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도 짙은 연기가 폭발한다' <레드> 강신일, 강필석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는가. 서로의 열망이 거세게 부딪히며 저마다 깨닫는 것이겠지. 완강한 자기 세계를 고집하는 화가와 새로운 사상의 파도 한 가운데에 선 조수 켄의 2년 간을 담은 연극 <레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선 두 남자의 폭풍같은 질주, 강신일과 강필석이 만났다.


2010년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6개 부분을 수상한 연극 <레드>는 러시아 출신 미국 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삶을 그린 작품. 누구보다 미술에 대한 치열한 자기 고뇌와 확신을 가졌던 그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마크 로스코의 예술 인생 절정기였던 1958년부터 2년 동안 그의 조수 켄과 함께 또 달리 성장하는 모습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연극에 빠져 살던 대학생에서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을 생각하고 걸어, 현재 스크린과 브라운관, 무대를 종횡하는 묵직한 배우 강신일, 오랜만의 휴식에 체중이 8kg나 늘었다며 여유로 충전한 에너지와 함께 근 1년 만에 다시 무대를 찾은 강필석. 연습이 한창이었던 10월 초 이들은, 누구보다 <레드>를 확신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본을 읽었을 때, 텍스트만으로도 강렬한 느낌이 전해졌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어땠나?
강신일: 많은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또 형상화된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맛깔스럽게, 깊이 있게 쓰여진 작품은 본 적이 없다. 글이 굉장히 세련되고 재치있고, 감각적인 호기심도 담겨 있다. 물론 어려운 내용이 있긴 하지만, 그에 비해 너무나 재미있게 읽힌 작품이다.

강필석: 굉장히 디테일하고, 극적 행동들도 많아서 볼거리도 많을 것이다. 강렬하게, 아주 뜨겁게 읽었다.

일반인에게는 낯설 수 있는 화가, 철학자 등의 이름과 서명이 종종 등장한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도 있지만, 어렵고 난해한 미술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강신일: 처음 책(대본)을 읽었을 때는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잘난 체 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기도 했다. 일반 관객들이 공연을 한 번만 보고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연습하면서 드는 생각이, 이 작품은 허영심을 가진 작품도, 그걸 강요하는 작품도 아니라는 거다. 작품에 등장하는 철학,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몰라도 충분히 관객들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될 거라는 확신이 든다. 미술을 매개로 하지만 크게 보면 변화하는 세대의 가치 충돌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아무리 어려운 장치들이 있다 하더라도 쉽게 전달될 거라고 생각한다.

<광부화가들> <서울노트> 등 삶에 대한 이야기에 미술 작품과 미술가가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술이라는 소재가 어떤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강신일: 마크 로스코는 나도 몰랐던 사람이다.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미술 관계자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하고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나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다양한 공연들이 올려져야 하지만, 한쪽에서는 이런 식의 작품도 꾸준히 생산되고 소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초예술문화에 좀 소홀한 게 아닌가, 그런 걱정이 좀 있다. 그런 것에 애정을 좀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미디어가 중심이 되는 세상이고, 영상이나 대중문화예술이 주는 감동과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건 무시할 수 없지만 기초 순수예술이 뒤떨어진다면 다른 예술장르의 발전도 뒤떨어지지 않는가.
켄은 로스코의 조수이지만 그에게 큰 자극이 되는 사람이다.
강필석: 가장 큰 역할이 선생님을 계속 자극하고 한편으로 가르치게 되는 역할이다. 그러나 켄도 아직 많은 걸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선생님도 뭔가를 깨닫고 나도 그런 선생님께 큰 가르침을 받는, 그런 사이다.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 켄에게 왜 마크 로스코가 자극을 받을까.
강신일: 비단 로스코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모두가 젊은 시절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열망하고 하나하나 성취하고 그 가치를 대단히 귀하게 생각하고 지키고 싶어 할 것이다. 허나 세대는 자꾸 바뀌고 새로운 가치관도 등장한다. 뭔가 자기가 치받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 이런 건 기성세대라면 다 느끼는 것이다. 켄에 의해서 로스코가 직접적인 자극을 받았지만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미술 조류, 젊은 화가들이 등장하고, 그의 눈에는 저것이 무슨 미술인가,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가 답답해 하는 것인데, 그것을 한 젊은이가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로스코가 알고는 있으나 외면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서로 대거리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켄을 통해 구체적으로 느끼고 이해하게 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켄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확립되지 않은 자기 논리, 너무나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논리를 가지고 로스코에게 대항 했지만, 그와 2년 간 함께 작업하면서 알게 모르게 주고 받은 게 있고, 그것을 통해 설익은 자신의 논리들이 체계를 갖게 되고, 그러면서 세상으로 다시 나간다는 건, 켄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걸 상징할 것이다. 켄과 로스코의 세대 갈등을 통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실제 두 사람은 필드에 함께 선 선후배이다. 강필석이 켄과 같이 느껴지는가?
강신일: 켄 보다 훨씬 훌륭하다.(웃음) 켄은 그야말로 어린애 아니냐.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게 처음이다.
강필석: 나를 모르고 계셨더라.(웃음) 공연했던 <내 마음의 풍금>을 보셨다는데 나 인줄은 모르셨다고 한다.

강신일
: 뮤지컬 쪽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들었다.(웃음) 공연을 봤는데 굉장히 호리호리하고 날렵한 친구가 노래도 아주 힘있게 하고 말도 바르게 하고, 곧 잘하는 친구가 있네, 했다. 그 사람이 강필석인 줄은 모르고.(웃음) 준비도 철저히 하고 고민도 하고, 내가 너무 미안할 정도이다.

강필석: 강신일 선배님이 로스코 역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아싸! 했다.(웃음) 내가 정말 날뛰어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 이야기는, 그 동안 무대 위에서 좀 중심을 잡는 역할들을 많이 했고, 그래서 스스로 철저하게 계산하지 않고 날뛰어버리면 극이 완전히 이상하게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말 많이 컨트롤하려고 했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뮤지컬 쪽에서는 나이가 그렇게 적은 편도 아니었고. 그런데 정말 강신일 선배님과 같이 한다니,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되겠구나, 선배님이 탁, 이렇게 잡고 계시니까 정말 본능대로 하자, 하고 쾌재를 외쳤다.(웃음)

강신일: 연기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물어보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그러면 난 그런 질문 하지 말아라, 연기는 네가 하는 거고 스스로 찾는 거지, 가르쳐서 하는 연기가 제대로 되겠냐, 하고 대답한다.
연기는 가르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시 배우는 것도 아니다.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열망하고 열심인 태도로 보이기는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해라, 하고 말한다. 그러니 나는 후배들에게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까칠하다.(웃음)
두 남자 배우의 진한 맛이 기대된다.
강신일: 관객들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무대에서 그림이 서서히 완성되는 과정들이 다 보여진다. 연기 뿐 아니라 미술에 대해서도 새로운 감흥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고, 동물적인 두 남자의 매력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게 열심히 하고 있다. (웃음)
강필석: 굉장히 큰 무언가를 스트레이트로 딱 뻗는 작품이다.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아본다면.
강신일: 둘이 캔버스를 칠하는 장면은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객석에 전달이 될 것이다. 그 자체로도 하나의 퍼포먼스이자 재미를 보여줄 것이다.

강필석: 로스코의 대사지만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게 좋다, 좋다, 다 좋다’라는 말이 굉장히 와 닿았다. ‘대체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가치관은 어디에 두고 왜 모든 걸 좋다고만 하는가’, 처음 선배님을 만나고 그 대사를 하시는데, 가장 와 닿는 대사였다.

강신일: <강신일과 여우> 공연에서 제작사 측에 양해를 구하고 <레드>의 대사를 한 구절 했는데, 그게 바로 그 대사이다. 도대체 가치관들의 기준들이 어디에 있느냐, 관객들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는데 그 짤막한 대사를 통해서도 관객들이 <레드>에 대한 궁금증을 엄청나게 갖더라. 어떤 사람은 그 대사를 듣고 가슴이 멎는 것 같다고 하고 내가 지금 뭔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고도 들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이민옥(okjass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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