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과 원숙함 사이, 피아니스트 임동혁

 

피아니스트 임동혁, 그를 수식하는 말은 화려한 콩쿠르 수상 경력으로 시작하곤 한다. 국제 쇼팽 콩쿠르 3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4위,  2003년 퀸 엘리자베스 편파 판정에 수상 거부. 여기에 ‘피아노의 여제’ 아르헤리치의 적극적인 지지와 EMI클래식 음반 발매. 10대와 20대 초반에 거둔 놀랄만한 성적과 이슈는 언론의 주목을 받게 했고 그는 단숨에 가장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은 연주자가 되었다.
여성팬을 몰고 다니는 최초의 연주자, 항상 점잖던 클래식 공연장을 환호로 바꿔놓곤 하던 그가 어느새 20대 중반을 넘어선 청년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2년만에 갖는 리싸이틀에서 그는 쇼팽을 연주한다. “쇼팽에 얽매이고 싶진 않지만, 쇼팽이 그리웠다”고 말하는 그는 신동을 넘어선 젊은 천재피아니스트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천재와 원숙함, 그 사이

연습실에서 임동혁을 만나자마자 컨디션이 어떤지 물어 보았다. 전날 뉴욕에서 도착해 리싸이틀을 대비한 연습과 방송활동으로 꽤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컨디션은 괜찮아요. 준비 자체가 잘 안돼서 그렇지.”
“괜히 앓는 소리 같은데요?”
“아닌데요.”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변이 돌아온다. 연습실에서 그의 피아노 선율은 유려하고 섬세했지만 스스로는 만족이 안 됐나 보다. “잘 해야지 생각하니까 안 된다”며 다시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 놓는다. 이번 리싸이틀에서 임동혁은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 7번’ 이외에는 대부분 처음 도전하는 곡들을 연주한다.  ‘피아노 소나타 7번’과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는 피아노 4대 난곡으로 꼽힐 만큼 까다로운 곡이기도 하다.
“라벨은 선생님(엠마누엘 엑스)의 영향이 컸어요. 선생님은 모두 라벨로 가자고 하셨는데, 그건 정말 자신 없었고 티켓도 잘 안 될 것 같고. 그리고 쇼팽이 많이 그리웠고요. 전에 모두 바흐만 연주해서…이번엔 좋아하는데 연주할 기회가 없던 곡들을 올려 보았어요.”

직선적이고 선명하다. 피아니스트는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편견(?)은 임동혁에 의해 사라지고 있었다. 그에게 잘 다듬은 매끈한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솔직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데 대해서도 “쇼팽에 얽매이고 싶진 않다”고 잘라 말한다.

“사람들이 쇼팽 스페셜리스트로만 생각해서 쇼팽만 잘 친다고 생각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피아니스트이건 치지 못하는 곡은 없어요. 어떤 곡을 더 잘하냐가 다른 거지. 예를 들어 선욱이(김선욱)은 베토벤이나 브람스를 잘 하지만 쇼팽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못 치는 건 아니고요. 저도 쇼팽으로만 연결되는 게 부담스러워요.”

그의 이런 취지는 지난 2008년 바흐 골드베르크 음반을 발매한 것으로 이어졌다. 임동혁의 바흐 음반은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던 그였기에 클래식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 레퍼토리를 넓혀갈 것이냐고 묻자 “그냥 쇼팽 할래요”라며 장난스럽게 슬쩍 웃어 보인다.
“크게 바뀌지는 않을 거에요. 갑자기 윤이상 곡을 파고 들겠다던가,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 다시 바흐를 파고 드는 일도요. 스탠다드하게 가고 싶어요. 스탠다드함이요?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차이코프스키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해요.”


“이래봬도 굉장히 긴장해요”

“징크스 같은 건 없나요?” 7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10대부터 여러 무대에 서왔던 그다. 수많은 무대를 경험한 그이기에 무대 전 징크스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연습만 잘 돼 있으면 징크스 같은 건 아무 소용없다”고 한다. 이어선 “이번엔..자신이 없네”라며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건넨다. 대부분 처음 무대에 올리는 곡에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이번에 올리는 곡들은 한국에서 처음이 아니라 아예 처음이에요. 그게, 방 안에서 2시간이면 다 외우고 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면 확 달라져요. 정말로 무대 위에서는 200%가 준비 돼야 해요. 100% 가지고는 부족해요. 아무리 떨려도 음악하고 나하고 하나가 되면 미스터치도 신기할 만큼 나오지 않고, 사실 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개의치 않아요. 그런데 음악과 내가 분리되면 의식하게 되죠. ‘다음이 도솔 인가’를 의식하게 되면 부담스러운 거에요.”

 

콩쿠르를 휩쓸던 임동혁도 무대에서 긴장을 한단 말인가? 그는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이래봬도 굉장히 긴장한”단다. 특히, ‘예술의전당’은 항상 긴장된다.
“언제나 제일 떨리는 무대에요. 실제로 카네기홀에서 한다고 해도 그렇게 떨릴 것 같진 않아요.”
“이유가 뭐에요?”
“글쎄요. 관객들이 모두 호의적이진 않잖아요.”
둥글둥글, 원만함을 요구하는 이곳에서 꾸미지 않고 속 마음을 전달하는 그에게 무언가를 강요했던 것일까. 하지만 클래식계에 누나 부대를 이끈 연주자로 제일 처음 이름을 올린 그다. 임동혁의 팬카페는 현재 4만 명 가까이 돼 가장 막강한 회원수를 자랑한다. 팬이 많지 않냐 묻자 “그런 것도 지났죠”라고 말한다. 그래도 팬카페에 대한 애정을 숨기진 않는다.

"요즘엔 카페에 글도 남기기 시작했어요. 관객들하고 교류하는 차원도 있고,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공유하고 싶거든요. 외롭다 보니까 뭔가 공유하고 싶은데 공유할 사람이 없으니까, 글 올리고 댓글 바라고 보고, 그런 것들(웃음).”

임동혁과 콩쿠르는 인연이 깊다. 특히 3대 콩쿠르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면서 ‘신동’으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정작 본인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이제 콩쿠르 나가는 건 지겹고, 더 나갈 콩쿠르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슈를 바라는 풍토에 약간의 부담감도 숨기지 않는다.  "콩쿠르에 나가지 않으니까 무언가를 해야 하나 압박을 느낄 때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레프 나우모프 교수로부터 “황금의 손을 가졌다”는 극찬을 듣고, 피아노의 여제 아르헤리치의 눈에 들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피아니스트 임동혁, 그가 이제 2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항상 피아노와 함께 살아온 그가 스스로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지 궁금해했다. 그는 “실력면에서요, 아니면 커리어 면에서요?”라고 묻는다.

“실력은 이제 와서 더 늘고 줄고는 없을 것 같아요. 그것 보다는 좀 더 레퍼토리를 늘리고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깊이가 생기죠. 커리어 면에서는 좀 더 운이 따라줬음 하는 아쉬움도 있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냥 현실과 타협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할 때도 있어요.”
현실과 타협이 무엇일까. 그는 “교수가 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했다. 역시 미끈한 수식어는 빼고, 에둘러 말하기도 없는 답변에 적응이 됐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터뷰의 마지막, 그에게 ‘임동혁의 즐거움과 고민’은 무엇일까.
“즐거움은 특별히 없는 것 같아요. 친구들하고 술 먹는 게 큰 즐거움이었는데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마셔야 즐겁죠. 외로움도 많이 타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그래요. 고민은, 제가 좀 성실해 졌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대해 죄책감이 강해요. 타고난 재능을 부인할 순 없지만, 성실한 재능은 타고나지 못한 것 같거든요.”

임동혁은 시차에 적응을 못해서인지 피로감이 그를 엄습한 듯 하지만 휴식 없이 바로 예술의전당으로 가 연습을 어어 가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성실함이 없다지만, 그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피아노와 보낼 피아니스트다. 신동에서 혈기 왕성한 청년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그의 다음 모습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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