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_흔치 않은 가수, 이승철

 


수십 년을 한결 같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대중 가수로서 20년 넘게 정상을 지키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불혹을 훌쩍 넘긴 가수 이승철은 19살 데뷔 이후 쏜 살 같이 지나간 시간들을 되새기며 올해를 그의 인생 특별한 쉼표로 만들고 있는 듯 하다. 지난 5월 4일 발매한 이승철 25주년 기념 앨범엔 소녀시대, 김태우, 박진영 등 그가 아끼는 후배들이 참여했고, 지금은 그 생애 가장 큰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콘서트는, 하나의 작품 

“금방 지난 것 같아요. 25년이라고 해도 숫자를 세면서 살진 않잖아요. 그냥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옛날 생각이 아련하게 나고. 긴 세월이긴 하지만 너무 호들갑스러운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웃음).” 

‘25주년 맞은 감회’에 대한 이승철의 대답은 겸손했지만, 콘서트 무대에 대한 자부심은 결코 숨기지 않았다. 삼성동 녹음실에서 만난 그는 며칠 후 대전 콘서트 때문에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녹음실 옆 사무실에서는 콘서트에서 쓰일 옷들이 분주히 만들어 지고 이승철은 이어지는 인터뷰 도중에도 콘서트 상황을 일일이 체크했다. 그는 오는 6월 5일 5만 관객을 수용하는 잠실주경기장 콘서트는 그의 역작이 될 것임을 말했다.

“관객 수보다는 내용에 더 신경을 씁니다. 노래만 듣는 콘서트가 아닌, 하나의 작품이 될 거에요. 스텝들은 200명 정도인데, 그 중 주요 스텝들은 적게는 10년, 길게는 20년 동안 저와 함께 한 팀들입니다. 스텝들과 무대 단원들이 낼 수 있는 시너지가 굉장히 클 거에요.”

숨은 스텝 200명 이외에도 무대 위엔 40인조 오케스트라를 포함, 무용수와 밴드까지 60여 명의 사람들이 초대형 무대를 만들어간다. 5.1 서라운드 시스템을 갖춘 음향시설도 그의 자부심이다. 5.1서라운드가 무엇이냐는 기초적인 질문에 “마치 영화관처럼 소리가 날아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그는 이 음향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수십 억을 들여 음향 회사를 하나 차려버렸단다.

“공연은 단순하게 노래만 듣는 건 아니에요. 하나의 문화 체험이죠. 노래도 즐기지만 여러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공연장 내에서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에겐  희야를 이긴 노래는 없어”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듯 했다. 유아방, 발레파킹 등 파격적인 서비스는 그가 꿈꾸는 콘서트 공간의 일부만 실현한 것이었다. VVIP존에선 그가 만든 레시피의 음식들이 관객들에게 제공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승철은 노래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말리꽃’, ‘그대가 나에게’, ‘추억이 같은 이별’ 등 최근 10년간 콘서트에서 부르지 않았던 노래들을 꺼내 팬들과 추억을 화려한 되새긴다.

데뷔 25년, 이승철은 시작부터 주목받았다. 1985년 당시 언더그라운드를 주름잡던 밴드 부활의 보컬로 영입된 돼, 19살의 그는 가수 데뷔를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희야’로 최고 스타로 떠오르며, 당시 TV보다 공연활동에 중심을 뒀음에도 부활은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닌 최초의 락 그룹이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히트곡을 낸 그에게 단 하나의 노래를 꼽아달라 했을 때. 잠시의 망설임 없이 그는 ‘희야’를 꼽았다.

“어떤 노래든 희야를 이긴 노래는 없어요. 모든 가수가 용필 형님의 ‘창밖의 여자’를 못 이기듯(웃음). 데뷔곡을 이기는 노래는 많지 않죠.”

1989년 부활을 탈퇴하고 발매한 솔로 타이틀곡,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는 ‘희야’에 이어 그에겐 빼 놓을 수 없는 노래다. 당시 그룹출신 가수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고, 솔로 앨범은 100만 장이라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그는 두 곡을 더 꼽았다. 그에게 제 2의 전성기를 마련해 준 부활 15주년 노래 ‘네버엔딩 스토리’, 그리고 가장 최근 故노무현 전대통령 추모와 맞물려 주목 받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다.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우연한 사연이지만, 동영상이 500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저에게는 가장 최근 사랑 받은 노래이기도 해서 아끼는 노래입니다. 이상 네곡의 노래들은 가수 이승철을 만들어준 중요한 노래죠. 물론 한곡만 뽑으라면 '희야'고(웃음)”

그는 단지 선택할 뿐

그의 웹하드엔 하루에도 몇 곡씩 신인 작곡가들이 신곡을 올려 놓는다. 유명 작곡가를 고집하기 보다 신인 작곡가의 곡 위주로 앨범을 채워가기 때문에 종종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작곡가들이 그의 메일주소를 알고 곡들 보낸다. 그가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올 수 있었던 비법 중 하나다.

“가수가 롱런하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여러 가지 여건이 안 돼서 은퇴하는 가수들을 제 눈으로도 많이 봤고. 가수는 운이 필요합니다. 운 속에는 인복도 있거든요. 좋은 곡을 써주는 작곡가, 그걸 알려주는 좋은 매니저, 좋은 기사를 써주는 기자를 만나고 여기에 대중적인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전 굉장한 행운아죠.”



스스로 행운아라고 하지만, 25년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운만으로는 힘들다. 그는 대중가수로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걸 당연시 한다. 그래서 타이틀 곡 선택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받아들인다고.
“제 장점은 귀가 얇다는 것. 남을 잘 믿는다는 것. 곡 나오면 아무한테나 들려줘요. 매니저에게, 혹은 식사 배달오신 아저씨에게도 들려줘요. 그리고 그들이 고른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해요. 싱어송라이터들은 주로 본인이 쓴 노래를 많이 발표하려고 하죠. 자기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누가 작사작곡을 하든, 내가 부르면 내 노래에요. 손에 든 걸 꼭 쥐고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될 수 있으면 놓으려고 하죠.”

물론 수많은 곡 중 좋은 노래를 골라내고, 좋은 사람들을 선택해 온 건 그가 지닌 능력. 그래서 매번 앨범 스타일도 그가 선택한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디자이너가 “하라는 대로” 한다. 25주년 기념앨범 속 화보 역시 그런 과정에서 태어났다. 화보 속 사람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이승철 씨인가” 묻자 그는 “못 알아보겠으면 성공한 거다”라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머리에 가발을 쓰라면 쓰고, 붙이라면 그냥 해요. 그러면 내 변화된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건 절대 아니고. 단 그들을 선택하는 선관만 내게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오픈 마인드 정도, 그게 오늘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음치? 그냥 즐기세요!” 

이승철은 대한민국에서 내 노라 하는 가수다. 데뷔 이후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로 손꼽히는 그가 스스로의 가창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새삼 궁금했다.

“저는 가창력의 잣대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옥타브를 많이 올리고 파워풀한 게 가창력인지, 정확한 기술력을 말하는 건지, 히트곡에 의한 인기를 말하는 건지. 저 같은 경우는 제가 감탄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진 않지만 감동시키는 표현력에는 좀 더 신경 쓰는 가수라고 생각해요.”

천부적인 능력과 노력, 두 가지 요소가 그를 최고의 가수로 올려놓았다.
“소위 말해서 접신을 해서, 노래가 딱 끝났는데도 노래를 한지도 모르는 정도인 경우도 있어요. 그런 노래들은 대부분 대박이었죠(웃음). 체력도 중요합니다. 체력과 폐활량을 위해 매일 2~3시간씩 운동을 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많은 음치들을 대표해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부르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에게 노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하게 오겠는가!
“자신이 원하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프로 가수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냥 즐기시면 돼요. 노래 못하는 분이 노래방에서 더 인기 있는 경우도 많잖아요?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지루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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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이승철에게 궁금했던
다섯 가지 소소한 사항


가수로서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하는 게 있다면.
내 만족, 자존심과 품위. 앨범을 하나 내도 내가 만족해야 하죠. 그게 안 되면 안 돼요.

인간 이승철이 들은 가장 최고의 칭찬은.
라이브의 황제. 저는 귀담아 듣진 않지만 그게 사실, 민망하기도 하고, 그런 거잖아요? 으하하하.

음이탈을 한 적 있나요.
물론 있어요. 그건 실수지 실력이 아니거든요. 음이탈이 왜 나는 지 아세요? 무아지경에 빠지면 나더라고요. 이 부분에서 조심해야지, 하면 실수는 안 해요. 대신 감동은 줄어드는 거지. 홈런왕이 삼진도 제일 많이 맞는다잖아요.

음악 말고 빠진 게 있다면.
육아요? 하하하. 요즘 둘째 애가 아주 날아다녀요. 태어날 때 제가 받았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었어요. 가정에 충실한 게 행복하더라고요. 웬만하면 어린이날 애기 소풍가면 따라가고, 큰 애 아침에 태워다 주고. 뭐 그런 거죠.

오랜 팬들 얼굴은...
공연 하면 오랜 팬들은 모두 얼굴을 알아봐요. 어렸을 때 팬들이 이제 애기 데리고 남편 데리고 공연장을 찾더군요. 동시대에 태어나 공연, 노래라는 타임머신에서 팬들과 만난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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