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그녀, 춤추고 노래하라 <시카고> 이하늬

시원시원하게 웃는 모습과 사진 촬영 중간에 “개그맨을 했어야 했다”는 본인의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등 이하늬는 자신을 꾸미는 방법이 소위 예쁘다는 여느 여배우들과는 달랐다. 솔직하고 소탈했고, 스스로에겐 놀랄 만큼 객관적이었다.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세상에 나서야만이 흔들리지 않는 두 눈으로 자신의 그림자와 그 밖에 나아갈 길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여성, 이하늬. 한국 대표 미인에서 배우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는 그녀의 뚝심이 무대 위에서 서서히 발휘 중이다. 그 어떤 선입견도 놀라움으로 변하게 할 그녀의 날갯짓, <시카고>의 록시 이하늬가 날아오르고 있다.

드라마 ‘상어’에 출연 중이다. 촬영 일정이 유동적이라 체력소모도 많을 것 같다.
일정이 워낙 들쭉날쭉해서, 그게 제일 힘든 것 같다. 뮤지컬은 아무리 연습이 힘들어도 몇 시부터 시작해서 몇 시에 끝난다, 라는 게 있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데 드라마는 언제 불려 나갈 지 모른다. 인간 이하늬의 일상이 없어진다.

드라마 속 ‘장영희’는 비밀이 많은,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사람을 늘 오묘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 (웃음)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데, 너무 록시에 빠져 있다가 하려니 드라마 초반엔 많이 어려웠다. 그런데 캐릭터를 치열하게, 머리카락이 뽑힐 만큼 고민 할수록 인물이 깊어지는 걸 알게 되었다.

3년 만에 다시 하는 뮤지컬, 곧 서울에서 <시카고> 공연이 시작된다.
그간 지방 공연을 하고 있었고 지금 광주 공연(6월 28~30일)만 남았다.

뮤지컬이 쉽지 않은 장르인데 꾸준히 서고 있다.
정말 부담스러운 작업이기도 한 것 같다. <금발이 너무해> 할 때 어떤 배우가 내게 “뮤지컬 한다며? 되게 용감하다” 고 말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그 말의 뜻을 잘 이해 못했다. 열심히 연습해서 연기하고 노래하면 된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화면에서만 보던 여배우가 무대에 나와서 무언가 하겠다고 결정한다는 건,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뭔가 가감할 수도 없고, 정말 날것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한편으론, 뮤지컬 할 때 몸은 정말 힘든데 너무 좋아서 충전 되는 느낌이 든다.

뮤지컬이 왜 좋은가?
가야금을 20년 했었는데 시험을 보든, 독주회를 하든 온전히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 12시간씩 방에 혼자 들어가 연습하고, 이런 작업들이 내 성격상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4살 때부터 했으니까 악기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나의 에너지에 맞는 예술장르를 찾고 싶었고, 종합예술형태의 장르가 나와 맞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중학생부터 많이 했다.

오랜 방황 끝에 찾게 된 게 뮤지컬 같다. 그래서 날 오래 안 친구들은 뮤지컬을 하는 게 정말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 한다. 생각보다 활동적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이제 30대로 접어들었으니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제일 하고 싶은 방향으로 에너지를 모으려고 한다.


가야금을 배우는 데 어머니의 영향이 컸겠다.
보통 가정에서 자라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춤을 추지 않았을까? 중학생 때 백댄서가 되겠다고 해서 유명한 그룹의 백댄서로 연습실에도 가고, 그랬던 시간들도 있었다. (웃음)

그런데 어머니가 요즘 완전 반전이시다. 최근에 룸바를 배우고 계시는데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거 했었다면 댄서가 됐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 했더니 어머니도 “나두” 그러시는 거다. (웃음) 하지만 음악을 오래 했던 게 나쁘지 만은 않다. 만에 하나, 많이 엇나갈 수도 있었는데 어느 선을 벗어나지 않고 자랄 수 있게 해 준 것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연기와 음악이다. 음악도 너무나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내 안에 꿈틀거리는 걸 참기가 힘들다.

무대로 연기를 시작한 것이 우연이나 의외의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 미스 유니버스 후 무척이나 많은 곳에서 관심을 가져 주셨는데, 첫 소속사로 PMC를 선택했다. 이 회사에 들어가면 어떤 활동을 하겠구나, 눈에 보이지 않느냐. 그 정도로 뮤지컬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단기간 내에 스타로 만들어 주는 것 보다 무대에서 정직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컸었다. 데뷔작이 <폴라로이드>라는 소극장 공연이었는데, 하면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하면 평생 연기를 하는 게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보통 사람으로서 노래를 잘 하는 것과 뮤지컬 배우가 하는 노래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이다. 가수와 뮤지컬 배우도 어떻게 보면 다른 에너지인 것 같다. 또 어떤 면에서는 뮤지컬 배우가 내공에 제일 센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 스스로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후 뉴욕에 1년 동안 가 있기로 결정 한 것이다. 그때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더 활동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 1년 동안 스튜디오 찾아 다니며 연기 연습하고 뮤지컬 넘버 배웠던 게 지금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많은 신인 여배우들이 록시 역을 맡아왔지만, 초연 배우 최정원, 인순이 등 대선배들이 계속 해 오고 있는 작품이 <시카고>이기도 하다.
<시카고> 공연이 올라갈 때마다 본 것 같다. 그런데 그 느낌이란 게, 이 작품을 하면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웃음) 정말 배우로 태어나서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다는 역할이 있는데, 그런 역할이 록시였다. 완전히 팜므파탈이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어느 한 쪽으로 규정하기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었고, 벨마 선생님들이 지탱해 주시니까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컸다. 연습시간 내내 그 분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최정원, 인순이 선배님이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시카고> 연습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연기와 노래, 특히 안무도 어렵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너무나 잘 보이니까 스스로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진짜 영혼이 뒤틀린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할 정도였다. 24시간 내내 잠도 못 자고, 해도 해도 부족한 것 같고. 미국에서 오신 안무 선생님이 굉장히 냉정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오)진영이도 그렇고 나도 자신을 공격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오히려 진정하라고 하시더라. (웃음) 원래 실수하고 고치는 게 리허설이니까 괜찮다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많이 배운 것 같다.

공연을 보니, 무대에서 잘 논다, 무대를 신나게 즐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정말 건강하게 오래 배우를 하려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고민과 어느 정도 선을 그어서 내 삶을 지키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록시를 연습하면서 그 선을 처음으로 넘긴 했는데. (웃음)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로 했다. 물론 최선을 다하겠지만 지금 아무리 연습을 한다 해도 최정원 선배님의 30년 무대 노하우를 한 번에 할 수 없고, ‘나워데이즈’를 부를 때 인순이 선생님의 그 깊은 눈을 흉내 낼 수가 없다. 서른 한 살 이하늬가 표현하는 록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는 무대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관객들이 즐거워하실 것 같았다. ‘이하늬의 록시는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무대 위에서 재미있게 놀까?’ 이런 기대와 모습이 보기 좋고, 그런 모습을 통해 관객들이 에너지를 얻고 가실 것 같았다.

얼굴 근육을 많이 쓰고 표정 변화도 크다. 일부러 예쁘게 보이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웃음)
아우, 거울을 얼마나 많이 보면서 연습했는데. (웃음) 사실은 내가 코미디언을 했어야 했다. (웃음) 항상 심각한 역할을 많이 해서 많이 놀라실 것 같기도 하다.

대구, 부산, 대전에서 공연을 했다. 관객 반응은 어떤 것 같나?
연습과 공연은 정말 다르다. 어떤 농담을 수 백 번 던지면 연습실에서는 “1, 2초 잠깐 시간을 두는 건 어떨까?” 이런 식의 아주 자세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니까 연습할 때는 많이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들을 만나면 서로 에너지를 주고 받으니 너무 좋다. 옛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불도저처럼, (웃음) 정말 겁 없이 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관객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 공연을 보로 오신 관객들에 대한 책임감, 그 티켓 값과 시간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그 관객들의 인생 한 부분에 대한 책임감, 내가 그걸 할 만한 사람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없다.


2011년 MBC드라마 ‘불굴의 며느리’에서는 터프한 왈가닥 노처녀로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엔 다소 놀랍기도 했고 용기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많이 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선입견이라는 게 정말 대단하다. 한번 당당하고 섹시한 역할을 하면 항상 그럴 거라고들 생각하신다. 그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도 배우의 몫인 것 같다.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역할과 대중들이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는 역할이 다르기도 하니까, 이에 대한 고민은 계속 갈 것 같다. 보고 싶지도 않은 연기를 혼자 하는 건 무의미하고 내 존재 이유도 아니다.

이번 <시카고>에서도 저마다 그리고 있는 이하늬의 모습을 생각하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무대에 등장하면 ‘이하늬다’ 그러시는 게 다 느껴진다. (웃음) 공연을 하면서 그걸 깨고 그러면서 관객들이 록시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기운을 록시로 잘 끌어야 한다. 이 역시 나의 몫이다. 요즘은 총을 쏘는 장면 다음부터 록시로 절 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록시의 모놀로그 장면이 그 다음인데 편안하게 받아들여 보시는 것 같아서 좋다.

<시카고>의 록시 말고 탐나는 작품과 배역이 있나?
앞으로 <시카고> 10년 할 건데? (웃음) <시카고>는 정말 나의 세 손가락 안에 꼽는 명작이다. 블랙 코미디를 이렇게 고급스럽게 고전으로 만든 작품이 얼마나 있을까? 의상 변화가 많거나 엄청난 무대 세트가 돌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음악, 춤, 대사 타이밍, 가장 기본적인 이런 것들이 아주 충실하고 탄탄하니까 너무나 재미있는 뮤지컬이 되는 것이다. 안무 하나하나에 의미와 깊이가 있어 온몸으로 연기하게 한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 몇 번 보셨던 분들도 이하늬의 록시가 어떤 느낌일지,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오셔서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신나게 즐겨주고 작은 것 하나에도 반응해 주시면 배우들도 다 알고 더 열심히 한다. 뮤지컬은 같이 만들어 가는 장르니까 같이 즐겼으면 좋겠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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