실 몇 장면 넣고 싶은 게 있어요. 연출가와 상의해 봐야겠지만, 이야기가 이만큼 있는데 다 표현해 주지 못하니까 조금 아쉽더라고요. 확실히 놀아줄 땐 확실히 써 주고, 기복이 좀 더 있어줘야 될 것 같아서 저 혼자 댄스 캡틴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서 안무도 넣어보고 그래요."


세월은 훈장 같아요.

1999년 그룹 야다의 리더로 활동하다 뮤지컬 배우의 이름으로 무대에 선 지 이제 6년. 잘 생긴 미남 배우에게 저절로 떠올려지는 사랑 안에 있는 남자(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은 비를 타고, 폴 인 러브)에 더하여 슬픈 트렌스젠더(헤드윅), 한 물 간 가수왕(라디오 스타), 프로듀서를 꿈꾸는 소심한 회계사(프로듀서스) 등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속 그의 프로필 색은 참으로 다양했다.

“전작과 비교까지는 아니지만, ‘나’라는 배우가 여러가지 색깔이 있구나, 또 내가 그걸 소화해 낼 수 있는지, 정체되어 있는 내 안의 다양한 것들을 생각해 보죠. 이건 나에게 맞을까,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가슴에 손을 얹으며)안에서 대답을 해 줘요. 그래서 앞으로도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다현이라는 배우가 공연을 한다고 하면, 그 이름만으로 “어떤 모습일까, 보러 가야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저의 바람이거든요.”

그 자신이 대답해 준, 최상의 배역과 작품은 무엇일까. 그는 “대부분의 작품이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라고 운을 먼저 띄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제 첫 작품이면서 저의 감수성이 상당히 맞는다고 생각해요. <헤드윅> 할 때는 상당히 배역에 빠져 있었죠. 헤드윅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여러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고, 작품에 즉흥성, 공간성도 있기 때문에 이건 정말 정답이 없어요. 시즌마다 항상 다른 버전이었고, 앵콜 공연 때는 매회 옷을 다르게 입었어요. 옷이 날개라는 말을 그때 깨달았죠. 짧은 옷을 입냐, 긴 곳을 입냐, 원피스냐 캐주얼이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너무 달라지는 거에요. 그게 헤드윅인 거죠.”

과거 인터뷰에서도 빠지지 않았던 <프로듀서스>도 역시 등장했다.
“<프로듀서스> 대본을 보고, 멜 부룩스(각색)가 정말 천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완벽한 텍스트! 연출가와 이야기 하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타당성을 들어보면 더 미쳐요. 우리가 그냥 스쳐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 이유가 대사 안에 다 있어요. 거기에 무대하며 음악, 안무, 모든 게 완벽했죠. 그때 제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인정했어요. 저희가 했을 때(2006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앞서 나간 것 같았는데 앞으로 공연된다면 더욱 재미있게 보실 거예요. 그때 코미디에 대한 맛을 제대로 알았거든요. 배우들간 호흡이나 팀워크도 너무 좋았고요. 그 때의 끈끈한 인연이 지금까지 가는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와 연을 맺게 되었다며 <라디오 스타>를 이야기하는 김다현에게 넌지시 가수 김다현을 물어봤다. “글쎄요”와 함께 연한 미소만을 띈 그는 곧 라이선스 작품과 창작 작품에 대해 조근조근 말을 풀어낸다. 앞으로도 그가 설 무대에 대한 힘 있는 한마디인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완성된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한국 시스템이 앞으로 더 좋아지고 발전해 가겠지만, 아직까지 열악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정말 완벽하고 완성된 작품은 사실 없거든요. 브로드웨이 작품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도를 높인 다음에 오는 거니까 많은 사람들이 더 탄탄하다고 평가를 하는 것이잖아요. 저희도 그런 시간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창작이니까 좀 감안해서 봐주세요”,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배우 입장에서도 창피한 얘기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거기에서 오는 보람은 라이선스 작품의 2, 3배인 것 같아요. 지금 한국의 창작 작품을 해온 온 스텝들도 다 느끼고 있어요. 이제 노하우가 생기면서 다음에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올 거예요. 이게 다 경험이죠.”

큰 변화가 일어난 것만은 사실이에요.

남자 배우로서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다현이 대답했다. 큰 변화를 겪은 것 만이 사실이라고. 쾌락에 허우적대다 결국 자신이 놓은 덫에 걸려 최후를 맞는 비극적인 돈 주앙 역으로 당당히 강렬한 눈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 말고도, 그는 지난해와 올해 새롭고 중요한 일들을 맞이했다. 20대에 굿바이 인사를 나누었고 한 여자의 남편, 한 생명의 아빠가 된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는 그 전 보다 책임감이 2, 3배 늘어났는데, 아이를 낳는 순간 10배로 늘어나요, 10배로 커져요! 그 삶에서 얻어지는 교훈이 너무나 많아요. 생각도 많이 달라지고, 우리 애기한테 항상 고맙게 생각하죠.”

20대를 활기차고 열심히 잘 살았던 것 같다고 주저 없이 이야기 하는 그에게 지난 10년은 서른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한다. 이제는 막내에서 ‘형’ 급으로 올라갔다는 그에게는, 세월이 ‘제법 괜찮은 것’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약간 애늙은이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웃음). 주변에서 얼굴로 봤을 때는 20대인데, 3, 40대 포스를 가지고 있다고 그래요. 장가 안 간 형들은 요즘에 저한테 선배님, 선배님 그러기도 하고요(웃음).”

최근 그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디테일 김’이 그것.
“<돈 주앙> 하면서 감정변화를 걸음걸이로 표현한 적이 있어요. 일반 관객들은 사실 잘 모르는데, 팬 클럽에서 그걸 알아차린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는 책 넘기는 것까지 타당성을, 동기부여를 하거든요. 걸음걸이 역시 빠르게 걷는 것, 느리게 걷는 것, 이렇게, 저렇게 걷는 게 다 계산되어 있어요. 그걸 캐치하고 ‘디테일 김’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신 거죠. 섬세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긴 했는데, 그 별명이 되게 좋더라고요(웃음).”

군대 역시 그에게는 “지금은 맞는 때”일 뿐이다.
“군에 갔다 와서는 아마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로서 색다른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요. 주변에서도 금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시작할 때, 제대 후 첫 작품은 연극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셰익스피어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고전작품이요. <토요일 밤의 열기>처럼 한번쯤 춤에 관련된 뮤지컬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때 기초 배운 것이 남아 있어서 누군가가 가르쳐만 준다면 열심히 따라서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인터뷰를 기록한 녹음기를 보통의 속도로 다시 들으며 수월히 자판 위에 그의 말들을 풀어내었다. 타자 솜씨가 월등히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가 말과 말 사이 여분을 두고 생각하기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부터 말은 느렸다”고 웃는 그이지만, 더욱 여유롭고 깊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요즘이라고 한다. 그가 쉽지 않게 꾹꾹 눌러 무대 위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느리지만 정확하게 이야기의 정곡을 오고 가려 했던 그에게 더이상 꽃미남 배우라는 수식어처럼 ‘쉬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진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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