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루돌프><아이다><오페라의 유령> 명장면으로 만나는 연말 핫 스테이지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가슴 속을 맴도는 명장면들이 있다. 한 작품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기도, 의외의 즐거움으로 관람에 흥을 돋구기도 하는 뭉클하고 따스하며 기발하고 기가막힌 순간들. 이 장면을 놓쳤다면 그 작품을 봤다고 말할 수 없다지. 12월 연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단 한편도 빼 놓을 수 없는 핫 이슈 스테이지. 그 중 놓치면 섭섭하고 원통할 명장면이 여기 있다.

 


Best of Best

하루하루 쫓기는 삶을 살아가는 장발장, 프랑스 혁명 전야 젊은 혁명가 앙졸라의 투지, 혁명 무리에 가담해야 하는가, 첫눈에 운명임을 깨달은 코제트 곁에 남아야 하나 기로에 선 마리우스, 마리우스를 통해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뜬 코제트, 그리고 마리우스의 사랑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가슴 아파하는 에포닌, 어린 혁명군들을 처단할 것을 다짐하는 자베르 등 그 무엇도 알 수 없지만, 그 무언가를 다짐하게 되는 내일에 대한 <레미제라블> 전 출연진들의 독백의 하모니가 장관이다. 심지어 혼란스러운 시대 속 사람들의 뒷주머니를 슬쩍하는 건 죄도 아니라며 내일 한 몫 잡기에 들뜬 떼나르디에 부부의 모습도 펼쳐진다.

앙졸라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혁명 대열이 무대 중앙 삼각구도로 전진하는 모습이 장관. 그 양 옆엔 삶의 고난과 내일의 두려움을 외치는 장발장과 코제트, 혁명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자베르가 서 있고 무대 2층엔 이기적인 떼나르디에 부부가 자리해 시선을 가득 채우며 장엄하고 단단한 기운을 폭발할 듯 뿜어낸다. 끝이 없는 가시밭길 위에 놓인 이들이 2막에 맞이할 사건들, 그리고 그 앞에 당당하게 맞서며 내일을 기약하는 이들의 절규는 터질듯한 함성과 감동으로 1막 대미를 장식한다.

Plus+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버전으로 공연되고 있는 한국 무대에서는 오리지널의 회전무대를 효과적으로 대신하고 있는 컴퓨터영상합성기법, CGI 애니메이션의 효과가 탁월하다. 빅토르 위고가 직접 그린 삽화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디자인한 무대 위에서 이 효과는 가상의 공간과 그 이동, 변화를 탁월하게 대신하고 있다. 특히 2막에서 부상 당한 마리우스를 구해 도망가는 장발장의 모습이 압권. 장발장이 방향만 바꾸며 제자리 걷기를 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수구 이곳 저곳을 이동하는 모습이 감쪽같이 구현된다.

 


Best of Best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확신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황태자 루돌프> 속 비운의 연인 루돌프와 마리 베체라가 ‘서서히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것 보다 단 한 번으로 끝내는’ 종말을 앞두고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 마리 베체라의 안위를 걱정해 이별을 고했던 루돌프, 그런 루돌프의 뜻과 가족을 위해 떠나려는 마리, 이 둘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되고 루돌프가 ‘감성이 이성이 되며’ 유일한 평안함을 주었다는 마이얼링으로 함께 향한다. 환하게 켜진 촛불이 하나, 둘 꺼지고, 드디어 마지막 하나의 불꽃이 사라지면 천지를 뒤흔드는 총성 소리와 함께 이들의 영원한 안식이 시작된다. ‘죽을 때까지 너 하나만 사랑하러 왔나 봐, 너는 내 지친 영혼의 영원한 쉼터, 두려워 마 사랑이야, 불 같은 운명 속에 온 몸을 던져 앞을 봐 이건 사랑’

Plus+

1막 중간, 작품을 통틀어 유일하게 밝고 경쾌한 장면으로 사랑에 빠져드는 두 남녀의 발랄함과 즐거움이 한껏 드러나는 장면이다. 우연이 거듭된 만남을 통해 서로의 사상과 뜻, 호감이 겹쳐지는 루돌프와 마리는 함께 스케이트를 타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배우들 모두 기가 막힌 스케이트 솜씨를 펼치지만 사실 연습 기간 동안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는 것이 배우들의 커다란 고충 중에 하나였다는 후문. ‘트랄랄라’라는 넘버명 같이 경쾌한 장면에 이들이 첫 키스를 하게 되는 ‘처음 만날 날처럼’까지 달콤한 시간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Best of Best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한 누비아 백성들이 그녀들의 공주, 아이다에게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장면이다. 지도자가 되기에 두려움이 앞서 주저하는 아이다도, 비록 누더기이나 새 예복을 마련해 가져오며 자신들을 구원해 새 삶을 주기를 바라는 메렙을 비롯한 누비안들의 외침에 결국 결의를 다진다. 주술과 절규처럼 반복해 외치는 ‘아이다, 아이다’의 음성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누비아 백성들의 간절함이 담겨져 있으며, 그 중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다가 이윽고 한 나라의 공주이자 이들의 지도자로 우뚝 서는 모습이 비장한 안무 속에 펼쳐진다.

Plus+

‘드레스는 또 다른 나~’. 허영 가득하고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쓰는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의 캐릭터를 단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화려하고 경쾌한 장면. ‘의미 없는 많은 격식들, 대화, 매너, 교양은 필요 없으니 내면이 아닌, 외모만 봐달라’는 암네리스는 자신이 입는 옷과 몸치장이 바로 나라며 수 많은 화려한 드레스를 선보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철저히 계산해서 자신을 가꿔야 한다는 암네리스의 최고의 패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으로, 순식간에 런웨이로 변신한 무대에 차례대로 수 십 벌의 의상과 모자를 매치해 등장하는 시녀들이 등장하며 그 사이에서 황홀해 미칠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 암네리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철 없는 여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다를 죽음 직전에서 구해 자신의 시녀로 둔 것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될 줄, 암네리스는 이때까지는 몰랐을 거다.

 


Best of Best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유령처럼 존재하던 팬텀이 오페라 <한니발>의 여주인공으로 훌륭하게 공연을 마친 크리스틴을 납치, 지하 호수로 유인해 가는 장면이다. 움직이는 배를 타고 무대 뒤에서 앞으로 나오는 두 사람의 등장을 비롯, 수 많은 촛불과 기이한 장신구들로 호수 주변을 형상화한 거대한 무대가 시선을 압도한다. 그간 자신에게 노래를 가르쳐준, 그러나 한 번도 보지 못해 그 모습이 궁금했던 팬텀을 드디어 만나게 된 크리스틴, 그리고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팬텀의 첫 대면이기도 하다. 팬텀을 향한 크리스틴의 환상과 미스터리함, 그리고 그녀의 노래에 자신의 영혼을 싣고 싶어하는 팬텀의 외침이 온 몸에 소름을 돋게 하는 전율의 듀엣으로 펼쳐진다. 팬텀이 ‘Sing’이라고 외치는 주문에 맞춰 크리스틴이 끊임없이 자신의 옥타브를 높여 노래하는 모습이 아찔하다. 

Plus+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극중극으로 펼쳐지는 오페라 <한니발>의 장면은 화려함의 극치다. 황금빛 찬란한 의상들,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멋진 군무, 그리고 거대한 코끼리의 등장은 보는 것 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진다. 이들의 무대에 이어 팬텀의 주술로 개구리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프리마돈나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나, 이 안엔 오싹한 사건의 전조가 숨겨져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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