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대한민국에 우리 같은 음악은 없다"

대중에게 장기하와 얼굴들은 심드렁한 생활밀착형 가사가 이상하게 매력적인 록밴드일 것이다. 기자에게 장기하는 영민함과 솔직함을 넘나드는 색깔있는 인터뷰이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깔고 가야할 전제가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요즘 록이 더 좋아지고 있는”, 그래서 계속 발전하는 현재 한국 록의 보석들임을 말이다. 싸구려 커피 이후 5년, 연말 콘서트와 3집 준비에 한창인 장기하를 만났다.  "별 일 없이 산다"를 외치던 그의 "별 Rock 있는" 이야기.

최근 라디오 진행, 콘서트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라디오는 반년 정도 진행하고 있고 콘서트도 한 달도 남지 않았으니 준비 중이다. 그 외엔 영화 ‘범죄와의 전쟁’ OST 싱글 한 곡 냈고, 최근엔 3집에 들어갈 곡을 거의 만들어서 멤버들과 매일 만나 편곡 작업을 하고 있다.

곧 3집 앨범이 나오겠다.
내년 상반기에는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매번 화제를 모았는데, 부담감은 없나.
부담감이 없다는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일단 음악이 마음에 든다. 한 곡을 완성했다는 건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거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간에 폐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편곡을 멤버들과 합주를 하면서 살을 붙이는데 점점 곡이 좋아지는 걸 느끼고 있다.

“한 템포 쉬어가는 기회”

라디오 진행은 새로운 경험이겠다. 스스로 변한 점이 있다고도 했고.
매일 매일 똑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마치 매일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스로 상태가 어떤가 돌이켜 볼 수 있는 점이 신선하다. 무엇보다 술을 줄였다. 남들은 주말에만 마시는 걸 난 평일 낮부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셨는데 밤 10시부터 일을 하니 평일 낮술은 이제 없어졌다. 콘서트 소개글에 팬들을 친구처럼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썼는데...그 전엔 개인적인 교류가 별로 없었다. 2008년 여름에 홍대에서 처음 시작해 그 해 10월에 페퍼민트 페스티벌에 나갔으니...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것?) 생각보다 좀….그랬는데 라디오를 하면서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글들이 올라오니까 더 가깝게 느껴진다.

팬들의 소중함도 느끼는 거 같다.
장기하와 얼굴들로 활동한지 5년이 됐고, 인디밴드 생활을 시작한 지는 10년 정도 됐다. 이제 음악이 슬슬 직업으로 받아들이게 되니까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굶어 죽는 거다. 죽…기야 하겠냐만은. 고마운 마음도 들고, 더 가깝게 느껴지고, 왠지 더 친해진 느낌이다.

연말 콘서트는 어떤가. 장기하와 얼굴들은 처음 재미있는 퍼포먼스로도 주목 받았다. 이번엔 신곡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컨셉트로 무대를 꾸밀지 기대된다.
우리 밴드는 신곡이 나오지 않아도 1년 전 공연과 많이 다를 수 있다. 같은 곡이라도 밴드가 성장을 하니까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팬들과 소통하는 장치를 심어 넣으려고 한다. 처음 우리가 콘서트를 할 때 음악 외적인 요소를 많이 첨부한 편이었다. 예를 들면 미미시스터가 춤 추는 것도 그랬고. 그러다 점점 음악을 위주로 한다고 해서 재미가 없진 않고, 우리가 성장 하려면 음악 외적인 걸 차츰 줄여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2년 동안 계속 그렇게 해왔다. 2집 앨범 이후엔 점점 말이 없어지고 하지만 뭔가 리듬과 소리로 느끼는 재미는 더 커지는 공연이었다. 이번엔 한 템포 쉬어가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 다시 이야기도 좀 많이하고 음악 외적으로 관객들이 제한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고 싶었다. 겨울엔 따뜻함이 절실하지 않나. 이번엔 팬들과 좀 더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해보고 싶어서 방향을 틀어 보려고 한다.

콘서트나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하더라. 손을 이용한 2집 뮤직비디오는 저예산 같은데 참신했다.
돈은 확실히 적게 들었다. 결과적으로 뮤직비디오가 우리 2집을 알리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1집 때는 사실, 그게 일이 희한하게 돼서 언론에서 알아서 88만원 세대를 대변한다느니, 인디계의 서태지라느니 뭔가 수식어를 많이 붙여줬다. 그건 루키라서 그런 거고, 2집부터는 루키가 아니지 않나. 더 많이 알려야 하는데 알아서 띄어주는 일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뮤직비디오 하나가 있어서 2집 음반이 더 많이 팔린 것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넓은 풍경을 찍으면 일이 커지니 반대로 뭔가를 클로우즈업 하면 재미있는 걸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생각한 게 손이었다. 손으론 뭔가를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직접 다 해야지 직성이 풀려 보인다.
좀 그런 스타일이긴 하다. 1집은 편곡까지 내가 다 했다. 한 마디로 멤버들에게 완성된 악보를 주면서 정확히 이대로 연주하라고 했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인데, 어느 순간 모든 걸 내가 다 하면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2집은 편곡을 멤버들과 같이 했고 3집은 2집 보다 같이 만들어 가는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뮤직비디오도 처음엔 혼자 다 했으니까 다음엔 재능 있고 우리 음악에 호감을 가진 분과 함께 해도 좋을 거 같고.

언제부터인가 안경과 수염이 없어진 거 같다. 아이돌 같기도 하고.
하하, 아이돌 같다고?

외모에 변화를 준 이유가 있나.
그냥 굳이 일부러 늙어 보일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있으면 일부러 어려 보이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는데. 처음에도 일부터 수염을 길렀던 건 아니고, 그냥 학교 다닐 때부터 그렇게 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관성적으로 나왔던 건데, 나오고 보니 TV에 나오는 사람 중에 그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없더라. 이젠 굳이 그럴 거 없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웃음).

 

장기하와 얼굴들 음악과 살짝 매치가 안 되기도 하는데?
그게…. 사람이 너무 예상했던 바와 들어 맞으면 재미 없다. 우리가 천년만년 '싸구려 커피'만 부를 순 없고, 조금씩 다른 음악을 해야 하는데 과거의 히트곡과 연관된 이미지에 얽매여서 외모도 거기에 맞추고, 그럴 이유는 조금도 없다.

최근 힐링캠프에서의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짐작했던 모습과 확실히 다르긴 했다.
방송 자체가 그런 식으로 된 것 같다. 장반전이라는 등..

록을 하면서 왜 저항의식이 없냐는 이야기는 없었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이 그런 걸 어떻게 하나. 많은 분들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저항의식이 없다고 하면 체재순응적이고 권력에 빌빌 거릴 거 같고, 둘 중 하나로만 생각을 하시니까 문제가 되는데 그렇진 않다. 그냥 생긴대로 살고 싶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음악까지 하면서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다. 난 신문을 잘 보지 않아서 시대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른다. 다행히 주변에 생각이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투표를 하는 정도다.

“서양음악이지만 한국말에 맞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뭔가 일상적이지만 이면은 심도 있어 보이는 가사가 사회적인 의식이 강하다는 이미지를 더 굳힌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일관되게 가져온 태도는 두 가지인 것 같다. 나의 진심은 무조건 들어가야 하고 주변에 있는 것들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어색해 지니까. 장기하와 얼굴들 시작하기 전에 만들었던 노래도 다 그렇다. '싸구려 커피'도 군대에 있을 때 쓴 건데, 내무반이 구식이고 오래돼서 옛날 노란 장판이 깔려 있었다. 그 장판 위에서 생활하면 계절을 굉장히 잘 느낄 수 있거든. 더운 날엔 제습제를 나눠주는데 그게 믿을 수 없이 금방 꽉 찬다. 이병 때 사람 수대로 커피믹스를 타는데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말할 수 없지 않나. 그래서 그걸 마시면 또 속이 쓰리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우울하니까 그런 것들이 다 기분과 연관되게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죽 나열을 한 거다.

‘우리 지금 만나’나 ‘아무 것도 없잖아’ 등은 뒤에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것도 많나.
‘우리 지금 만나’ 는 경험에서 출발한 건 아니고 기타 리프를 먼저 만들었던 거다. 신중현과 엽전들은 되게 좋아하는데 그런 한국적인 기타 리프가 랩이 잘 어울리는 리듬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리쌍에서 곡을 달라고 제안을 했다. 평소 굉장히 좋아하던 팀이기 때문에 기회다 싶어서 만든 노래다.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 지금 만나란 말이 생각났다. 노래를 만든 이후에 관련된 경험이 생기기는 하지만 경험담은 아니었고, 대신 평소에 하는 억양을 살려서 멜로디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난 평소에 말할 때 ‘우리’가 이 음이라면, ‘지금’이 살짝 높고, ‘만나’가 살짝 낮다. 평소 억양을 살려서 멜로디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장기하와 얼굴들 음악은 산울림 초창기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1세대 록을 성공적으로 잇고 있단 평가도 받는다. 방금 말한 억양을 살린 멜로디의 특징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대해서 반박할 생각이 전혀 없고 성공적으로 잇고 있단 평을 받는 건 굉장한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솔직히 그 시대 이후 한국 음악엔 관심이 별로 없다. 2000년 초반에 산울림 음악을 듣고 이 노래가 한국말로 서양음악을 하는데 있어 정답이라고 한다면 이런 거구나, 생각을 했다. 기본적으로 서양음악은 요즘 나오나 예전에 나오나 그게 그 나라 음악이기 때문에 그 언어에 완전히 특화돼 있다. 영어에 잘 어울리도록 만들어져 있는 거다. 우린 지금 서양음악을 해야 하니까, 그럼 한국말에 맞게 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별로 그런 노력이 많은 것 같진 않다. 오히려 한국말 자체가 가진 개성을 죽이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옛날 산울림이나 송골매, 송창식 선배님 등 그 당시에 활동했던 선배님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마인드가 있었던 것 같다. 한국말이 평소에 이런 억양을 가지면 적어도 이런 이런 억양을 살려서 노래를 만들어야지, 그래야 가사 전달도 훨씬 잘되고. 음에 말을 끼어 맞추면 가사집을 안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2008년 데뷔해서 5년 차가 됐다. 메이저와 마이너의 경계에 있다고 말했는데, 인기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솔직하다 싶었다.
우리는 싱글을 팔아서 1집 냈고, 1집 팔아서 2집 냈고, 2집 팔아서 3집 내려고 하기 때문에 계속 인디밴드다. 인디면서 메이저이고 싶은 거다. 지금보다 더 많은 분들이 들어주셔도 좋을 가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 하는 거고. 인디밴드가 인기에 연연하면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다. 그리고 어떤 밴드들은 자기가 인기 없는 걸 정당화 하기 위해 나는 애초에 인기에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해서 30명 앞에서 공연을 할 때부터 우리 음악은 대중음악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다녔다. 대중음악은 인기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음악이지 않나. 대중음악인데. 그런 의미로 지금보다 더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그런데 인기를 얻기 위해 내가 생각했을 때 구린 음악을 발표한다든지, 말도 안 되는 사람과 콜라보 앨범을 한다든지, 이럴 생각은 전혀 없다.

“대한민국에 우리 같은 음악은 없다”

이 참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매력을 어필한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남들과 같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한 가지 자신 있는 건 대한민국에서 우리 같은 음악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우리 같은 락밴드가 전세계적으론 많겠지만 사실, 한국말을 가지고 한국말에 최대한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는 록밴드는 해외에는 당연히 없지 않나.

세계유일밴드네?
그런 것과 다름 없다. 그런 점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거다. 남들과 다르긴 한데 공감은 안 간다, 그럼 문제지만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피부로 느낀 건, 사람들이 공감을 해준다는 거다. 남들과 같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니, 괜찮은 음악이다. 록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르는 아니라 어려운 음악이라고 오해를 하는 거 같은데, 유행은 돌고 도니까. 나란 사람은 록이 좋아지고 있어서 계속 하는 거다.

 

록이 좋아지고 있단 말은 무슨 뜻인가.
2집을 낼 때 까지만 해도 무조건 록이다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재미있는 음악을 하는 건데, 어느 날 갑자기 일렉트로니카, 힙합이 될 수도 있고, 겉옷일 뿐이지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와서 락앤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확실히 락앤롤이 가진 특유의 매력은 다른 장르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분기점이 있나.
오아시스란 밴드를 좋아하게 된 전과 후로 나뉜다. 오아시스를 싫어했었다. 아무런 혁신이 없는 진부한 밴드라고 생각했거든. 지금도 혁신이 없는 밴드임은 확신하지만, 그걸 떠나서 락앤롤을 잘하나,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였던 것 같다. 그들은 락앤롤을 정말 잘했다.

늘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겠다.
약간은 그렇다. 아예 없진 않다. 왜냐면 그 정도로 락앤롤의 고수는 아니니까. 우리는 새로운 걸 해야 한다. 2집과는 전혀 다른... 이런 저런 의도가 3집에 반영이 될 것 같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인디밴드의 선두 주자다. 많은 인디밴드들에게 롤모델이 됐을텐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음……….

관심 없나.
크게 관심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관심이 있는 음악에 관심이 있지 인디라고 해서, 아이돌이라고 해서 관심 있고 없고가 아니다. 들었을 때 괜찮은 음악이면 출신성분(웃음)을 떠나 관심이 있다.

음악은 좋은데 대중의 관심을 못 받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런 경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참 좋은데 일반 한국 사람이 좋아하기엔 굉장히 어렵겠다, 이렇게 느껴지면 그런 분들한테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무슨 노력이라도 해라,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 하면 음악이 변질될 테니까.

내년 앨범 계획 말고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전혀 새로운 장르인 드라마 같이.
연기에 관심이 많다.

자신 있어 보인다.
재능이 있는지는 검증이 안 돼서 말 못하겠지만 내 생각엔 잘 할 것 같다.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싸구려 커피가 연상되는 추리닝 입은 자취생 역할만 아니면 다 괜찮을 거 같은데? (웃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두루두루am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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