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차 가수, 이승철의 전환점
작성일2011.10.31
조회수11,925
우리나라 최고의 보컬리스트를 꼽을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사람이 있다. 올해로 데뷔 26주년을 맞는 이승철. 가성과 진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천부적인 미성, 힘든 노래를 전혀 힘들지 않게 부르는 노련함과 풍부한 감성은 그를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의 위치로 올려 놓았고 20년이 훌쩍 넘는 지금 그 명성은 오히려 더 생생해지고 있다.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이승철과의 인터뷰. 그는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과 오는 11월 5일한남동 블루스퀘어 개관 콘서트를 시작으로 하는 연말 공연, 11집 앨범 준비로 연말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있었다. 마침 슈퍼스타K 생방송 출연이 있던 이른 저녁 시간 그를 만났다. 26년 동안 철저하게 ‘대중가수’로서 무대에 서온 그의 2011년은 여전히 뜨거웠다.
"음악인생에 맞은 큰 전환점"
올해 데뷔 26주년 입니다. 지난 해 25주년을 기념해 플레이디비와 인터뷰를 하셨는데, 올해는 더 바빠 보이세요.
지난 25주년 동안 매년 컨셉 잡고 공연하고, 컨셉 잡고 공연을 했어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 하다 올해엔 큰 변화가 있었어요. 콘서트가 개인을 위한, 저만의 음악 생활을 위했다면 이젠 다른 사람을 위한 사회사업 활동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26주년의 큰 전환점이죠.
아프리카 학교건립도 그 중 하나죠?
박용하씨가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를 지었는데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제가 대신 완공식을 봤는데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을 목도했습니다. 흑탕물을 그냥 마셔야 해서 수인성 질환으로 수만명이 고생하고 하루에 먹는 거라곤 약간의 미숫가루 같은 먹거리 뿐이에요 말이 안 돼죠. 그 나라의 빈곤을 끊기 위해선 무지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학교, 보건소 등을 짓는데 제가 공연을 해서 보태려고 해요.
계속을 음악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말씀하셨던데요.
그렇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겁니다. 데뷔 25년이 넘은 가수가 음악적으로 욕심을 부리는 것도 좋지만 팬들에게 받은 사랑, 명예를 어떻게 다시 환원하는가, 그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그 일을 찾았다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올해도 여전히 많은 콘서트를 하셨어요. 데뷔 이후 지금까지 1000회 이상 콘서트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세어 본 적이 없어요(웃음). 무대에 선 건 아마 2000 번이 넘지 않았을까요.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원칙이 있나요.
음악으로 롱런을 하는 사람들은, 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성격 좋은 사람이 없어요. 주위 스텝이 피곤할 정도로 예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건 무대라면 더 예민해질 수 밖에 없겠죠.
그럼요. 전 하다못해 객석 의자 넓이도 하나 하나 체크해요. 제가 들고 다니는 막대가 있는데 의자와 의자 사이에 딱 놓여야 하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요. 카페트, 쓰레기통 위치, 유아방. 하나 하나 챙겨야 마음이 놓여요. 음악은 기본이고 부수적으로도 챙길 게 많죠.
공연은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 체험이라고 지난 번 인터뷰 때 언급하셨는데요. 유아방 아이디어는 직접 내신 건가요?
감자탕집엘 갔는데, 거기 아이들 놀이방이 있는 겁니다. 보고 깜짝 놀랐죠. 그 배려에. 하물며 감자탕집도 손님을 이렇게 생각해 주는데, 제 팬들이 제 공연을 보기 위해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2시간 30분 동안 걱정 없이 옛날 소녀적 시절로 돌아가게 하고 싶었어요.
콘서트 컨셉트도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브랜드화 해서 같은 콘서트명을 고집하는 가수분들도 있잖아요.
전 제가 지루해서 못 견뎌요. 1년에 두 번 바꾸죠. 물론 완전히 100퍼센트 바꾸진 못하지만 60퍼센트 이상은 바꾸려고 노력해요 언플러그드 라이브는 전자음을 최소화 해서 어쿠스틱 사운드 위주로 갔는데 역대 음악보다 가장 화려한 겁니다. 오케스트라 16명에 여러 가지 기타가 들어가니 더 화려해져서 저희도 당황했죠.
"후배들이 주는 자극, 그리고 팬이 있기 때문에"
요즘 슈퍼스타K가 주목받으면서 심사위원인 이승철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오늘 밤에도 촬영이 있는데,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과 기분이 좀 다르지 않나요.
설레요. 오늘은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물론 즉석에서 아이들에게 점수를 매겨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에게 어떤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해요. 전엔 옥석을 가려내는 컨셉이었다면 지금은 어딘가 숨어있을 프로를 찾는 느낌이에요.
항상 쓰시는 선글라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엔 눈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썼는데 지금은 어떻게 컨셉화 됐네요(웃음)
가수로서 자극도 받으실 것 같은데.
그들의 열정은 다시 제가 처음 음악 했을 때를 돌이키게 해요. 그들의 간절함, 정말 가수가 되고 싶고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저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가수였어요. 운이 좋아서 히트곡이 매번 나왔어요. 그러면 자아도취, 자기만족이 생길 수도 있고 음악적인 방향에 대해 한계가 오는 시기에요. 하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자극 받고 공연에 임하는 자세도 새삼 달라졌어요. 내적인 면에서 큰 걸 얻었다고 할 수 있죠.
요즘엔 노래를 좀 잘한다고 하면 가수하라고 할 정도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이승철씨가 학창 시절엔 분위기가 이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여건이 좋아졌죠, 최소한 부모님이 말리진 않잖아요. 전 음악하는 걸 처음에 숨겼었죠. 소위 딴따라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다행히 기타나 드럼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음악 안 하는 척 하는 건 쉬웠어요(웃음). 물론 데뷔하는 건 숨기지 않았지만.
데뷔 2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음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가수도, 영화배우도 다 마찬가지이지만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돼요. 기업이 상품을 출시했는데 안 팔려요.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음악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이건 모든 상황의 기본이에요. 원동력, 마음을 갖게 하는 힘은 팬인 거에요.
가창력과 대중성, 이게 이승철씨의 무기가 아닐까요.
저는 대중음악을 하면서 대중음악을 하지 않는 척 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철저하게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 위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음악을 추구해요.
26년 가수로서의 노하우는.
가수들은 경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제 나이 정도가 되면 경쟁보단 스스로 리더라고 생각을 해요. 멘토까진 아니더라도. 물론 경쟁에 연연하고 남들을 의식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반면 전 지금이 안 되면 끝이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사실 음악적인 욕심보단, 더 나은 내 인생을 위해 살고 싶기도 해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도 크시던데요.
그렇죠. 항상 챙겨야 할 가족이 있잖아요. 일을 조금씩 줄이는 시기입니다. 우리 큰 아이가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요. 겨울엔 만나러 가봐야 하고. 우리 세 살짜리 꼬맹이하고도 지내야 하고. 가족 중심으로 가면서 남은 인생을 생각하고 싶어요.
지금 11집 준비 중이시죠. 콘서트와 방송도 하시고. 어쩔 수 없이 항상 바쁘신 것 같아요.
11집은 지금 녹음 중에 있어요. 원래는 2011년 11월 11일 발매를 하고 싶었는데 그건 안 되겠고(웃음) 너무 바빴거든요.
3~40주년 콘서트도 기대할 수 있겠죠?
그럼요. 이만 안 빠지면(폭소)
오랜 시간 가수 이승철과 함께 걸어온 팬들에게 한 말씀.
제 노래를 들으시면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저도 모습이 많이 변했겠지만 어쨌든 음악은 변하지 않잖아요. 제 음악이 각자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디자인: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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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이승철과의 인터뷰. 그는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과 오는 11월 5일한남동 블루스퀘어 개관 콘서트를 시작으로 하는 연말 공연, 11집 앨범 준비로 연말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있었다. 마침 슈퍼스타K 생방송 출연이 있던 이른 저녁 시간 그를 만났다. 26년 동안 철저하게 ‘대중가수’로서 무대에 서온 그의 2011년은 여전히 뜨거웠다.
"음악인생에 맞은 큰 전환점"
올해 데뷔 26주년 입니다. 지난 해 25주년을 기념해 플레이디비와 인터뷰를 하셨는데, 올해는 더 바빠 보이세요.
지난 25주년 동안 매년 컨셉 잡고 공연하고, 컨셉 잡고 공연을 했어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 하다 올해엔 큰 변화가 있었어요. 콘서트가 개인을 위한, 저만의 음악 생활을 위했다면 이젠 다른 사람을 위한 사회사업 활동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26주년의 큰 전환점이죠.
아프리카 학교건립도 그 중 하나죠?
박용하씨가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를 지었는데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제가 대신 완공식을 봤는데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을 목도했습니다. 흑탕물을 그냥 마셔야 해서 수인성 질환으로 수만명이 고생하고 하루에 먹는 거라곤 약간의 미숫가루 같은 먹거리 뿐이에요 말이 안 돼죠. 그 나라의 빈곤을 끊기 위해선 무지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학교, 보건소 등을 짓는데 제가 공연을 해서 보태려고 해요.
계속을 음악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말씀하셨던데요.
그렇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겁니다. 데뷔 25년이 넘은 가수가 음악적으로 욕심을 부리는 것도 좋지만 팬들에게 받은 사랑, 명예를 어떻게 다시 환원하는가, 그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그 일을 찾았다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올해도 여전히 많은 콘서트를 하셨어요. 데뷔 이후 지금까지 1000회 이상 콘서트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세어 본 적이 없어요(웃음). 무대에 선 건 아마 2000 번이 넘지 않았을까요.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원칙이 있나요.
음악으로 롱런을 하는 사람들은, 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성격 좋은 사람이 없어요. 주위 스텝이 피곤할 정도로 예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건 무대라면 더 예민해질 수 밖에 없겠죠.
그럼요. 전 하다못해 객석 의자 넓이도 하나 하나 체크해요. 제가 들고 다니는 막대가 있는데 의자와 의자 사이에 딱 놓여야 하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요. 카페트, 쓰레기통 위치, 유아방. 하나 하나 챙겨야 마음이 놓여요. 음악은 기본이고 부수적으로도 챙길 게 많죠.
공연은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 체험이라고 지난 번 인터뷰 때 언급하셨는데요. 유아방 아이디어는 직접 내신 건가요?
감자탕집엘 갔는데, 거기 아이들 놀이방이 있는 겁니다. 보고 깜짝 놀랐죠. 그 배려에. 하물며 감자탕집도 손님을 이렇게 생각해 주는데, 제 팬들이 제 공연을 보기 위해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2시간 30분 동안 걱정 없이 옛날 소녀적 시절로 돌아가게 하고 싶었어요.
콘서트 컨셉트도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브랜드화 해서 같은 콘서트명을 고집하는 가수분들도 있잖아요.
전 제가 지루해서 못 견뎌요. 1년에 두 번 바꾸죠. 물론 완전히 100퍼센트 바꾸진 못하지만 60퍼센트 이상은 바꾸려고 노력해요 언플러그드 라이브는 전자음을 최소화 해서 어쿠스틱 사운드 위주로 갔는데 역대 음악보다 가장 화려한 겁니다. 오케스트라 16명에 여러 가지 기타가 들어가니 더 화려해져서 저희도 당황했죠.
"후배들이 주는 자극, 그리고 팬이 있기 때문에"
요즘 슈퍼스타K가 주목받으면서 심사위원인 이승철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오늘 밤에도 촬영이 있는데,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과 기분이 좀 다르지 않나요.
설레요. 오늘은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물론 즉석에서 아이들에게 점수를 매겨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에게 어떤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해요. 전엔 옥석을 가려내는 컨셉이었다면 지금은 어딘가 숨어있을 프로를 찾는 느낌이에요.
항상 쓰시는 선글라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엔 눈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썼는데 지금은 어떻게 컨셉화 됐네요(웃음)
가수로서 자극도 받으실 것 같은데.
그들의 열정은 다시 제가 처음 음악 했을 때를 돌이키게 해요. 그들의 간절함, 정말 가수가 되고 싶고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저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가수였어요. 운이 좋아서 히트곡이 매번 나왔어요. 그러면 자아도취, 자기만족이 생길 수도 있고 음악적인 방향에 대해 한계가 오는 시기에요. 하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자극 받고 공연에 임하는 자세도 새삼 달라졌어요. 내적인 면에서 큰 걸 얻었다고 할 수 있죠.
요즘엔 노래를 좀 잘한다고 하면 가수하라고 할 정도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이승철씨가 학창 시절엔 분위기가 이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여건이 좋아졌죠, 최소한 부모님이 말리진 않잖아요. 전 음악하는 걸 처음에 숨겼었죠. 소위 딴따라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다행히 기타나 드럼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음악 안 하는 척 하는 건 쉬웠어요(웃음). 물론 데뷔하는 건 숨기지 않았지만.
데뷔 2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음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가수도, 영화배우도 다 마찬가지이지만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돼요. 기업이 상품을 출시했는데 안 팔려요.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음악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이건 모든 상황의 기본이에요. 원동력, 마음을 갖게 하는 힘은 팬인 거에요.
가창력과 대중성, 이게 이승철씨의 무기가 아닐까요.
저는 대중음악을 하면서 대중음악을 하지 않는 척 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철저하게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 위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음악을 추구해요.
26년 가수로서의 노하우는.
가수들은 경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제 나이 정도가 되면 경쟁보단 스스로 리더라고 생각을 해요. 멘토까진 아니더라도. 물론 경쟁에 연연하고 남들을 의식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반면 전 지금이 안 되면 끝이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사실 음악적인 욕심보단, 더 나은 내 인생을 위해 살고 싶기도 해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도 크시던데요.
그렇죠. 항상 챙겨야 할 가족이 있잖아요. 일을 조금씩 줄이는 시기입니다. 우리 큰 아이가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요. 겨울엔 만나러 가봐야 하고. 우리 세 살짜리 꼬맹이하고도 지내야 하고. 가족 중심으로 가면서 남은 인생을 생각하고 싶어요.
지금 11집 준비 중이시죠. 콘서트와 방송도 하시고. 어쩔 수 없이 항상 바쁘신 것 같아요.
11집은 지금 녹음 중에 있어요. 원래는 2011년 11월 11일 발매를 하고 싶었는데 그건 안 되겠고(웃음) 너무 바빴거든요.
3~40주년 콘서트도 기대할 수 있겠죠?
그럼요. 이만 안 빠지면(폭소)
오랜 시간 가수 이승철과 함께 걸어온 팬들에게 한 말씀.
제 노래를 들으시면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저도 모습이 많이 변했겠지만 어쨌든 음악은 변하지 않잖아요. 제 음악이 각자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디자인: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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