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근도둑 이야기> 유형관, 전배수, 이상홍

 


“우리나라 검찰은 말이지 멀쩡하다가도 들어갈 때 하이고~하면서 휠체어만 타면 된다니까” “휠체어 타고 올걸!”
두 늙은 도둑이 핑퐁처럼 주고받는 뼈있는 수다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평일 낮공연인데도 불구하고 꽉 찬 객석을 자랑하는 작품은 이 곳은 <늘근도둑 이야기> 공연장. 상습 절도로 30년을 감옥에서 보낸 그들이 대통령 특사로 풀려나 ‘그 분’의 미술관에 잠입해 벌이는 만담은 때론 천진난만하게, 때론 날카로운 풍자의 모습으로 객석을 주름잡는다.

이날 무대에 서 관객들을 쉴새 없이 웃긴 유형관, 전배수, 이상홍은 6개월 이상 이 무대에 서 온 <늘근도둑 이야기>의 베테랑 배우들. 특히 TV와 영화로 낯익은 유형관은 지난 2008년 초, 연극열전으로 선보일 때부터 참여해 현재 1년 6개월 째 <늘근도둑 이야기> 무대에 서고 있으니, 이젠 몸에 ‘더 늙은’ 도둑 캐릭터가 배어 있을 정도다. 또 하나의 대학로 인기 연극 <라이어> 시리즈로 이미 코믹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전배수의 ‘덜 늙은’ 도둑도 객석 배꼽을 빠지게 하고, 두 도둑의 정체를 의심하는 수사관 이상홍의 연기도 감초처럼 빛난다. 대학로와 강남, 두 곳에서 동시에 공연하며 막강한 스테디셀러 연극으로 자리잡은 <늘근도둑 이야기>의 세 배우, 유형관 전배수 이상홍이 들여주는 늙은 도둑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관객들 반응 장난 아니었어요"

플레디디비(이하 플디) 오늘 평일 낮 공연인데도 빈자리가 없네요.
유형관 (손가락으로 2층 끝을 가르키며) 저 위까지 꽉 차야지(웃음). 그래도 평일 낮공연 치고는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관객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다리를 다쳐서 힘들지만(얼마 전 공연 중에 부상당했다고 한다) 최선을 다하게 되요. 저절로.

플디 공연 내내 작게, 혹은 크게 객석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전배수 이 작품에는 풍자와 해학이 있어요. 웃음의 포인트도 분명히 있고요. 그런데 이게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선 강요가 아니었으면 해요. 세상에 대해 기본적으론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 그것을 웃음으로 보여주는 것 뿐이니까요.

유형관 글쎄…전 이 작품 할 때, 과연 이게 재미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10년 가까이 연극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만 감이 떨어져서 굉장히 힘들게 연습을 했고. 솔직히 전 다른 팀 연습하는 거 보면서 웃지도 않았어요. 이게 어떻게 재미있나, 하면서. 그런데 막상 공연을 하니까 관객들 반응이 장난이 아닌 거에요. 왜 이렇게 반응이 좋을까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 관객들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 나와서 세상을 풍자하니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뭔가를 꼬집어도 부족한 두 사람이 꼬집는다고 큰일이 나진 않잖아요. 풍자를 강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툭툭 던지듯 하고요 오래 진지하게 하면 사람이 긴장하고 피곤해 지거든요. 돈 지불하고 와서 안 그래도 짜증나는 세상인데 신경 곤두세우고 볼 필요가 뭐가 있어요. 편하게 웃을 수 있으니까 입소문이 난 것 같아요.

플디 직접적인 풍자도 꽤나 보이던데요. 지나가듯이 하지만.
유형관 실제로 대통령이 바뀌면서 소재가 계속 변하고, 소재들도 많이 생겼다고 봐요. 그래서 도움 준 부분도 있지 않은가…(웃음).
전배수 전 96년 박광정, 명계남, 유호성 선배들이 출연했을 때 공연을 봤어요. 공연 중 수사관이 ‘이양’을 찾잖아요. 그 당시 관객들은 바로 알아차렸던 것 같아요. (손바닥을 머리에 대며) 그 대통령의 부인, 영부인인 거죠. 그때 당시만 해도 이양은 전면에 안 나서고 뒤에서 모든 걸 조정하고 있는… 그때 사람들은 이양이 나오면 굉장히 좋아했었죠. 수사관이 함부로 ‘이양아!’ 부를 수 있다는 것도 좋아했고. 지금 관객들에겐 이양은 그냥 비서실의 이양일 뿐이에요.

플디 현재 <늘근도둑 이야기>에 4팀의 배우들이 돌아가면 무대에 서고 있어요. 배우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 같은데요.
전배수 마지막에 훈장을 수여하면서 각료들은 소개할 때는 팀들마다 조금씩 달라요. 배우들 중에도 중도가 있고, 진짜 진보도 있거든요(웃음). 저와 원해 형은 같은 팀인데, 원해 형님이 시사에 굉장히 밝으세요. 조금이라도 정부와 사회에 마음에 안 드는 걸 찾아내면 여지없이 들고 나와 ‘배수야 오늘은 이걸 꼭 해야 해’하면서 회의를 요청하세요. 시의성이 없으면 사람들은 식상해 해요. 얼마 전만 해도 물대포가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물대포 해도 반응도 없고..요즘은 문광부장관..이렇게 나오죠. ‘세뇌당하셨네’ 이러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배우들 애드립에 공연 시간 20분 늘어

유형관 원래는 1시간 20분짜리 공연이었는데, 1시간 40분으로 늘어났어요. 배우들이 작업을 하다가 어느 날 애드립이 잠깐 나왔는데 그게 재미있어서 대사화가 된 게 많아서. 처음에는 1시간 30분 정도만 가자, 너무 늘어나도 지루하다고 했는데 줄이기가 어렵더라고요. 객석에서 재미있어 하시니.

플디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어떤 애드립인가요.
이상홍 유형관 형님의 ‘독한 년이지’ 이 대사도 연습 중에 나온 말인데, 그게 너무 웃겼죠. 수사관이 이양을 계속 찾는데 안 나오니까 ‘이양인데 지금까지 안 나오면 독한 년이지’ 이 대사(웃음).
유형관 박철민씨가 느닷없이 애드립을 하는 게 많았어요. 장난하나 할 정도로. 그게 다 대사화가 됐어요. ‘야 나 공연 안 해, 환불해 드려’ 이것도 다 애드립이에요. 연습 중 이 대사 듣고 진짜인 줄 알고 화나서 나가는 걸 쫒아가서 때려 주려고 했다니까(웃음).

플디 배우들 성향에 따라 대사가 조금씩 다르겠어요.
유형관 박철민씨가 애드립으로 만든 대사가 꽤 많은데, 그걸 정경호씨가 하다가 자기와 안 맞으니까 바꾼 것도 있어요. 그 ‘대운하’와 ‘지킬앤하이드’ 그 두가지를 철민이는 못 해요. 해보라 해도 못하죠. 전배수씨 같은 경우는 이 두 사람이 만들어 놓은 대사를 취합해서 연기하고 있어요.

전배수 전 후발주자인데, 저에겐 애드립이 정식으로 대사가 된 대본을 받았어요. 대본대로 한 것인데, 사실 두 분이 만들어 준 대사의 액기스만 있었던 것이죠.

 

유형관 그런데 어느 날 덜 늙은 도둑이 내 대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철민이가 했던 대사인데, 경호가 하지 않아서 내가 한 대사가 있거든요. 어느 순간 또 다른 배우가 하더라고.

플디 상대 배우가 바뀌면 혼란스럽겠네요(웃음).
유형관 그래서 더 긴장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오늘도 갑자기 전배수씨와 하니까 무대에서 긴장되더라고. 매일 같은 배우와만 하면 지겨워질 수도 있는데. 무대에선 약간 삐걱거렸는데, 관객은 눈치채지 못해도 우리끼린 놀라죠.

플디 관객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부분이 많아서 공연 중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전배수 관객들하고 대화하려고 한 게 아니라 대사인데 착각하시는 관객들도 있어요. 그래서 계속 참견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난처하죠(웃음). 그럴 땐 한 마디 해야 하곤해요. 애드립을 잘 하시는 분들은 유머러스하게 넘어가는데 괜히 잘못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기도 해요(웃음).

이상홍 공연이 잘 나가고 있었는데 한 남자분이 스티븐 시걸을 닮았었나봐요. 그래서 ‘스티븐 시X’이 오셨네요’ 했다가 분위기가 싸아 해지는데 뒤에 있는 저도 느껴지더라고요. 그 뒤부터 반응이 하나도 없는 거야(웃음).

전배수 아니, 각료를 소개하는데, 너무 딱 닮아서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그 말을 했는데 객석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조용해 지는 거야. 그래서 수습하려고 몇 마디 더 했다가 공연이 더 가라 앉게 만들었다니까요(웃음). 그 당사자 분도 기분이 나빴어.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말 할 수도 없고(웃음).

유형관 박철민씨가 역시 그런 건 잘 넘어가요. 관객이 화장실이 급했는지 공연 중에 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수사관한테 ‘저 아줌마도 나가는데 우린 왜 안 보내줘요’ 이랬다니까. 관객이 늦게 들어오면 ‘이 사람들 모르잖아, 처음부터 다시 합시다’ 이러는 거에요. 조금 전부터 다시 하니까 객석이 난리가 난 거에요. 그 사람은 공연 중에 화장실에도 갔다 오잖아요(웃음).

플디 마지막으로 <늘근도둑 이야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유형관 처음 이 작품 할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뭔가 연기를 하려고 하고 찾으려고 했거든요. 다른 사람을 웃긴다는 게 굉장히 힘들거든. 어느 순간은 지겨울 때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편하고 좋아요. 지금은 내가 그냥 늙은 도둑 같아요. 계속 꾸준히 해서 내가 60살까지 가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한 10여년 남았나. 70살에 고별 작품으로 하면 더 좋고(웃음).

전배수 관객이 많은 곳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는 게 사실 되게 행복해요. 몸이 힘들어도 무대에 올라가면 다 잊고 시간도 금방 가더라고요.

이상홍 저에겐 처음으로 장기 공연을 해보는 중이에요. 다른 작품도 많이 하고 싶지만 이 작품은 항상 돌아와서 하고 싶더군요. 개런티도 지금까지 한 것 중에 가장 많이 받고(웃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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