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투어 중! 노래하는 배짱이 '10cm' 권정열, 윤철종

돈 안 갚는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니가 돈만 갚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삼겹살, 탕수육을 먹고 모범 택시를 탈 수 있다’는 귀여운 윽박지름이고, ‘순대국 먹고 나서, 여자 친구와 싸우고서 바람 필 때 시럽 빼고 마시는 진한 아메라카노가 좋다’고 찬양하는 두 남자의 익살이 올 가요계를 흔들었다. 세계인류평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 만을 간절히 원하는 10cm(이하 십센치)는 뽕끼와 어쿠스틱 사이에서 시절 좋게 유영한다. Manhattan[믄하-은] 스타일을 고수하냐는 질문에 큭큭거리다가도 “아이덴티티라는 게 없는 촌티 팍팍 생계형 밴드’임을 자처하는 이들을 홍대, 상수, 신촌이 아닌 전국 투어로 2011년을 보내고 있는 현장 가운데에서 만났다.


이런 골 때리는 거 너무 좋아

“스윙이 나아, 보사가 나아? 일단 즉흥으로 해 보자, 나 이런 거 너무 좋아, 골 때리는 거, 십센치를 디스하자(웃음).”
정해진 것은 없다. 모두가 해 보고 느낌이 가는 곳으로, 끊이지 않는 것은 웃음과 또 다른 아이디어. ‘10CentiMental’ 투어로 전국 7개 지역 공연 중이며 12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앵콜 공연을 앞두고 있는 십센치의 연습 현장의 치열함은 어둡지 않다. 멤버 둘(권정열, 윤철종)의 키 차이가 10cm가 나는 것에서 비롯된 그룹의 이름처럼 상쾌하고 무심하게. 그러나 하고 싶은 대로 멋지게.

전국투어라는 것 자체가 거창한 타이틀이다.
권정열
(이하 정열): 딱 반 했다. 뭐랄까, 축제 같은 느낌으로 했다. 원래 십센치 공연은 소극적인 성향이 있고, 해도 좀 진지하게, 크게도 안 벌렸는데, 올해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이번에는 좀 많이 만나보자, 한 것이다.

윤철종(이하 철종): 그렇다고 달리 큰 변화나 감흥의 차이는 없다. 우리는 공연 하면서 눈도 많이 감지만, 대화나 아이 컨택도 하면서 이뤄졌는데, 너무 거리가 머니까(웃음) 이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그런 것에서 조금 생소한 게 있긴 하다.


스탠딩 관객을 이번 투어 공연 중에 처음 접했다고 들었다.
철종
: 우리 콘서트는 다 앉아서 음악회처럼 감상하고, 숨소리도 못 내게 했었다.
정열: 시끄럽다고 박수도 못 치게 하고.
철종: 일어나라고 안 했다. “따라 불러요” 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서, 이건 아니지 않나, 생각했지만, 재밌게 했다. 우리는 ‘다 일어나세요’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정열: 촌스럽지 않느냐. 우리는 선진국형 공연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런 건 약간 개발도상국 공연 같다. (웃음)

그렇다면 평소 콘서트 풍경은 어떠한가.
정열
: 처음에는 콘서트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다. 관객과의 소통도 거의 없었고. 해령(전에 멤버로 있던 그룹) 때는 호흡을 중요시 하는 음악을 했었는데 나랑 잘 안 맞았다. 그래서 십센치 음악이 이지 리스닝처럼 된 것일 수도 있다.

철종: 내가 멋있어야 하고 스스로 감동받아야 한다. 오늘 됐어, 이런 느낌.(웃음) 음악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일단 내 이야기를 연주나 좋은 노래를 통해서 하는 거니까 내가 얘기를 잘 전달이 되었다고 느껴지는 게 좋은 것이다.

정열: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한 부분인데 방식이 똑같진 않은 것 같다. 쌍방으로 주고 받을지, 잘 전달할 것인지. 우리 둘도 다르다. 형(철종)은 오가는 피드백을 좀 신경 쓰고, 나는 아예 전달만 하고 안 받는다.

철종: ‘자, 이렇게 쳤어, 느껴봐, 느껴지지’ 이런 게 약간의 나의 대화라면 쟤(정열)는 완전 ‘나 혼자야’다.

정열: 솔직히 나에겐 그게 맞는다. 만취한 사람이 앞에서 누가 듣건 막 자기 얘기 하는데, 그게 되게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래할 때 굉장히 몰입한다. 사실 눈도 잘 안 떴는데 이번 전국 투어는 정말 축제 같은 분위기라 즐기고 있다. 사실 따라 부르게 하는 것도 싫어했었다. 히트곡의 어떤 멜로디가 있어도 관객에게 주는 것 자체를 별로 안 좋아했었다. 혼자 작품을 만들테니 그걸 봐라, 하는 거? 완벽주의자는 아니다. 내가 멋있다고 하는 기준 자체가 굉장히 투박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웰메이드와 완벽은 나와 안 맞는다.


십센치가 생각하는 완벽은 무엇인가?
정열: 말로 표현이 잘 안되는데. 음이탈도 나고 둘이 소리가 안 맞는 날이라 해도 감동이 더 클 수 있다. 몰입의 문제인 것 같다. 형(철종)이 원래 일렉기타리스트였는데 십센치 하면서 어쿠스틱으로 전향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어쿠스틱이 어색하기도 했고 연주할 때 몰입해 있다가 틀리면 그게 귀에 들어와서 어긋나기도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그게 안 중요했다. 많이 틀려도 잘 친 날이 있고, 하나도 안 틀렸는데 굉장히 못 친 날이 있고. 듣는 사람들도 아마 알 것이다. 둘의 협의점을 갖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눈이 오네’ 기타 솔로 부분을 일렉으로 길게 만들어 놨는데, 난 그런거 너무 싫어한다. (웃음)

철종: (웃음) 나도 좋아하진 않는데, 일단 노래가 안 되는 입장에서 나만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 기타리스트라고 하면 그런 거 꼭 한번은 해 보고 싶지 않냐. 예전에 YB 공연에서 이전 기타리스트 유병렬씨가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자기 솔로를 마지막에 4, 5분 길게 한 걸 보고 완전 감동 받아서, ‘와, 저거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해 보고 있는 거다. 그것도 조율해서 2분으로 줄였다.

정열: 근데 이건 분명 협의점 안에 있는 거다. 객관적으로는 굉장히 좋고, 공연의 하이라이트이다. 다만 내 취향하고는 안 맞는다는 것일 뿐.(웃음)


서로 외로운 처지, 열정이 있어 죽이 잘 맞았다

십센치의 기타리스트이자 권정열의 고교 선배이기도 한 윤철종은 큰 키와 순한 얼굴로 가만가만히 이야기 하고, ‘언젠가 몰래 카메라를 찍어서라도 본 모습을 밝혀낼 것이다’라며 이미지 논란을 제기하는 권정열은 개구진 얼굴로 다부지고 확실하게 말에 힘을 싣는다. 다름이 빨리 눈에 띄는 서른과 스물 아홉, 두 사내의 인연은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10년 넘게 같이 지내보니 ‘좋다, 싫다’의 개념은 더 이상 둘 사이에 없는 개념일 것 같다.
철종: 예전에 깨졌다.
정열: 하나도 안 무서웠다. 고등학생 때도 후배들이 엄청 싫어하고. 무섭게 해도 안 무서운 거 있지 않느냐.
철종: 대외적으로는 약간 소심하고 그런 것 같이 보이는데, 고집이 세고 완전 기분파이다. 기분 나쁠 땐 정말 대놓고 표현한다.


정열
: 형소에는 형이 정말 세다. 몰카 찍어서 언젠간 풀거다.(웃음) 옛날에는 정말 어수룩했었는데 유희열씨가 캐릭터를 잡아주니까 나중에는 그걸 알더라. 여기에서 어수룩해져야지.(웃음)
철종: 근데 절대 가식은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 좀 더 어수룩해지는 것 같다. 내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거면 내가 이끌어야 하니까 할말을 딱딱 하는데, 어디 나가서 질문하고 대답하는 건 수동적이니까, 내 생각과 다른 질문이 들어오면 당황하는 거다.

고교시절 때부터 같이 음악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정열: 그 때도 둘이 죽이 잘 맞았다. 학년에서 둘이 서로 외로운 처지였기 때문에.(웃음) 둘 다 열정이 굉장히 많았는데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그렇게 열정이 많기가 쉽지 않지 않느냐. 그 열정을 나눌 사람이 없으니 둘이 서로 준비해 와서 맨날 이야기 하고.
철종: 이런 게 있어, 멋있지 않니? 그러면 서로 반응이 오니까, 와, 이렇게 해야지, 하는 거다.

구체적으로 음악의 길로 들어선 건 언제인가?
정열: 형은 실용음악과로 진학했지만 난 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사람이 한 직업에 묶이거나, 타이틀이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냥 하고 있었고, ‘해령’ 하면서 음악을 나중에 재밌게 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겠구나, 열심히 하는 팀을 하나 만들어서 해 봐야겠다, 했다. 공부해서 대학을 가긴 갔는데 음악을 하다 보니까 다른 건 이제 못하겠더라.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고.

군대도 같이 갔다는데.
정열: 동반입대로 지원했다. 가서도 음악을 하다가 나와서도 바로 시작할 수 있게. 거기서 십센치 곡을 좀 썼다. ‘킹스타’도 군대에서 만들었고.

기타는 언제부터 치기 시작한 건가?
철종: 단순히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할 줄 아는 악기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래도 노래는 연습하면 될 것 같아서 (웃음) 원래 보컬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안되서 고등학생 때부터 기타를 배웠던 거다.

권정열은 언제부터 목소리게 섹시했나, 하는 질문이 많았다.
정열: 얼마 안 됐다.(웃음) 원래 굉장히 미성이었는데 변성기 지나고 나서 변했다. 고등학생 때는 되게 맑은 목소리로 메탈 부르고. 한번 아프고 나면 목소리가 변하는데 예전에 성대 결절 직전까지 갔었다. 또 노래 듣는 취향이 변하고 그런 스타일로 연습하다 보니 바뀐 것 같다.


제2의 장기하? 우린 그런 주변머리도 없다.

‘코를 골아도 듣기 좋고 냄새가 나도 향기롭고 바라만 봐도 너무 좋아 죽겠다’는 솔직함과 ‘헤어진 여인 때문이 아니라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운다’는 역설. 여기에 새벽 4시 사랑의 자국을 찾는 아련함과 ‘어지럽고 긴 하루에 너의 새벽이 아파하지 않았으면’하고 바라는 간절함을 십센치는 안개처럼 자욱하게 노래에 실어낸다. 이 또한 십센치의 음악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장기하와 얼굴들에 비유되어 많이 이야기 되었다. 한량스러운 배짱이 같달까.
철종: 맞다, 우린 배짱이 스타일이다.
정열: 장기하 음악 굉장히 팬이다. 영향을 받은 것도 많다. 그런데 둘이 시선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 장기하씨는 사회적이다. (장기하는) 방바닥에 앉아 있지만 사회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도의 주변머리도 없다. 이거 챙기기도 바쁜 사람들이라서.(웃음) 그래서 우리는 굉장히 개인적이다.
철종: 내가 우선이야.(웃음) 여기 좀 아픈 게 짜증나는 거다. (우리는) 찌질대는 게 어울린다.

19금 노래도 제법 된다.
정열: 담배, 술이 들어가면 그렇다는데 최근에 또 바뀌었다. 지금 나왔으면 안 걸렸을 것 같다. 요즘은 가사 쓰는데 약간 매너리즘에 빠졌다. ‘오늘 밤은 무서워요’가 시작이었다. 가사를 좀 재미있게 쓰는 것에 맛이 들려서 계속 그렇게 썼었다. 처음엔 재미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다른 걸 해치더라. 노래를 질리게 하는 것도 있고, 깨끗하게 어필하는 모습이 아니라 팔찌도 차고 화장도 하는 그런 느낌? 오히려 솔직하지 못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엔 이런 거에 목 매면 안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적인 가사가 훨씬 더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노래 가사는?
철종: ‘눈이 오네’, ‘굿나잇’이 좋다. EP앨범과 1집은 다르다. EP를 만들 때 녹음 기술도 없었고, 어디 가서 녹음할 수 있는 금전적인 여유도 없어서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거였다. 집에서 컴퓨터로 작업했는데 그걸 최대한 잘 표현하기 위해 단순한 노래들을 먼저 실은 거고, 정규 앨범은 나머지 곡들을 싣다 보니 좀 이상한 조합이 된 것 같다. 이제는 계획적으로 이런 스타일, 이런 색을 만들어보자, 하는 게 나올 것 같다.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나?
정열: 음악 하는 사람들이 돈 이야기 하는 거 껄끄러워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드러낸 것이다. 음악 잘 해서 돈 벌면 좋지 뭐.
철종: 예전 보다 나아졌다. 이제 같이 안 산다.(웃음) 우리가 시골에서 올라온 포스를 풍기고 있고 십센치라는 이름을 정하고 본격적인 유료 공연을 한 것이 무엇보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더, 오버 등의 개념이 이제는 조금 바뀐 것 같다.
정열: 경계는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하니까 방식 자체가 인디다.
철종: 예전 가요계에 비춰 봤을 때 확실히 인디 개념이 허물어 진 건 사실이나 과거 오버라 칭했던 아이돌들도 그들 사이에서 또 나눠진다.

정열: 갭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져서 인디에서 자기 음악하는 사람들도 주목을 받고 있으나 경계는 똑같은 것 같다. 노래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면 주류가 되고, 아니면 비주류이다. 아이돌 음악을 웰메이드로 만들었다 해도 인기가 없으면 비주류가 된다. 우리가 지금 주류의 곡이 몇 개 있긴 하나 마인드 자체가 주류가 아니라 그걸 못한다. (주류가) 어울리는 사람들도 아니고. 촌스러워서 화려한 게 안 어울린다.(웃음)


오늘 십센치를 노래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열: 멋있는 거. 스스로 봤을 때 동경하는 모습으로 내가 가까워질 때 희열을 느낀다.
철종: 나는 내가 감동받아야 한다. 만족의 기준이 무조건 나이다.

서울 앵콜 콘서트에서 관객들이 ‘함께 즐기기’를 원하나 ‘잘 감상하기’를 원하나
정열: 후자다. 감상이 잘 되야 즐길 수 있다. 전국 투어는 천 석 이상의 공연장에서 노래하는 자체가 축하할 일이라 같이 축하하자, 그런 분위기라 원래 하던 방식에서 많이 탈피했었다. 그런데 블루스퀘어 앵콜 공연은 본래의 십센치로 와서, 뛰어 놀고 그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들고 싶다.
철종: 안 맞는 옷을 벗는 것이다. 예전처럼 박수치면 치지 말라고까진 않지만 ‘같이 따라 부르세요’도 아니다. 우스개 소리 하면 함께 웃어주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있을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이민옥(okjassi@daum.net) / 디자인: 김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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