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얀 스케치북, 김무열
1. 변한 것이 없는 사람
“일주일 중에 금요일은 [미친 키스]를 하고 일요일은 [김종욱 찾기] 무대에 서요. 쉬는 날엔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주로 운동을 하구요. 아, 복학은 아니지만 다음학기에는 듣고 싶은 수업이 있어서 청강을 하려구요. 여행도 좀 가고 싶은데, 그만한 시간은 아직 나질 안네요(웃음).”
일주일이 일곱이지만 그에게는 하루가 일곱이면 더욱 좋을 듯 싶다. [사랑은 비를 타고], [그리스], [알타보이즈], [스릴 미] 등에서 안정되고 강렬한 연기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배우, 2008년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배우로 손꼽히는 김무열. 현재 뮤지컬 [김종욱 찾기]와 연극 [미친 키스]의 주연으로 활약하고 그의 일정은 빡빡하나 평범했다.
"인기요? 저는 솔직히 실감을 못해요. 제 생활이 달라진 건 없거든요. 공연은 계속 해 왔던 것이고, 방송을 하게 되긴 했지만, 바라봐 주시는 분들 때문에 불편하거나 크게 변한 것이 없어서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새해, 20대에 행운의 숫자 7을 더한 그는 필요한 수업을 챙기는 학생이고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찬란한 청춘 그대로다.
2. 운이 따르는
[지하철 1호선]에서부터 현재까지 배우로 걸어오는 길에 장애는 없었을 것 같다는 말에 김무열은 “물론 무명시절도 있었다”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정극하는 극단에서 만든 짱따라는 공연이 있었어요. 6개월 연습했는데, 언제 공연이 올라갈지는 몰랐죠. 정말 어려운 환경이었거든요. 그러다 힘들게 문예회관에서 2주 딱 공연했어요. 6개월 연습하고 딱 2주, 그때가 22살 때였죠.”
대학 휴학 후 참여한 뮤지컬 [짱따] 이후 여러 작품의 앙상블을 하며 배운 춤과 노래가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끊이지 않고 무대에 서게 된 것에 대해선 연신 ‘좋은 운’ 덕이라며 공을 돌리는 모습이다.
“공개적으로 본 첫 오디션이 [지하철 1호선]이었는데, 잘 되었어요. 전 그런 면에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외형적으로 어디에 갔다 놓아도 무리가 없다고나 할까? 너무 잘생겼다거나 캐릭터가 강한 것도 아닌 제 모습이 장점이 되는 것 같아요. 실력이 뛰어났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말 운이 좋았고, 그게 전 항상 감사해요.”
3. 내 몸은 너무 솔직해
단지 ‘좋은 운’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으로 치부하기에 대학로에 자자한 성실 노력파 김무열의 소문이 너무나 거세다. 자기관리 잘 하기로 유명한 그에게 노하우를 물었더니 멋쩍게 웃음부터 짓는다.
“사실 제 몸이 너무 솔직한 몸이거든요. 살도 잘 찌고 술 한잔 하면 다음날 티도 금방 나고,그런데 또 안 그러면 안 그런 티도 확 나고요. 그래서 그 조절을 잘 해야 하요. 물론 힘들긴 하지만요.”
그러면서 알려 준 자신만의 노하우가 ‘단기 공략법’.
“저는 제 사이클에 맞춰 짧게 짧게 계획을 세워요. 일요일에 술 약속이 있다면 토요일까지 몸을 만들어 일요일 후에도 지장이 없게. 다음주에 일이 있다고 하면 그 전까지 푹 쉬는 식이죠.”
말이 좋아 짧게만 한다지만, 그렇게 짧은 계획들이 일년 내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4. 이야기를 먼저 마음에 품어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성실파 배우에게 러브콜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제가 주로 뮤지컬을 했지만, 뮤지컬 넘버나 작품의 유명세는 크게 따지지 않아요. 일단 드라마를 보고, 그 후 넘버들을 들어보죠. 얼마나 노래가 작품에 잘 녹아져 있나를 보는 거거든요. 사실 유명세는 정말 안 봐요. 유명세만 놓고 보자면 [김종욱 찾기]는 고르지 않았어야 하는 작품이었죠. 워낙 유명하고 잘 하시는 분들이 많이 출연하셨고, 큰 상도 받았고. 그런데 작품이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고, 제가 좋아하는 취향이었거든요.”
아기자기 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좀 의외였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취미가 운동, 거기에 최근 보여줬던 무대 위 모습이 워낙 강렬했던 탓이 크겠다.
“스릴 미 할 때…거부감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죠…대한민국 남자라면요 (웃음). 미친키스에서는 노출신도 많고… 그런데 강렬한 인물이라 해도 출발하는 건 한 인간이기 때문에 전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밀히 말하면 강렬한 포스…(웃음) 같은 건 저의 또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거든요.”
새로움이 강했던 작품이라 해도 연습하고 무대에 서면서 자연스럽게 즐기며 깨우쳐 간다는 그.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김종욱 찾기]의 김종욱, 김무열과 [미친 키스]의 장정을 동시에 선보여야 하는 요즘이 쉽지는 않았을 터이다.
5. 민폐 끼치는 배우
작년 말 합류한 뮤지컬 [김종욱 찾기] 시즌3에서 맡은 김종욱과 김무열의 모습은 완벽하게 근사하며 자상하거나, 소심하고 찌질하다. 그러나 연극 [미친 키스]의 장정은 관심과 사랑에, 온몸으로 애원하고 절규하는 측은한 인물.
“[미친 키스]는 연극 첫 데뷔작이라 부담감도 컸고, [김종욱 찾기] 역시 유명하신 분들이 먼저 하시기도 했잖아요. 그때 제가 드라마도 하고 있었을 때라 마음 고생을 좀 했는데, 돌이켜 보면 서로 다른 작품을 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앙 편에서 힌트도 얻을 수 있고, 크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제 다른 캐릭터라도 김무열이라는 한 사람에게서 출발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면서 자신이 ‘민폐 끼치는 배우’라는 고백이 이어진다.
“일주일에 몇 번만 무대에 서기 때문에 다른 분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진 못했어요. 나라 누나랑 호흡 맞출 때 특히요. 대본에 아예 배역이 ‘오나라’라고 나와요. 누나는 이미 배역 그 자체가 되어버렸는데, 서로 바빠서 같이 맞춰볼 시간이 부족했죠. 그래서 할 때 마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다행인 건 그럴 때마다 알려주시고 맞춰주시거든요. 오히려 새로운 모습이 재밌다고 이야기 해 주시니까 아주 큰 힘이 되죠.”
관객들도 이제 ‘아! 저 턱 선의 외로운 각도, 아! 저 콧날의 날카로운 지성’에 환호하고 쿠폰북에 도장을 찍어가며 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김종욱 찾기] 무대에 처음 섰을 때 저보다도 관객분들이 더 낯설어 하셨어요, 조그마한 거 하나만 해도 깜짝깜짝 놀라시고. 근데 이제는 오히려 너무 좋아하세요. 옛날에는 ‘이 냉혈한…’그러셨는데 지금은 귀엽다고요. 이렇게 변신을 해도 잘 받아주셔서 참 다행스럽죠. 앞으로도 신인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굳히기 보단 다양한 역할을 통해 더욱 개발해야 할 것 같아요.”
6. 싱글 라이프 & 프라모델
그는 두 달 전 독립했다. 화려한 싱글 라이프라는 말을 기대했건만, 김무열의 대답은 조금 처량했다.
“막 독립하고 2주간은 너무 몸이 아팠어요. 혼자 떨어져 나와서 그런지, 아니면 그때가 아플 때였는지. 부모님들이 여전히 많이 걱정하세요. 냉장고에 반찬이 아직도 풍성한데 또 챙겨주시니까. 여전히 철 없는 애죠, 뭐.”
독립 후 새로이 생긴 벗도 있다. 고양이와 프라모델.
“쉬는 날엔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요. 고양이들하고 놀기도 하구요. 아, 맞다! 요즘 프라모델 만드는데 푹 빠져있어요. 제가 좀 섬세함이 떨어지거든요, 글씨도 악필이구요. 이걸 좀 어떻게 해 보려구 예전에 배우수업에 일환으로, 왜 이렇게 털실 같은 거 끼워넣는 거 있잖아요, 방석도 만들고 하는거요… 그것도 해 본 적 있어요.”
스킬 자수까지 했다는 그에게 프라모델은 집중력 강화를 위한 또 하나의 핑계라 하지만, 길게 하면 2~3시간이 너끈히 흐른다는 것을 보니, 이보다 더 좋은 벗이 또 있을까 싶다.
“요즘엔 로보트 만들고 있어요. 끼워 맞추기가 제일 쉬워요(웃음).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보려구요, 그래서 진열장을 사 볼까…생각도 해요(웃음).”
책과 프라모델과 약간의 운동 거리를 가지고 좋은 사람들과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 일주일간 ‘신선’ 같은 생활을 해봤으면 좋겠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 아침에는 산도 타고 저녁때는 고구마며 삼겹살도 구워 먹고 싶다는 그에게서 무대에서 발하는 눈부신 광채가 어디에서 날카롭게 솟아 나왔을까 의문이 든다.
7. 가능성, 김무열
“학교에서 수업들을 때 너무 긴장돼요. 친구나 후배들이 제가 공연을 하고 있어서 남다르게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죠. 무엇보다 제 자신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가 더 큰 이 배우는 벌써 자신이 걷고 있는 걸음걸음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평생 이어갈 배우로서의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절 아직 뮤지컬 배우다 탤런트다(자신을 탤런트라 부르는 사람도 간혹 있다면서 웃음이 조금 더 길어졌다)… 단정짓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발전 가능성이 있는 배우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관객들은 솔직하다. 작품은 정직하다. 그 가운데 배우 김무열이 걷고 있다. 앞으로 그에게 어떤 색의 작품이 물들지라도, 김무열이라면 거짓 없는 자색을 풀어내리라는 기대를 조금씩 키워 본다.
글 : 황선아(인터파크ENT 공연기획팀suna1@interpark.com)
사진 :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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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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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8.02.27
'턱선의 각도가 외로운' 김종욱이 살아나온듯 했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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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8.02.26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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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8.02.26
짱짱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