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같은 여름 - '쿨' 김성수, 이재훈, 유리
작성일200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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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주춤한 얼굴이지만 출중한 랩 실력 하나로 강남을 주름 잡았던 김성수, 유학을 준비 중이던 ‘좀 살던 집 아이’ 이재훈은 ‘쿨’이라는 그룹에 영입할 새로운 멤버를 찾아 헤맸다. 1995년, 두 남자는 유리창 앞에서 춤을 추고 있던 ‘물건’을 발견했다. ‘유리’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하여 유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스무 살 소녀, 이것이 쿨한남녀 세 명의 운명 같은 만남의 시작이다. 2005년, ‘해체는 하지만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다’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던 그들은 2008년 여름 쿨 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2009년 여름, 11집으로 쏘쿨하게 돌아온 그들은 새로운 운명선 앞에 서 있다.
여름전문그룹, 꼬리표 떼야지요
지구온난화, 설 자리가 없는 북극곰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발언이지만, 쿨에게는 이 보다 더 다행일 수 없다. 조금씩 길어지는 여름에 쿨의 활동시간도 조금씩 늘어나기 때문이다.
“1년 만에 나온 11집이에요. 본격적으로 방송활동 시작했고, 또 공연준비를 같이 하다 보니까 요즘은 이틀에 여섯 시간도 제대로 못자요. 그래도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건지 지난 공백시간 동안 느꼈기 때문에 지금은 하루하루가 감사하죠. 지금까지는 여름 3개월 정도 활동하고 음반작업하는 게 주기였는데 이제는 가을, 겨울에도 활동하는 쿨이 되고 싶어요.”(이재훈)
영턱스클럽, 육각수, R.e.f, 녹색지대와 함께 후끈 달아올랐던 1990년대 가요계 전성기를 일궈낸 쿨. K본부의 ‘가요 톱텐'이 ‘뮤직뱅크’로 바뀐 사이, 어느 가수는 미사리 인근 까페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사업가로 변신해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쿨 역시 해체라는 한 번의 광풍을 맞았고, 재결합이라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저물고, 쉽게 잊혀지는 이 바닥에서 15년 째 ‘여름=쿨’이라는 공식을 성립하고 있는 쿨의 이름값은 ‘대중가수’로 살기란 녹녹치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칭찬받을 만하다.
“활동을 재개하니까, 방송국에서 예전 히트곡을 불러달라는 요청이 많아요. 해변의 여인, 애상, 작은 기다림 등 히트곡이 참 많거든요(웃음). 부를 곡은 많은데 이게 적어도 십 년은 넘은 노래들이거든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옛날 기억을 더듬어내서 다시 맞춰보려니까 힘들던데요?” (김성수) 그래도 ‘녹슬지 않은 건 성수오빠의 랩 실력’이라며 맏오빠를 치켜세운 막내 유리는 힘든 점 보다 팬들에 대한 감사멘트부터 챙긴다.
“옛날에는 앨범이 잘될까, 안될까? 두려움이 많았는데 지금은 편하게 생각해요. 저희들이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예쁜 얼굴들은 아니지만. 옆집 오빠 같고 누나 같은 이미지를 계속 아껴 주시니까요. 그리고 저희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생각해서 부담감은 적었어요.”
접대성 농후한 유리의 멘트에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은 이재훈이 슬쩍 고충을 털어놓는다.
“솔직히, 음악적 부담감이 없을 순 없죠. 새롭고,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고 부르고 싶은 건 변하지 않는 가수들의 희망이니까요. 그래도 저희한테는 한 가지 중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쉽게 풀어내려고 했어요. 쿨이라는 캐릭터는 무시 못 하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힙합이나 록이나 장르의 변화를 주는 건 아니였고, 쿨이라는 색깔과 장르를 유지하고 가는 거니까요. 틀은 유지하되,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을 줬죠. 변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처럼 큰 부담감은 없었죠.”
평균연령, 36세!
이번 앨범과 공연을 준비하면서 멤버들 스스로 큰 변화를 느꼈던 부분은 ‘나이’였다.
“스무 살, 오빠들한테 이끌려서 처음 데뷔했을 때는 하나부터 열 까지 오빠들이 다 알려줬어요. 저 스스로도 오빠들한테 많이 기댔고요. 제 개인 파트 때에는 재훈이 오빠가 스튜디오 부스에 들어와서 리듬을 맞춰주면서 도와줄 정도였거든요. 지금은, 노래 부를 때 옆에 오면 신경 쓰여요(웃음). 이게 연륜인가 봐요.” 녹음시간이 가장 짧다는 김성수의 대답은 더 명쾌하다. “나이가 드니까 한 번에 확 에너지를 쏟아 붓죠. 금방 하고 가요. 분량도 짧고요(웃음).”
이재훈은 앨범 녹음 때 마다 몸이 아팠던 지긋지긋한 징크스에서 이번 앨범을 통해서 탈출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관리의 중요성을 알겠더라고요. 예전에는 앨범 녹음 할 때 마다 아픈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제 제 스스로 관리를 해야 할 나이잖아요. 운동도 꾸준히 하고 몸 관리를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그런 징크스는 없었어요. 몸에 열이 많은 편이거든요, 땀도 많이 나고. 녹음할 때 옷을 벗는 건 그대로에요. 아직 체질까지 변할 나이는 아닌가 봐요.”
가장 변한 점은 멤버들 사이에 한층 두꺼워진 ‘욕심’이다.
동생들의 공격에도 해맑게 웃고만 있는 김성수를 보자니, 세 사람의 성격 교집합이 궁금해졌다. 세 사람의 성격에 대해 묻자, 골똘히 생각하던 김성수가 연신 눈만 꿈벅거린다. "유리는 막내면서 오빠들 내조를 잘하고요, 성수형은 저런(?)모습도 보이지만, 맏형으로의 듬직함이 있어요(웃음). 진지할 때는 굉장히 진지하고요. 그리고 제가 가장 활동적인 편이고요.” (이재훈) 이재훈의 말을 이어받아 그 동안 오빠들을 내조하며 착하게 살아왔다고 답하는 유리에게 여성그룹(걸프렌즈)으로 활동했던 때와 홍일점으로 지내는 쿨 활동의 차이점을 물었다.
“쿨 해체 때도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단 한 번도. 제가 걸프렌즈로 활동한 것도 (채)리나씨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마음이 맞아서 프로젝트 팀 개념으로 한 거지, 제가 새로운 팀을 만들었다, 다른 팀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오빠들하고 있으면 든든하죠. 용돈도 잘 주시고, 듬직하고. 그런데 요즘은 창피하기도 해요, 소녀시대를 좋아해서 플랭카드 만들어서 들고 다니고!” 91년생 서현이 속해있는 소녀시대와 멤버 평균연령 36세의 쿨이 친해지기 위한 방법이라는 김성수의 발언에 막내 유리가 웃어 보인다. “그건 맞아요, 예전에는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어려워했거든요. 오빠들이 먼저 다가서니까 동생들도 저희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요즘은 방송국 오는 일이 재미있어요.”
운명 같은 여름, 공연형 가수로 거듭나기 골똘히 생각해내느라 유난히 답변의 기회가 적었던 김성수에게 쿨 이외에 운명 같은 만남이 있었느냐고 묻자 단번에 ‘가족’이라고 답변을 내놓는다.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기니까 신중해지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일에서도 더 많이 노력하죠, 혼자가 아니라 ‘가정’이 생겼으니까요. 그리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여기를 떠나면 뭔가를 할 수가 없어요.” 트로트 가수를 하지 않았느냐는 유리의 고자질성 발언에 ‘씨익’ 하고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인다.
“쿨 이외의 변화는 제가 좋아하는 의류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 같아요. 웃긴 게, 의상을 하면서 쿨에 대한 애틋함이 더 커졌어요. 제가하는 의류사업이 잘 되는 것도 10년 넘게 가지고 온 쿨의 이미지로 사랑을 받는 거더라고요, 결국 쿨이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일도 인정받았던 것 같아요.” (유리)
쿨의 만남과 해체, 그리고 재결합 등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는 이재훈은, 쿨 이재훈으로 불리게 된 첫 순간을 더듬어낸다. “쿨 하기 전에 유학 수속을 다 밟고, 송별회를 했어요. 그 날 술 먹고 자판기를 발로 찼다가 그게 넘어져서 뼈가 으스러졌고, 결국 한국에 남아 있다가 쿨을 하게 됐죠. 그리고 해체를 한 가수들이 해외로 떠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는 해체를 통해서 음악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재결합이 되면서 일도 열심히 하고 음악에 다시 빠질 수 있는 운명의 계기를 만났죠. 지금은 정말 하루하루가 감사하다니까요.”
쿨이라는 공동운명체로 뭉친 세 사람의 목표는 봄, 가을, 겨울에도 활동하는 쿨로 거듭나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 쿨이 공연형 가수로 거듭나는 것이다. “예능형 가수, 방송형 가수 이미지가 많지만 작년에도 공연을 했고, 저희들 나름대로는 꾸준히 공연을 통해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어요. 무대에서 맛보는 에너지와 희열은 말로 다 할 수 없거든요.”(이재훈)
“2008년 크리스마스 콘서트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저희들 노래를 관객 분들이 다 알고 오셔서 공연이 거의 합창 분위기로 가는 거에요. 관객들이 어울리는 감동은 저희 무대가 최고라고 자부해요.”(김성수)
“15년 전 처럼, 우리 셋이 변함없이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TV는 후배들에게 맡겨주고, 저희는 공연장을 지키는 쿨로 거듭나고 싶어요.” (유리)
유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재훈이 만지작거리던 커피를 흰 바지에 쏟아낸다.
유리: 녹화 들어가는데, 이게 뭐야! 얼른 갈아입고 와!
재훈: (후다닥) 응, 알았어.
막내동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디에게 달려가는 이재훈.
앙칼지게 재훈을 다그치는 유리를 보며 ‘씨익’웃음 짓는 김성수.
막내동생 말이라면 껌뻑 죽는 두 오빠와 야무진 유리가 펼쳐내는 시원한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쿨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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