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승리'가 있다

프레스 콜(언론매체를 위한 별도 공연) 때 잘하시던걸요?
"아이고, 그날 너무 못했어요."
뭐가요?
"그 전날 정말 잘했거든요(웃음). ‘아, 이렇게만 하면 된다’, 그랬죠. 그런데 프레스 콜 때 몸이 좀 안 풀리고, 목도 덜 풀리고 그랬거든요."


막이 오른 뒤

2006년 가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다섯 남자가 모인 그룹 빅뱅의 등장은 말 그대로 단숨에 한국 가요계를 흔드는 ‘빅뱅(Big Bang)’이었다. 이후 1장의 정규 앨범을 비롯해 수 많은 싱글, 미니 앨범, 그리고 끊이지 않는 콘서트를 통해 수 많은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그룹 빅뱅. 가수로서 질주의 엔진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이때, 막내 멤버 승리가 더블 캐스트로 뮤지컬 <소나기>의 주인공인 소년 동석 역을 맡아 무대에 서고 있다.

"팬 분들은 많이 좋아하시는데, 뮤지컬을 좋아하시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공연을 어떻게 봐 주셨는지는 모르겠어요. 공연을 어떻게 보셨는지, 빅뱅의 승리가 아닌 배우 승리로서는 어땠는지 다른 분들은 인터넷에 많이 글을 안 써주셔서요, 팬 분들은 이렇다 저렇다 글을 많이 써 주셔서 아는데."

첫 뮤지컬 무대 소감을 묻자, 냉정한 시각을 잃지 않으려는 신중한 자세가 묻어져 나온다.

▲전국 투어 콘서트까지 하고 있는데 힘들진 않나요?
힘들다기 보다는 재미있어요. 저는 뭐 워낙 많은 일을 하니까요(웃음).
▲뭐 그렇게 일 욕심이 많아요?
솔직히, 이런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살면서(웃음). 저는 정말 인생을 특별하게 살고 싶어요. 뮤지컬을 하고 있지만 콘서트도 팬 분들 위해서 춤도 만들고,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뮤지컬 한다고 콘서트를 부실하게 하면 그것도 잘못된 거잖아요. 전 가수고, 그룹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콘서트인데. “뮤지컬 하니까 공연 건성건성 하는거야” 그런 말 듣기 싫어서요.



동석과 승리 사이

뮤지컬 <소나기>에 삽입되는 노래 ‘언제나 내겐’과 빠른 비트의 팝송, 춤, 그리고 대사연기까지 결코 녹록하지 않을 법한 3차의 오디션을 보고 승리는 소년 동석이 되었다.

▲무대에 서 보니 어때요?
뮤지컬 하고 계신 분들은 다 공감하시겠지만, 굉장히 매력 있는 장르고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분야라서 하면 할수록 계속 빠져 들더라고요. 많은 작품들에 눈이 가게 되고, 관심이 가게 되요, ‘다음에 저런 작품 하고 싶다’ 라고요.

▲그럼 연습은 3월부터 시작된 건가요?
빅뱅 스케줄을 병행해야 해서 굉장히 어려웠는데, 연습 시간만큼은 온 힘을 다해서 집중했어요. 저에게는 1시간, 1분, 1초가 너무나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새로운 거잖아요. 게다가 항상 사무실에서만 연습하다가, 이런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곳에 와서 외부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보고 느끼고. 너무나 모든 게 즐거웠어요. 항상 리허설 끝나고 오면 힘들긴 하지만, 그런 거 있잖아요 뿌듯함. 정말 재밌었어요.

그는 말 할 때마다 반짝이는 눈빛과 생기가 가득한 얼굴로 상대방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스폰지처럼 주변의 것들을 담뿍 흡수해 유쾌히 내뿜는 그의 기운을 느끼게 되는 건 순식간이다.

▲다른 단원들은 전문적인 배우들이시잖아요.
들어오기 전에 멤버 형들이 겁을 주는 거에요. “배우들은 자부심이 커서 가수들이 와서 한다고 하면 싫어 할거다, 가서 잘해야 된다”, 막 그러면서요. 그래서 잔뜩 겁을 먹고 들어왔는데 막상 와보니까 다 너무 친근하게 대해주시고, 엄마처럼 형처럼 대해주시니까 저도 마음도 편하고 그래서, 막 애교도 부리고, “아, 엄마 왜 그러세요, 형 왜 이러세요” 그러면서요(웃음).”
 
소녀 역할을 맡은 배우와의 호흡을 묻자 조금 당황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연경이 누나, 유미누나도 정말 배태랑 배우시고, 잘 리드해 주셔서 전 열심히 따라갔어요. 근데 처음엔 많이 힘들어하셨대요. 나이차도 있고, 저랑 처음에 같이 할 때 ‘너의 신선함에 적응을 못하겠다’ 하시면서요. 한 3일간은 정말 힘들어 하시더라고요(하하하).”
▲너무 신선해서요?
제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처음에는 제 멋대로, 하고 싶은 데로 막 했거든요. 제 톤 같은 게 어리고 그러니까 “너한테 맞춰야 할 것 같다, 재미있을 것 같다. 많이 맞추자”, 그래서 소녀랑 많이 이야기 하고, “누나 이 부분에는 소녀가 이러니까 동석이가 이래야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요. 다른 배우 분들과 대화하면서 바뀐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책 거꾸로 드는 것도 다 상의해서 만든 거예요.
▲그래도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과 배우로 서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텐데요.
굉장히 간단한데요, 가수로 무대에 서면 승리이고, 배우로 무대에 서면 동석인거죠. 승리의 모습은 팬들을 보면서 승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뮤지컬에서는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동석의 심정은 어떤지를 노래와 연결해야 해요. 좀 느낌이 달라요. 말로 표현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무대 위에 서 있는 거면 다 승리이지만, 다만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에 배역에 맞는 인물이 되는 것 같아요.
▲연기 쪽에도 욕심이 많은가 봐요?
저 욕심 되게 많아요. 그런데 지금 이것저것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지금 주어진 상황의 일을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기회가 온다고 생각해요. 소나기 작품 하면서도 끈기를 가지고 ‘이번 기회에 변신한 모습으로 내 길을 하나 더 보여주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매회 전력을 다할 생각이에요.
▲공연보고 솔직히 ‘생각보다 잘하네’ 했어요.(그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작게 흔들며 “와~”했지만 이내 부끄럽다며 쑥스럽게 웃는다.)
뮤지컬 시작한 이후, 계속 뮤지컬 음악을 들어요. 며칠 전까지도 ‘노트르담 드 파리’를 들었어요. ‘새장 속에 갇힌 새’, ‘달’은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뮤지컬은 큰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 많은 일들이 노래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가요들은 대부분 사랑얘기잖아요. 뮤지컬에는 인생얘기, 가족애, 형제애 등 다양하고 안 접해본 것이어서 정말 매력 있어요.


승리와 승현 안에

▲한창 사랑을 꿈 꿀 나이인데 너무 일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물론 어린 나이긴 한데, 저도 첫사랑이 있었어요. 정말 좋아했고 오래 만났는데, 헤어지게 되었죠. 너무 슬프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첫사랑을 만나면 대부분 후회한다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쯤 만나보고 싶어요. 근데 헤어지고 나서 감정이입이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배우들도 연기 할 때 자기 경험을 이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런 거 없어요. 공연 중에 딴 생각은 안 해요. 제가 소나기 공연하면서 두 번 울컥하는데 하나는 형이랑 엄마랑 같이 서서 노래 부를 때! 제가 장남이라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또 소녀가 죽을 때도 울컥하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울컥해요. 참 이상해요, 갑자기 호흡이 빨라지면서. 음악이 나오고 분위기 그러니까, 정말 이상하죠? 연습실에서는 안 그랬거든요. 무대에서만 그래요. 프레스 콜 끝나고 집에 가도 계속 그 감정을 주체 못하겠어요. 감정이 복받치고. 그게 최고의 매력인 것 같아요.
▲부모님들은 공연 보셨나요?
첫 공연 보셨어요. 너무 자랑스럽다고. 그런데 어머님은 슬퍼하시더라고요. 우리 아들 첫 공연인데 아침 밥도 못 차려줬다고요. 미안하다고 막 그러시는데, 아니라고, 우리 매니저 형이 좋은 것만 사준다고 안심시켜드렸어요.

그는 승리 자신의 이야기 보다 빅뱅의 승리, 소나기의 동석, 그리고 부모님의 장남으로 이야기 할 때 놀라우리만치 의젓함을 보인다.

▲음식 뭐 좋아해요?
저 김치찌개 최고로 좋아해요, 한식! 돈가스, 햄버거, 치킨 절대 안 먹어요. 그런 기름기 있는 음식 먹으면 몸이 둔해져요. 예전에 돈가스 먹고 리허설 한번 했는데, 죽겠는 거에요. 무거워서 몸도 입도 뜻대로 안 움직여지고요. 그래서 ‘두 번 다시 안되겠구나’ 했죠. 그래서 항상 얼큰한 것! 한식으로다! 밥심으로다!
▲아저씨 같아요.
(웃음) 한국사람이니까 밥심이죠!

빅뱅은 데뷔 전 그들의 데뷔 준비 기간을 담은 다큐 프로그램으로 먼저 세상에 인사했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 6년이 넘게 수 많은 시간 동안 연습과 테스트를 통해 음악의 기초를 닦아온 그들 앞에 흔히 말하는 ‘아이돌’의 타이틀은 너무 가벼운 게 사실이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 하실 만 한 것 같아요. 데뷔 때부터요. 십대에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해요.
중학교 들어오면서 그때 뭔가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마침 학교 축제 때 댄스 팀 형들이 와서 춤을 추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춤을 추게 되었고 그러다 광주에서 조금 유명해 졌죠.
▲’일화’죠? 근데 그 뜻이 뭐예요?
아, 일화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남아 있겠다는 뜻인데, 그것도 제가 지었어요. 창단 멤버로(웃음).

이후 오디션을 통해 YG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그는 ‘거친 들판’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죠. 철부지에 실력도 없고 겉멋만 들고. 점점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많이 울기도 했죠. YG오디션 볼 기회가 생겼을 때 ‘정말 잘 해야지’하고 노래며 춤이며 말투, 표정, 성격 다 고쳤어요."
▲근성이 장난 아닌 것 같아요.
저 한번 떨어졌잖아요.(빅뱅 최종 멤버 선정 때 그는 한번 쓴 잔을 마셨었다.) 너무 떨렸지만, ‘그래? 다시 한번 해서 멋지게 보여주자, 자신있게!’ 그랬죠. 

욕심도, 열정도, 그리고 경험의 아픔도 기쁨도 많은 사람. 10대의 마지막에서 꿈꾸는 소원은뭘까.

"지금의 제 순수한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아요(웃음). 노는 것 좋아해서 걱정이긴 하지만."

에이, 활동하는 거 너무 좋아해서 노는 것 별로 일 것 같은데.
정말 좋아해요. 시간이 나면 하와이에 가고 싶어요. 작년에 갔다 왔는데 너무 좋아요(웃음). 그래서 사장님한테 졸라 보려고요, 뮤직비디오 찍자고(웃음).
▲ 10년, 20년 후 ‘걸어온 시간이 제법 괜찮다’ 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자식들에게 뿌듯하게 “아빠가 이런 일 했었단다”, 이렇게요.
▲ 어떤 아빠 되고 싶어요? 아직 한참 멀었지만.
닮고 싶은 아빠요. “아~, 나 아빠처럼 되고 싶어” 막 이럴 수 있게요. 예전에 저도 아빠 되게 닮고 싶어 했거든요.
▲아버님이 멋쟁이셨나보다.
최고셨죠. 그런데 저 때문에 많이 고생하시고, 술도 많이 드시고. 근데 지금은 많이 기뻐하시죠. 온 가족이. 친가부터 외가까지….명절 때도(웃음).
▲명절 때 사인 몇 천장 해야 되지 않나요?
아, 그렇죠. 그런데 또 부탁 안 하면 섭섭해요.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자!’ 그러죠.
▲다음에도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빅뱅으로서 활동이 있기 때문에 작년에 이어서 열풍을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해야하지만 기회가 되면 좋은 작품 했으면 좋겠어요. 그때도 기자누나 취재 오실거죠?
▲그러고 보니 단장님만 단장님이고 다 형, 누나네요.
네! 조연출님, 배우님, 좀 그렇잖아요. 형, 형, 누나, 누나, 이래야지(웃음).



글 : 황선아 기자(인터파크ENT suna1@interpark.com)
사진 :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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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4

  • A** 2008.04.22

    기회가 되서 승리군이 나오는 소나기 봤는데 정말 연기 잘하더라구요. 몰입이 그냥 쏙쏙 잘되는게. 멋집니다!

  • A** 2008.04.21

    나이는 어리지만 목표를 향한 열정과 노력은 그 누구보다 큼을 느끼네요 소나기에서 멋진모습 앞으로도 쭉 보여주세요

  • A** 2008.04.21

    기자언니., 안티 생기겠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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