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친정엄마> "운명의 끈에 묶인 우리 모녀" 나문희, 이유리

마음이 움직이기도 전에 몸이 감정을 앞서 나가, 소리로, 입으로 먼저 우는 배우의 얼굴을 마주할 때가 있다. 슬픔은 있으나 그 슬픔이 전해지진 않는 모두에게 난처한 상황. 하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받치는 감정 앞에, 나문희와 이유리는 코 끝이 먼저 빨개진다. 입술을 앙다물어도 어찌할 수 없는 작은 떨림은 큰 외침 없이도 그녀들을 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우르르, 무너지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향해 이토록 진정하게 다가가는 배우를 만난다는 건 참으로 축복이다.

우리 엄마 같은, 꼭 우리 딸 같은

세상에 태어난 딸은 엄마를 두었다가, 엄마가 되었다가,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 누구도, 어떠한 힘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웃고 울고 또 감싸 안으며 서로가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모녀. 세 딸의 친정엄마이기도 한 나문희와 결혼한 지 두 달이 조금 못 되는 이유리가 모녀로 뮤지컬 <친정엄마>에 함께 서는 모습이 참 어울린다.

“재작년에 연극 <잘자요, 엄마>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작품 프로포즈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땐 친정엄마라는 이름의 작품이 여럿 되어서 막 끌리진 않았는데, 이번에 대본을 받아 보니까, 대본이 너~무 좋지, 그야말로. 그 대본 자체로 반했어요. 정말 숨 넘어가기 전에 꼭 해봐야겠다(웃음), 그런 생각이 들었지.”(나문희)

1961년 MBC라디오 공채 1기 성우가 되어 목소리 연기자로 시작된 나문희의 배우 인생은 올해로 꼬박 50년. 고생을 켜켜이 헤쳐 온 품이 넓은, 식탐이 많은 철부지, 혹은 인정사정 봐 주지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더라도 배우로서 그녀가 표현한 가장 많은 이름은 ‘엄마’였다.

“엄마가 지겹다고? 감히 그런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해요. 난 엄마도 좋고 할머니도 좋고, 다 좋아요. 그런데 <친정엄마>는 또 고혜정 작가 특유의 정서거든요. 우리 것, 우리 이야기잖아. 그러니 열심히 찾아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어요?”

고혜성 작가의 수필에서 시작되어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친정엄마의 이야기는 올 봄 뮤지컬로 선보여 2010년 전국을 달궜다. 초연멤버 김수미에 더하여 나문희와 이유리가 합세, 올 겨울 서울 무대를 따뜻하게 품을 참이다.

“김수미 선생님과 드라마 ‘당돌한 여자’를 같이 했는데, 공연 하신단 소식을 들었어요. 공연을 보고 나서 와, 너무 좋은 거에요. 김수미 선생님, 나문희 선생님의 호흡을 배울 수 있는 게 이 기회 아니면 없겠다, 싶어서 이번에 막 졸랐어요. 저한테 캐스팅 제의도 없었거든요.(웃음)”(이유리)

“지가 막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웃음) 그게 얼마나 갸륵해요.(웃음) 그런데 자기가 좋아서 하겠다는 건 뭔가 돼. 처음엔 ‘나도 시원찮은데, 너까지 그렇게 하면 우리가 되겠냐’(웃음) 그랬는데, 지금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뭔가 만들어 낼 것 같아요.”(나문희)

우리 뮤지컬, 우리 이야기

깡통치마, 무명저고리를 입고 망아지처럼 폴짝폴짝 온동네를 뛰어다니던 노래 잘하던 처녀 김봉란도 시집을 가서 딸을 낳고 살아 이제는 환갑이 훌쩍 넘었다.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저 혼자 큰 줄 아는 딸은 엄마 마음이 어떤지 알 리가 만무하다. 꼭 저 같은 딸 낳아봐야 엄마 마음 아는 법. 막 ‘엄마’가 ‘친정엄마’로 바뀐 이유리는 뮤지컬 <친정엄마> 속 엄마와 딸의 마음을 이제서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고 한다.

“결혼하고서 진짜 친정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그 전엔 혼자 살았고, 또 혼자 잘났다고 돌아다녔는데(웃음) 이젠 정말 엄마가 더 많이 도와주길 원하게 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1999년 데뷔 이후 2001년 드라마 ‘학교’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이후 ‘노란손수건’, ‘부모님 전상서’, ‘사랑과 야망’, ‘엄마가 뿔났다’, ‘당돌한 여자’ 등의 작품에서 야무지고 마음 넓은 딸, 착하디 착한 아내와 며느리의 모습으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이유리. 결혼 후 첫 작품이라는 것 외에도 그녀에게 <친정엄마>가 특별한 건 데뷔 10년 만의 첫 무대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도 많지 않고, 제가 갇혀 있는 거에요. ‘엄마’라는 말도 (톤을 높여) 엄마! (톤을 낮춰) 엄마~, 엄마아~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전 그냥 ‘엄마’라고 밖에 못하는 거죠. 터트릴 줄 모르고 있어서, 아, 정말 어디가서 좀 배우고 싶다, 그랬는데, 이번에 너무 좋은 기회가 왔어요.”

극단 산하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2008년 연극 <잘자요 엄마>에서 열연을 펼치는 등 최근까지 연극 무대를 놓지 않았던 나문희에게는 2006년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천상시계>에 서는 등 뮤지컬이 낯선 장르가 아니다.

“<어머니>라는 작품도 연극이긴 했지만 음악이 많이 들어갔지. 그리고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이덕화씨와 했을 때도, 아, 이걸 더 발전시켜서 우리 뮤지컬로 할 수 없나, 그런 생각 했었어요.”


“자기가 엄마한테 큰 대접 해 준다고 한 편씩 꼭 보여워죠”라며 미국에 사는 둘째 딸 집에 갈 때 마다 본 브로드웨이 뮤지컬들도 줄줄 이어진다.

“<라이온킹>도 봤고 <오페라의 유령>도 봤고요. 가장 최근에 본 게 <메리포핀스>였는데, 사실 오래된 작품이라 보고 싶진 않았는데 표가 그거 밖에 없다고 해서.(웃음) 그래서 기대도 안하고 봤는데 배우가 너무 잘하는 거야. 너~무 훈련이 잘 되서 엘리베이터 식으로 무대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고 또 쭉, 내려오는데 너무 태연하게 거기를 오가면서 생활을 해. 나도 저렇게 정말 관객들에게 뭔가 확실하게 심어드리고 싶어.(웃음)”

평범한 관객이 아닌, 배우로 다른 배우의 무대에 집중하게 되는 나문희의 모습은 영화 ‘맘마미아’를 본 이야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뮤지컬도 봤지만, 영화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을 보니까 너무너무 열심히 했어. 바다로 다이빙도 하고 노래도 직접 부르고, 그 산 꼭대기에도 직접 오르고. 참 훌륭한 배우지. 그걸 보고 나도 해야지, 그건 아니지만, 우리도 저런 열정으로 해야겠다, 그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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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엄마 나문희와 국민 딸 이유리는 뮤지컬 <친정엄마>로 첫 호흡을 맞춘다. 배우로 한 층 깊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먼저 덤볐던 이유리지만, 연습량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 대선배님 나문희와의 한 자리가 결코 쉽지 만은 않을 듯 하다.

“처음에 선생님 인상이 딱 절 보시면서 “너 노래 되니?” 그러셨는데(웃음) 제가 뭔가 틀렸을 때 바로 알려주세요. 정확하게 딱딱 가르쳐 주시는데 전 새로운 세계를 접한 듯 너무 좋은거에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웃음)”(이유리)

“너무 열심히 하니까 그것만큼 예쁜 게 없지. 자기가 뭐가 부족한지, 그걸 깨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거는 조금이라도 전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나문희)


투정부리기 보단 혼자 앞일을 헤쳐오던 딸 이유리는 이번 <친정엄마>에서 엄마한테 하소연도 해 보고 스트레스도 풀며(?) 나문희 엄마가 계시기에 색다른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나문희는 “우리 이야기의 우리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우리 가요로 구성된 이번 무대를 통해 구성지고도 뭉클하게 ‘내 엄마’의 모습으로 설 것이라 어느 때 보다 믿음이 실린다.

“이 작품에 ‘무조건’이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그게 젤 좋더라고. 엄마는 딸들한테 “무조건, 무조건이야~”잖아.(웃음) 우리 딸들이 매번 공연할 때 마다 와서 보는데, 이번 작품은 못 본다고 할 것 같아. 자기네들하고도 너무 밀접한 관계의 이야기라서. 우리도 연습하면서 몇 번 씩 울거든요. 난 아직 우리 어머니도 살아 계시고요. 그래도 2호선 타고 이대역에 내리셔서 학교로 쏙 들어오세요. 이렇게 좋은 작품, 엄마랑 딸이랑 손잡고 보면 얼마나 좋겠어.”(나문희)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거잖아요. 그 출발이 <친정엄마>와 함께고요. 딸로 태어나면, 어느 땐가 엄마가 되고 다시 할머니가 되고, 그렇게 되잖아요. 그런 삶을 이 작품으로 느껴보고, 그리고 덜 불효하라고,(웃음) 와서 모니터 하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이유리)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이민옥(okjassi@daum.net) (주)엔터프렌즈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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