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나'를 찾는 과정 <프라이드> 이명행 & 오종혁

올해 ‘연극열전 5’의 두 번째 작품으로, 한국 초연인 연극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각각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 소수자들이 사회적 분위기와 억압, 갈등 속에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전혀 다른 두 시대,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들. 필립과 올리버를 연기하는 이명행오종혁은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지만 서로가 서로를 살뜰히 챙긴다.

그동안 자신만의 색깔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며 한결같이 무대에 선 이명행은 엄마처럼 후배의 안부를 먼저 묻고, 이번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하는 후배 오종혁은 선배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고운 미소가 닮은 두 사람과 한창 연습 중인 <프라이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프라이드>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서로에게 받은 첫 인상은?
오종혁 (이하 종혁) : 형님을 <스테디 레인>에서 먼저 봤었고, ‘와 정말 엄청난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함께 무대에서 설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담이 되면서도 너무 좋아서‘더 신나게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행 형님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분이다. 엄청난 대 선배님인데도, 엄마 같이 언제나 나를 제일 먼저 걱정해주고 챙겨준다.

이명행 (이하 명행) : 첫 인상은 짐승남이었지.(웃음) 종혁이는 TV에 나오는 연예인 이라서 처음에는 굉장히 신기했다. 하지만 종혁이도 공연을 많이 해 봐서 그런지 연습실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게 잘 만들어주고, 굉장히 예의 바르다.

Q 서로에게 칭찬 한 마디씩 해준다면?
종혁 : 명행 형님은 작품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하는 분이다. 아직 배워가는 입장에서 형님과 같이 하면서 배우고 있고 이걸 계기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겠구나, 영향을 받을 수 있겠구나’생각한다. 명행 형님은 연습하다가 “잠시만요. 여기서 이 말을 하는 게 어떤 이유에서죠? 얘는 이 마음이 아닐 텐데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뭐죠?”라고 스스로 물음표를 만들고 답을 찾아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이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형님은 작은 것 하나까지도 디테일하게 물음표를 던지고 찾아가는 모습이, ‘나도 스스로 언젠가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선망의 대상 같은 느낌을 받는다. 

명행
: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조금 더 이해하게 돼. (웃음) 상대 배우 입장에서 종혁이는 집중력이 굉장히 좋다. 처한 상황이나 캐릭터에 정말 훅 빨려 들어간다. 준비된 배우다.

Q 공연이 3주 앞으로 다가 왔는데, 연습실 분위기는 어떤가?
명행 : 사실 이 팀에서 (박)은석이랑만 공연 했었고, 다 이번에 처음 작업하는 배우들이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서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모난 사람 없이 다 잘 어울리고 분위기가 좋다.


Q 요즘 공연계에는 동성애 코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프라이드>의 어떤 점에 끌려서 선택하게 되었나?
명행 : 요즘 여성 관객들이 많다 보니,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작품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 작품은 코드를 활용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게이에 대해서 확 들어가서 동성애자들의 삶과 자긍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에 대해 흥미롭게 여긴 지점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동성애를 표면적으로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들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동성애를 떠나서 제목 그대로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거기서 나에 대한 존중과 나에 대한 자존심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종혁 :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나는 무엇일까’에 대해 솔직히 생각해보지 않나. 몇 년에 한 번씩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나는 특별한 존재인가, 내가 나로 태어났다는 게 행복한 건가.’를 스스로에게 많이 묻는 편이다. 이 작품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어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Q 1958년과 2014년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을 연기한다고 들었다.
명행 : 필립은 시대별 직업도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른 인물로, 58년의 필립은 당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인물라고 볼 수 있다. 58년에는 동성애자이긴 하지만, 이미 여자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끌림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올리버를 만나게 되고, 결국에는 동성애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한테 폭력적인 치료를 받게 된다. 현재에는 완전한 동성애자고 자유롭게 올리버와 사랑을 나누지만, 올리버가 바람 피우는 것 때문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과거의 필립과 현재의 필립이 같은 지점에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는 있지만 캐릭터 자체는 다르다. 실제로 연습하거나 무대 상에서 구현할 때는 같은 인물로 놓고 연기하고 있다.

종혁 : 제일 분량이 많고 메인 되는 캐릭터가 올리버이다.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나오는데 올리버는 직업도 비슷하다. 58년에는 동화작가,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다. 올리버로 인해 과거의 필립과 현재 필립 모두 영향을 받는다.

Q 연습하면서 김동연 연출이 강조하는 게 있다면.
명행 : 아직은 배우들에게 선택의 폭을 많이 열어두고 있다. 연출님도 같이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이것도 해봐라. 저것도 해봐라.”라고 주문한다. 왜냐하면 <프라이드>가 이번이 초연작이기 때문에 아직 우리나라에 맞는 정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연출님 포함 많은 배우 스텝들이 연구하면서 찾아가는 과정이라, 배우들도 <프라이드> 안의 인물들과 똑같은 상황이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웃음)


Q 공연이 18세 이상이던데, 수위 높은 표현들이 있는가?
명행 : 대본 상에는 둘이 입 맞추고 남자들끼리 관계 맺는 신이 있다. 서로를 원하는 장면들이지만 서로의 쾌락을 위해서 육체를 탐닉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폭발해서 꼭 보여주고 넘어가야 하는 신들이다.

종혁 : 일단 지금 흐름상, 연습실 분위기로 봤을 때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는 않을 것 같다.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게끔 여지를 남겨둘 것 같다.

명행
: 그 장면은 필립이 가지고 있던 사상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그 순간인데, 거기에 관객들도 처음부터 집중하다 보면 남자끼리 행위에 대한 것 보다, 필립에 대한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될 수 있을거다. 절대 에로틱한 신이 아니다. 제일 슬픈 장면이다.

Q 연습하면서 고민되거나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명행 : 과거와 현재가 수시로 바뀌고, 그때마다 감정도 달라지고, 감정마다 깊이가 있다보니 그것을 찾아가는 게 현재의 숙제이다. 대본을 읽어보면 장면의 분위기나 스토리는 이해되지만, ‘정말 이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이걸 하고 있는가’는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가서 열심히 장면 분석하고 있다.

Q 극중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명행 : 1958년에는 동성애가 병으로 치부되는 시대로 필립은 자신의 성향을 억제하고자 동성애라는 병을 치료받길 원한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치료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픈 장면이다. 사실 의사들도 동성애라는 걸 사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남색을 밝히는 하나의 병이라고만 인식할 뿐이다. 필립이 의사들에게 물어본다. “이 감정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요.” 하지만 아무도 답을 줄 수가 없다.


Q 이 작품을 통해 새롭게 깨닫거나, 다시 생각해 본 것이 있다면?
종혁 : <프라이드>를 통해 스스로에게 느낀 건 더 많이 성장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는 계속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멈춰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한 번 더 채찍질을 해주는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명행 : 배우들이 다 느끼고 있는 것인데 어떤 작품이 편하고, 어떤 작품이 불편한 게 아니라 이번 작품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긴 해도 상황이 굉장히 다르다. 보통 경험할 수 없는 상황들이고. 그런 상황에서 겪는 감정의 깊이나 표현도 세고, 수위도 좀 있다 보니 배우들이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배우 각자에게 성장시키게 만드는 연극이 될 것 같다.

Q 관객들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보면 좋을까?
명행 : 종혁이의 몸. (웃음) 가운입고 나올 때 그걸 잘 보셔야 한다. 농담이다. 하하하.

우선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만,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형식적인 재미도 있고 주제적으로 건드리는 것도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꺼다. 거기에 주제 자체가 묵직한 주제를 건드리기 때문에 관객들이 생각할 거리도 많다. 동성애 코드로만 보지 않으셔도 되니깐 열린 마음으로 오시면 좋겠다.

종혁: 올리버의 감정, 필립의 감정, 실비아의 감정을 각각 따라가다 보면, 배우의 결론이 아닌 관객 스스로의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Q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센 편인지?
명행 : 스스로 잘 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 자신에 대한 긍정은 있다. 나는 사랑이란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나에게도 물론 못난 지점이 있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더 사랑하려고 한다. 앞으로 나는 더 해야 할게 많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많이 아끼려고 한다.

종혁 : 나는 아직까지는 ‘난 왜 이것 밖에 안되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부러도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스스로를 몰아세워야 조금 더 성실하게 뭔가에 임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만큼 해’라고 한다기보다는 ‘아직도 멀었어’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스스로를 드면 솔직히 보인다. 어떤 것이 부족하고, 현재 내 위치가 어떤지, 내가 이것을 했을 때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아직은 내 스스로가 어느 한 구석이라도 인정할 수 있을만한 지점에는 도달 못 한 것 같다.


Q 첫 연극 데뷔인데, 연극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종혁: 뮤지컬을 하면서 처음 연기를 배웠고, 뮤지컬을 하면서 연기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다. 연극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연기에 대해 ‘더 잘하고 싶고, 더 깊이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정말 연기만으로 무대에 서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찍 찾아 올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뮤지컬은 노래나 춤이나 이런 걸로 잠깐 다시 환기시키고 갈 수 있지만 연극 무대는 도망갈 구석이 없다. 도망갈 구석이 없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면서도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진짜 작은 감정 하나까지도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배우로서는 꼭 경험해보고 싶은 일이다.

명행 : 나는 처음 알았네. 네가 이번이 연극 데뷔라는 걸. 처음 같지 않고 잘하던데. (웃음)

Q 계속 연극 무대에 서 오고 있는데, 무대가 주는 매력 어떤건가?
명행: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매체는 많이 있다. 아주 옛날에도 연극은 있었고 시간이 지나 다른 매체는 없어져도 연극은 살아남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가장 본질적인 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원초적이고 아날로그다라는 것이 연극의 매력이다. 난 무대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사랑스러워진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 보면 배우가 전하는 감정을 관객 분들도 어떻게든 느끼고 가지 않을까? 

Q 이제 어느덧 2014년도 중반을 넘어섰다. 앞으로의 남은 계획은?
종혁 : 작년에 전역해서 2년 동안은 무대에 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가장 힘든 시기를 뮤지컬과 함께 시작했고,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면서 아픔이 치유됐다. 그래서 전역을 앞두고 원래 가수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이 가장 컸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가 아니라 '꼭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하반기에는 <그날들>로 다시 여러분을 만나고 그 이후에는 조금 쉬어갈 것 같다. 지금껏 무대와 정글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명행 : 무대에 계속 서는 배우로 살고 싶기 때문에 쉬지 않고 오를 것이다. 극단 작품과 이성열 연출의 작품을 하게 될 것 같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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