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재미있게 사는 게 중요하죠"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이번에는 '장기하' 개인으로서가 아닌, '얼굴들'과 함께 하는 여섯 명의 밴드로서 말이다. 얼마 전 MBC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 편에 출연했던 이들은 무표정한 얼굴과 독특한 말투로 웃음을 자아낸 '양평이 형(본명 하세가와 요헤이)'의 활약과 더불어 하하와 함께 만든 '슈퍼잡초맨'으로 또 한번 자기들만의 색깔을 또렷이 각인시켰다. 이제 장기하와 얼굴들은 연말공연과 정규 3집 발표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앞으로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 그저 "'지금' 재미있게 살다 보면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답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에게 2013년은 어떤 해였나.
하세가와 요헤이
나는 올해 텔레비전(Television)이라는 밴드랑 같이 공연을 한 게 정말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밴드다.
장기하 음반을 내지 못한 대신 의미있는 일이 많았다. 처음으로 영국에 가서 공연을 한 것도 좋았고. 그때 우리가 공연했던 공연장이 루 리드(Lou Reed)가 영국에서 첫 공연을 했던 곳이라고 하더라. 텔레비전은 양평 형뿐 아니라 나도 굉장히 존경하던 밴드였는데, 그 밴드가 내한해서 같이 공연한 것도 좋았다. 하반기에는 무도가요제도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누군가와 그렇게 열심히 콜라보레이션을 한 것도 처음이었고, 과정을 하나하나 찍어가면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정성껏 작업해본 것도 처음이었으니까. 멤버 개개인과 밴드가 모두 성장한 한 해가 아닌가 싶다.

<무한도전> 출연은 어땠나.
장기하
되게 재미있었다. TV로 편집된 것만 보다가 직접 녹화를 해보니까 형들이 진짜 웃기고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되게 고생해서 찍으시는구나 싶었다. 하하 형이랑 팀이 된 것도 좋았고. 사실 원래 하하 형이랑 하고 싶었는데, 짝을 정하는 제비뽑기에서 뒷번호를 받아서 원하는 대로 될 줄 몰랐다. 근데 하하 형이 다 거절을 당하고 남아있더라(웃음). 형이랑 하고 싶었던 것도 딱 맞았고, 결국 하고 싶었던 걸 하게 돼서 아주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이번 방송에서 ‘양평이 형’의 캐릭터가 특히 부각됐다. 혹시 의도된 부분도 있나?
하세가와 요헤이
난 평소대로 행동한 것뿐인데 하하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런 건 하하가 더 잘 알지 않나. 오래 방송을 했으니까. 내가 일부러 만든 캐릭터도 아니고, 그냥 식판 들고 서 있었던 것뿐인데 그게 재미있다고 하더라. 재미없다고 하는 것보다 재미있는 게 낫지 않나. 그럼 재미있는 대로 하자, 말을 잘 못하면 행동이라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그렇게 해서 장기하와 얼굴들을 살리면 좋으니까. 내가 희생되면 되는 거다(일동웃음). 근데 정말 재미있다.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알려진 게 기분 좋다. 그래야 방송에 나간 의미가 있는 거니까.

장기하 평소에도 형이 좀 재미있다. 개그맨처럼 빵 터뜨리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상한 비유를 많이 하신다. 형이 우리보다 열 살 정도 많은데, 항상 자신이 늙었다는 자학을 하시면서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오징어 회도 좋지만 말린 오징어도 괜찮잖아요' 이런 이상한 비유를 하신다(일동웃음). 사실 우리가 다 말이 느려서 방송에 나가면 가만히 앉아있다 오겠다 싶었는데 마침 하하 형이 양평 형의 재미있는 점을 포착해서 살려줬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멤버들도 다 재미있게 방송을 했던 것 같다.

방송 전까지는 아무래도 장기하가 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간 ‘얼굴들’이 장기하에게 가진 불만은 없었나.
장기하
늘 나오는 질문이다(웃음).
이민기 근데 사실 이번에 <무한도전>에 출연해서 좋았던 게, 장기하 말고 얼굴들도 있다는 게 알려진 거다. 나는 기여를 못 했지만(웃음).
장기하 근데 진짜 <무한도전> 출연 전후로 달라진 게 있다. 전에는 기자 분들이 기사를 쓸 때 ‘가수 장기하는’이라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 장기하는’이라고 쓰더라. 장기하라는 개인보다 밴드로서 먼저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진 거다. 우리가 같이 연주하고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무한도전>이 보여줬으니까. 그래서 그 프로그램이 되게 고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교양프로그램 내지 전문 음악프로그램의 역할까지 하는 것 같다. 어떤 방송에서 밴드가 같이 합주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장면을 보여주겠나. <무한도전>으로 인해서 우리가 여섯 명이 모인 한 팀이라는 것이 부각돼서 좋다.

트위터에서 얼굴들에 대한 질문도 많이 들어왔다. 정중엽, 전일준은 ‘보급형 이정재’ ‘장얼의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있던데(웃음). 이종민에게는 ‘잘생겼는데 왜 맨날 선글라스를 끼냐’고 질문한 분도 있다.
정중엽
딱히 보급형이라는 얘기를 기쁘게 받아들이긴 좀 그렇지만(웃음) 이정재씨는 실제로 한번 봤는데 정말 멋있더라.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분은 남성적이고 정말 잘 생기셨고, 나는 약간 구부정하다(웃음).
전일준 나도 민망하다(웃음). 그냥 '아이'라고만 불러달라.
이종민 잘생기면 선글라스 끼면 안 되나?(일동웃음) 선글라스 끼는 걸 되게 좋아한다. 어두운 데서도 늘 끼다 보니까 눈이 좀 침침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요즘은 가끔 행사 때만 끼고 있다.


(왼쪽부터) 이민기, 전일준, 장기하, 이종민, 정중엽, 하세가와 요헤이

3집 앨범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
장기하
일단 곡은 다 나왔다. 2집과 마찬가지로 가수가 아닌 밴드의 음반에서만 나올 수 있는 역동적인 느낌을 잘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신나는 음악이 많을 것 같다.

앨범 발표가 애초 계획보다 많이 늦어졌다.
장기하
정말 바빠서 그랬다. 외부에서 섭외가 들어오는 일 중에 하고 싶은 일들이 계속 생기니까. 내 개인 활동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미리 계획했던 시기에 음반을 내려고 하면 작업이 좀 소홀해질 것 같았다. 시기를 맞추기 위해서 음반을 대충 만드는 건 더 안 좋으니까, 늦춰서라도 알맹이가 꽉 찬 음반을 만들자고 해서 미루게 됐다.

예전엔 장기하가 멤버들에게 악보를 주고 ‘이렇게 해달라’고 했다면, 이제는 각 멤버들이 작곡에 더 많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하세가와 요헤이
어떤 노래가 있으면 그 곡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있지 않나. 그때그때 누가 ‘이런 느낌으로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누구 한 사람이 '이 노래는 이렇게 해야겠어'라고 정해서 가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의견이 충돌할 때는 없나?
정중엽
있다. 그럴 때는 일단 해 본다. 해봐서 별로일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으니까.
이민기 일단 프로듀서가 두 분(장기하, 하세가와 요헤이)이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두 분한테 맡기는 편이다.
장기하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별로일 것 같은 아이디어라도 일단 연주는 해본다. 그러고 나면 더 확실해지니까. 의외로 더 좋을 수도 있고. 그리고 내가 늘 하는 이야기가, 제일 안 어울릴 것 같은 것부터 해보자는 거다. 그런 아이디어를 반영했을 때 음악이 더 독특하고 좋아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지난 번처럼 3집의 뮤직비디오도 직접 연출할 계획인가.
장기하
지금까지 내가 만든 뮤직비디오들이 전문 영상 감독님들이 만든 것처럼 퀄리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여러 뮤직비디오 사이에 있을 때 그래도 좀 개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작업해보고 싶긴 한데 아직 구체적으로 아이디어가 나온 건 없다. 그리고 무조건 내가 해야겠다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누가 하는지보다 결과물이 더 중요하니까.


이번 연말 공연 제목이 <내년에는 3집 꼭 내겠습니다>다.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제목 같다.
장기하
맞다. 내가 생각한 건데, 딱히 다른 게 없더라. 작년 연말 콘서트에 오신 분들한테 진짜 올해 3집을 낼 것처럼 약속을 해놨다. 그 땐 정말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근데 1년이 지났는데도 앨범이 안 나왔으니 미안하지 않나. 그 때 공연을 보고 좋았던 분들은 또 오실 텐데. 이번에는 새로운 레파토리가 많이 추가될 건 아니니까, 3집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서 있는 레파토리를 더 열심히 재미있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아예 제목을 그렇게 정하게 됐다.

작년 공연 전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순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어떤 걸 했나.
장기하
작년엔 팬 분들께 드리는 손편지를 써서 객석의 한 의자 아래에 붙여놨다. 그리고 관객 분들께 의자 밑을 만져보시면 편지를 찾는 분이 계실 거라고 하고, 그 분께 편지 낭독도 부탁드렸다. 공연 끝나고 그 분이랑 대기실에서 사진 촬영도 했고.

이번 공연에선 어떤 이벤트가 있나?
장기하
그건 비밀이다.

공연에 대한 설명 중에 '지난 5년 간 쌓인(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는) 라이브 연주가 집대성된 공연’ 이라는 말이 있던데.
장기하
사실 우리 음반에 있는 곡들이 라이브를 하면서 바뀐 것들이 많다. 특히 1집 곡들은 템포도 사운드도 다 바뀌어서 전혀 다른 곡이 되어버린 것들이 몇 개 있고, 그런 곡들 중에 평소 짧은 공연에서는 하지 않은 곡도 있다. 점점 공연에 적합한 사운드로 바뀌는 것 같은데, 그런 곡들은 빼놓지 않고 다 하려고 한다.

서울 말고 지방공연 계획은 없나.
장기하
일단 이번 연말 공연은 서울에서만 하기로 했고, 내년에 3집을 내고 나면 여러 도시를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근데 사실 지난해 이맘때에도 지금과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결국 약속을 못 지킨 셈이 됐다(웃음). 내년에는 꼭 3집도 내고, 여러 도시도 다닐 계획이다.


5년, 10년 후 장기하와 얼굴들은 뭘 하고 있을까.
이민기
‘내년에는 5집 꼭 내겠습니다’ 하고 있을 것 같다(웃음).
정중엽 5년 후면 일준이는 군대에 가 있을까?
장기하 5년, 10년 후는 진짜 모르겠다. 솔직히 관심이 없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온 정신을 쏟아도 좀 버거운 상황이라(웃음). 5년, 10년 후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와는 좀 다른 사람이니까. 지금 다른 사람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는 것 같다.
하세가와 요헤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고(일동웃음) 그래도 음악은 하고 있겠지. 살아 있다면.
장기하 이런 말을 많이 하신다(웃음).

정중엽은 자신의 이름을 건 밴드를 만들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돼가고 있나.
정중엽
지금도 준비만 계속 하고 있다. 멤버들은 다 모았는데, 자작곡이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베이시스트가 군대에 가서 좀 애매해졌다.

앞으로 각자 계획 혹은 소망이 있다면.
정중엽
개인적으로는 올해가 가기 전에 내 개인 밴드에서 한 곡이라도 꼭 완성시키고 싶은데 모르겠다. 쉽지가 않다.
이종민 장기하와 얼굴들 3집 재미있게 해야지. 그러려면 일단 내가 재미있게 살아야 하고. 아프지 않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틈 나는 대로 공연도 많이 보러 다니면서 살고 싶다
전일준 나는 아직 많이 배워야 된다. 계속 배우면서 살고 싶다.

장기하 지금 시트콤(<감자별 2013QR3>)에서 하는 역할을 더 잘 해야 할 것 같다. 늘 모니터링을 하는데, 아무래도 연기가 처음이다 보니 아직 너무 어색하다. 일단 시작했으니까 감독님의 디렉션에 충실하게 역할을 잘 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재미있긴 되게 재미있다.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진짜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고. 스텝들도, 배우들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생을 많이 한다. 나는 이미 <감자별 2013QR3>라는 작품에 애정이 생겨서 다른 캐릭터, 다른 에피소드도 다 예뻐 보인다. <감자별 2013QR3>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하세가와 요헤이 종민이랑 비슷한데, 지금 재미있게 살다 보면 뭔가 또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밴드 외에도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다 장기하와 얼굴들에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각자 다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장기하와 얼굴들에 집중하게 되고, 욕심도 더 내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앨범 발표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걱정은 없다. 막말일 수도 있는데, 되게 멋있다고 생각한다. 록의 낭만을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는 밴드들도 앨범 발표를 계속 미뤘다. 스톤로지스(The Stone Roses)도 계속 미루다가 2집을 냈는데, 정말 좋았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게 되게 기분 좋은 일이라서, 미뤄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이민기 내년에 정해진 계획이 하나 있다. 3월쯤 미국에서 열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outh By South West)라는 음악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됐다. 일단 3집 앨범이 잘 나왔으면 좋겠고, 우리 음악을 다른 나라에도 좀 더 많이 알리고 싶다. 왠지 잘 먹힐 것 같다(웃음). 만약 한국 밴드가 서양 음악을 따라 하면 외국 사람들이 봤을 때 별 매력이 없을 것 같은데, 우리 음악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왠지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두루두루AMC 제공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