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레 콘서트> 해피호스트, 김현철
작성일200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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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가 없고 담백한 사람. 때론 심심한 느낌을 주지만 김현철의 물리지 않는 매력은 그의 음악에서 빛을 발하곤 한다. 1989년 ‘천재 뮤지션’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데뷔한 스무 살의 꽃 청년은 2009년 '데뷔 20주년'과 '불혹맞이'라는 높은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똑 떨어진 의미 깊은 행사(?)를 연달아 두 방이나 맞이하고 있는 김현철. 김현철이 호스트로 나서며 야간흥행을 달리고 있는 <수아레 콘서트> 현장에서 그를 만나봤다.
수아레, 야간흥행 중
플레이디비(이하 플디) <수아레 콘서트>를 삼 년 째 이어오고 있어요.
김현철 제가 진행하기 전부터 성남아트센터에서 이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이런 공연이 있는지 몰랐는데 어느 날 공연을 보고 온 회사 직원이 “대표님, 이런 공연이 있는데 직접 진행해보는 건 어떠세요?”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이 근처 분당에 살거든요, 그래서 그냥 “어, 집도 가깝고 좋네”그랬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어요.
플디 삼 년 넘게 이어올 거라고는 생각 못 하셨나 봐요.
김현철 그렇죠,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큰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공연의 횟수가 점점 쌓여가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이 년 넘어가면서부터는 공연에 대한 애착도 커졌고, 제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죠.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관객 분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플디 공연 분위기는 어때요?
김현철 어떤 게스트가 나오느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져요. 엄숙한 경우도 있고 재미있는 경우도 있고. 전체적으로는 가족 같아요. 실제로 저희 집 근처에 사는 이웃 분들이 오시기도 하고, 한 번 오셨던 분들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공연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무대에 서면 관객들 얼굴이 다 보여요. 속으로 ‘어, 저 분 지난 번에 오셨는데’라고 생각하고, 다음 달에는 ‘저 분 오셨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20대 관객과 중년 관객들이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가 좋아요. 삼촌 같고, 동생 같고 이모가 되어주는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데뷔 20주년, 데뷔 40주년은 되야
플디 데뷔 20주년을 맞았어요.
김현철 솔직히 전 20주년의 의미를 못 찾겠어요. 의미를 두려고 하니까 의미가 생기는 거지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는 건데. 마흔 살이 된 시기에 데뷔 20주년을 맞이해서 그런지 주위에서 데뷔 20주년 축하해, 이런 말들을 많이 해줘요. 제가 데뷔 40주년쯤 됐을 때 돌아보면, ‘20주년이 뭐 그리 큰 대수라고’ 이렇게 생각할 것 같고, 젊었을 때 뭘 그렇게 이루어놓은 게 많다고 떠들었을까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지금은 별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시기에 앨범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많은데요, 그런 게 싫어요.
플디 그래도 한 우물을 20년 이상 팠다는 건 큰 성과잖아요.
김현철 제가 1989년에 데뷔해서 앨범을 40장 정도 냈다면 큰 성과겠죠. 그런데 데뷔 20주년은 그냥 먹고, 잠자고 일어났더니 이렇게 되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잖아요, 뭐(웃음). 의미도 찾고 제가 걸어온 길을 정리해야 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 작업은 제가 이 일을 마무리 했을 때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게 창작자의 모습인 것 같아요. 지금 이 나이에 의미를 찾고,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앨범을 내는 작업을 지금 한다는 건 건방진 거 같기도 하고요.
플디 조금만 되돌아 본다면. 재즈를 대중가요에 접목시킨 뮤지션이라는 칭찬부터 시작을 했죠?
김현철 그게 참 신기해요. 전 단 한번도 제 음악이 재즈 같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제가 워낙 재즈를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재즈가 흘러 들어온 걸 수는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제 음악을 재즈라는 장르로 구분 짓기도 하거든요. 장르라는 게 글로 쓰는 사람들이 글을 위해서 음악을 쪼개서 장르로 잘라놓은 것에 불과하잖아요. 제 음악이 어떤 장르이고, 어떤 장르에 비슷하고 그런 건 모르겠어요.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이 그걸 생각할 이유도 없고. 비슷한 맥락에서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제 음악이 ‘누구 스타일’이런 것처럼 ‘김현철 스타일’ 이렇게 기억됐으면 하는 생각은 있죠.
플디 김현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요.
김현철 발음이 특이하죠. 라디오 DJ를 할 때는 발음을 고치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그런데 발음은 구강구조에서 비롯되는 거잖아요. 어눌하게 하고 싶어서 어눌한 게 아니라 그냥 어눌하게 나오는 구조니까. 진행을 계속 하다 보니까 청취자들도 익숙해졌다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플디 초창기에 발음 때문에 구박 받았던 기억 없어요?
김현철 음악을 시작했던 처음부터 누구의 지시를 받고 했던 게 아니라 저는 제가 직접 한 거였으니까 그런 건 없었죠. 제 돈 들여서 제가 부르고 음반 만들고 다했는데 누가 저한테 “야, 너 발음똑바로 해!” 이랬겠어요(웃음).
가수, 그리고 사업가
플디 작사, 작곡, 프로듀서. 그야말로 원맨밴드잖아요.
김현철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우고 악착같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그렇게 해요. 오늘은 오후 다섯 시까지 곡 작업을 해야지, 해서 곡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곡을 쓰고 싶을 때 쓰고, 작사를 하고 싶을 때만 글을 쓰죠. 곡이 안 써질 때는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일에는 손을 떼고 술만 마신다거나. 그런 스타일이에요. 교회에 다니는데 기도하는 스타일도 그래요. 기도도 했다가, 안 했다가. 기도도 안될 때는 안 되거든요.
플디 1990년대의 따뜻한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에요.
김현철 저는 워낙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 개인 홈페이지도 없어요. 인터넷을 하게 된 것도 몇 년 안됐죠, 작년에 처음으로 이메일을 사용해봤으니까요. 요즘도 포털 메인 페이지와 이메일 정도만 확인해요. 굉장히 구식이죠. 1995년도에 PC통신에 팬클럽 사이트가 있었는데 누군가 저를 공격하면 다른 사람이 ‘우리 오빠 그런 사람 아니에요’이런 식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글을 올리는 거에요. 그런 게 너무 싫어요. 컴퓨터라는 공간에서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사람이 눈을 보고 얘기해야지요.
플디 그런 감성은, 사업가 김현철에게는 쥐약이겠어요.
(김현철은 현재 후너스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있다)
김현철 사업가로 인터뷰를 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안 하죠.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말만 했겠죠? (웃음).
플디 뮤지컬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김현철 뮤지컬에 대한 관심은 커요. 뮤지컬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관심 있고요. 뮤지컬배우로는 출연 못하겠지만(웃음). 이 배우가 이 뮤지컬을 하면 좋겠다, 그런 조합을 계속 맞춰보면서 뮤지컬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어요. 뉴욕의 소극장에서 ‘에비뉴 큐’라는 뮤지컬을 봤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요. 우리나라에도 꼭 도입하고 싶은데 벌써 누가 판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플디 다른 활동으로도 많으시죠?
김현철 대학교 수업에도 나갔는데 이번 학기에는 강의가 없어요. 그런데 요즘 애들 정말 공부 안 해요. 한 학기 동안 세 번 출석하고 안 나오는 친구들도 있고. 그냥 조용히 F를 줬어요. 이번에 이현우씨가 네 곡 정도가 담긴 미니앨범을 내거든요. 곡을 주기로 했어요. 제 10집 앨범은 일정은 모르겠어요, 올해에 나올지 내년에 나오게 될지.
가정, 따뜻한 굴레
플디 결혼을 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김현철 그렇죠, 팬들도 많이 떨어져 나갔고(웃음). 라디오를 진행할 때만 해도 편지가 하루에 오천 통은 넘게 왔었어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거죠. 인기도 질량보존의 법칙을 따르더라 니까요. 팬과 인기를 잃었다면 얻은 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정을 가졌다는 거죠.
플디 노총각 아이콘에서 모범남편의 아이콘이 됐어요.
김현철 저는 정말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 제가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는 걸로 부성애가 남다르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노래니까요. 누구나 그런 점은 하나씩 있잖아요. 아버지가 축구를 잘하면 매일 같이 공을 함께 찰 거고, 요리를 좋아하면 요리를 같이 할 거고, 아버지가 놀음을 좋아하면(웃음). 저한테는 음악이 제일 쉬우니까 그렇게 하는 거죠.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공을 차주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들어가는 노력도 별반 다르지 않고요.
플디 아이들도 음악에을 좋아하나봐요.
김현철 한 번 길러진 감성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거든요. 그 감성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게 바로 음악과 미술이에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음악이니까 그 쪽으로 우리 아이들의 감성을 키워주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제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노래로 표현을 하더라고요. 가령, 새로운 길을 가면 ‘이 길은 내게 너무 어렵지~’라고 첫째가 노래를 하면 둘째가 ‘나~도’이런 식으로 화답을 해요. 저도 중간에 끼어들고 아내도 한 마디 하고. 다른 사람들은 ‘쟤네 왜 저러냐’ 이러죠, 솔직히 유치하잖아요(웃음).
플디 불혹을 넘는 이 시점에, 한 마디.
김현철 나이를 먹을수록 여러모로 현명해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쓸데없는 고집이나, 주장은 깎아내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면서 둥글둥글하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둥글둥글하게 잘 늙어가고 싶어요.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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