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을 안고 돌아온 발라드 지존, 박효신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인가. 부드럽게 귓가를 감싸고 도는 발라드가 유난히 반갑다. 이런 때 박효신의 간질거리듯, 부드럽지만 울림 있는 발라드가 시의적절하게, 바람직하게 등장했다.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와 한층 가벼워진 보컬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는 ‘사랑한 후에’는 요즘 방송에서, 길거리와 커피숍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형형색색 발랄한 걸그룹의 후크송이 휩쓸고 간 빈 자리를 그는 특유의 깊은 음색으로 차분하게, 단단하게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트랜드? 언제든 꺼내 듣고 싶은 노래가 좋다"

“큰 욕심 없었어요. 그냥 음악 중 한 부분이고 싶었거든요”
2년 반 만에 6집으로 돌아온 박효신의 바람은 이처럼 소박했다. 하지만 그의 타이틀곡은 발표되자 마자 각종 차트의 정상을 차지했고 그는 그만큼 여러 방송국을 뛰어다니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를 만난 곳도 한 방송사의 음악프로그램 대기실. 1위 후보에 올라서인지 그의 대기실은 ‘서정’이니 ‘감성’같은 단어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북적거렸다.

“방송국에 오면 항상 하던 일이라 괜찮아요. 오랜만에 활동하는 거니까 오히려 재미있고 그래요.”
‘오랜만에 방송활동이 어떤지’ 묻자, 돌아오는 여유로운 대답. 그가 19살부터 방송국을 드나든, 10년 차 베테랑 가수임이 새삼 떠올랐다. 하지만 그조차 처음 보았을 수많은 걸, 보이 그룹은 낯설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단다.  "오히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뻐 보여요. 그런데 저도 나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만으로 27살이에요”라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그는 이번 앨범이 생각보다 큰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요즘 트렌디한 노래가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빨리 듣고 즐기는 노래들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었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해야 할 음악이 있는데 같이 따라갈 순 없었어요. 전 그냥 그래요. 음악은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정도 조절해주고, 그러면서 인생을 살면서 늘 함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언제든지 꺼내 듣고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을 준비할 때 잘되고 못 되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 바람으로 앨범을 냈는데, 너무 많이 사랑을 해주시니까 깜짝 놀랐어요.”

이번 박효신의 앨범은 ‘힘을 뺀 보컬’로 주목 받고 있다. 박효신 하면 떠오르는 일명 ‘소몰이 창법’을 이번 앨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타이틀곡 ‘사랑한 후에’는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불렀다. 물론 그 특유의 묵직한 창법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지만 화려함보단 편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기교와 힘을 가능하면 자제했다.
“저도 전엔 화려하고 강한 음악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이젠 이젠 편안함으로 감정을 전달해도 참 좋겠다란 생각이 들어요. ‘눈의 꽃’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었죠. 앞으로도 조금씩 이런 색깔을 더 보여드리려고요.” 


무대에선, 미치는 남자

그는 누가 뭐라 해도 대중가수다. 데뷔곡 ‘해줄 수 없는 일’에서부터 ‘좋은 사람’ ‘동경’ ‘눈의 꽃’ 등 많은 히트곡으로 탄탄한 팬층을 확보했다. 그래서 자신의 음악과 대중이 원하는 음악 사이의 간격과 딜레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딜레마를 겪기도 했다. 결론은 ‘내가 자유로운 느낌을 받아야 한다’는 것.


“제일 중요한 건, 내 스스로 자유로운 가에요. 내가 자유롭고 편해야지 들으시는 분들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6집은 오랜 시간 준비한 결정체이다. 두 파트로 나눠 발매하는 건 여러 가지 색깔이 혼재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고. “파트 2에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 어떤 곡인지 드러날 것”이라며 슬쩍 기대감을 부추긴다. 어떤 곡이 있냐고 묻자 “아주 아주 기밀이다”라며 웃어 보인다.

박효신은 ‘사랑한 후에’ 뮤직 비디오를 통해 직접 연기에 도전했다. 우려(?)와는 달리, 그의 연기는 꽤나 깔끔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비련의 남자 주인공을, 창백한 안색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그의 첫 연기 도전이기도 하다.
“연기자 분들이 부러웠어요.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인생을 살고, 다른 작품에서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하는 것들이요. 늘 재미있을 것 같고 경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거든요. 제 음악인가 한 번 해 본 거에요. 앞으로 연기를 할 생각은 없어요. 하하”

에피소드도 많다. 그의 자연스러운 아픈 연기는 사실 진짜로 아파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그의 리얼한 연기에 감독도 감탄했지만 사실 내내 안 좋은 컨디션이 유지된 덕분에 비련의 남자주인공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박시연과의 키스씬에 대해서는 “한 열 번 이상 할 줄 알았는데 세 번 만에 OK가 났다”며 능청스럽게 웃어 보인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탈 것 같은 박효신에게서 보는 또 다른 면이다.

그의 ‘또 다른 면’이 폭발하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공연장이다. 지난 연말 ‘더 소울 콘서트’에서 그의 깜짝 놀랄 카리스마와 섹시함을 목격한 기자가 공연장에서의 모습을 화두로 꺼냈다. 그도 스스로 알 수 없다는듯 “콘서트 무대에 서면, 미치죠”라고 말한다.
“공연장은 저에게는 유일할 만큼, 제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이에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자유를 느끼고, 그 어떤 것도 방해하지 못해요. 제가 스스로를 자신 있게 보여드리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스스로 위로받는 하는 유일한 곳이라서…여러 가지 감정들이 함께 솟아나와요. 맞아요. 공연장에선 저도 다르다고 생각해요”


인간 박효신을 찾아서

10주년 콘서트는 더욱 특별하게 준비 중이다. 그는 ‘10주년 기념’이 어울릴만한 대규모 무대를 기획했다. 참여 스텝만 220명, 무대에 올라가는 인원은 100명, 그야말로 대규모 콘서트다. 미리부터 반응도 폭발적이어서 서울 공연은 1회 공연을 급하게 추가해야 했다.
“그 동안 100, 200석에서부터 중극장, 1000 등 여러 규모의 콘서트를 해왔어요. 이번에는 정말 대극장에서 하는데요, 10년 동안의 제 공연의 정점을 찍고 싶은 마음이에요. 공연장도 일주일을 빌리고, 리허설부터 그곳에서 연습을 할 예정이고, 그 전에는 중극장을 아예 빌려서 세션들이 연습을 합니다. 아마 한국에서 보지 못한 공연을 보실 거에요.” 

아직 28살, 보통 사회초년생 나이이지만 그는 가수로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알려진 대로 기획사와의 마찰 등으로 마음고생이 많은 그에게 10년은 어떤 의미일까. 담담하고 솔직한 답변이 이어졌다.
“음…전 사회생활도 없이 시작한 게 이 일이에요. 그래서 어느 날 가수 10년을 빼니까 인간 박효신은 없는 거에요. 지금까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았어요. 앨범 준비하고 활동하고 공연하고. 그러다 보니 가수밖엔 남지 않았던 거에요. 그게 아쉬워요. 10년이 길게 느껴지진 않아요. 하지만 일 빼곤 아무것도 없는 절 발견했고…인간 박효신을 좀 더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 박효신’은 어떤 걸 말하는지 궁금했다.
“전 가수 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보통 분들은 일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사랑도 하고, 취미 생활도 갖고 그러잖아요. 하지만 전 가수 빼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가수 박효신 밖에 없는 거죠. 세상을 살면서 이것 저것 알아야 할 것도 많잖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말이에요. 그런 것들을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이젠 이런 것들을 채우면서 나아가려고요. 그러면 더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요.”

대중에게 그의 음악과 음색은 상당히 익숙하지만, 박효신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별로 없다. ‘노래의 신’ ‘발라드 지존’ ‘박효神’처럼 따라다니는 별명도 그의 가창력에 관한 것들이니. 베일에 싸인 이미지가 있다고 말하자 “그러게요, 일부로 만들진 않았는데”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마 TV에 잘 나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곳에 어울리지도 않고 적응도 되지 않아서 많이 하고 있진 않아요. (지금은 무척 잘하고 있지 않냐고 하자) 이렇게 하는 거와는 다르더라고요(웃음). 그쪽에서 하는 건 즐거움을 줘야 하는데, 전 늘 진지하니까. 사실 음악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도 해요.” 엉뚱한 면은 없어요?라고 묻자 마음과는 다르게 항상 진지해 진단다. 

방송 리허설이 다가와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플레이디비 인터뷰 말고도 여러 개의 인터뷰를 소화해 목에 무리가 가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그의 흉내 낼 수 없는 보컬도, 무대에선 더욱 진지한 모습도 그대로였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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