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난 항상 생사의 기로에 서서 공연한다"

한 방송국에서 라디오 출연을 앞둔 이승환을 만났다. 큰 뿔테 안경에 털모자, 형광색 점퍼가 아니더라도, 솔직히 그는 마흔이 넘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구태의연하게 동안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지만 현실이 그렇다. 그 나이 대의 근엄한 아저씨들을 떠올려 보라. 이승환은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에 “별로 할 일 없는데요. 시간 많아요”라고 응수한다.

오늘 라디오 방송이 있으시죠. 라디오 스케줄이 많으신가 봐요.
아니에요. 이틀만 나오면 일이 끝나요. 라디오는 고정적으로 네 개 정도밖에 안 하거든요.
그 정도면 바삐 하시는 거 아니에요?
많이 하는 거 아니죠. 남들은 매일 바쁘잖아요. 저야 이틀만 잠깐 나오면 되니까.
TV에서는 요즘 통 안 보이세요.
금년에는 하나도 안 했고, 작년에 앨범 내고 좀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방송 출연을 안 하시니 저를 포함한 20대 후반, 30대 사람들은 음악 프로그램 틀어도 볼 게 없어요.
아…서른 살만 되도 음악 프로를 안 보는구나. 다들 생업에 종사하느라 관심이 없어지는 때죠. TV쪽 사람들은 저도 잘 몰라요. 라디오는 많이 해서 좀 알아도. 몇몇 어린 가수들이 나오는 방송에 나가려고 했을 때 아예 거절당한 적도 있어요.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건가 했는데 제 또래 다른 가수들이 나오는 거 보고 우리한테만 그러는구나 하고 알았거든요(웃음). 안 친해서 그런거죠.
콘서트 이야기 좀 해주세요. 내일(14일) 콘서트 있으시죠.
네 발렌타인 슈퍼히어로. 말도 안 되는 공연 있어요(웃음). 그 티켓 오픈 10일 전에 했잖아요. 우리 잘못은 아니었지만… 열자마자 설 연휴라서 더 그랬어요. 어찌됐든 표가 거의 안 나가서 관객이 적게 올 거에요. 한 300명? 물론 저는 똑같이 엄청난 물량을 가지고 갈 거구요. 저희 출연진만 20명이 넘고, 스텝들이 100명이 넘는 거니까.
그나저나 300 명이요?
네… 300 명. 5천 석인데. 하하하하. 그래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어요. 최고였던 적은 없었지만 늘 최선을 다하니까. 멤버들에게도 이야기 했지만 이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거 같아요. 300명이라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는 거잖아요. 오늘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가 남 달라요.
콘서트 때 그렇게 적은 관객 앞에서 공연해 보신적 있으세요?
없어요. 그래서 새로워요. 공연 때 관객들에게 앞으로 다 모이라고 할거에요(웃음). 이제 뭐 폼 잡고 관객수를 따질 때는 아닌 거 같아요. 와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워요. 그 생각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지. 요즘처럼 음악에 관심이 없는 시대에, 서른 살만 해도 음악 프로를 안 보는 시대인데.
아…서른이면 그래도 나이 들었다고 표현한 거였는데(웃음).
전 마흔 넷인데요. 어휴 어리다, 이랬는데(웃음)
이승환씨 콘서트는 최강 콘서트라고 정평이 나있잖아요. 자랑 좀 해주세요.
그래서 제가 자리를 좀 구석으로 옮겼어요. 아무래도 자랑질을 해야 할 거 같아서(웃음). (뜸을 들이다) 그냥 뭐 와서 보면 알죠. 그럼 다른 공연이랑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알아요. 본 사람들은 다 이야기 하던데요. 난 공연만 하는 사람이라서 공연 밖에 잘 몰라요. 공연을 하고 나면 늘 뻗거든요. 정말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죽을 거 같이 해야 한 거 같아요. 그렇게 생사 기로에 서서 무대에 서기 때문에 관객들이 진심을 알아주겠죠. 다른 공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요. 우리 스텝들에게 늘 이야기 해요. 한 명이라도 도태되는 사람이 있으면 짤라 버리겠다고. 하하하하. 농담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가시처럼 들렸을 거에요.
이제 마흔 넷이신데, 체력이 달리진 않나요.
음. 그렇지 않아요. 예전보다 체력이 더 좋아진 거 같아요. 본격적으로 운동한지 이제 2년이 됐거든요. 또 몸에 안 좋다는 건 거의 안 먹고, 작년에는 공연 때문에 5개월을 금주했어요. 예전에는 공연 끝나면 쫑파티를 공연보다 더 심하게 했는데 요즘에는 아예 안 해요. 다른 공연들은 끝나면 술자리를 갖지만, 우리는 공연 끝나면 서로에게 녹즙을 권하거든요(웃음). 술을 먹으면 아무래도 영향이 있어요. 움직임 하나라도. 관객들이 체력 이야기 하면 ‘공연 와서 나하고 똑같이 뛰자’고 해요. 다들 못 뛰어요.


5시간 공연 하신 적도 있죠?
5시간 37분이라는 공연 기록이 있어요. 그런데 팬들이 그걸 계속 원해요. 원하지만, 안 하는 이유가 있어요. 작년 연말 공연을 하루는 좌석, 하루는 스탠딩 공연을 했는데 좌석 공연이 먼저 매진됐거든요(웃음). 그게 뭘 뜻 하냐 하면, 말은 그렇게 하지만 관객들도 힘든 거에요(웃음). 지금 다들 몇 살인데…. 이번에 [차카게 살자] 평균연령이 딱 서른 살이더라고요. 일부는 네 시간으로 줄였다고 볼멘소리를 하는데 세시간 넘어가면서 사실 뛰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이 보이거든요. 주저 앉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상상이 안 가는데요. 그 때 5시간 동안 무대에서 어떻게 하셨어요.
계속 뛰어다녀요. 공연 DVD가 있는데, 화면을 보면서 저도 놀랐던 게 제가 계속 뛰어다니던데요. 지금은 그때보다 더 뛰어다닐 수 있어요. 체력이 좋아져서.
운동은 어떻게 하세요.
저는 집에서 헬쓰 해요. 지금은 근육이 늘고 폐활량이 좋아져서 뛰는 게 두렵지 않아요. 제 공연을 처음 본 분들은 공연 시작할 때나 4시간 후나 노래 부르는 게 똑같다고 놀라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기하지만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를 보면 알잖아요. 제가 19년을 이 짓을 했는데…. 하하하. 그냥 일상이고 늘 하는 거죠. 기능인? 이렇게 보면 될 거 같아요.
그런데 이승환씨처럼 콘서트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선배로서 아쉬움을 느끼진 않나요.
뭐…느끼죠. 공연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후배들도 없지 않아 있어요. 우리는 공연 한번 준비하는데 12월 공연이라면 거의 7월부터 준비하거든요. 5개월을 준비하는 거죠. 그런데 연말에 너도나도 콘서트를 한다며 일주일 연습해서 올리는 팀들도 있어요. 공연을 팬 미팅으로 생각하는 가수들도 많은 거 같아요. 그런 건 문제가 있죠. 스스로 자부심이나 가수라는 자각도 없는 거고, 사실 능력도 없어 보이고. 우리같이 진심을 가지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해요. 그런 공연들은 정리가 될 거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중들이 판단해 주겠죠. 정말 안 좋은 공연을 봤다면 이 공연만 그럴 거라고 스스로 판단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콘서트 시장이 예전만 못한데, 이승환씨도 영향을 받나요.
영향 받아요. 저희들도 연중에는 공연을 축소하려고 해요. 특히 지방이 안 되요. 지금 우리도 안 하던 짓을 하려고 해요. 지방 쪽은 소극장이나 중극장을 할까도 고려 중이거든요. 그럴 경우에는 가수 본인의 개런티는 없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도 그렇게라도 갈까 생각 중이에요. 아니면 딱히 할 일도 없고, 하하하하. 공연이나 좀 돌아야지. 그런데 정말 TV를 안 하면 불리해요.
요즘 그래서 중견 가수 분들도 TV에 많이 나오시던데 그럴 생각 없으세요.
저는 그런 능력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안 되면 규모 줄여서 가는 거고(웃음). 그래야죠 뭐. 지방 갈 때마다 아유...큰일났네~ 그러면서 가요(웃음).
콘서트도 그렇겠지만, 요즘 대부분 음악을 다운 받아 듣는 것도 가수로서 생각이 많으시겠어요.
그 이야기는 예전부터, 아무도 이야기 안 할 때 혼자 했었어요. 그래서 혼자 돌팔매를 많이 맞았고. 지금은 이야기 안 해요. 돌이켜 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나라는 하나의 노래가 광풍을 일으키곤 하는데 획일화된 문화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줘서 안타까워요. 다양한 문화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이러면 좋은 음악을 들어도 좋은 음악인 줄 모르게 되거든요. 앞으로는 그게 더 심해질 거 같아요. 그래서 한 동안은 쉬운 음악을 해볼까 했는데 요즘은 다시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내 팬들이 들을 거고, 나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니까.
기억에 남는 콘서트 있다면요.
작년 5월에 잠실 주경기장에서 했던 공연. 가수가 주경기장에서 콘서트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그날 비가 너무 많이 왔어요. 전날부터 폭우가 쏟아졌으니까. 공연을 거의 망쳤다고 할 수도 있어요. 기계들이 오작동을 하고 영상 하나도 안 나오고. 조명은 터지고, 공연 내내 전쟁통 이었어요. 나도 소심해서 패닉 상태에 빠질 뻔했지만 모든 스텝의 수장이니 그러면 안 되죠. ‘지금 영상이 다 터졌어요. ‘무대에 전기가 흘러요’…이런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는데, 여기서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제가 굉장히 의젓했거든요! 하하하하하. 모두가 패닉상태에 빠졌을 때 제가 수신호로 공연을 이끌어 갔어요. (수신호를 장난스럽게 표현했다)이렇게. 그날 관객도 절박함을 안 거죠. 어떻게든 음악에 몰입하려는 관객들이 좋았어요. 물론 싫었던 관객들도 있었겠지만. 지금 와선 제일 기억에 남아요.역시 쇼보다는 음악이고, 역시 사람이란 걸 알았고. 그날 나중에는 별이 눈앞에 별이 보이기 시작했었지만(웃음)
팬들이 지어준 별명 많으시죠.
요즘 팬들이 지어준 별명은 욕정범벅. 욕정이 많다고. 하하하. 우리는 욕정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하자, 이런 모토로 공연을 해요. 이번에 [차카게 살자] 부제가 ‘욕정만발’이에요.
팬들하고의 교류는 자주 가지세요?
거의 없어요. 공식 팬클럽도 없고요. 팬클럽은 집단이기주의의 잘못된 권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무슨 생각을 했냐 하면,  아무도 하지 않는 뭔가를 하는 사람이 되자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다들 팬클럽이 있다면 나만이라도 갖지 말자(웃음). 그래도 내가 너무 심한 거 같아서, 예전 PC통신 시절에 시삽들을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한 번 만나더니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더라고. 하하하하.

왜 만나지 말자고 했을까요(웃음).
몰라요. 깼나 봐요~ 으하하하하. 우리는 오로지 게시판을 통해 교류를 하는데 거기서 이상한 말도 많이 하죠. 회사 기밀이라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표값이 왜 이러는지도 공개하고. 내가 기분 나쁜 거 있으면 나도 말 하고. ‘노인 좀 공경 좀 해라, 내가 장난감이냐’ 이러면서(웃음). 그래서 무슨 가수가 저래 하면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도 많고. 그래도 우리는 편법을 쓰지 않는 기획사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부조리한 거 싫어하고 속이지 않고. 팬들에겐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
최근 모 그룹하고 무대 때문에 트러블이 생겼는데.
아직 법적으로 해결이 안 됐기 때문에 중간 과정은 말 안 할게요. 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나라가 공연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봐요. 나는 89년부터 공연을 해온 사람이고 무수한 공연 사기와 온갖 경우를 다 겪어 가면서 무대를 지켜오고, 연출도 해왔어요. 그런데 공연 자체가 그렇게 매도 되는 게 안타까워요. 사실 옛날 같으면 아마 은퇴한다고 했을 거에요. 이런 바닥에 있고 싶지 않다고. 워낙 아웃사이더처럼 떨어져 지내던 사람이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오기가 생겼어요. 아예 내가 선례를 만들고 싶어요. 선배로서 크게 물려줄 것을 하나 만들고 싶은 마음이에요. 
힘든 최근이었네요.
이게 어른들의 세계니까. 어쨌든 휘어지느니 꺾이는 걸 택하기 때문에 일년에 소송 두 번은 꼭 해요(웃음)
이승환씨는 음악과 콘서트를 제외하면 관심 갖는 게….
여자.
하하하
좋게 표현하면 사랑(웃음).
잘되고 있나요?
아뇨. 없어요. 그 외에는 게임에 관심 있어요. 하루에 3~4시간 정도.
앞으로 계획된 콘서트는요?
일산 공연을 잡았어요. 4월 5일. 5월 24일 서울 체조경기장 콘서트도 잡았고요. 우리가 직접 하는 거에요. 망하던 말던 해보자 그런 거죠. 나에겐 밴드도 있고 스탭들도 있어요. 내가 가만히 멈춰 있으면 어쩌겠어요(웃음).
언제까지 무대에 설 예정이신가요.
내가 체력이 될 때까지요. 난 체력이 안 되면 무대에 안 설 거에요. 예상을 한다면 50살? 지금도 믹 재거는 예순이 넘었는데도 방방 뜨거든요. 꾸준한 자기 관리로 그렇게 되고 싶긴 해요. 그런데 팬들이 그때 되면 디너쇼에 가야 하나? 그 때 되면 그들이 '그냥 밥 먹으면서 해요~' 이럴 수도 있겠지. 하하하하. 그렇지만 난 디너쇼를 해도 방방 뛸 거라는 거. 안 그럼 내가 아니죠.
장기적인 플랜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없어요. 그런데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해요. 좀 더 깊이 있는 음악, 삶의 성찰을 담은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멋있게 늙고 싶고요.
이런, 라디오 때문에 일어나셔야 겠네요.
괜찮아요. 지금 가면 되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있으면 해주세요.
별로 없어요. 인터파크니까... 단독공연 이런 거 우리도 했는데 메인페이지에 이름도 안 나와. 이런 말? 하하하하. 그럼 잘 가세요~



글 : 송지혜(인터파크ENT song@interpark.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댓글4

  • A** 2010.01.13

    느무 저아 ㅠ_ㅠ

  • A** 2008.02.28

    이승환님 역시 대단하시고 포스 작렬이십니다.

  • A** 2008.02.28

    올해도 멋진 공연 부탁해요 ^^

더보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