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보다 아름다운 당신의 음악 - 폴 포츠 & 케빈 컨
작성일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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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피아니스트는 코 앞의 것만이 아련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고, 한 사람의 오페라 가수는 가난과 왕따, 대형 사고와 악성 종양을 겪은 외판원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음악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나, 음악에 대한 더욱 강한 열망과 풍부한 기쁨이 되기에 탄탄한 토양이 된 것은 분명할 것이다.
눈 감고 들으면 행복이오, 눈 뜨고 보노라면 또 다른 감동이다.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내면의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이 두 사람의 음악은 거짓됨 하나 없는 예술의 가운데이지 않을까. 티끌도 맑게 굴러갈 듯한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으로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뉴에니지 피아니스트 케빈 컨과 영국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천상의 목소리로 우승을 거머쥔 폴 포츠가 지난 5일 서울을 시작으로 제주, 창원, 인천, 광주, 부산 등 전국 8개 도시 투어 공연에 함께 선다.
완벽한 멜로디를 찾아가는 여정. 피아니스트 케빈 컨
“피아노 앞에 앉아 음악을 연주하는 건, 두 사람이 강을 건너는 것과도 같고, 하나의 음들은 빗방울이 되어 내리는 것과도 같죠. 모든 감정, 모든 상황을 피아노를 통해 묘사한다고 생각해요.”
상상의 이미지는 손 끝 건반의 터치로 그려진다. 노력 뿐 아니라 생후 18개월 때 처음 피아노를 연주한 천재성에도 기인할 것이다.
“온 가족이 TV를 보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대요. 가 보니 작은 아기가 큰 피아노 의자에 버둥거리며 앉아 ‘고요한 밤’을 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두셨어요. 천재요? 주변에선 평범하지 않은 아이라고 했죠.(웃음)”
아버지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형제들은 취미로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에게서 받은 선물은 “내가 음악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것, 그 음악을 계속 할 수 있게 모든 부분에서 도와준 것”이라고 강조한다.
후천적 시각장애를 가진 그는 모든 연주는 악보 없이 외워서 한다. 암기하고 있는 곡이 몇 곡이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곡명을 이야기 하면 며칠이 걸릴 것”이라며 웃는다. 어린 시절 정통 클래식 공부를 시작으로 20대 초반까지는 재즈를 익혔으며 이후 연주와 작곡 활동을 병행했던 탄탄한 기본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곡을 외워서 연주하면 그 음악의 멜로디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더욱 잘 깨달을 수 있어요. 종종 같은 곡을 똑같이 연주할 경우 새로움을 찾을 시간이 없게 되는데, 그것 역시 연주자가 연주하기 나름이죠.”
그래서 그의 변주곡은 더욱 인상적이다. ‘오빠 생각’, ‘고향의 봄’ 등 그의 해석으로 새 옷을 입고 태어나는 한국 노래와의 만남은 콘서트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친근하고도 색다른 기쁨이 된다.
“좋은 곡을 알아차릴 수 있는 건 분명한 멜로디, 확실하고 완벽한 주제 선율이 있는가, 하는 점이에요. 작곡할 때도 멜로디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렵고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고요. 유재하의 곡을 특히 좋아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의 멜로디는 완벽한 조화를 이뤄요. 마치 아름다운 무늬들이 정교하게 어울린 조각과도 같은 느낌이죠.”
6살 때 처음 만나 평생 제 2의 아버지로 삼아 음악과 삶에 큰 영향을 받았던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조지 쉐링(George Shearing)처럼 케빈 컨은 또 다른 젊은 연주자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자 한다. 2006년에 이어 지난 해 2회를 맞은 ‘케빈 컨 음악 경연대회’가 그 일환이다.
“첫 회 우승자를 잊을 수 없어요. 10살 친구였는데 연주가 단연 돋보여서 ‘와우’하고 감탄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청력의 80%를 잃었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이토록 기막힌 연주를 할 수 있었는지, 저조차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죠. 그 대회 이후 케네디 센터에서도 연주하고 많은 자선 연주회도 갖고, 아주 특별한 사람임에는 분명해요.”
훌륭한 연주자, 선생님, 작곡가 중 “내 생각에 작곡에 재능이 가장 많은 것 같다”는 케빈 컨. 1996년, 다소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낸 후 발매한 1집 앨범 ‘인 디 인챈티드 가든’이 세계 40여 개국에 소개되며 큰 호평을 받았으며, 2집 '비온드 더 선다이얼'이 빌보드 차트 10위 권으로 데뷔해 대중적 성공까지 얻었다. 베스트 앨범을 포함 총 10장의 앨범을 발매한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영화음악 작업에 대한 목표를 새로이 삼고 있다.
“그간 피아노와 몇 가지 악기와의 어울림이 주였다면, 이젠 오케스트라 편성 작곡을 더 넓히고 싶어요. 이번 한국 투어 공연에서 모스틀리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것 역시 그런 목표의 연장선일 수 있겠고요. 처음부터 영상을 위해 작곡을 한 적은 없어서,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아요.”
지난 5일, 전국 투어의 첫 공연인 서울 무대에서 그가 연주할 땐 은근한 미소가 퍼진 고요가 공연장 안을 채웠고, 이후 오랜 박수 속엔 감탄이 넘실대었다. 인터뷰에 앞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게 되어 인사를 건냈던 기자에게 “당신이 날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냈을 때 내가 유명하다는 걸 조금 알게 되었다”며 웃던 케빈 컨. 마음과 가짐이 그대로 음악에 비춰지는 음악가임엔 틀림 없다.
행복이란 좋아하는 걸 계속 할 수 있는 것. 폴 포츠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한 심사위원은 “그가 등장했을 때 부랑자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라고 회고했다. 눈길이 가지 않는 외모에 긴장이 역력한 눈빛. 어눌하게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말했을 때, 그의 목소리가 단 5초 후 전 세계인의 마음을 뒤흔들 것이란 예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감탄을, 소름을, 눈물을 세상에 터트리게 만들었다. 세계의 눈이 1억 번 이상 그의 오디션 영상을 찾게 되었고, 2007년 오디션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 폴 포츠(40)는 이제 세계를 누비며 공연을 하는 오페라 가수가 되었다.
학창 시절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노래 공부를 하기 위해서 지독하게 돈을 모아야 했다. 그러나 꿈을 펼치기도 전에 대형 사이클 사고로 맹장이 파열되기도 했고, 부신에 악성 종양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련과 역경은 그에게 더욱 어울리는 단어였다. 그러나 그는 좋아하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고, 기회 앞에 주저하지 않았다. ‘다이아몬드가 될 석탄’이었던 당시 서른 여섯 살의 휴대전화 외판원이 브리튼즈 갓 탤런트 도전 후 “내일이면 당신의 앨범을 녹음하고 있을 것”인 오페라 가수로 탄생한 까닭이다.
“우승 이후 4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는 거에요. 세계 곳곳 아주 멋진 곳을 여행하며 지금처럼 노래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거든요.”
스스로도 지금의 자신을 그려보지 못했을 것. 음악은 그의 유일한 친구였을 뿐 특별한 재능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내 목소리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따로 음악학교를 다니지도 못했거든요. 그저 노래하는 걸 즐겼던 거죠. 여러 상황들 때문에 노래를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은 했었지만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걸 계속 했을 뿐이에요.”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과 영국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독설가로 유명한 음반 프로듀서 사이먼 코엘과 함께 만든 두 장의 앨범에서는 오페라 곡을 선사했다. 최근 발매한 세 번째 앨범 ‘시네마 파라디소’는 ‘아바타’, ‘타이타닉’, ‘물랑루즈’의 음악을 담당한 헐리우드 영화음악 프로듀서와 손잡고 영화 삽입곡 중 명곡을 엄선했다.
“영화 ‘ET’에서 처음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었어요. 그러면서 클래식과 오페라 음악을 접하게 됐기 때문에 그것이 내 음악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음악 모음집에 대한 생각은 늘 갖고 있었죠. 영화와 영화음악 모두에서 받았던 깊은 감명을 담고 싶었습니다.”
이번 한국 투어 공연의 프로그램 역시 영화 주제곡들을 주로 한다. ‘대부’, ‘타이타닉’, ‘러브스토리’의 선율이 관객들의 마음 속 추억까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기대로 기립박수를 자아내는 건 오디션 참가곡이기도 했던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이다. 우리들이 그의 목소리 뿐 아니라 소시민이 이뤄내던, 기적이 탄생하던 그 순간의 감흥을 나누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는 희망의 증거 아니겠는가.
“한국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은 걸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 참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꿈을 깨닫고 그 과정을 즐기면서 해야 한다는 겁니다. 계속 노력해야 하지요. 자기 자신이 되어야지, 타인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나중엔 스스로를 잃게 될 거에요. 거품 속에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해요.”
이번 투어 공연 중 5일에 열렸던 서울을 비롯, 앞으로의 대구, 광주 공연에서는 ‘한국의 폴포츠’라 불리는 김승일과 듀엣을 하기도 한다. 한양대 성악과에 입학했으나 집안 형편상 학업을 접고 야식 배달을 해오던 그는 한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다시 배움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뻐요. 정말 행복한 자리가 될거에요. (‘왓 어 원더풀 월드’를 부를 예정이시라고요?) 정말요?(웃음) 그건 비밀입니다. 오셔야지만 알 수 있어요.”
긴 머리가 매력적이었다며 아내를 만난 시간과 장소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그녀를 만난 것이 일생 가장 커다란 사건”이라는 순정파 남편, “한국 바비큐는 너무 맛있고, 사진으로만 본 아름다운 제주도에 처음 가게 되어 설렌다”는 순수한 이방인, 그 전에 폴 포츠는 “좋아하는 걸 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어떠한 불만도 없는 행복한 사람”임을 자처한다.
“앞으로 앨범과 공연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더욱 나아갈 지는 확실하진 않아요. 클래식 공부를 더 해야겠지만, 내 꿈의 오페라인 <라보엠>을 하고도 싶고 지금처럼 많은 아름다운 곳에서 계속 노래를 하고 싶어요. 시간이 될 때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한 공연 등 자선 활동도 하고 싶고요.”
이번 투어 공연에서는 케빈 컨의 연주로 그가 노래하는 한국 가곡도 만나볼 수 있다. 쉽지 않은 단어들이 가득한 제법 긴 노랫말을 너끈하게 소화하는 그의 모습은 재능 이상의 노력이 그가 만들어 낸 기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작은 모습이 될 것이다. 멈추지 않는 객석의 박수 속에 폴 포츠와 케빈 컨은 퇴장을 주저하며 여러 번의 인사로 답례를 더했다. 감동은 그렇게 전해진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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