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금> 김승대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무게감 있는 아우라를 뿜어내던 배우 김승대가 이번엔 <내 마음의 풍금>에서 풋풋하고 상콤한 23살 총각 선생님으로 돌아온다. 아직 냉소적인 발렌틴의 모습을 털어내는 중이지만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는 캐릭터를 즐거운 마음 받아들이고 있는, 천상 배우 김승대를 만났다.

"뜨겁지 않은 따뜻한 작품이 하고 싶었다"

풋풋한 총각 선생님으로 돌아온다.
별로 풋풋하지 않아서 걱정이다. 제일 걱정이 되는 부분인데, 때가 많이 묻어있었나 보다.

어디서 그렇게 때가 많이 묻었나(웃음). 배우 김승대의 이미지는 그렇진 않은데.
작품에 아이들도 나오고, 향수, 추억, 첫사랑들이 녹아 들어 있는데 난 첫사랑을 겪은 지 이제는 꽤 오래됐다. 작품도 복수, 증오같이 자극적인 비극을 많이 하다가 <내 마음의 풍금>에 들어가니 ‘그런 것들’이 빠지지 않는 거다. 오만석 연출님은 선생님 같지 않은 선생님, 어떻게 보면 홍연이보다 더 아이 같은 모습이 있는 23살 청년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주문하셨다. 쉽지 않다.

<거미여인의 키스> 이후라 거친 아우라부터 빼야겠다.
아직까지 완전히 빠졌다고 할 수 없다. 무의식 중에 강한 어투들이 많이 나온다. 초반엔 너무 인상을 쓰고 있어서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도 못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김승대씨 이미지는 부드러운데.
그런데 그거 아나. 난 로맨틱 코미디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몬테크리스토>나 <모차르트!>를제외 하면 대부분 폐륜아, 복수, 정치범같이 강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런 작품들을 보신 분들은 나를 굉장히 강하게 본다.

스스로 어떤 게 더 맞다고 생각하나.
비극에 내가 더 써먹을 수 있는 게 더 많다고 본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약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이미지상 밝고 명랑한 쪽이 어울린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 있다. 내가 작품에서 이렇게 마음 놓고 실컷 웃었던 작품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순박한 송정리 사람들하고 밝게 웃으니까 좋다.

<내 마음의 풍금>은 2008년 초연작이다. 그 동안 시대극이나 강한 역에 주로 모습을 보였는데 이 작품에 출연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거미…> 이미지가 너무 커서 그때 봐주신 분들은 나를 너무 강하게 하시기도 했고 그 동안 뜨겁거나 차가운 작품을 많이 해서 한번은 따뜻한 작품을 하고 싶었다.

배우로서 선배이기도 한 오만석씨가 연출이다. 연출로서 어떻다고 생각하나.
이거 말 잘해야 하는데(웃음). 정말 만석 형님에게는 고맙다. 난 움직임을 하거나 대사를 칠 때 스스로 타당성이나 당위성이 생기지 않으면 움직이질 못한다. 우리 학교 출신들이 대부분 그런데, 자기 믿음이 생기질 않으면 움직이질 못하고 뒤에 가서 불이 붙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보통 뮤지컬 작업은 그렇지 않다. 일단 연출이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배우가 정서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해야 빨리 진행이 된다. 만석 형은 그런 면에서 나를 굉장히 존중해 주신다. ‘내가 연출이고 넌 디렉팅할 배우’가 아니라, 믿고 기다려 주신다. 내가 널 믿으니까 여기에선 이런 감정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라고 어시트만 해주시는편이다. 제 성향을 잘 파악하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 동안 무대에서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맡아왔다. 작품 선정 기준이 있다면.
작품이 많이 들어오는 편도 아니면서 난 작품 선정이 까다로운 편이다. 두 가지가 있는데, 내가 욕심이 나는 캐릭터와 내가 잘 할 수 있는 캐릭터. 이 두가지로 항상 고민한다. 지금 나로선 버거운데 한번 도전해 봐? 아니면 이 배역은 남들이 하는 것보다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것들. 지금도 너무 속상한 게 정말 좋은 작품이 들어왔는데 전에 했던 배우들보다 잘 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 김승대가 이 역을 했는데 꽤 괜찮더라, 얘만의 뭔가가 있더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래서 대부분 욕심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관객들이 배우 김승대에게 가장 기대하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캐릭터의 다양성이 아닐까. 이번엔 캐릭터를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이렇게 변신했구나. 그런 기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가 몇 개나 될까. 아마 얼마 없을 거다. 매 인물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김승대가 만들기 때문에 어떤 작품과 중첩이 되거나 연상이 되거나 할 거다. 요즘엔 그런 것들이 조금씩은 부담된다.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연기, 신기하게 관객들이 먼저 알아봐"

주연 잡는 조연이란 별명도 있었다.
사실 극적으로 보면 굉장히 안 좋은 말이다. 드라마의 주 기능은 주연들이 맡는 거니까. 잡아먹으려고 한 건 아니다(웃음). 어떤 캐릭터를 만들 때 주연보다 조연이 성향을 표현하는데 비중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캐릭터를 설명해 주는 게 상당히 어렵단 말이다. 그래서 이 캐릭터의 인생을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을 한다. 이것은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기 위해서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믿음을 얻기 위해서 했던 액션인데, 참 신기하게도 관객분들이 먼저 매섭게 그걸 알아보신다. 그럴 땐 놀랍다.

<모차르트!> 쉬카네더 역은 어땠나.
쉬카네더란 역은 내가 가장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캐릭터 같다. 내게 익숙한 캐릭터란 드라마적인 부분에서 기여를 하거나 사건을 일으키고 갈등을 빚는 인물인데, 쉬카네더는 드라마적으로 필요한 인물이기 보다 작품의 환기를 위해 필요한 인물이자 모차르트의 조언자 같은 위치다. 무대에서 벗어나 즐기기도 하고 관객과 눈도 맞추면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난 너무 고지식하게 연기를 배워서 그런 걸 잘 못한다. 요즘은 관객들과 무대에서 노는 것도 필요한데 말이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다 표현을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에녹 형님이 나보다 훨씬 무대를 즐기면서 하시더라.
 

관객과 눈을 못 맞춘다는 건?
객석에 긴 머리 여성관객이 앉아있다는 게 인식이 된다는 것 자체가 집중력은 이미 깨졌다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속상할 때가, 특히 내가 속상할 때는 뭔가를 굉장히 밀도있게 몰입해서 들어가면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완전히 몰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핸드폰 소리가 들리면 다시 처음부터 쌓아가야 한다. 그럼 속상하다(웃음).

김승대란 배우를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은 뭐라 생각하나. <햄릿>이 아닐까.
제일 처음 대극장에서 조연급으로 선 무대가 뮤지컬 <햄릿>이다. 그때 레어티스란 캐릭터로 관객분들이 알아봐주셨고 외부적으로 인지도가 생겼다. <인당수사랑가>에선 김승대란 배우가 이제 막 뮤지컬을 시작했는데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란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다.

레어티스에서 햄릿으로 역할이 이동했었다. ‘신분상승’ 했단 말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신분상승 맞다. 귀족에서 왕족이 됐으니. 당시엔 상당히 힘들었다. 그 땐 한달 남짓 맡았던 레어티스가 나를 알리는 전부였다. 중극장 이상 작품의 주연의 맡는 건 무리였지만 제작사 대표님이 손해보실 걸 알면서도 기회를 주셨던 거다. 3개월 동안 햄릿으로 올라갔는데 태경 형, 건형이 형, 지훈 형 가운데서 신인 김승대의 인지도는 너무 낮아서 마음 고생도 굉장히 많이 했다. 다른 햄릿 스케줄 때문에 대신 서면 그 배우를 보러 오신 관객들이 저를 곱게 볼 리 있겠나. 포스터에도 내 얼굴이 없어서, 몇몇 관객은 포스터에 얼굴이 없는 배우를 똑 같은 돈 내고 볼 수 없다며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신인으로서 겪는 서러움? 이런 걸 <햄릿> 때 겪었던 것 같다. 반면에 정말 열정만 가지고 설 수 있던 시기였고, 그 때 저를 봐주시고 지금껏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연기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원래는 체대를 지망했다. 격투를 전공으로 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님 뜻대로 운동을 해왔고, 당연히 체대에 들어가는 줄 알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 따라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연극영화과를 지원한 게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콩깍지가 씌어서 연극영화가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100일 가까이 가출까지 하면서 간신히 아버지 허락을 받았다. 대신 아버지가 삼수는 없다고 못박으셨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할 상황이라 미친 듯이 재수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집이 분당이었고 제가 배웠던 선생님은 일산에 계셨다. 하루에 교통시간만 왕복 6시간이었다.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가는 생활을 했고 그 누구보다 많이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단시간에 가장 많은 걸 머리에 넣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지킬앤하이드>로 데뷔했는데, 처음부터 뮤지컬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솔직히 난 뮤지컬을 깔봤었다. 특히 우리 학교(동국대 연극영화과)는 오래된 곳이라 연극은 예술, 뮤지컬은 장사라는 분위기가 있었고, 난 거기 골수분자였다. 그래서 난 뮤지컬은 하지 않는다는 건방진 생각으로 4년을 다녔다. 그런데 우연찮게 학교 동기 중에 뮤지컬을 굉장히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혼자 뮤지컬 오디션에 지원하기 그랬는지, 나 대신 지원서를 넣었던 게 계기가 됐다. <지킬앤하이드>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서 앙상블로 첫 데뷔를 하게 됐고 그렇게 11개월을 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느낀 게 많다. 앙상블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안타깝게도 속상한 일도 많다는 것. 그리고 라이선스 뮤지컬의 특징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

그 뒤에도 연극이 아닌 뮤지컬로 계속 무대에 섰다.
사실 <지킬앤하이드>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뮤지컬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편견을 가졌다는 걸 알았지만, 나와는 여전히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햄릿>이 뮤지컬로 올라간 단 소식을 들은 거다(웃음). 레어티스 역만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 졸업할 때 눈문을 ‘햄릿’으로 할 만큼 햄릿을 사랑했다. 레어티스란 캐릭터 분석도 이미 준비돼 있었다. 그래서 도전하게 된 거고, 아직 발을 못 빼고 있다(웃음). 연극이 너무 하고 싶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정말 어려운 작품이었지만 보람도 있었고, 고생한 만큼 나온 것 같다.

데뷔 6년차다. 아직 배우 지망생이라고 하는데.
인터뷰 때마다 아직 배우 지망생이란 말을 쓴다. 대학교 2학년 때 최민식 선배님이 술자리에서 하신 말이, ‘배우’란 말을 아무나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배우들의 세계에서 배우로 불리면 그 사람은 대통령이다. 한 나라에 대통령이 몇 명 없지 않냐는 그 말이 그렇게 멋있었다. 그때부터 내 좌우명이 됐다. 그런데 간혹 너무 겸손을 넘어 지겹다고 하시는 팬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최민식 선배님도 아직 배우 지망생이라 하는데 내가 배우라고 할 순 없지 않나. 앞으론 이왕 하는 거 정말 배우가 되고 싶다.

앞으로 욕심나는 역할 있나.
이상하게 내가 했던 작품의 다른 배역이 하고 싶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할 땐 줄리엣, <햄릿>을 할 땐 오필리어, 지금 <내 마음의 풍금>을 하고 있자니 홍연이를 하고 싶다. 특히 <햄릿>의 오필리어는 어찌 보면 굉장히 상징적인 요소가 있어서 욕심이 난다. 내가 연기를 해서 관객들의 마음이 동한다면 정말 잘 한 것 아닌가. 그 정도라면 배우 소리 들어도 되지 않을까?(웃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
www.studiochoon.com) /디자인: 김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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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5

  • A** 2011.08.14

    오늘에야 동수쌤을 만났는데.. 올만에 보는 승대배우님의 뮤지컬.. 역시 기대이상이었어요~ ㅎㅎㅎ 홍연이도 어울리실꺼 같은데요? ㅎㅎ

  • A** 2011.07.09

    레어티스에 반해서 몇번을 현장구매를 해가면서, 그해의 햄릿을 본 적이 있었죠. 그런다음 김승대 배우가 햄릿을 연기하자... 그때 기대감은 인어공주가 물거품으로 사라지듯~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레어티스의 해 맑은 미소가 나를 이끌었나 봅니다. 트라이앵글에서의 그 미소가 나릉 이끌었나 봅니다. 앞으로 어느 장르에서나 변신이 기대되는 배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topi** 2011.07.07

    승대배우의 햄릿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 관객이 적어도 1명이 있으니 배우소리 들어도 될것 같은데요~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좋은 연기 보여주세요~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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