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2인극으로 만나다, <구텐버그!> 송용진, 정원영

순수한 예술혼을 불태우며 브로드웨이에 작품을 올릴 날을 고대하는 두 친구 버드와 더그,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극중극 인쇄술자 구텐버그의 이야기 <구텐버그!>. 이 독특한 2인극을 위해 연기 욕심 많은 배우들이 뭉쳤다. <헤드윅> <마마돈크라이> 등으로 모노, 혹은 2인극에서 활약해온 송용진, <완득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헤어스프레이> 등으로 주목 받는 배우 정원영이 버드와 더그, 그리고 그들이 분하는 수십개의 캐릭터를 연기할 예정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연습 후, 두 배우가 편안하게 마주했다. <구텐버그!>부터 배우로서 고민까지 그들의 이야기.


이 작품, 왜 하고 싶었어?

송용진(이하 용진) <올슉업> 이후로 너와는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
정원영(이하 원영) 네, 형. 2인극으로 다시 만나네요.
용진 구텐버그엔 어떻게 합류했어?
원영 처음엔 (이)창용이가 저에게 제안 했어요. 두 친한 친구 이야기인데 친밀도가 중요한 작품이잖아요. 창용이와 전 서울예대 동기라 친하거든요. 해보자 했죠. 전 특히 앙상블부터 시작해서 조연, 주연까지 해보면서 배우로서 능력을 가져볼 수 있는 2인극은 꼭 해보고 싶었어요. 도전 정신을 가지고 시작 했죠. 창용이는 다른 작품 때문에 못하게 됐지만 인물변화 연기에 최고인 (정)상훈 형이 오랜만에 같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형은요?
용진 사실 이 작품은 내가 먼저 하자고 했어. 올 초에 <헤드윅>을 경희대에서 공연하면서 쇼노트 이사님에게 이 작품 이야기를 들었거든. 음악과 대본을 봤는데, 정말 재미있는 거야. 음악만 듣는데도 웃겨서 혼자 듣다 낄낄거리고.
원영 영어 음악만 듣고?
용진 어느 정도는 알아듣지~ 소리만 들어도 그림이 그려지는 작품이었어. 그래서 하자고 했지. 다 접고라도 이 작품 꼭 하겠다고.

원영 형이 예전에 홍대에서 공연하는 걸 봤는데 공연에 대한 큰 그림을 잘 보고, 어떻게 보면 무당끼(?)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웃음이) 터지는 부분을 알더라고요.
용진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야. 그땐 <나쁜자석>을 하고 있었는데 함께 한 배우들에게 음악을 들려줬어. 몇 명은 정말 괜찮다고 관심을 보였고, 그 중 (장)현덕이가 함께 하게 된 거야. 상훈이도 온다고 하고, 원영이도 온다고 해서 더 기대가 되더라고. 왜냐하면 우리 <올슉업> 정말 재미있었잖아.
원영 맞아요. 얼마 전에 상훈이 형과 이야기를 했는데, 형은 그때가  뮤지컬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다고 하더라고요.

캐릭터 수십개!  이를 어쩌죠?

원영 정말 첫날 연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다들 바빠서 대본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그날 처음 러프하게 주고 받았는데. 형들도 처음엔 그냥 읽다가 시간이 지나다 보니 겨드랑이가 젖기 시작하더니 경쟁적으로 테이블을 치고! (웃음) 리딩만으로 빠져들었잖아요. 음악도 뭐도 하나도 없는데. 대박나겠다(웃음).
용진 우리가 버디 스탠드 코미디 느낌인데 과연 이런 미국식 코미디를 한국적으로 바꾸면서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게 고민이지. 만날 아이디어 내야 해. 그런데 상훈이가 코미디 감이 좋으니까 아이디를 많이 내긴 해. (아이디어를) 막 던지고, (내가) 컷하고(웃음).
원영 상훈 형이 매번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줄 알았더니 나쁜 거 100 개 내서 한 두 개 건지는 거였어요(웃음).
용진 속으면 안 돼(일동 웃음). 그런데 이 작품 배우들이 하기에 쉬운 공연은 절대 아니야. 너 퇴장 없는 공연 해본 적 있니? (원영: 한 번도 없어요) 화장실은 꼭 일찍 가.. <헤드윅> <마마돈크라이>가 퇴장이 없었거든.
원영 돌발 상황 없었어요?
용진 사실 있으면 안 돼. 그런데 <헤드윅> 때 장염에 걸린 거야. 답이 없지. 지사제 한 알이 정량이면 열 알을 먹고 무대에 올라갔어. 괴롭지. 무대에서 어떡해, 내려올 수도 없고. 그런데 이렇게 퇴장을 안 하는 공연들은 체력적으로도 목으로도 쉽지가 않아.

원영 특히 형은 수도승(극중극 중 한 캐릭터) 역할 때문에 긁는 목소리도 내잖아요. 저도 목이 약한 편이라 도전이에요. 여러 소리를 내면서 배우로서 한 단계 도전일 수도 있고, 잘하면 박수 받고, 못하면 정말….(웃음)
용진 요즘은 사실, 작품 괜히 하자고 했나 싶을 정도야. 나는 내가 연기해야 하는 역할이 세어보니까 10개 정도더라. 그것도 생각 나는 것만.
원영 저도 그 정도더라고요. 후우….(웃음) 그리고 기본적으로 버드와 더그는 정원영과 송용진으로 시작하면 안 될 거 같고. 두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고, 극중극에서 또 다른 캐릭터들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용진 보통 배우가 나레이션을 할 때는 자기 자신부터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절대 그래선 안 돼. 엄청나지. 게다가 텍스트가 엄청나게 많은데 둘이 한 몸처럼 빠른 템포로 가야 하기 때문에 내 대사뿐 아니라 상대방 대사도 완벽하게 외워야 하잖아.
원영 이 와중에도 우리 엠티 가잖아요.
용진 엠티 가지. 남자들끼리 뭐 하고 놀지 참..(웃음)

너의 첫인상은!

원영 형은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보이스 컬러를 가진 배우에요. 뮤지션인데다가 영화에도 관심 있고 복싱, 축구 같은 운동까지…배우들의 로망이 아닐까. 예술가 마인드도 있고.
용진 너야말로 처음 <올슉업> 할 때 봤는데 호흡도 좋고, 몸도 잘 쓰고, 노래도 뮤지컬스럽지 않게 부르고, 눈에 띄는 배우였어. 지금 이렇게 주목을 받으니까 장해.
원영 (노래는) 뮤지컬스럽게 못 불러서..
용진 내가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는 다들 경주 형처럼 불렀어. 경주 형이 못한다는 게 아니라, 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 난 그렇게 못하거든. 그 당시 운 좋게 락 뮤지컬이 들어오면서,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계속 하게 된 거야.
원영 사실 전에 <헤드윅> 오디션을 봤는데 연출님이 나이 좀 더 먹고 오라고 하셨죠. 그래서 선배님들 건 영상만 보고 공연은 보지 않았어요.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뭘까, 아직까지 꿈이에요.
용진 연출님 말이 틀리진 않은 것 같아. 20대가 <헤드윅>을 하면 수박 겉핥기가 될 수 있어. 내 생각엔 40대가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봐. 30대 후반이 되면 조금씩 그 맛이 나오고. 너도 곧 서른 살이 되잖아. 꼭 해 봐. 배우는 조급할 필요가 없는 거 같아.

 
 

 
원영 그래서 <헤드윅>을 하는 선배들 보면 계속 하시는 거 같아요.
용진 나이를 먹고 표현하는 맛이 다르니까. 나도 서른 살 때 <헤드윅>을 하면서 느끼지 못한 것들을, 지금 한다면 표현을 할 거야. 물론 헤드윅을 350회 이상 해서... 지금은 할 계획이 없지만. 배우는 10년 전을 잘 표현하는 거 같아. 30대에 20대 연기를 잘 하고, 40대에 30대 연기를 잘 해. 겪어본 거니까.
원영 그래서 제가 완득이를 할 수 있었던 거군요.
용진 이제 너의 시대가 열렸어. 크기만 해(웃음). 

나만의 노하우 있어요?
 
원영 형은 바쁜 와중에 여행을 많이 다니잖아요. 노하우가 있나요?
용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 많아. 한 동안 동해를 좋아해서 일요일 저녁 공연 끝나면 출발해서 화요일 오전에 서울로 돌아오곤 했어. 그리고 화요일 저녁 공연을 하는 거지.
원영 쉽지 않은데요?
용진 그런데 익숙해지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 해외 여행도 꼭 자유여행으로 다녀야 진짜 재미있고…나도 너한테 궁금한 게 있어. 넌 아버지가 유명한 배우시잖아. (정원영의 아버지는 배우 정승호다) 대를 이어 연기 하는 건데, 그 부담감이 클 것 같아.
원영 물론 부담감이 있었어요. 심지어 학교 다닐 때부터 교수님들이 아빠, 엄마 후배고, 공연계 연출님, 대표님이 아버지와 친한 친구들이니까요. 모든 게 부모님 욕 듣지 않게 예의바르게, 인간적으로 행동해야 하니까. 그런데 부담감은 금방 없어졌어요. 배우 2세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내 연기에 집중을 하면 되겠구나 싶었거든요.

용진 모니터 좀 해주셔?
원영 처음에는 안 해주셨어요. 왜 안 해주냐고 했더니 모니터를 해 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뮤지컬 <소나기>에서 빅뱅 승리 군의 언더 배우로 무대에 선 적이 있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말도 안 되게 연기를 했더라고요. (웃음) 17살 소년 연기를 한다며 목소리 톤부터 과장해서… 나는 나름대로 캐릭터를 잡은 것이지만 시작점이 다른 거였어요. 지금은 조금씩 조언을 해주세요.
용진 부럽다.
원영 제가 앙상블을 할 때 호위무사로 수염을 붙이는데, 아빠가 그러셨어요. ‘너는 젊은 무사 컨셉트로 수염을 떼어 달라고 해봐라. 눈에 띄게’. 그래서 분장 선생님한테 말했더니 ‘막내 주제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수염을 더 붙여 주시더라고요. 얼굴 안 보이게. 아빠 때문에 더 고생했던…(일동 폭소)
용진 그래도 든든하겠다. 아버지가 이해를 해주시니까.
원영 분명히 그런 게 있어요. 나이 들어서 역할이 없어지는 것에 항상 마음을 강하게 먹고, 작품이 잘 들어올 때보다, 작품을 거절할 때 미안함을 알려주시죠.

목표가 뭐야?

용진 난 요즘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껴. 작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대의 소중함, 무서움을 갈수록 느끼거든. 요즘엔 언제 무대를 떠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어. 지금까지 15년을 연기 했는데 앞으로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하는 거야. 내 목표는 40대에 장편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거야.  이제 연기를 알 것 같은데, 창작자로도 서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내가 무대에 얼마나 설까.

 
 

 
원영 대단한 것 같아요. 형은 배우로서 꿈을 이룬 상태에서도 계속 꿈을 키우시네요. 전 오히려 지금 단순해요. 이제 조금씩 정원영이란 이름을 알리고 있어서 지금 잘 하고 실망시키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10년의 미래가 아니라 내일 당장 연기적인 고민밖에 없어요.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가벼운 시기가 아닌가 해요. 솔직한 심정은 지금 세 개의 작품을 무사하게 마무리 하는 거죠.
용진 많이 하기 보다 소모되지 않게, 너에게 플러스가 되는 기회를 찾길 바래.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거든.
원영 네! 그 조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용진 아까도 우리끼리 말했지만, 이 작품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 밤에라도 만나서 더 연습을 하자. 음악만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잖아. 관객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아. 작품 좋다는 소문으로 사고 한 번 쳐야지!
원영 정말 그래요. 수많은 소리와 모든 요소가 대극장 무대처럼 무대를 꽉 채울 거에요. 배우의 예술이죠!
용진 너무 재미있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일동 웃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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