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감동·위안을 주는 ‘힐링’ 만담꾼, 김제동

벌써 네 번째 시즌을 맞은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를 앞두고 만난 김제동은 자신의 공연을 홍보하는 것이 무척 쑥스러운 듯 했다. 그는 공연에 대한 질문에는 민망한 듯 짧게 답했고, 공연을 벗어난 주제에 대해서 오히려 긴 열변을 토했다. 심지어(!) '다른 공연도 재미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홍보 담당자가 들었다면 조금 난처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자는 그의 토크콘서트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문득문득 생각에 잠기며 들려준 이야기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주지 않고 툭툭 내뱉은 말 속에 삶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이 있었고, 따스한 위로가 있었다. 그 울림을 문장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마 김제동이라는 이 시대 최고 만담꾼의 진가는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그가 쓴 책에서도 아닌, 무대 위에서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망설이신 것 같아요.(웃음) 공연하면서 티켓 매진에 대한 부담도 많이 느끼시나요?
그런 부담은 없습니다. 공연 준비하는 데 부담이 크죠. 벌써 네 번째 시즌인데, (제가) 가수도 아니고, 뮤지컬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연도 아니고 혼자 무대에 서다 보니까 아무래도 부담이 있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안되니까. 그런 부담 때문에 준비를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결국은 ‘놀자’로 귀결이 됩니다.

시즌 1의 주제는 ‘다양성’ 시즌 2는 ‘치유’ 등으로 이어오셨어요. 이번 토크콘서트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이번 콘서트는 ‘나와의 만남’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지금 큰 주제까지는…(웃음)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하다 보면 주제가 자꾸 변합니다. 사실 연습을 할 수가 없는 것이,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이고 관객이 없으면 이뤄지지 않는 공연이니까요. 이번에도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저도 잘 모릅니다. 어느 나무에서 어떤 열매가 열릴지 잘 모르죠. 그냥 해보는 거에요.

그럼 연습실에선 뭐하세요?
가만히 있어요.(웃음)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요. 코러스 분들도 오시고, 연주하는 분들도 오시고, DJ분들도 오시니까 그 분들하고 연습하는 거죠. 그런데 토크콘서트는 사실상 혼자서 대본을 짜고 진행하는 것이거든요. 대본도 없어요. 혼자서 머리 속에 쭉 그려놓는 것 밖에 없어요.

대강의 대본도 없는 거네요.
네,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라는 주제로 40개 대학에서 순회콘서트를 다녔거든요. 그렇게 1년동안 다니면서 나왔던 이야기라든지, 무한도전 ‘못친소’에 나갔던 이야기라든지 그런 것들을 잔잔하게 펼쳐놓는 거죠. 어차피 사람들의 일상은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그 안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거죠. 거창한 주제를 잡으려고 하지는 않아요.

이번 공연에서 '먼지가 되어'를 기타연주로 들려주실 거라고 들었어요.
(웃음)예전부터 이 노래를 좋아해서 노래방 가서도 자주 불렀어요. 이번에 슈스케에 나와서 '아,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나왔다' 이 노래 한번 불러보면 좋겠다 해서 마침 그렇게 된 거죠. 워낙 김광석씨 노래를 좋아하고 매 시즌마다 김광석씨 노래를 불렀거든요.

기타도 직접 치신다고.
기타는 다 그렇듯이(웃음) 교회 다닐 때 좀 배웠어요. 잘 치는 건 아니고요.

트위터에서 관객들의 사연도 받고 있던데요. 직접 다 보세요?
제작진 분들이 사연 받아서 발췌해서 주시면 보기도 하고, 제가 보기도 하죠.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거든요. 저가 하는 것보다. 천 명이 있으면 천명의 이야기가 있고, 만 명이 있으면 만 명의 이야기가 있고. 사람들 사는 이야기에 집중해서 보려고요.

그간 토크콘서트를 하면서 기억에 남은 순간들을 꼽는다면?
매 공연, 매 순간마다 관객들이 직접 참여해서 하는 공연이기 때문에 다 각별한데, 7살, 8살 아이들과 나눈 대화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예상치 못한 일들, 예상치 못한 대화가 생겨나거든요. 시즌 2인가 3에서 제가 피아노를 쳤는데, 7살짜리 아이 한 명이 무대에 올라와서 정말로 피아노 신동 같은 연주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날로 피아노를 집어치울까 생각했죠.(웃음)

아찔하고 당황했던 순간도 많을 것 같아요.
물론 있죠. 근데 당황하거나 아찔하면 그냥 '당황했다, 아찔했다'라고 솔직히 말을 하면 되요. 살면서 당황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사람 없으니까요. 그런 감정도 무대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그런 거죠.

꼭 한번 다시 만나보고 싶은 관객도 있나요?
시즌1때 한 부부가 이혼하려고 법정에 가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 콘서트에 오셨어요. 자리에 따로 앉아서 보셨거든요. 그날이 토크콘서트 첫날이었고, 다음날 제가 첫날 오신 관객분들 몇 분하고 등산을 했는데 남편분이 오시고 아내분은 안 오셨어요. 근데 아내분이 전화를 하셨어요. 우리 남편 잘 부탁한다고. 등산 처음이라고. 그 분들 잘 되신 것 같은데 궁금해요. 지금은 어떻게 사시는지.
그 외에도 암에 걸리신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고…프로포즈 한 사람들 다 결혼했는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죠.

전국투어를 하면 지역마다 객석의 분위기가 다른지 궁금해요.
지역의 특성이 있긴 있어요. 꼭 집어서 얘기할 수는 없는데 무대에서 체감되는 게 있죠. 활달한 곳이 있고, 조용하지만 길게 웃는 곳이 있고, 확 웃고 집중하는 곳이 있고. 그날그날의 분위기도 다르고, 지역의 분위기도 또 다르고, 장소에 따라서도 다르고. 생물이거든요. 공연에 오시는 분들이 또 하나의 인격체가 돼요. 그 날 오신 분들이 여성성을 갖기도 하고, 남성이 되기도 하고, 진중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날 그날 모인 1000명 또는 2000명이 또 하나의 인격체가 돼요. 그건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험이죠. 그렇게 매번 바뀌는 경험을 합니다.

스스로를 '개그맨' 아닌 '사회자'로 규정하시던데요. 그럼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관객인 거네요.
어쨌든 제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관객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기본 바탕에 관객이 있는 것이니까요. 토양이 없는 곳에서 나무가 자랄 수 없듯이. 나무의 존재 이유는 토양이죠.
개그맨과 사회자를 구분하자는 것이 아니라, 저는 개그맨 공채 출신도 아니고, 그 분들처럼 연기나 노래를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사람들이 모였을 때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사회자라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자라고 하는 거죠.


김제동씨가 토크콘서트를 맨 처음 시작하셨는데요, 언젠가부터 비슷한 형식의 콘서트가 많아졌어요. 이유가 뭘까요?
처음에 이 토크콘서트를 시작할 때만해도 사람들 반응이 '되겠냐?' 였어요. 이런 형식이 사람들한테 받아들여질까? 했는데 지금은 도시화, 산업화로 워낙 각기 따로 떨어져서 살다 보니 서로 이야기할 시간이 없거든요. 사회 전반적으로도 대화가 사라지는 분위기다 보니 다들 이야기에 목말라 있어요. 오랜 시간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필요해졌고, 그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같이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고, 쌍방향으로 대화 나누는 자리가 많이 퍼진 거겠죠. 앞으로도 그렇게 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간 남기신 어록이 유명한데요, 그런 문장들은 평소 읽으신 책과 경험 중 어디서 더 많이 나오나요?
책도 경험이죠. 간접경험에서 나오는 것들도 있고, 평소에 드는 생각일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이렇게 생각해야 되지 않겠냐'가 아니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너는 어떠냐'라고 얘기하는 거죠. 사실 모든 이야기는 자기의 경험에서 나오죠. 똑 같은 장미꽃을 봤을 때도 각자 여러가지 감정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 감정들을 '이런 것을 봤을 때 나는 이렇다'하고 이야기하는 거죠. 책, 영화, 만났던 사람들. 그런 것들이 다 보고죠.

책에 나온 문장이나 평소 떠오르는 단상을 적어놓으세요?
그렇지는 않아요.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참 좋겠지만 게을러서 그런 걸 잘 못합니다. 그런데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들은 반드시 다시 깨어서 나오는 것 같아요.

제작년에는 하버드대학에서도 특강을 하셨잖아요. 만약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면 어떤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으신가요.
조선시대 광대들, 남사당패.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양반 집에 가서 발을 드리우고 이야기를 읽어주는, 그 당시 개념으로 토크콘서트를 하던 분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분들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어떻게 사람들을 웃기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그 당시의 유머도 알고 싶고, 그 시대의 우스갯소리도 들어보고 싶고.


앞으로의 계획 혹은 꿈이 있다면.
저는 꿈 이런 것 크게 없어요. 훌륭한 다람쥐가 되겠다거나 훌륭한 사자가 되겠다고 하는 다람쥐나 사자는 없잖아요. 그냥 다람쥐처럼, 들꽃처럼, 풀꽃처럼 사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요. 너무 거창하고 거대한 꿈을 가지면 저도 피곤하고 힘드니까.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요. 오늘 먹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는 덜어내는 작업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작업을요. 앞으로 숲 해설가 공부도 할 거고, 내년이 되면 방송도 안 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앞으로의 일을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리고 올해 대학교를 돌았던 것처럼 내년에는 고등학교를 4~50군데 돌아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토크콘서트에 오실 분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연말에 공연도 참 많고, 제일 큰 공연 대선이 있잖아요.(웃음) 사실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공연을 준비할 수도 없어요. 다른 공연들도 가서 재미있게 보시고, 대선이라는 공연은 직접 참여하셔서 보시고. (대선은) 표값이 없는 공연 아닙니까? 모두가 초대된 공연이니까 가셔서 잘 즐기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합니다. 그리고 다른 공연도 좋은 게 되게 많던데요. (이)문세 형님 공연도 있고. 가셔서 재미있게 잘 노셨으면 좋겠어요.(웃음)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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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4

  • mini989010** 2012.12.28

    부산에서 기다리겠습니다..오라버니의 입담보단 덜하지만 여러모로 싱크롤 99%를 자랑하는 신랑 친구와 함께 여럿이 모여서 공연보러 가도록 하겠습니다..연말 행복하시고..저녁 시간을 외롭지 않게 보내실 수있는 많은 이벤트들이 생기시길 대신 기도해 드릴게요..힘내세요^^

  • iop** 2012.12.04

    고등학교 4~50군데라..멋진데요~항상 응원합니다.

  • kingze** 2012.12.04

    제동 형님 너~~~~~무 기대 됩니다. 아름다운 도시 전주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연말 형님과 함께할 생각하니 벌써 하늘을 달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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