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황정민 "여기 희한한 놈들 한번 구경오세요"
작성일2012.12.10
조회수18,246
올해 황정민의 스케줄엔 빈틈이 없었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 ‘돈키호테’로 열연하며 두 편의 영화 촬영을 마무리했고, 연말엔 뮤지컬 <어쌔신>의 연출과 출연을 동시에 맡아 현재 공연 중이다. 지난 2009년 <나인>으로 오랜만에 뮤지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영화배우의 공연 나들이 정도로 여겨졌지만, 실상 황정민이 무대를 바로 보는 시선은 훨씬 깊고 진지하다. 그의 무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입에 단내 나도록 연기 하라
“<어쌔신>은 관객에게 호불호가 갈릴 것을 알고 있었어요. 처음 제가 이 작품을 제작 한다고 했을 때(제작사 샘컴퍼니의 김미혜 대표는 그의 아내) 모든 사람들이 반대 했죠. 하지만 관객들에게 색다른 뮤지컬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앞 사람이 일어나니까 뒷사람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 기립박수처럼 되는…. 똑 같은 쇼 뮤지컬 말고, 새로운 공연 말입니다.”
황정민은 2009년 스티븐 손드하임 특유의 세련된 노래와 광기 어린 캐릭터들의 한바탕 마당놀이같은 이 작품을 보고 “재미있게 풀면 통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뭔가 다른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으로 이어져 올해 출연에 이어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미국 역사의 암살(시도)범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그는 미국식 농담과 상황을 쳐내고 ‘정신 나간’ 캐릭터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기승전결 이야기 전개에 익숙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이게 뭐야? 그래서 누가 누굴 죽였다는 건데? 할 수 있죠. 하지만 누가 어떤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실 이 작품엔 이야기가 없어요.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 중 클라이막스만 뽑아서 보여주는 거니까. 이 사람들이 대통령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전혀 타당하지 않은(웃음), 그 이유를 보여주는 겁니다.”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프랑스 대사관에 임명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무시 당한다는 이유로, 아홉 명의 암살범은 대통령에게 총을 겨눈다. 황정민은 연출로서 이 황당한 인물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데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서울역에서 젊은이가 노숙을 하고 있어요. 그럼 우린 ‘젊은데 왜 노숙을 하지’라고 생각해요.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색안경이 아닐까요.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절실한 뭔가가 있다는 거죠. 배가 아파서 대통령을 죽인다고 하면, 색안경을 벗고 그 배는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단순히 미친놈들이라고, 철저하게 개인적인 일로도 볼 수 없는 거고요. 사회가 만들어 낸 인물들 아닙니까.”
황당한 아홉 명의 캐릭터에 진정성을 불러 일으키키 위해 배우들에게도 “각자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는 주문과 “이 미친놈들을 관객들이 받아들이게 하라”고 주문했다. “제 욕심일 수 있는데, 솔직히 이 작품을 통해서 연기 하나만큼은 죽인다라는 소리가 듣고 싶어요.배우들에게 말했어요.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무대가 좋아요, 조명이 좋아요, 이런 소리 듣는 게 세상에서 제일 짜증난다. 배우들 연기 죽인다, 이런 말 듣는 게 찬사라고 본다고. 연기 아무 생각 없이 할 생각 말라고. 광기 어린 눈이 반짝 반짝, 정신 없는 미친놈들이 되기 위해 우리 배우들이 많이 노력했죠.”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의 혹독한 연기주문에 시달린 배우들의 고난(?)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질 것 같다.
“배우들에게 입에 단내가 나도록 하라고 했어요. 일단 하고 나서 뭐가 잘됐는지 잘못됐는지를 따지자. 하기도 전에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보단 끝까지 놓치지 않고 연기를 파야죠. 전 작품을 할 때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요. 실제로 그렇잖아요. 제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니까 허투루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다들 치열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프라이드가 있어야 하고 예술가로서 삶이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아이들이 치열하지가 않아~(웃음). 나도 지금 이렇게 치열한데(웃음).”
연출 이외 그가 맡은 역은 극중 ‘찰리 귀토’. 1881년 제이스 가필드 대통령을 암살한 사람이다. 어리숙함속에 광기가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이 사람은 따지고 보면 사기꾼이죠. 실제 책을 냈지만 베낀 거고, 자기 책 때문에 가필드가 대통령이 됐다고 착각 했어요. 느닷없이 프랑스 대사를 하겠다고 하고 거절 당하자 연회장에서 그를 쏘죠. 그런데 이 작품에선 그 사람이 실제 어떤 사람이었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홉 명의 캐릭터들이 서로 중복되지 않는 느낌을 잡아서 풀었어요. 왜 가필드 역을 맡았냐고요? 제가 연출을 해야 하니까 대사가 제일 적은 인물로 맡다보니(웃음)”
"공연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어야지"
두 편의 뮤지컬 사이 사이 황정민은 영화 ‘신세계’와 ‘전설의 주먹’ 촬영을 마쳤다. 2001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어 12년 간 황정민의 영화는 매년 평균 2편이 개봉했다. 그 사이 ‘달콤한 인생’에서의 비열한 악역과 ‘너는 내 운명’에서 백퍼센트 순정남 등 팔색조 연기로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 휴식이 그리운 적 없었는지 묻자 “직업이 배우인데 멍청하게 있으면 뭐 하나, 슛 들어가면 그게 휴식”이란다.
대중에게 황정민은 영화배우로 각인돼 있지만, 영화 데뷔 전 <지하철 1호선> <의형제> <모스키토> <토미> 등 무대에 오르며 연극과 뮤지컬에서 믿을만한 연기자로 자리잡았다. 그런 그가 영화에 데뷔한 이유는 “무대에 관객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저는 모든 문화의 근간은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탄탄해야 뮤지컬도 있고 영화도 있는 거죠. 그런데 참 좋은 작품에 관객이 없는 게 안타까웠어요. 물론 제 개인적인 문제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보다 내가 유명해 지면 좋은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죠.”
한동안 영화에 매진하면서도 무대는 그리운 존재였다. 2009년 뮤지컬 <나인>에 출연한 이후 꾸준히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었다. <웃음의 대학> <웨딩싱어>어 이어 올해 <맨오브라만차> <어쌔씬>까지, 무대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창작 뮤지컬을 만들 계획도 있다.
“이건 내 얼굴에 침 뱉는 이야기지만, <어쌔신> 같은 작품이 우리 나라에 없잖아요. 있었으면 좋아라 하면서 했겠죠, 뭐 하러 미국 역사 이야기를 어렵게 하겠어요. 대부분 똑 같은 쇼뮤지컬에 집중하니까 비록 돈을 벌지 못해도 이걸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 나니까 하지, 생각해요. 좋은 창작 뮤지컬도 만들어야죠. 창작 작품은 쉽게, 짧은 시간을 들여서 만들고 싶진 않고, 내 평생 한 작을 하더라도 좋은 작품을 해서 관객들에게 ‘한국 작품이 이렇게 나올 수 있어?’란 평가를 받고 싶어요.”
황정민은 다양성에 대한 목마름은 다음에 맡고 싶은 캐릭터에서도 나온다. “심지어 아이스크림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데 공연이든 영화든 골라보는 재미가 없다”며 언젠간 그의 7살 아이도 함께 볼 수 있는 어린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단다. 우리나라에서 제작이 되지 않아 아쉽다고.
그는 2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컷’ 당하지 않는 무대와 작은 눈동자의 흔들림에도 거짓이 있을 수 없는 카메라 앞 연기를 할 때 행복하다. 하지만 무대와 영화 중 무엇이 더 좋은지에 대해서도 두루뭉실하게 넘겨 대답하지 않는다.
“전 무대가 좋아요. 2시간 무대는 내 링이거든요. 황정민의 공간이 아닌 그 캐릭터의 공간이지만. 누가 범접할 수 없죠. 그런 걸 어떻게 느끼겠어요. 무대가 좋죠. 영화 연기는 더 어려워요. 눈동자의 흔들림까지 잡아버리니 조금이라도 거짓이 들어가선 안 되니까.”
연기에 욕심이 있냐고 묻자 “욕심 있다”고 고민 할 것 없이 답한다.
“저는 연기를 안 하는 연기를 해보는 게 욕심이에요. (기자: 그게 뭔가요?) 알고 있으면 했겠죠?(웃음). 우리가 다큐를 보면서 울지만 그 사람들은 연기를 하지 않잖아요. 실생활이니까.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 거죠. 늘 화두로 삼고 있어요.”
내년 2월까지 그는 <어쌔신>의 정신 나간, 하지만 그 속을 한 번 들여다 보고 싶은 사람들 중 한 명인 귀토로 살아간다. 화려한 쇼뮤지컬들 사이에서 소위 ‘루저’들의 한바탕 소란은 영 남의 일이 아니라 웃기고도 씁쓸한 뒷 맛을 남길 것.
“이게 따지고 보면 미국식 마당놀이거든요. 광대짓 하는 희한한 놈들 한번 구경 와 보세요. 루저들의 이야기를 한 번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한동안 영화에 매진하면서도 무대는 그리운 존재였다. 2009년 뮤지컬 <나인>에 출연한 이후 꾸준히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었다. <웃음의 대학> <웨딩싱어>어 이어 올해 <맨오브라만차> <어쌔씬>까지, 무대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창작 뮤지컬을 만들 계획도 있다.
“이건 내 얼굴에 침 뱉는 이야기지만, <어쌔신> 같은 작품이 우리 나라에 없잖아요. 있었으면 좋아라 하면서 했겠죠, 뭐 하러 미국 역사 이야기를 어렵게 하겠어요. 대부분 똑 같은 쇼뮤지컬에 집중하니까 비록 돈을 벌지 못해도 이걸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 나니까 하지, 생각해요. 좋은 창작 뮤지컬도 만들어야죠. 창작 작품은 쉽게, 짧은 시간을 들여서 만들고 싶진 않고, 내 평생 한 작을 하더라도 좋은 작품을 해서 관객들에게 ‘한국 작품이 이렇게 나올 수 있어?’란 평가를 받고 싶어요.”
황정민은 다양성에 대한 목마름은 다음에 맡고 싶은 캐릭터에서도 나온다. “심지어 아이스크림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데 공연이든 영화든 골라보는 재미가 없다”며 언젠간 그의 7살 아이도 함께 볼 수 있는 어린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단다. 우리나라에서 제작이 되지 않아 아쉽다고.
그는 2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컷’ 당하지 않는 무대와 작은 눈동자의 흔들림에도 거짓이 있을 수 없는 카메라 앞 연기를 할 때 행복하다. 하지만 무대와 영화 중 무엇이 더 좋은지에 대해서도 두루뭉실하게 넘겨 대답하지 않는다.
“전 무대가 좋아요. 2시간 무대는 내 링이거든요. 황정민의 공간이 아닌 그 캐릭터의 공간이지만. 누가 범접할 수 없죠. 그런 걸 어떻게 느끼겠어요. 무대가 좋죠. 영화 연기는 더 어려워요. 눈동자의 흔들림까지 잡아버리니 조금이라도 거짓이 들어가선 안 되니까.”
연기에 욕심이 있냐고 묻자 “욕심 있다”고 고민 할 것 없이 답한다.
“저는 연기를 안 하는 연기를 해보는 게 욕심이에요. (기자: 그게 뭔가요?) 알고 있으면 했겠죠?(웃음). 우리가 다큐를 보면서 울지만 그 사람들은 연기를 하지 않잖아요. 실생활이니까.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 거죠. 늘 화두로 삼고 있어요.”
내년 2월까지 그는 <어쌔신>의 정신 나간, 하지만 그 속을 한 번 들여다 보고 싶은 사람들 중 한 명인 귀토로 살아간다. 화려한 쇼뮤지컬들 사이에서 소위 ‘루저’들의 한바탕 소란은 영 남의 일이 아니라 웃기고도 씁쓸한 뒷 맛을 남길 것.
“이게 따지고 보면 미국식 마당놀이거든요. 광대짓 하는 희한한 놈들 한번 구경 와 보세요. 루저들의 이야기를 한 번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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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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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989010**님 2012.12.28
부산 넌센스 공연 때 잠시 봤는데..아쉽더라구요..대사량도 적고..왠지 갑자기 투입된 느낌.. 이번 극에서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시리라 믿구요..부산에도 꼭 공연하러 내려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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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se**님 2012.12.14
황정민 잘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