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yle by My Soul, 바비킴


기막힌 경치를 앞에 두고 “그림 같다”를 연발하는 것처럼, 무심결에 바비킴이 노래를 흥얼거리자 순간 ‘CD 틀었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주객이 전도된 아이러니한 표현과 이런 아이러니함이 가득 찬 세상에서 비로소 자신의 궤도에 올라 사람들 마음 속을 뚫고 꾸준히 달려가는 상행 열차 바비킴은 매 순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환상적인 음악 정류장을 마련해 우리들을 안내한다. 지난 해에 이어 또 다시 전국의 레일을 딛고 투어 콘서트를 여는 지금도 뮤지션의 길에 놓인 그 역 중 하나이다.


명품 콘서트의 리더로 우뚝

어제 좋은 소식을 들었단다. 올 전국 투어 콘서트 'My Soul'의 첫 번째 무대인 서울 공연에서 커플들을 위한 특별자리가 매진되었다는 이야기다. 오는 12일부터 3일간, 3회 열리는 콘서트 대부분의 자리가 임자를 찾아간 상태다.

“토, 일요일에 1회씩 더 늘리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이번만 용서해 달라고, 앨범 작업이 이미 한달 반 이나 밀린 상황이거든요. 아쉽지만 녹음 때문에 이번엔 그냥 가기로 했어요.”

3집 솔로 앨범도 한창 준비 중인 요즘이라,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신곡을 함께 녹음할 강산애와의 약속이 기다리고 있는 터였다. 지난 해 3월부터 연말까지 이어진 13개 도시 전국 콘서트에 이어 김범수, 휘성과 함께 한 보컬리스트 공연까지, 더욱 많은 콘서트 무대에 오르느라 새 앨범의 진도가 미처 나가지 못한 것이다.

“콘서트장에 오신 관객들을 보면서, ‘아, 나 잘 되고 있구나’ 하는 실감을 해요. 요즘 콘서트를 많이 안 해서 관객들이 갈 데가 없어서 많이 오시나?(웃음) 정말 그렇게도 생각을 하지만 노래를 매개로 뭔가를 전달해 주고, 거기다 저는 자주 얼굴을 안 비치기 때문에, 이런 가사, 이런 노래를 전달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굴까, 하는 호기심으로도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2004년 솔로 1집의 타이틀곡 ‘고래의 꿈’으로 바비킴에 대한 세상의 궁금증은 더 없이 커졌다. 한국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지낸 지 17년. 거칠지만 따뜻한, 그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보이스에 실린 이야기는 모두 바비킴 삶의 한 부분을 담고 있어 더욱 지나칠 수가 없다.

“지난 해 보컬리스트 공연을 하면서 걱정 많이 했어요. 셋이서 호흡을 맞춰 성공적인 콘서트를 해 냈지만, 앞으로의 콘서트에선 뭘 더 보여줘야 되는 건지, 과연 이 사람들이 똑같은 이야기, 똑같은 노래를 들으러 다시 올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걱정에 대한 해답 역시 바비킴에게 있었다. ‘질리다’는 생각이 들 수 없는 편하고 친한 친구를 두고두고 만나는 것처럼 관객과 만나면 되는 것이다.
“같은 카페의 똑같은 자리에서 어제 만난 친구를 오늘 만나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팬들과 노래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연출도 그전과는 다르고 제가 말을 줄이는 대신 동영상이나 기타 다른 것들을 보여드리겠지만, 관객들의 기분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행복하게 즐기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늘이 주신 재능, 세상이 날 버리진 않을 것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란 바비킴에게 한국으로 역 이민 온 후의 시간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1994년 그룹 닥터레게로 데뷔했지만 1년의 활동만 허락되었으며, 몇 번의 솔로 앨범도 큰 빛을 보진 못했다. 그 사이 불청객으로 찾아온 공항장애까지 딛고 일어나 랩퍼로, 방송국의 성우로, 또 많은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 하면서 ‘내 목소리를 알아줄’ 시간을 힘겹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거울을 보며 정말 싫어하는 모습이 있는 반면에 스스로 사랑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직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그 사랑 때문이에요. 정말 뻔한 말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이란 게 맞아요. ‘너는 이것 밖에 안 되는 애는 아니다, 물론 이유가 있겠지만, 최선을 다 해서 끝까지 가보자’하고 생각했지요.”

음악은,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재능과 축복임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날 버린 것 같은 세상’도 이겨 나갈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음악에 대한 자신감은 늘 있었어요. 무반응일 땐 슬프죠. 화가 나기도 하고, 자신도 싫어지고. 가족들도 포기하라고 했어요. 참 가슴 아픈 일이잖아요. 그래도 ‘치, 조금 있다 봐, 당신들은 아직 몰라’, 그런 게 있었어요. 그날이 꼭 오겠지, 오겠지, 생각을 했고요.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게 이뤄졌기 때문에 자신에게 박수를 치고 싶어요.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꼭 해 주고요.”

바비킴을 주저앉지 않게 해 준 것은 그가 가진 음악 달란트 뿐 아니라 한 없이 겸손하고 착한 그의 성품이라는 것을,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부탁하면 다 해주고(웃음), 특히 이 계통이 좁다 보니 소문이 참 많은데, 지금까지도 방송국에 가면 다른 가수들의 제작자들이나 매니저들,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절 보고 “형 잘 돼서 너무 좋아”, 또 “네가 잘 되니까 내가 더 기쁘다” 이런 말들 많이 해 주세요. 아마 제가 계속 미국에 있었다면 어디서든 큰 사고를 냈었을 거에요. 다행히 스무 살 때부터 한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남자로서, 성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My Style by My Soul

‘소울의 대부’로 불리는 그에게 맘에 드는 별명은 따로 있다.
“친한 친구들은 주정뱅이(웃음), 미친놈, 똘아이, 그렇게 불러요(웃음). 오히려 그게 더 맘에 들고요. 또 할아버지! 제가 음악하는 동료들 중에 제일 오래된 셈이거든요.”

2001년 주비트레인, 간D와 함께 결성한 그룹 부가킹즈의 멤버로서, 그는 신나고 즐겁게 즐기자는 그룹 이름처럼 경쾌한 힙합을 선보이기도 한다. 또한 수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히트 OST를 부른 가수로 애절한 발라드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바비킴의 노래이다. 그러면서 장르의 괴리가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바비킴 스타일’의 사운드로 언제나 다가오는 것 역시 그만의 장기일 것이다.

“대중들이 헛갈리는 건, 스페셜 앨범에 담았던 발라드 노래만 듣고 바비킴은 발라드 가수다, 또 부가킹즈 앨범을 듣고는 바비킴이 힙합 가수다, 하시는 거에요. 이중성격을 갖고 있는 건 아니고(웃음) 장르를 따로 생각하면서 곡을 만들지 않거든요. 어릴 적 80년대 빌보드 차트 순위에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있었고, 그 때부터 이런저런 음악을 다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하게 나오는 것 같아요. 뭘 시도 하는 건 아니고 제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는 거죠.”

2004년 제15회 서울가요대상 힙합상, 2005년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힙합상을 수상한 그가 2010년 제19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다시 ‘사랑.. 그놈’으로 R&B상을 거머쥔 것이 그 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제 역할은 어떤 장르이든 좋은 노래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에요. 뭐를 하는 척 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듣기 싫어요. 제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어서 음반 작업 역시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올 3월 말에는 오사카에서 단독 콘서트도 앞두고 있다. 해외 진출의 시작인가. 바비킴은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동양인이 해외 무대에 데뷔하기 어려웠을 그 시기에 욕심 부려서 이것저것 겁도 없이 다 해봤지만, 미국이 최고다, 라는 생각은 없어요. 제가 영어도 하기 때문에 해외 진출 얘기 많이 하시는데, 미국이든 일본이든 “꼭 갈 거야” 그런 건 없어요. 물론 불러주신다면 어디든 가서 노래하겠지만, 여기, 한국이 좋아요. 지금 하는 게 좋아요.”


올해로 서른 여덟. 바비킴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지만 이현우 형 결혼한 뒤에 뭔가 가슴이 팍 찔러왔다”며 현실적인 환경도 생각하기 시작했단다. 자기와 누나를 위해 미국에서 ‘엄청나게’ 고생하신 부모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비치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든다는 효자는 여전히 ‘거짓없이 노래하는 사람’으로 나아갈 꿈에 가장 설레어 한다.

“ ‘고래의 꿈’ 이후 많이 알아봐 주시지만, 그것 역시 노래가 발표된 후 한 참 지나서 서서히 된 거에요. 그래서 제가 스타라는 생각은 정말 전혀 없어요. 예를 들어 신발이 좀 더 비싸진 것 뿐, 감정의 흐름은 똑같아요. 무명시절엔 이 슬픔과 아픔이 잘 되면 다 해결이 되겠다, 싶었는데 지금도 똑같더라고요. 바비킴이 3자가 되서 제 모습을 볼 수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이 슬픔을 싫어해야 하는지, 아니면 즐겨야 되는지, 저도 모르니 그냥 두고 볼 수 밖에요.”

아마도 그런 그의 슬픔은 목소리를 울리는 근원적인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설움이 많은 사람은 눈물이 많다고 했다. 그가 우는 모습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바비킴의 노래에선 기쁨과 슬픔, 감동과 감사의 울음이 울리는 듯 하다. 여전히 ‘깡총깡총 뛰는 토끼처럼 살고 싶어 하는 애’라고 머쓱하게 웃는 그에게 지금 한국의 가요계를 단단하게 받치고 있는 든든한 맏형의 모습이 비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김귀영(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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