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또 다른 배우 인생의 시작 <아가씨와 건달들> 이율 & <인당수 사랑가> 이창용

한 사람은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침없이 시원시원한 대답을 쏟아냈고, 한 사람은 한 틈을 두고 짧게 정제된 답을 내놓았다. 성격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하며 상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이들은 서른 살 동갑내기 배우 이율과 이창용. 2007년 각각 <쓰릴 미>와 <알타보이즈>로 데뷔한 후 올해까지 쉼 없이 달려온 이들은 이제 30대를 맞이하고 있다. "서른이 되니 스스로를 좀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하는 이들은 30대의 새로운 배우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3일, 두 사람은 각기 공연과 연습으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월초 개막한 <인당수 사랑가>의 주인공을 맡은 이창용은 이제 막 공연을 시작한  참이었다. “굉장히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11년째 꾸준히 공연해오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작품성도 좋고, 작가님을 비롯한 초창기 멤버들이 지금까지 함께 달려오는 데서 오는 힘도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 점들이 좋은 것 같아요.”

그가 맡은 인물은 춘향이를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지는 양반집 자제 이몽룡. 유쾌한 웃음과 짠한 눈물이 어우러진 이 작품에서 이창용은 춘향을 향한 지순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연출님이 몽룡이라는 캐릭터의 답을 내려주셨어요. 있는 집 자식에, 노는 것도 좋아하던 몽룡이가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라고. 사실 코미디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다 뺐어요. 다른 분들이 알아서 재미있게 해주시니까. 지금 제 목표는 하나밖에 없어요. 춘향이에 대한 진실되고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자. 그 사랑만 보여준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율은 오는 11월 무대에 오르는 <아가씨와 건달들> 연습을 시작한 지 이틀째였다. 이율의 <아가씨와 건달들> 출연은 지난 2011년에 이어서 두 번째다. 그에게는 여러모로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하면서 재미를 많이 느낀 공연이에요. 특히 앙상블들과 호흡을 맞추고 연기를 하는 게 참 재미있어요. 매력도 있고. 다른 대부분의 공연은 주인공과 앙상블간의 호흡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에요.”
 
지난 공연에서 김무열·진구 등과 호흡을 맞췄던 그는 이번에는 김다현·류수영 등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두 번째 공연인 만큼,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달라지는 건 크게 없을 것 같고 소소한 재미들이 좀 더 추가될 것 같아요. 극의 흐름상 필요한 말장난일 수도 있고요. 사실 지금 연습 초반이라 구체적인 건 지금부터 찾아가야 되는 부분이에요. 근데 크게 봤을 때는 지난 번과는 많이 달라지는 것이 없이 안정적으로 갈 것 같아요.”

<인당수 사랑가>와 <아가씨와 건달들>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룬 작품이다. 두 배우는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다른 배우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춘향이가 왜 변학도를 마다하고 몽룡이를 기다리고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근데 정말 사랑한다면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제가 어려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현실에서도 그 사랑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이창용)

이율이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연기하는 네이슨은 도박에 정신이 팔려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미루는 철부지 없는 남자다. 이율은 "저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주의라 아예 헤어졌으면 헤어졌지 그러진 않을 것 같다”고 잘라 말했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유보적이다. “지금으로선 딱히 결혼에 대한 생각도 없고. 사실 개인적으로 결혼에 대한 필요성도 잘 못느끼겠어요. 그래서 여자친구랑 있을 때보다는 오래된 친구들이랑 있을 때의 재미가 더 커요. 근데 이 생각도 물론 언젠가 변하겠죠.”


두 사람은 지난해 말 <트레이스 유> 프리뷰 공연부터 <풍월주> 일본 공연까지 수 차례의 무대에 함께 올랐다. 허물없이 친한 사이지만, 둘의 성격은 서로 많이 다르다. 일본에서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했냐고 물으니 이율은 “혼자 집에서 쉬었다”고 답한 반면, 이창용은 “가족, 친구들도 만나고 쇼핑도 하느라 바빴다”고 답하기도. 그간 지켜봐 온 상대방의 장단점을 꼽아달라고 청하니 막힘 없이 술술 대답이 나왔다.

“창용이는 워낙 성격도 좋고, 호흡이 참 좋아요. 제가 5를 주면 10으로 돌려줘요. 노래도 잘 하고, 성량도 좋고. 개인적으로 사람 자체가 좋아서 거기에 대한 칭찬을 해주고 싶은데, 정말 포용력이 강해요. 다 챙겨요. 형들, 누나들, 친구들, 동생들,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잘 해요. 그런 점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분위기를 띄울 줄도 알고, 진지해질 줄도 알고. 동생이지만 부러워하고 존중하는 배우에요. 장점은 끝도 없죠.” 

“성향이 반대여서 오히려 잘 맞았던 것 같다”는 이창용은 생일이 빠른 이율에게 꼬박꼬박 형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형은 연기할 때 고뇌를 많이 하더라고요. 깊이 있게 연구하고 연기하는 스타일이에요. 같은 나이지만 생각하는 게 저보다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것 같아요. 그리고 무대에서 뭔가를 받아들였을 때 반응하는 센스나 집중력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무대에서 우스운 걸 못 참는데 형은 잘 참아요. 그만큼 집중력이 좋아요.” 

그는 이율의 단점을 묻는 짓궂은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말을 이었다. “단점은, 남의 공연을 잘 안 본다는 거에요. 보통 공연 보러 오라고 하면 ‘어 갈게, 연락할게’ 하는데 형은 ‘안 갈래. 집에서 쉴래’ 이래요. 저랑 성향이 다르니까 좀 답답하죠. 나와서 공연도 보고, 끝나면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단점이라기보다는 같이 활동적으로 좀 움직이고 싶은데 안 그래요.”

웃으며 듣고 있던 이율은 “단점은 열 가지쯤 이야기할 수 있다”고 농담을 하다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이창용에 대한 칭찬을 하나 더 보탰다. “창용이를 무대에서 보면 진실돼요. 몇몇 분들은 가식적으로 연기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관객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배우도 사람인지라 그런 분들이 있긴 있어요. 근데 창용이는 정말 진실되게 연기를 해서 무대에서도 그게 보여요. 상대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배우고, 그래서 실수가 없죠.”

다만 쉴 새 없이 공연을 하느라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된다고. “요즘 느끼는 건데, 창용이가 작품을 좀 많이 해요.(웃음). 그래서 목이 좀 아픈 상태에요. 그건 어떻게 보면 자기 관리를 못한 걸로 보일 수 있거든요. 좀 쉬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유를 불문하고 관리를 못한 건 제 잘못이죠. 그 동안에는 제어가 안 됐어요. 좋은 작품이니까 해야지, 나랑 맞는 작품이니까 해야지 하다 보니까... 거절을 못 한 경우도 있고. 이제는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좀 알 것 같아요.”(이창용)


어느덧 데뷔 7년차에 접어든 두 배우는 이제 30대의 배우 인생을 앞두고 있다. “서른이 되니 스스로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이율은 “서른이 되니 좀 더 편안해졌다”고도 한다. 무대 위의 삶도, 일상생활도 좀 더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심리적으로도 조급함이 사라졌다고. “근데 너무 안정적으로 살려고 하니까 도전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뭔가 다른 걸 배워보기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 안주하는 느낌이랄까? 겁도 나고. 그건 좀 고쳐야 할 것 같아요.”

이창용은 이율도 염려했던 '자기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꺼냈다. 얼마 전 성대결절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일에 스스로도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 동안 열 다섯 개 정도의 작품을 하면서 한 번도 목이 안 좋아졌던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제 자신을 좀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넌 괜찮잖아, 목 튼튼하잖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요즘은 굉장히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지만, 배우로서 컨트롤을 못한 거죠. 피로가 쌓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자기관리도 철저히 하고, 정말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절실하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게 됐어요.”

배우로서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알아가는 것만큼, 좋은 작품을 분별하는 기준도 뚜렷해졌다고. “나랑 맞고, 내가 이 작품을 해서 조금이라도 창조해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하는 것 같아요. 라이선스도 그렇고, 창작뮤지컬도 마찬가지고. 대본을 보면 그 느낌이 와요. 대본을 안 봐도 느낌이 오는 작품이 있고. 배우라면 다들 어느 정도 공감할 거에요. 작품의 성향, 의도 같은 것만 알면 느낌이 와요.”(이창용)

“저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서 대중이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해야 하니까요. 제가 공감하고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라이선스이든 창작이든 상관 없어요.”(이율)
 
배우로서의 삶 외에 이루고 싶은 다른 계획은 없는지 궁금했다. 이창용은 첫 번째 희망사항으로 결혼을 꼽았다. “결혼은 해야죠.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창 밖을 가리키며) 저 아기 아빠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근데 또 아이를 키우는 데서 오는 그런 행복이 있지 않을까요? 형들이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좋아 보여요. 임기홍 형도 있고, 정상윤 형도 있고, 김대종 형도 둘째 낳고 좋은 작품 많이 하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집에 와서 가족들을 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삶도 좋을 것 같아요.”

잠시 생각해보던 이율은 “지금으로선 없다”고 답했다. “연기 외에 다른 계획은 없어요. 지금 삶에 워낙 만족해서 딱히 다른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그래서 이게 단점인 것 같아요. 뭔가에 도전한다거나 다른 걸 찾는다거나 그러질 않아요.”

성격도, 바라는 것도 각기 다른 동갑내기 두 배우는 10년 후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서른 살이 그랬던 것처럼 마흔 살도 금방 올 것 같아요. 제가 제대한지 5년이 넘었는데 그 5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확 지나간 것처럼 앞으로 또 5년이 확 지나가겠죠. 배우로서의 삶과 개인적인 삶을 얼마나 보람되게 살게 될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웃음). 건강관리도 잘 해서 좋은 배우로. 그 때가 되면 정말 믿음이 가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꿈을 갖고 열심히 살면, 행복하게 무대 위에 계속 오르면 되지 않을까요.”(이창용)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