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 없는 긍정의 힘, <시카고> 이종혁
작성일201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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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올해 초까지 <벽을 뚫는 남자>의 순정남 듀티율로 변신해 무대에 올랐던 이종혁은 내달 초 개막하는 <시카고>에서 전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캐릭터로 분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러 수감된 죄수 ‘록시 하트’를 무혐의로 만드는 노회한 변호사 ‘빌리 플린’. 올해 유일한 새 멤버로 <시카고>팀에 합류한 그는 “연습이 빡세다.”고 토로하면서도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때로는 너무 솔직해 당황스러웠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왔던 이종혁의 이야기.
<벽을 뚫는 남자> 이후 영화를 한 편 찍었다. <더 파일>이라고, 올해 하반기에 개봉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난 유전공학박사 ‘한동민’역을 맡았다. 영화를 한 편 찍고 난 뒤에는 그냥 쉬었다. 쉴 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쉬는 편이다. 애들이랑도 놀고.
<시카고> 공연은 못 봤고, 예전에 영화로 봤다. 이번에 섭외가 들어와서 스케줄을 확인하고 괜찮겠다 싶었다.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하고. 작품을 선택할 때는 일단 내가 하면서 즐길 수 있는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인지를 본다. 드라마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를 할 때와 공연을 할 때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장르나 캐릭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했을 때 잘 할 수 있고, 뿌듯하고, 사람들도 많이 좋아해줄 수 있는 작품을 택한다.
첫 출연 <시카고>는 일단 웰메이드 작품이고, 오랫동안 공연됐던 뮤지컬이고,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작품이지 않나. 다른 배우들은 다 이 작품을 많이 했던 친구들이라 연습이 하나의 완벽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고 있다. 나만 이번에 처음 출연하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밥상은 이미 잘 차려져 있으니 내가 밥숟가락만 잘 얹으면 될 것 같다. 다른 배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 작품에 민폐를 끼치지 말고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연습실 분위기 연습실은 되게 빡세다. 특히 춤을 추는 장면에서 완벽한 조합이 나와야 되니까 나도 좀 많이 긴장하게 되고, 틀리면 나 때문에 한 번 더 해야 되니까 다른 배우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밥도 많이 사주게 된다(웃음). 약간 신입의 느낌이랄까, <시카고>를 한 번도 안 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지금은 막 여유를 부리고 웃고 그럴 수가 없다. 외국 스텝들이 다 보고 있는데, 그들이 ‘잘 하지도 못하는데 왜 웃는 거야?’ 이러면 안 되지 않나(웃음). 그래서 지금은 다른 배우들이 하는 것을 많이 보고 많이 외우려고 하고 있다.
빌리 플린 <시카고>의 배경이 1920년대인데, 그 때는 굉장히 혼란스럽고 어떻게 보면 좀 정상적이지 않은 시대였던 것 같다. 빌리 플린은 그런 시대를 살았던, 굉장히 언변이 뛰어난 변호사다. 살인을 저지른 록시를 무죄로 만들어주는 언변의 마술사지. 돈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고 자기 일에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걸 다 갖고 있고, 사람들을 두루 지배할 수 있는 스마트함과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악역 처음엔 빌리 플린이 교활하고 능글맞은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악역이 아닌가, 했는데 연출님이 그게 아니라고 하시더라. 자신의 일에 자신감이 있고, 자신이 한 일의 대가를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빌리 플린은 변호사로서 자신의 명성이 실추되는 것이 싫기 때문에 록시를 무죄로 만드는 거지. 그렇다면 돈을 밝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하더라. ‘돈 안 줘? 그럼 안 해. 돈 줄 거야? 준다면 해줄게.’ 이런 심플한 느낌. 그래서 지금은 그 방향으로 캐릭터를 잡고 연습을 하고 있다.
대본 분석 어렸을 때는 대본에 나와있지 않은 것들, 캐릭터의 어린 시절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많이 상상하고 분석했다. 지금은 별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 다른 공연이나 매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참고 삼아 볼 수는 있겠지만, 너무 깊이 들여다봐서 벤치마킹 같은 느낌이 나면 안 좋으니까. 그보다는 대본을 충실히 보는 편이다.
성기윤 연습실에서 성기윤 선배와 제일 많이 나누는 대화는 “이따 점심 뭐 먹을 거에요? 끝나고 집에 가세요?” 이런 거다(웃음). 종종 “형, 여기서는 이렇게 되는 거에요? 이 대사는 무슨 말이에요?” 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면 선배님은 “이 작품이 무대도 단출하고 동선도 단순한데 그 안에서 배우가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연기이지만 진심을 다해서 해라, 그래야 배우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노래 노래를 세 곡 하는데, 다 재미있다. <벽을 뚫는 남자> 할 때는 서른 곡이 넘는 노래를 불렀으니까 많이 줄었지(웃음). 이 작품은 일단 내가 먼저 무대를 즐겨야 하고, 또 빌리 플린이 자신감 있는 캐릭터라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장면들이 다 재미있는 것 같다. 음악이나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잘 받쳐주고 있고, 거기서 내가 혼자 잘 놀면 된다. 그런 점이 재미있기도 하고, 다른 배우들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밥을 많이 사주려고 하고 있다(웃음).
탁수와 준수 애들이 공부하기 싫다고 할 때가 제일 난감하다(웃음). “공부는 누가 만들었어?” 라고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냥 하는 거야, 그냥 해” 이러지(웃음).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면, 하는 거 봐서 할만하면 시키고 안 될 것 같으면 이야기를 잘 해줘야지. “진짜 네가 될 것 같니?” 하고.
교육방침 아이들을 기르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단 인성이다. 인성이 좋아야 될 것 같고, 그거면 될 것 같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을 안 하면 혼도 낸다. 집에 들어갔는데 애들이 인사를 안 하면 “인사 안 해?” 말을 하지. 그러면 “들어오셨어요” 하고 인사하고, 내가 나갈 때도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그런 건 기본으로 해야 하니까.
긍정성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은 엄하신 분들이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내가 할 말은 해야 되지 않나. 무섭다고 해서 할 말을 안 하면 못 사니까. 그래서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았고, 그러다 보니까 별로 걱정을 안 했던 것 같다. ‘설마 어떻게 안 되겠어?’ 하는 마음이 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하다’라고 말했던 적도 있고. 그래도 살면서 긍정적인 태도가 좋은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을 매년 겪다 보니까 그게 나한테 맞는 것 같았다. 고민해봤자 스트레스 받으면 흰 머리만 난다. 이게 고민할 거리인지 아닌지 빨리 결정하고, 고민거리가 아니라면 잊어버리는 거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것 같다.
배우 처음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했다. “니가 되겠니?” 하셨지. 그 때는 나도 많이 불안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괜찮을 것 같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말해주니까 자신감을 가졌지. 학교(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붙으니까 어? 나 괜찮나 본데? 싶었고. 학교에 들어가서 또 졸업을 하고 나서 조금씩 잘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나 괜찮구나, 더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니 또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러다 여기까지 온 거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행복. 행복해야지. 행복하려면 뭘 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그러려면 가정이 행복해야 하고,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커야 하고. 그런 거 아닐까?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러 와서 많이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그러면 나도 더 행복해지고. 영화를 하면 관객들이 많이 보러 와주고, 드라마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봐줘서 시청률이 높아지면 좋고.
계획 계획을 세우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 게 다 스트레스인 거다. 10년 안에 어떤 작품을 하겠어, 하는 기준을 세울 수도 있겠지, 근데 안 되면 어떻게 하나. 12년 만에, 아니면 20년 만에 하면 안되나? 만약 운이 좋으면 5년 안에 할 수도 있고, 또 막상 그 때가 되면 올드한 작품이 되어있을 수도 있지 않나. 난 그런 것에 연연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올해 안에 이건 꼭 해보고 싶어, 하는 것도 없다.
연극 연극도 하고 싶다. 근데 돈을 많이 벌었을 때 한 번 하고 싶다. 왜냐면 연극 같은 경우에는 솔직히 말해서 시간 대비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별로 못 할 경우 얻게 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봤더니 못 하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웃음) 나도 힘들고 관객도 힘들고 우리 가족도 힘들 것 같다. 열심히 연기했는데 돈은 적으니까. 그래서 나중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웃음).
50~60대 성공한 삶을 살다 보면 그 때는 여유 있게 멋있게 내가 하고 싶은 연기도 하면서 살고 있겠지. 만약 상황이 안 좋아진다면…꾸역꾸역 열심히 살고 있을 것 같다. 뭘 하든.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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