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스타캐스팅 열전

 


“미국에서 <코러스라인>을 보고 뮤지컬에 대한 꿈을 가졌지만, 그땐 내가 하고 싶어도 못했어요. 가수 생활 40년 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뮤지컬에 도전하게 됐네요.”

지난 2월, 뮤지컬 <메노포즈> 프레스콜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서는 가수 혜은이의 소감은 지금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70년대 효리’란 애칭이 있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였지만 뮤지컬이 아직 낯선 그 당시에 출연할만한 무대도, 주변 여건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앨범 활동이나 드라마 촬영을 마무리하고 뮤지컬, 연극 무대에 서는 스타들이 많아지고 때론 다른 활동 중에도 욕심나는 무대에는 무리해서라도 서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

 

스타의 출연이 더욱 잦아진 건 그만큼 뮤지컬 무대가 그들에게 매력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뮤지컬 시장이 커진데다 출연자는 스스로 연기와 노래가 그대로 객석으로 전달되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고, 라이브 실력에 검증으로 이미지 개선에도 효과적이기 때문. 무엇보다 배우로서 느끼는 보람과 만족감이 크다는 이유도 작지 않다.

공연기획사의 니즈는 보다 현실적이다. 한 작품당 최소 수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만큼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한 스타 섭외 경쟁은 날이 갈수록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철저하게 가동돼 있는 연예계에서 그들을 캐스팅 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무대에 올라도 민망하지 않을 실력과 끼를 지니고 티켓파워까지 지닌 스타를 캐스팅 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 '그들'을 캐스팅을 위해 정식으로 매니지먼트로 연락을 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까다롭다. 이 때문에 지인을 동원해 캐스팅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스타 캐스팅의 노하우로 “친한 매니저의 네트워크를 이용하거나, 친분이 있는 배우에게서 다른 스타 배우를 소개받는다”고 귀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품 자체가 가진 매력이다. 실력갖춘 스타배우를 자극 하기에 이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사실 없다.




2010년 벽두부터 공연계를 뜨겁게 달군 시아준수(김준수)의 <모차르트!> 출연은 기획사에 시아준수 사촌누나의 지인이 있어서 성사될 수 있었다. 소속사와 분쟁 중이었던 그에게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그의 사촌누나를 통해 대본과 음악을 전달했고, 이를 받아 든 그가 이틀 후 기획사에 연락을 해 전격 출연이 결정된 경우. 원작자 실베스터 르베이는 시아준수가 일본에서 ‘모차르트’ 역을 맡은 배우와 무척 닮은 점과 훌륭한 노래 소화 능력에 흡족해 했고, 시아준수는 일본 활동을 하며 <모차르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출연 결심을 확고히 했다는 후문이다. 덕분에 그가 나온 회차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전석이 매진되는 대박 행진을 이어나갔고, 시아준수는 공연계에서 절대 흥행 아이콘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시아준수는 예외였지만, 아이돌 가수들의 출연 여부는 매니지먼트사가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엔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뮤지컬 출연에 호의적이라 부쩍 인기 아이돌 가수들의 뮤지컬 진출이 잦아지고 있는 추세.
소녀시대 제시카는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와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져 출연 제의를 받았다. 한 공연 관계자는 “당사자가 극구 거부하지 않는 한, 아이돌 스타의 출연 여부는 매니지먼트사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제시카는 연습에 참여하며 뮤지컬의 매력에 반해 동료 가수들에게 뮤지컬의 매력을 전파한 경우다.

 

제시카의 출연은 SM소속 가수들의 잇단 뮤지컬 출연으로 이어졌다. 무대에서 활약하는 동료 가수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에 출연하는 그룹 샤이니의 온유는 제시카의 추천으로 이뤄졌고, 오는 5월 개막하는 뮤지컬 <태양의 노래>에 출연하는 소녀시대 태연도 동료의 출연 경험을 호의적으로 봐 뮤지컬 출연을 어필했다는 후문이다.

스타라고 해 무작정 출연 제의를 하건 아니다. 그만큼 배역 이미지와 맞아야 하고 실력도 갖춰야 한다. 손호영은 오디션을 치르며 더 인정받은 케이스다. 지난해 뮤지컬 <올슉업> 앵콜 공연을 결정하면서 제작사 오디뮤지컬컴퍼니는 ‘채드’역을 소화할 수 있는 스타를 물색했다. 2007년 공연 당시 뮤지컬 배우로만 구성돼 탄탄한 실력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작품이기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오디 관계자의 말. 게다가 ‘채드’는 전문 뮤지컬 배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분량과 노래 면에서 힘든 역할이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비공개로 치러진 오디션에서 손호영은 음역대와 연기면에서 제작사를 100% 만족시키며 출연이 결정됐다. 그가 본 공연에서도 완벽하게 채드를 소화하며, 2010년 재공연에서도 다시 출연한 건 물론이다.

매니지먼트를 통해 정식으로 출연 제의를 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친분을 통해 혹은 술자리에서 출연 제안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스타가 <헤드윅>에 깜짝 출연해 농익은 노래와 연기를 펼쳤던 YB 윤도현. YB 소극장 콘서트 쫑파티에서, 콘서트를 진행한 쇼노트 관계자가 즉흥적으로 이야기한 출연 제의가 현실화 된 케이스다. 기획사 관계자는 “윤도현씨가 원래 술자리에 끝까지 있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날은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워낙 분위기가 좋았다”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헤드윅> 출연 제의를 했고, 그날 함께 있던 매니지먼트 대표가 반신반의하는 윤도현씨를 설득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윤도현은 <헤드윅>에 웬만해선 흉내 낼 수 없는 탄탄한 가창력과 의외의 연기력을 뽐내며 연말 매진 행렬에 동참했다.

스타 캐스팅이 모두 성공적이진 않다. 노래와 연기력이 받쳐 주지 못하는 배우는 제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티켓판매 뒷심은 금방 떨어질뿐더러, 악평까지 감수해야 한다. 일례로 한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에 출연한 스타급 가수는 불안정한 음정과 우물거리는 대사 처리로 극 내내 객석을 조마조마 하게 만들었고, 결국 다시는 그를 찾는 무대는 없게 됐다.
반대로 탄탄한 작품과 실력 있는 스타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옥주현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 뮤지컬 <아이다> <시카고> <브로드웨이42번가> 등을 거치면서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았고, 이제는 국내 주목 받는 뮤지컬에서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세간의 관심을 한번에 끌만한 스타성에, 실력까지 보장된 배우. 사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스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뮤지컬을 기획하고 있는 담당자들이 “가장 캐스팅 하고 싶은 배우"로는 장동건을 꼽았다. 가수를 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노래 실력이 출중한데다 대표적인 한류 스타이기 때문에 홍보와 실력면에서 이만한 배우가 없다는 것.
이외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실력을 발휘한 김아중과 최근 스타로 떠오른 김남길, 최다니엘, SS501 김현중, 문근영 등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스타들이다.
하지만 마치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듯, 스타와 작품의 만남도 서로 강렬하고, 매혹적이어야만 성사가 된다. 다만 조금 차이가 있다면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 한쪽은 탄탄한 작품성에 매력적인 개성을 지녀야 하고, 다른 한쪽은 최대한의 스타성과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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