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뭐든 장수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비법이 있는 법이다. 드라마 전원일기는 우리네 농촌 이웃들의 일상을 정겹게 보여줬기 때문에 무려 22년간 사랑을 받았고, 미국 시트콤 프렌즈는 개성 넘치는 여섯 친구들의 우정을 배꼽 잡는 유머와 함께 즐길 수 있었기에 10년 동안 방영됐다. 공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981년 웨스트엔드 뉴런던씨어터에서 초연한 <캣츠>는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객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인간세상을 풍자하는 고양이들과 ‘Memory’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넘버들 덕분이다. 서구에 비해 뮤지컬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지만 역시 초연 이후 꾸준히 관객을 모으는 공연들이 있다. 아직까지 관객 층이 두텁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는 특히 스테디셀러가 되기가 쉽지 않기에, 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머릿 기름으로 느끼하게 넘긴 헤어스타일, 가죽 자켓, 부담스럽게 붙은 청바지. 뮤지컬 <그리스>는 우리나라의 고교얄개처럼 50년대 미국 고등학생들의 청춘담을 담을 작품이다. 2003년 국내 초연 이후 매년 공연을 하고 있으며 현재 오픈런 중인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중 하나.
곧 1000회 공연이라는 기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 작품의 장수 비법은 너무 단순하다. 그냥 신나고 재미있다. ‘Summer Nights’, ‘Those Magic Changes’ 같이 뮤지컬 초보라도 즐길 수 있을 낯익은 넘버들이 수시로 흘러나오고 모든 출연진들의 춤실력이 발휘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게다가 이 작품의 백미인 주인공과 앙상블의 댄스 장면은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요소를 굳이 뽑으라면 오만석, 고영빈, 엄기준, 이신성, 김동호 같이 뮤지컬계의 꽃미남들을 대거 볼 수 있다는 것?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작품이다.


 

과도한 화장, 부풀린 금발 가발, 짧은 미니스커트. 여자도 남자도 아닌 성을 가진 그,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이 2005년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됐을 때, 성공을 예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관객 반응은 호응을 넘어 폭발적이었고, 헤드헤즈라는 헤드윅 마니아가 탄생했다.
<헤드윅>은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락 가수 헤드윅이 나와 그의 밴드 엥그리인치, 그리고 이츠악과 함께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는 콘서트 형식 뮤지컬. 이 작품의 매력은 간단치 않다. 아이같고, 괴팍하기까지 한 헤드윅이 가진 가슴깊은 상처와 슬픔에 동화되었다가도, 그의 폭발적인 노래에 광란을 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내용과 의상, 컨셉트가 다른 작품과는 전혀 달라 이젠 마니아층을 넘어 수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원작자이자 오리지널 캐스팅 존 카메론 미첼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콘서트를 열 정도로 인기는 날로 커져가니, 뭔가 새로운 뮤지컬을 원한다면 적극 추천.
 

 

우리나라 사람 중에 <난타> 이름 한 번 안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주방기기를 이용해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폭발적인 리듬을 만들어 내는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 공연)로 현재 난타전용관에서 상시 공연중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에게도 소위 ‘먹힌다’. 1999년 초연해 그 해 에딘버러페스티벌에서 좋은 평점을 받았을 뿐 아니라 2004년에는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해 유명세를 날렸고,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들의 인기 코스이기도 한 것.
이 작품에 말은 없어도, 그 사물놀이를 이용한 기막힌 리듬은 한번 들으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고 인상 깊다. 공연에 알레르기 있는 사람조차 스트레스 날리며 볼 수 있으니, 우리나라 대표 공연 브랜드로 손색이 없다.




2004년 초연한 이후, 국내 흥행성에 있어 최강 뮤지컬이란 타이틀을 넘겨주지 않는 작품. 아바의 명곡들로 만든 신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아바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신나고 상쾌하다. 하지만 아바를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 이 작품의 강력한 힘이다.
<맘마미아!>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거다. 세 중년 여인들이 총천연색 의상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Dancing Queen’을 부르는 씬. 이른바 아줌마들이 주인공이 돼서 무대를 신나게 점령하는 거다. 이 때문에 <맘마미아>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국내 중년층 이상의 관객도 끌어 모으고 있다. 이점은 아직 젊은 관객층이 위주인 우리 나라에서 히트 뮤지컬로 자리잡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비법이다. 물론 공연장을 나오면서 아바노래를 흥얼거릴 수 밖에 없는 흡입력이 깔려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지난해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경사를 맞았다. 1995년 초연 이후 12년만에 일궈낸 성과. 이렇게 오랫동안, 대형창작뮤지컬이 사랑 받아온 작품은<명성황후>가 유일하기 때문에 더 소중한 작품이다.
<명성황후>의 힘은 호소력. 이 작품이 한국인의 감성에 호소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강력하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를 외치며 일본인의 칼에 맞아 스러지는 왕비의 모습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관객이 얼마나 있을까. 역사적인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울컥하게 만든다. 여기에 성악을 전공한 배우들의 노래실력과 날로 화려해지는 의상, 무대는 감탄을 절로 이끌어내니, 관객들은 이 작품에 우리나라 대표 대형창작뮤지컬의 타이틀을 달아주는데 서슴지 않을 거다. 덧붙여 12년을 명성황후로 살아온 이태원씨에게도 박수를.


 

이른바 대학로 스테디셀러 연극 중 흥행에서 상당히 도드라지는 작품. 1996년 초연 이후 5000회 공연을 돌파한 코믹연극이다. 이 작품은 이거 하나를 위해 달리고 달린다. 바로 ‘웃음’. 웃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면 벌써 한 번 이상은 봤을 작품이 아닐까.
주인공은 두 집 살림을 하는 남자. 질이 안 좋은 사람임이 틀림없지만 상황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면서 일이 얽히고 꼬이기 시작, 나중에는 불쌍해지기까지 하는 캐릭터다. 물론 이 어이없는 상황은 관객의 폭소를 이끌어 내는 핵심 원천. 정신 없이 웃고 싶다면 이 작품은 리스트 첫머리에 올라갈 만 하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싶어~하는 관객은 지양해야 할지도. 거짓말에 거짓말이 이어져서, 주인공들이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배우도, 관객도 헷갈려지기 때문이다.
워낙 인기가 좋아서 몇 년 전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하지만 연극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 대학로에 이어 강남 공연도 이어지고 있으니, 웬만한 인기 뮤지컬 부럽지 않다.


 

제목부터 상큼하다. 남정네의 이름을 제목에 올려놓음으로써 여성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작품, 현재 창작뮤지컬 연출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장유정 연출이 대본을 쓰고 오만석, 엄기준이 더블 캐스팅되면서 2006년 초연시 소극장 창작 뮤지컬로는 유례없는 인기를 누렸다. 초연 이후 뮤지컬계의 꽃미남 배우들이 오만석, 엄기준의 바통을 이어 받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랑 받고 있는 작품.
<김종욱 찾기>는 한 노처녀가 첫사랑을 찾아 다닌다는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장유정 특유의 재치 있는 대사와 김혜성 작곡가의 귀에 착착 붙는 노래가 백미 중의 백미다. 현재 세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고 향후에도 계속 찾아올 것이 분명하니 스테디셀러로서 모자람이 없는 창작뮤지컬이다.


 

처음 어린이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인기를 끈 독특한 이력의 작품. 동화 ‘백설공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각색해 일곱 난장이 중 한 명이 공주를 애틋하게 짝사랑했다라는 참신한 발상에서 이 작품은 출발한다.
이 연극에서 보여주는 백설공주를 향한 난장이 반달이의 사랑은 그야말로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 진심은 누구에게나 통한다고, 2001년 초연 당시 아이를 데려갔던 어른들이 더 눈물지으며 나왔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지금은 아이뿐 아니라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관객들이 찾는 연극이 됐다. 갈수록 흉흉해지는 세상에서 마음을 정화해주는 이 착한 연극이 반갑기만 한 요즘이다.






글 : 송지혜 기자(인터파크ENT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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