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삶을 더하는 그녀, 김선경
작성일200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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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에게 모노드라마는 가장 두렵고도 갈망하는 것 중 하나이다. 모노드라마는 홀로 텅 빈 무대를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나 이외 또 다른 많은 인물들로 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관객들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가야 한다는, 해독하기 힘든 카드를 들고 여전히 배우들에게 쉽게 지름길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를 버린 채, 그러나 온전히 나인 모습으로 그 안에 잘 녹아 든 배우는 더욱 빛나고 진한 맛을 우려 낸다. 배우 김선경이 하는, 김선경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겉으로 볼 땐 굉장히 강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마음이 많이 약해요. 상처도 잘 받고. 그럴 때마다 마땅히 얘기할 곳도 없고, 혼자 글을 쓰게 되더라고요. 제 인생이 참, 남들이 많이 안 겪어 봤을 일들을 겪고 있는, 드라마 같아요.”
틈틈이 써 온 그녀의 글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 모노드라마 뮤지컬 <당신도 울고 있나요?>에는 배우 김선경 뿐만 아니라 인간 김선경도 함께 있다. 라디오DJ가 되어 신청 사연을 읽어가며 짧은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이 작품을 두고 “나 이렇게 힘들었지만 여러분 앞에서 숨김 없이 이야기 한다, 우리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면 사회 어두운 부분은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풀어 놓는다. 진짜 사랑을 몰라 봤던 20대의 어리석음, 사랑이 식어가는 30대, 이기적인 사랑에 아파하는 40대, 그리고 자식들에게 한 없이 줘도 부족함을 느끼는 60대 등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사랑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을 통해, 소위 잘 나간다는 행복한 사람들과의 한 시간 보다, 힘들고 상처 받은 사람들과 따스한 포옹 한번이, 상처를 잊기에, 희망을 꿈꾸기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그녀의 굳은 믿음이 퍼져나간다.
“무대는 제 호흡과 똑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무대는 솔직한 무대에요. 그러니 공연도 솔직하게 해요. 대본도 솔직하고 모든 게 솔직해요. 나의 진심이 담기면 되는 거죠.”
방송국 특채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이 시작되었지만 그녀의 진가가 빛난 것은 뮤지컬 무대였다. 1991년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를 시작으로 그녀는 크고 작은 뮤지컬의 주연을 맡아 맑고 여성미 넘치는 외모와 목소리, 믿음을 주는 탄탄한 연기력을 유감 없이 선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시원시원하고 솔직한 성격은 여느 여배우에게 쉽게 품을 만한 어떠한 선입견도 깨버리게 만든다. 오해와 이해가 분주히 오고 갈 수 있는 배우였음을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저를 비교하는 게 싫어요. 제일 듣기 싫은 질문이 “너의 라이벌은 누구냐”,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전 그런 거 없어요. 그 분이 갖고 있는 향과 제가 갖고 있는 향이 다른데 왜 자꾸 비교하려고 하죠? 그냥 서로 좋아해 주고, 끌어주고 밀어주고, 이게 돌아가는 순리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오롯이 자신의 내면으로 서는 인간 김선경을 이야기 한다.
“전 그냥 김선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인간이죠. 무대 위에 있을 때만 배우이지, 무대 밖에서는 똑같이 걷고 이렇게 콧물도 흘리는 사람인걸요(웃음). 무대 밖에서도 연기 하나요? 그건 다중인격을 만드는 한 요소 밖에 안 되요. 배우가 아닌 평소의 나는 언니고, 이모고, 누나일 뿐이에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배우로 살아온 20여 년의 시간 동안 많은 관객들의 박수와 개인의 영광도 있었지만, 이혼과 사기 등의 어려움도 함께 했다. 지금 그녀의 웃음소리는 참으로 유쾌했고, 목소리엔 힘이 실렸으며, ‘눈물’과 ‘상처’ 뿐 아니라 ‘사랑’과 ‘기쁨’이라는 단어가 쉼 없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무엇 하나가 확 다가오고 말고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익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된장이 익어가고 고추장이 익어가듯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누린내도 좀 나고 고소한 냄새도 나겠지만, 이제야 제 향을 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재료가 너무 강해서 강한 향이 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좀 묵은 향이 나오는 것 같거든요. 예전에는 짜여져 있는 역할에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인생이었다면, 이제는 삶에 책임도 지고, 방향성도 가지고, 어떻게 가야겠다, 하는 생각도 서고, 참 재밌어요.”
가수 신승훈과 함께 부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비롯하여 자신의 앨범 2장을 내고, 공연 OST 음반에도 참여했던 그녀에게 다소 새롭게 ‘다음 앨범’을 물었다.
“아휴, 이것(연기)도 잘 못하는데요, 뭘(웃음). 개인 앨범이나 가수로서 활동은 절대 생각 없어요. 정말 좋은 가스펠이라면 하고 싶고, 또 뭔가 있고 그것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기꺼이 하고 싶지만요. 저는 인생을 지금 새로 시작했어요. 물론 생계 유지를 위해서 기본적인 건 해야겠지만(웃음), 이제 제 삶의 반을 살았으니까 나머지 반은 이 세상에 살면서 나의 존재를 조금 더 느끼면서 살고 싶어요.”
일 년에 두 달은 지금의 작품처럼 노 개런티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눌 수 있는 무대에 꼭 설 것이라는 그녀. 재벌이 아니기에 자신이 가진 재능 만을 나눌 수 밖에 없다는 배우 김선경은 지금 모두가 더불어 부둥켜 안을 수 있는 삶을 꿈꾸고 있다.
“나를 믿는 사람,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언니 같고 엄마 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챙겨서 가고 싶은 소망”이 진실로 가득 찬 행복한 모습이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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