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전국을 일구는 뜨거운 여정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까나리액젓을 원샷한 1박 2일 김C와 ‘이게 아닌데, 내 맘은 이게 아닌데’(뜨거운 감자 노래 ‘고백’ 中)를 부르는 보컬 김C. 오늘의 주인공은 데뷔 10년 만에 첫 전국투어에 나선 록밴드 뜨거운 감자의 보컬 김C와 베이시스트 고범준이다. 대전, 창원, 부산, 대구, 광주 찍고 서울로 돌아오는 뜨거운 감자의 전국투어 여정은 밴드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던 1990년대 후반 후미진 구석, 홍대 지하연습실에서 출발했다.


뜨거운 감자 김C, 고범준 차가운 고백


지난 3집을 끝으로 두 명의 멤버가 탈퇴하면서 뜨거운 감자의 몸집은 네 명에서 두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뜨거운 감자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김C와 고범준 두 사람이 지난 5월 내놓은 프로젝트 앨범의 수록곡 ‘고백’은 비, 이효리를 제치고 주요 온라인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상업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해준 앨범이 됐어요. ‘고백’은 알지만, 뜨거운 감자의 전작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이게 뜨거운 감자 몇 번째 앨범이지? 데뷔 10년 차니까, 전작들도 있겠네?’ 하면서 저희 1집 앨범부터 다시 듣고 있다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김C)

“인기가요, 음악뱅크 같은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갸우뚱했어요. 기분이 좋으면서도 우리가 왜? 우리가 왜 1위 후보지?, 그런 기분요.” (고범준)

1위 자축파티도, 감동의 울먹임도 없었다는 평균연령 37.5세의 두 남자. 심드렁한 두 남자를 뭉클하게 만든 건 지난 5월, 전석 매진 기록을 남겼던 시소앨범 발매기념 공연이다.
 
“정말 좋았어요. 저희는 꾸준히 공연을 했지만, 가끔 ‘혹시 우리를 위해 공연을 하나?’는 기분에 휩싸인 적이 많았거든요. 지난 번 공연은 우리만을 위한 공연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주 보통의 사람들이 우리의 공연을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우리도 정말 하고 싶었던 공연이었죠. 여러 가지가 딱 맞아떨어진 첫 공연이었어요.” (김C)

뜨거운 감자, 전국~노래자랑 중
홍대를 벗어나 600석 극장을 꽉 채워냈다는 감격이 두 남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데뷔 10년 만에 출발하는 전국투어를 향한 발걸음을 뗀 지금. 두 남자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뜨겁다.

“굉장히 즐겁고, 잘하고 싶고, 긴장도 되고, 걱정도 많아요. 생각이 복잡해요. 한 달 넘게 격주로 부산, 대구, 광주를 돈다는 게 만만한 일정이 아니니까 컨디션 조절도 해야 하고. 두 시간 동안 하나에 집중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공연에,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김C)

“김C형 말이 맞아요, 전국투어를 기다렸던 팬들이 “드디어, 드디어 뜨거운 감자를 알아주네요”뭐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웃음). 그 분들이 짠한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고범준)
 
뜨거운 감자의 공연에서는 두 남자가 왜 대한민국 모던 록의 계보를 잇는 밴드로 불리는지에 대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사운드를 만날 수 있다. 보컬, 김C 특유의 몽환적이고 히피스러운 색채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기대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두 남자의 멘트다. “공연에서 왜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김C는 다소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공연장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에요. 공연장에는 공연을 보러 왔지, 제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건 아니잖아요. 곡과 곡 사이에 시간이 뜨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잠깐씩 멘트를 하긴 하지만, 저희 공연에는 그런 타이밍이 딱 세 번밖에 없어요. 나머지 곡들은 전부 쭉 이어져 있으니까. 사실 계속 끝까지 쭉 이어서 할 수도 있는데…. 관객 분들이 뜨거운 감자 공연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고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C)
 
말없는 예능인으로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섭렵했던 김C가 인터뷰를 주도할 만큼, 고범준은 ‘과묵김C’보다 훨씬 더 무거운 입을 가지고 있다. 공연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 십 년 동안 멘트를 한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도 없지만, 김C형이 알아서 잘 이끌어주니까. 이번 전국투어에서는 저희 앨범에 실제로 참여했던 스트링 연주자 분들이 같이 무대에 올라요. 대부분 신디사이저로 처리하는데, 록밴드가 스트링이랑 같이 무대에 선다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거든요. 저희는 음악만 가지고 공연을 꾸려요.” (고범준)

“뜨거운 감자의 출발은 홍대. 하지만, 지금 홍대는…. ”

뜨거운 감자의 음악에 대해 사람들은 “약간은 수상한 것들, 가슴 아픈 것들, 화나는 것들을 모티브로 음악을 만들어, 팀 이름과는 상반되는 음악을 하기도 하고, 따뜻한 것들, 예쁜 것들, 기분 좋은 것들을 음악에 담아내는 팀”이라고 말한다. 뜨거운 감자의 음악에는 뭔가 다르지만 한 곳으로 달리는, 일방통행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할까에 대해 고민하고 그 방향을 쫓았다면, 지금 여기까지 못 왔을 거에요. 우리가 가진 스타일, 고집을 들고 왔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을 쫓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도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했던 걸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스타일이거든요, 타협하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밀고 나가야지요.” (김C)

뜨거운 감자의 색깔을 잃지 않고 내달려왔다지만, 혹자들은 “뜨거운 감자에게 더 이상 홍대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는 섭섭한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홍대는 변했어요, 지금도 변하고 있고. 그 변화가 홍대에게 주는 긍정적 기운도 있지만, 부정적인 기운이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이 안에, 아티스트는 없어요. 진짜 아티스트는 가난해서, 이 동네에 못 살아요. 어떻게 보면 이곳은 장사하는 곳으로 변했죠. 자고 일어나면 어제 못 봤던 까페들이 생겨있는 게 현실이에요. 홍대까페, 옷 가게를 찾은 사람들이 우연하게 홍대음악을 듣게 된다는 건 긍정적인 모습이겠죠. 얻어걸리게 하는 작전이라고 해야 하나? 씁쓸하지만, 아티스트가 자본에 밀려나는 건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그렇대요. 소호가 그랬듯이.” (김C)

쓴맛이 나는 김C의 이야기에 묵묵히 경청하던 고범준이 “그래도 홍대는 대중음악보다 더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희망적 멘트를 꽂는다.

시소앨범 발매 당시, 두 남자는 “카세트 테이프나 LP처럼 CD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 테지만 CD의 소멸을 조금이나마 지연 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열악한 음반시장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CD음반을 발매한 것도 CD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수백 번의 공연보다, 단 한 번의 예능출연이 더욱 강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두 남자. 록밴드 뜨거운 감자는 CD가 없어지는 현실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CD 판매를 높이기 위해 때로는 예능인으로 살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했다.

“아티스트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는 게 가장 슬퍼요. 인터뷰를 할 때도 그래요, 누가 필요로 해서 인터뷰를 하는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터뷰는 일종의 시소게임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아티스트에 대한 예우가 굉장히 부족해요. 가수 이름을 비교하면서 유명세만 따질 줄 알지, 아티스트라는 예우가 없어요.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유명하고, 유명하지 않고를 따질 수는 있지만 같은 아티스트로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현실적인 예우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도 당장 다음달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아티스트 후배들이 참 많아요. 이런 인터뷰를 통해서 제 공연이 반짝하고 알려지는 것 보다, 그런 후배들의 상황을 알리고 싶어요.” (김C)

뜨거운 감자_열혈김C, 달관범준_”뜨거운 무대는 계속될 것”

열혈청년의 포스를 뿜으며 불끈 하는 김C에 비해 동생 고범준의 표정은 무덤덤, 그 자체다.
“음, 전 포기단계죠, 김C형은 아직 열정이 있어서 계속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심하게 염세적인가?” (고범준)

냉정과 열정 사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난 후 김C의 표정은 ‘세상에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돌변한다. 표정만 살피자면, 간혹 미소라도(?) 띄어주는 고범준에 비해, 김C의 얼굴이 염세주의자에 가깝다.


“인터뷰를 할 때, ‘그래서 뭐를 원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기자들이 “화나셨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표정이 없다고. 그러면 할말이 없어요. 제가 “아닌데요”라고 말해도 계속 물어요, 화났냐고. 아주 열 받아 죽겠어요. 아니라고 하면 그만 물어보면 좋은데, 계속 물어보거든요.” (김C)

세상을 향한 열정 때문일까. 지나치게 솔직한 인터뷰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김C를 지켜보는 동생 고범준의 마음이 궁금했다.

“좋아요. 김C형도 그렇고,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학생들처럼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아티스트니까 싫은 소리도 할 수 있는 거고, 욕도 할 수 있는 거고. 전 그냥 냅둬요. 자기가 책임지겠죠(웃음). 형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해요.” (고범준)

지난 10년 간, 뜨거운 감자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하며 슬펐던 기억을 되짚어달라는 말에 두 남자는 “멤버들과 오해가 생겼을 때”라고 입을 모았다. 네 명으로 두 명으로 몸집을 줄인 뜨거운 감자. 내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글쎄요, 몇 명이 될 것인지에 대한 장담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조)범준이랑 저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저희가 누군가와 마음이 맞게 된다면 언제라도 세 명, 네 명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뜨거운 감자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면 좋겠지만, 지금 이대로도 불편함은 없어요.” (김C)

인터뷰가 종점으로 달려갈 무렵, 1박 2일을 끝으로 고정 예능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한 김C는 “앞으로 음악에서 벗어나는 생활은 없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제 생활과 상반되는 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할 것 같진 않아요. 지난 6년 간 예능이라는 분야에서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다른 일을 열심히 해야지요.” (김C)

“무엇을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다”는 계획을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다는 두 남자. ‘음악’, ‘밴드’라는 단어에 눈을 반짝이고, 무거운 입을 여는 두 남자와 마주할 때 뜨거운 감자의 내일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주 뜨겁게, 무대에 서 있는 뜨거운 감자. 두 남자의 모습이.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_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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