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화, '평범함이 건전했던 사람, 그가 <영웅> 아닐까?'

모두가 빠져나간 텅 빈 공연장 안. 배우의 대사와 관객들의 갈채가 사라진 그 곳을 가득 채우는 건 작품을 타고 오갔던 감동의 여흥. 공기를 떨리게 하는 여진, 그 오묘하고 신비로운 기운. 뮤지컬 <영웅>의 공연이 끝나고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고 나와 선 정성화는 이 공간의 의미를 깊고도 친밀히 느낀다. 또 다른 도약과 고민의 기로에 서 있는 배우로서 2009년부터 지금까지 3년의 역사를 써 오는 <영웅>에서 ‘정’중근으로서 안중근의 모습을 만들어 온 그 눈빛이다.


뮤지컬 배우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인정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영웅>의 막이 다시 오른 그 이틀 째. 아직 넘치는 긴장감을 갖고 전력을 다하여 새 무대에 익숙해지기를 노력하는 그런 날, 특히 올 4월 새신랑이 된 그이기에 공연이 끝난 늦은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 3시간을 노래하고 연기하며 대사를 쳐도 우렁찬 목소리의 그이나 ‘이상하게 공연 전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쉬는’ 까닭에 오후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만난 정성화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유쾌하게 피로를 날려 버렸다.

“신혼생활 아주 좋아요. 8년 연애해서 결혼하면 재미 없지 싶었는데, 결혼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더라고요, 굉장히.(웃음)”

마지막으로 그를 인터뷰 한 2008년 이후 3년 만. “5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습니다”는 “8년 연애하고 결혼한 아내가 있습니다”로, 상 복이 없는 배우에서 한 해 동안 유수의 공연, 문화예술 시상식에서 3관왕을 한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영웅>의 안중근 역으로 서며 일어난 일들이다.

“<맨 오브 라만차>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다음에 금방 잊혀질까 걱정이 좀 됐었어요. 아, 난 앞으로 그래도 열심히 뮤지컬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수 있겠구나, 마음 속으로 도장을 딱 찍는 작품, 그게 <영웅>이에요. 상은 그 연장선상이었죠. 상은 그 도장에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붙이는 느낌? 개인적으로 참 좋았지만 상을 타고 난 다음엔 ‘한 번 타고 내가 사람들 기억에서 없어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새롭게 들고. 앞으로의 고민이 더 많아지는 상황인 것 같아요.”

<영웅>의 첫 무대에 선 후 겹친 경사들 속에서 그는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배우 정성화로서 잊을 수 없을 충격과 감동, 올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브로드웨이 링컨센터에서의 공연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갔다 왔나 싶을 정도로 꿈만 같은 무대였어요. 브로드웨이라는 곳에서, 그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건 설렘 이상의 멍함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달리 어떻게 정의해야 할 지 모르겠고, 공연을 하면 뭔가 느껴지는 감정이 있겠지, 싶었는데 끝나고 난 지금까지도 그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 정도로 굉장한 거였어요.”

규정과 계약을 중시하는 그곳 공연 스텝들의 시스템과 빠듯한 일정 속에서 연습하기도 힘들었다지만, “첫 공연일 아침에 테크 리허설(기술적인 부분을 점검하기 위한 리허설), 그리고 그냥 리허설을 한 번 더 해” 본 공연까지 세 번 공연을 한 셈이 되고야 말았다는 이 불굴의 한국인들, 그 초긴장의 상태는 가히 짐작이 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해서 브로드웨이 모든 관계자들이 다 보러왔는데 있는 힘을 다 짜내서 공연을 했어요. <영웅>이라는 뮤지컬을 미국에 보여준다는 자체만으로 내가 할 일이 많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정직하게 공연하는 게 애국하는 길이고 공연을 제대로 보여주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죠. 끝나고 커튼콜을 하는데, 제가 등장하자마자 천 몇 백 명의 관객이 다 일어나는 거에요. 그걸 보니 뭔가 한줄기 눈물이 핑, 하고 도는 게, 아, 이런 감정이구나, 그러다가 다시 멍 해지기 시작했죠.”


그 후 만난 한국의 관객들. 위대한 실존 독립 의사의 역할을 다시 맡고 있는 그는 “조금이라도 힘 주어 연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평범함이 굉장히 건전했던 사람이 나중에 영웅이 될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나라가 누구에게 빼앗겼을 때의 평범함은, 그 사람들에게 비는 게 아니라 나라를 되찾기 위해 뭔가 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했죠.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몸을 사리게 되고.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나라를 위한 일을 계속 하면서 그 평범함을 계속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하다가, 물론 이토 히로부미를 저녁해서 안중근 의사가 유명해지긴 했지만 저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분은 영웅이 되셨을 거에요.”

평범함이 낳는 위대함의 이야기. 정성화는 영웅의 모습을 일상의 ‘아버지’에서 찾기도 했다.

“우리를 위해서 특별한 것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사시는 분, 우리의 영웅, 바로 아버지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내가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평범하게, 영웅이 되고자 하는 심리 없이 살아가다, 어떤 계기에 의해 불려지는 게 영웅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중언부언 했나요?(웃음)”

엄청난 터닝포인트, 잘 지내온 것 같은데 또 하라고 하면? 어휴~

2009년 <영웅>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그가 택한 작품은 영웅의 거룩하고 위대한 면모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시절 모르고 모험을 떠나는 뮤지컬 <스팸어랏>의 아더왕과 이성애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로 분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가 그것이다.

“코미디에 목이 마르더라고요. 제가 태어난 곳이 코미디 아니겠습니까.(웃음) <스팸어랏>을 했을 때는 뭔가 되게 좋구나, 오랜만에 돌아온 것 같고, 사람들은 어떻게 볼 지 모르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자’ 그렇게 된 거죠.(웃음) 생활에 활력도 더 생기고요.”

이성애자 정치범 발렌틴에게 끊임없이 영화 이야기를 해 주며 사랑하는 마음을 그 만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위험을 감수했던 동성애자 몰리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풍부한 성량과 음색으로 노래하는 정성화의 매력을 접어둔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 상황에서 연극 한 편은 굉장히 중요하고 괜찮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간 묵직한 역을 맡아오면서 사람들에게 그런 이미지로 각인될 때쯤, 이 사람(정성화)은 전혀 새로운 역도 할 수 있구나, 도대체 종잡을 수 없어, 라고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거미여인의 키스>를 하게 된 거죠. 엄청나게 굉장히 중요한 터닝포인트였고 잘 지나왔는데,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웃음) 너무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대사가, 세상에, 제가 10년 동안 친 대사 중에 가장 많은 것 같아요.(웃음)”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무대 위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이 끝까지 좇아야 하는 무엇이며, 갈증을 느끼는 대상일 것이다. 더 뮤지컬배우다워지기 위해 연극을 택했다는 정성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어떤 분이 제게 뮤지컬 배우들이 무슨 연기를 아느냐고, 그냥 노래한다고 하라고 했을 때 굉장히 기분이 상했었어요. 아직 이런 시각이 다른 분에게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연기를 잘 하면서 노래도 잘 하는 사람으로 대중들에게 서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작품을 했던 것도 같아요.”

아직도 다른 현장에서는 ‘좀 잘해라’는 말 들어.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무대 위에서는 ‘절대 성화’의 이름을 뚜렷하게 각인시키고 있는 그이지만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 친구’가 더욱 친근한 그이다. 그의 무대를 사랑하는 팬들은 ‘우리 멋진 배우의 고군분투’가 조금은 속상할 때가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분들은 매니저분한테 다짜고짜 “정성화한테 그런 거 시키지 말라고, 당신 뭐 하는 사람이냐”고 그러기도 하세요. 매니저 형님들도 살짝 상처를 받았다고.(웃음)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 가면 한 없이 내가 작아지기도 했어요. 감독님들이 무시하기도 하시고, 몇몇 배우들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연기 좀 열심히 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그런데 오히려 그곳에 가면 마음도 정화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되요. 한 군데 머물면서 내 위치에 취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고, 또 이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뭔가 끌어당길 수 있는 꿈도, 희망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내가 낮은 자세로 일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라고요. 뮤지컬에서 인정받은 만큼, 제가 시작한 그곳에서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제 도전이에요.”

한 동안 영화 ‘특별출연’이 많았다는 매니저의 귀띔이다. 정성화는 한사코 “특별출연이 아니라 단역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가서 열심히 내 역할을 잘 하고 오면 되죠. 특별출연이라 하면 돈을 받고 오느냐, 못 받고 오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지만(웃음) 사람들과는 굉장히 친해져요. 나중에 어떤 좋은 역할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는 거에요.(웃음)”

내일을 위한 오늘의 준비.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더러 이야기도 많이 해 준다는 그는 “운을 잡기 위한 준비”가 가장 중요함을 이야기 한다.
“스타가 되는 것은 상당히 운이 많이 작용합니다. 그런데 운은 어느 순간에 올 지 몰라요. 그래서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운이 와도 그 운이 제 명을 발휘 못하고 금방 사라지는 경우가 많죠. 특히 무대 위에 선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는 아무 관심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보이겠지’하고 스스로를 가둬버리죠. 그걸 깨는 작업을 굉장히 합니다. 10년 이상 무명으로 지내면서 이름 석자 알리기도 힘들었고, 그 시간을 지내면서 조금씩 내공이 쌓여간 것이겠죠. 든든한 배우가 된다는 건, 자기를 준비시키는 과정에서 다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개그맨에서 뮤지컬배우라는 또다른 이름을 얻기까지 그를 향했던 불편하고 의심 많았던 시선들을 바꾸기 위해 정성화가 기울였던 노력은 ‘무명 10년’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웃기고 개구진 사람에서 묵직하고 선 굵은 절규로 관객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흔들어대는 사람으로 서기까지 그를 지탱하고 이끌어 온 것은 무엇보다 자기 확신이었다.

“30대 초반 혼자 살 때였는데 돈이 없어서 자동차도 팔고 집에서도 나가야 될 상황이어서 바텐더를 했어요. 그 때 같이 일했던 사장님이 “성화야, 나랑 여기서 일하자, 너 잘할 것 같아,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러셨는데 그 말이 굉장히 무서웠어요. 빠질 뻔 했거든요. 그 때 잘 빠져나왔어요. 전 확신이 있었거든요. 배우라는 직업을 그만 둘 필요는 절대 없다. 앞으로 난 할 것이 많고 난 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했었죠.”

세상에서 가장 갖기 힘든 것, 그러나 무엇보다 크고 값진 인생의 엔진이 되어 주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아닐까. 신이 주신 정성화의 그 어떤 달란트 보다 스스로 일궈 지탱한 자존심은 배우 정성화의 내일을 더욱 탄탄하게 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립극장에 이어 내년 봄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안중근으로 선 이후, 그가 어떤 변신과 도전으로 관객들을 맞이할 지도 역시 기대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이민옥(okjassi@daum.net), 디자인: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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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4

  • A** 2012.02.18

    하..............정성화님의 안중근역은 정말 어디 흠잡을데가 없는거같아요 ㅠ_ㅠ 전옛날에 한번보구 미친듯이 빠져서 헤어나오질못했었죵...정말 충격으로 다가왔슴..!! 솔직히 정성화님이 한다고해서 '에이,,' 라는 생각이 먼저들었는데. 그것은 나중에 맘속으로 깊히 사죄하는일이 되었습니다 ㅎㅎ그후로도 전 가끔 유투브에서 '누가죄인인가' 영상을 가끔 챙겨보곤하죠^^ 뮤지컬 영웅에는 버릴곡이 하나도없는거같아요. 아- 또보러가고싶네요^^ 정성화님 앞으로도 공연 계~~속 해주세요!! ㅎ화이팅^^

  • A** 2011.12.21

    작년에보고 지난주말에 영웅을 보고왔는데 영웅을 4번을 봤는데 전부 정중근을 봤거든요... 완전 매력이 넘치시는 배우님이시라니까요 정말 영웅을 보면서 감탄과 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고 정성화배우님의 또다른 모습도 볼수 있었고...이제 브라운관도 그렇고 공연에서 자주 뵙으면 좋겠어요 ^^

  • A** 2011.12.15

    작년에 이어 이번년도에도 '정중근' 님 만나뵈러 갑니다! 최고에요!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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