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가수, 그들의 전성시대
작성일2011.06.03
조회수18,312
"노래를 잘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이 최근 가요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한국 가요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노래 잘 하는’ 가수들이 잇달아 콘서트를 가지고 있다. 훌륭한 가수를 넘어 거장의 반열에 오른 조용필을 필두로, 우리시대 최고의 소리꾼들 이승철, 임재범이 그들이다. 보컬 톤과 성량, 감성과 기교는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전문가들이, 대중들이 꼽은 최고의 가수에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왔던 가수들이다.
조용필은 독창적인 음색에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시들지 않은 라이브 실력, 다양한 장르의 포섭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활발한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80년대 조용필의 뒤를 이를 가수로 지목되곤 했던 이승철과 임재범은 공교롭게도 함께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 새삼스럽지만 이들의 음악 색깔과 보컬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당연함이 당연하게 지켜지지 않는 오늘날, 이들은 존재만으로 든든한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이 부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를 휩쓸 때, 이 곡이 1990년 조용필이 발표한 노래란 사실이 새삼스럽게 회자되었다. 20여 년 전에 나왔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세련된 감성을 지닌 이 곡은 조용필이 직접 작곡한 노래. 그가 자주 불렀던 노래가 아니었지만 원곡의 허스키하고도 깊이 있는 음색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말고는 잘 알지 못했던 젊은 세대엔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오디션 프로그램 제목은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을 ‘대놓고’ 차용하며 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니, 데뷔 40년이 훌쩍 넘은 이 가수에 대한 존재가치가 새삼 조명 받고 있다.
조용필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창력, 무대 장악력, 카리스마가 절대 경지에 이른 가왕”이라고 입을 모은다. 후배 가수들 역시 롤모델로 그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발라드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가수 신승훈에게 그는 하나뿐인 멘토. 그는 한 방송에서 “가요계가 전쟁터였다면 이순신 장군동상 옆에 조용필 동상이 있지 않을까 한다”며 존경을 표현하기도. 가창력의 종결자 이승철은 “환갑이란 나이에 1만석 규모의 체조경기장을 채우는 건 정말 대단하다”며 “왕좌를 내려놓을 줄 모르고 독재하신다”며 역시 동경을 드러냈다.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히트 이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못 찾겠다 꾀꼬리’ ‘허공’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등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선보이며 그가 보여준 음악은 록과 발라드, 클래식과 전통음악 등으로 뻗어갔다. 1980년대 팝을 맹종하던 우리 가요가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동시에 다양한 곡들을 직접 쓰고 앨범 프로듀싱까지 하며 국내 가요계에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을 확립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평론가들이 ‘대한민국 가요는 조용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다.
‘기도하는’ 뒤에 따라오는 가사가 ‘꺄’라는 우스갯 소리가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그가 콘서트에서 ‘비련’의 첫 대목을 부르면 관중들의 반응은 매번 열광적인 비명(?)으로 화답하곤 한다. 80년대부터 국내 음악계에선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첫 가수인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한국의 콘서트 문화를 정착시킨 가수이자 뛰어나고 독특한 음악성으로 각종 진귀한 기록들을 지닌 뮤지션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 지구레코드와 전속으로 낸 ‘창밖의 여자’는 국내에서 최초로 100만 장 이상이 팔린 단일 앨범. 1986년엔 일본에 진출해 ‘추억의 미아1’로 100만 장을 판매하며 골든디스크 상을 수상했고공식적으로 600만 장 이상을 판매, 최초의 한류를 만든 가수이기도 하다. 여기에 1994년엔 대한민국 최초로 음반 판매량 1000만 장을 기록하고 현재까지 18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80년대 가요프로그램 1위를 10주 이상 이어가 가요프로그램에 1위 제한이 나올 정도로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1986년 “후배들을 위해 더 이상 수상하지 않겠다”고 불참의사를 밝히고 공연에만 전념했다.
그가 가장 조명 받는 이유는 데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 뮤지션이라는 것. 최근<조용필&위대한탄생 전국투어 콘서트>에서 매진행렬을 이어가며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엔 철학이 없다”며 오직 강렬한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으로 40년 이상 한국가요를 지키는 가수이기에, 조용필은 우리시대 진정한 슈퍼스타이다.
방송가에 가수 오디션과 경연 열풍이 불면서 몸과 마음이 바빠진 가수가 있다면 단연 이승철일 것이다. 한 조사에서 ‘노래 잘하는 가수’로 조용필에 이어 2위를 차지한데다 ‘기교, 가창력’ 항목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그는 힘든 노래를 전혀 힘들지 않게 부르는 노련함과 그만의 표현력이 더해지며 우리나라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이승철은 젊은 시절 임재범과 함께 조용필을 이을 남자 가수로 꼽히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한 화제를 뿌린 ‘나는 가수다’의 임재범이 프로그램을 떠난 지금, (이승철이 원하지 않더라도) 그를 이을 무게감 있는 가수로 대두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985년 부활의 보컬로 데뷔, 1989년 솔로로 활동한 이후 그는 ‘마지막 콘서트’ ‘소녀시대’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희야’ 등을 히트 시키며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헤비메탈로 시작했지만 발라드, 재즈, 펑키 등 음악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가는 동안 보컬의 노련함은 세월을 따라 무게를 더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에서는 전형적인 락발라드 스타일로 불렀고, ‘잠도 오지 않는 밤에’는 재즈적 감성을, ‘소녀시대’는 펑키스타일로 불렀다. 어떤 음악이든 자신의 목소리를 음악 성격에 맞춰갈 수 있는 가수가 흔치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데뷔 25년이 넘는 지금 그의 콘서트에 여전히 관객이 몰리는 이유가 납득이 갈 것.
그의 보컬 실력은 선후배 가수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부활 멤버로 받아들인 이유에“나는 김수철 선생님의 느린 비브라토를 좋아했는데 그는 그것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연우神으로 불리며 가창의 교과서라 칭해지는 김연우 또한 가창력에 대해선 이승철을 꼽았다. 임창정은 가수 시절 그의 무대를 보고 “외계인가 생각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승철은 한마디로 최고의 노래꾼이다. 가성과 진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천부적인 미성을 지녔고, 노련한 완급조절 능력으로 어려운 노래도 그가 부르면 술술 풀리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보컬트레이너 박선주는 “보컬로는 조용필 이후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싱어송라이터보단 보컬로서의 역할에 훨씬 충실하다. 플레이디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싱어송라이터들은 주로 본인이 쓴 노래를 발표하려고 하지만 난 누가 작사작곡을 하든, 내가 부르면 내 노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컬 하나로 경지에 이른 관록 있는 가수이기에 누구도 여기에 토를 달기는 힘들다. 강산이 두 번도 넘게 변한 시간이 흘렀지만 꾸준히 대중을 만나고 보컬을 다듬으며 여전히 현역가수로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임재범은 신이 내려준 듯한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보컬이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에서 처음 그를 본 젊은층들은 차원이 다른 울림에 당장 매료됐다. 데뷔 25년. 오랜 칩거로 잊혀졌던 한 가수는 절절한 노래 한 곡으로 가장 뜨거운 화제를 일으키는 인물이 됐다.
방송출연을 거의 하지 않아 젊은층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재범은 1986년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 보컬로 참여했을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시나위, 외인부대, 아시아나 활동으로 헤비메탈의 진수를 보였던 그는 1991년부터 솔로앨범을 내며 ‘비상’ ‘이밤이 지나면’ ‘사랑보다 깊은 상처’ ‘고해’ ‘너를 위해’ 등 히트곡을 선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데이빗커버데일’’ 한국의 마이클볼튼’이란 칭송을 받았음에도 칩거와 잠적으로 그 재능을 마음껏 선보였다 할 수 없었던 가수이기도 하다.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데다 방송과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공연이나 방송을 펑크내며 점점 대중과 멀어지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 한 번의 노래로 다시 주목을 받을 정도로 그의 보컬은 매력적이면서도 희귀하다. 기본적으로 굵고 허스키해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목소리는 한국 최고의 보컬이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변주되고 요리된다. 진성과 가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력에, 풍부하다 못해 절실한 감정표현은 청중들의 마음을 두드리기에 충분하다.
노래 잘하는 가수로 조용필, 이승철과 함께 항상 거론되는 그는 음이탈 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짙은 호소력이 가장 큰 강점일 것. 작곡가 김형석은 “그는 ‘나만 가수다’ 정도”라고 극찬했고, 하광훈은 한 인터뷰에서 “그는 평가에서 이미 벗어난 사람”이라며 “조용필이나 이미자를 평가할 수 없듯이 아티스트로서의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전히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있다. 갑작스러운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 역시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온 탕아’ ‘호랑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불 같은 성격을 지녔던 그가 가족을 생각하고 미안해 하는 모습에 대중은 더욱 뜨거운 호응을 보이고 있다. 임재범의 전국투어 콘서트 역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다시 돌아온 거인은 향보에 더욱 귀추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디자인: 이 주영
디자인: 이 주영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댓글1
-
A**님 2011.07.07
노래가사를 아크릴에 표현한 야광피켓.. http://cafe.daum.net/bandya7 [야광피켓]게시판에서 확인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