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모드> 강하늘, 소년 해롤드를 만나다

보기 드물게 진중한 청년인 줄은 진즉 알고 있었다. 기자는 <블랙메리포핀스> 인터뷰 당시 배우라는 호칭에 손사래를 치며 아직은 배우라 불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던, ‘순진’과 ‘순수’의 차이를 한참이나 역설하며 끝까지 순수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강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2년 반의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강하늘에게서는 그때보다 더 두터운 깊이가 느껴졌다. 그럴 만도 하다. 그 사이 다른 장르로 발을 넓힌 그는 연이은 영화 촬영에 이어 드라마 <미생> 출연까지, 누구보다 많은 변화와 성장을 거쳤으니 말이다. 이제 뮤지컬 배우가 아닌 드라마·영화 배우로 대중들에게 친숙해진 강하늘은 훌쩍 커진 인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과연 무엇이 그를 다시 무대로 이끌었을까.

Q 뮤지컬은 여러 번 출연했지만 연극은 처음인데 어떤가.
사실 연극과 뮤지컬은 같은 장르로 봐야 한다. 물론 넘버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무대에서의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연극과 뮤지컬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다 관객들에게 보여지면서 내가 표현해야 할 것들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호흡들은 연극이나 뮤지컬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카메라와 무대 사이에 있는데,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나. 무대 연기는 오버스럽다, 오글거린다고. 나는 그런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는다. 연기라는 것은 매체와 상관없이 근본적으로 똑같은 것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한 인물을 표현해내는 것이고, 그것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연기자의 역할이니까. 물론 어느 정도 방법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연기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말하긴 어려운 것 같다.

Q <해롤드&모드>의 해롤드는 매일 죽음을 상상하는 소년이다. 해롤드처럼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되게 많이 하면서 산다. 사람들은 나를 되게 긍정적인 아이로 보고, 웃음도 많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전에 이준익 감독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제일 많이 아파 본 사람이 제일 환하게 웃을 수 있다’고. 내가 제일 아팠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을 수 있는 웃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 마음의 슬픔도 커지는 것 같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연기에 대한 고민이다. 연기라는 것은 정말 하면 할수록 너무 힘든 것 같다. 제일 힘든 것은 연기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것을 표현하되 관객들이 마치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나한테는 정말 큰 부담이고,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다. 계속 고민하다 보면 진짜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힘들 때가 많다.

Q 해롤드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서는 어떤가.
해롤드처럼 소통의 부재에 대한 괴로움을 느껴본 적은 없다. 외로움도 그만큼 크지는 않았고. 하지만 해롤드만큼은 아니라도 내가 나름대로 느끼고 있는 외로움도 있고, 소통의 부재로 인해 혼자서만 안고 있는 것들도 분명히 있기는 하다. 아마 해롤드가 안고 있는 외로움은 나 외에도 이 공연을 보는 모든 분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해롤드에게서 찾은 것은 이 아이의 순수함이다. 어쩌면 순수하기 때문에 죽음을 동경할 수 있고, 순수하기 때문에 외로울 수도 있는 것 같다. ‘순진’과 ‘순수’는 다른 것인데, 이 아이는 순수하고 자기만의 줏대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동화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또 배우기도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순수를 지키고 싶고, 변질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

Q 극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를 꼽는다면.
해롤드의 대사 중에 ‘죽이는 칼이지’라는 말이 있다. 이 대사 자체가 흥미로운 게 아니라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인상 깊었다. ‘이건 날 죽일 수 있는 칼이지’라는 뜻인데, 그걸 남에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용기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 대사를 말할 때마다 기분이 좀 묘하다.


Q 모드는 해롤드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다. 무척 매력적인 할머니이기도 한데, 모드의 대사 중에서는 어떤 말이 와 닿았나.
모드의 대사 중에서 가장 공감됐던 말이 있다. ‘이 세상에 주인이 어디 있어. 잠시 들렀다 가는 것들인데’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마음에 되게 와 닿았다.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 마음, 소유욕이라는 게 굉장히 큰 것 같다. 참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인데, 아마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이 세상은 잠깐 들렀다 가는 곳인데 그렇게 욕심부리고 소유하려 하지 말자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 말이 와 닿았다.

Q <해롤드&모드> 이후 해롤드는 어떻게 살았을까.
모드처럼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조금 더 돌아볼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해롤드는 자기만의 벽을 굉장히 높게 쌓고 그 안에서 혼자 지내는 아이다. 자기만의 우물을 파고 있는 거다. 그러지 말고 우물 밖에 나가서 다른 곳에 또 좋은 수원지가 있나 찾아보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Q 대선배인 박정자와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선생님께서는 극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나는 공연을 할 때 아직까지 나밖에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이 작품 전체를 꿰뚫어보는 눈을 갖고 계시더라. 그래서 ‘아, 이래서 박정자 선생님이구나’하면서 그런 것을 많이 배우고 있다.


Q 지난 2~3년간 많은 변화들을 겪었다. 그 중 자신을 가장 크게 흔들었던 사건은 무엇인가.
한동안 영화 촬영을 계속 했다. 2월과 2월 말에 하나씩 개봉되고, 3월에 또 하나가 개봉된다. 한동안은 영화만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촬영을 했는데, 영화를 촬영하다 보니 연극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게 된 곳이 여기다. 방송매체만 해온 지난 날들이 나를 다시 흔들었다. 연극으로 돌아오도록. 영화만 하다 보니 다시 무대 위에서 숨쉬고 싶고 다시 배우고 싶어지더라.

Q <미생>은 어떤 경험이었나.
행복했다. 그런데 무작정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다른 고민들을 너무 많이 안겨줬다. <미생>을 통해 많은 분들이 사랑을 해주시는데, 사람이 달콤한 것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나. 그래서 항상 고민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면 안 되는데, 싶어서 더 긴장하게 되고 더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 것들이 나를 마냥 편하게 지낼 수만 없게 한다. <미생>은 그런 어려움과 또 다른 숙제들을 안겨줬다.


Q 방목형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완벽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방목에서 나온 거다. 부모님이 방목을 하면 할수록 내가 내 자신을 돌봐야 하지 않나.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내가 더 나를 돌이켜 봐야 하고. 그래서 더 완벽주의가 생긴 것 같다.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방목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것 같다. 정말 자유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나처럼 자신에게 엄격해지거나. 일찍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았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에게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Q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땐 연습실에서 슬리퍼나 재떨이가 날아오기도 했다고. 당시의 강하늘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더 혼나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 때 혼나는 건 당연한 거였다. 그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책상 다 엎어버리고 ‘나 못하겠어!’하고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정말 참고 참았다. 근데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참는 게 맞는 것 같다. 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이 혼나봐야 한다. 그 때 그렇게 혼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성격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다.

Q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황정민이 자신의 소속사로 캐스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황정민이 어떤 모습을 보고 캐스팅한 것 같나.
그건 모르겠다. 아마 혼내기 쉽게 생겨서?(웃음). 정민 선배한테 고마운 것은 연극과 뮤지컬을 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당시 많은 회사에서 연락이 오고 미팅을 했지만, 모두 연극과 뮤지컬은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공연을 계속하게 해줬고, 그래서 함께 하게 된 거다.

Q “바쁠수록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는 말을 했다. 스스로를 비우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 방법만 쓴다면 그건 사람이 멈춰 있고 고여 있다는 뜻이니까. 나도 성장을 하고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가니까 비우는 방법도 계속 변한다.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하는 것 같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여행을 가고, 노래를 하고 싶으면 노래를 하고. 그 순간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나를 비워내고 행복하게 하는 방법인 것 같다.


Q 예전에도 ‘순수’와 ‘순진’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변질되지 않고 싶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최후까지 잃고 싶지 않은 것 하나를 꼽는다면.
내 연기관. 항상 생각하는 좌우명이 세 가지 있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역할은 없다’, ‘배우고 배우고 배우면 그 때 배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좀 민망하지만(웃음) ‘두 배 유명해지면 여섯 배 겸손해져야 한다’. 이 세 가지 좌우명이 내가 갖고 있는 연기관이고,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뼈대와도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잃고 싶지 않다.

Q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확고해진 계기가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많은 분들을 보면서 ‘난 저러면 안 되겠다’ 하는 것을 배웠다. ‘저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나중에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갖고 가야 할 것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해보니 사람에 대한 배려이고 겸손이더라.

Q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열정이 매우 큰데, 만약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나.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을 것 같다. 아직도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한 꿈이 있다. 어릴 때 꿈이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빠’였다(웃음). 다큐멘터리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봤고, 요즘도 마찬가지다. 영화나 드라마나 연극을 볼 때는 울지 않는데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울게 되더라. 이제는 만들어지는 것들에 대한 지루함이 생겨버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물론 다큐멘터리도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아무리 편집을 잘 해도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 같고 되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Q 혹시 일기를 쓰나.
일기는 아니고 시를 쓴다. 자기 전에 한 편씩 쓰고 잔다. 시 노트가 따로 있다.

Q 워낙 말을 잘 해서,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든 무엇으로든 꾸준히 정리하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분명 필요하다.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을까. 평소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항상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자기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잘 쌓여있고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 아마도 사람들이 말하는 ‘내공’이 아닐까. 얼마나 깊이까지 쌓여있는 지가 말이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더 깊이 내려가려고 하는 중이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댓글7

  • jenny7** 2015.01.27

    잘생긴 배우가 연기도 노래도 괜찮구나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인터뷰를 보니 참 생각도 깊고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네요^^ 더욱 성숙하고 멋진 배우로 승승장구하시길 바래요.

  • gabin10** 2015.01.16

    강하늘이라는 배우는 참 어른스러운 배우인것 같아서 이쁘네요. 앞으로도 많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배우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조용히 박수치며 지켜볼게요.

  • A** 2015.01.16

    강하늘씨 미생에서 똑똑하지만 약간 허당끼 정말 재밌게 봤는데 요번 연극에서는 또 어떤 변신을 할지 정말 기대되네요 ^^ 열심히 하는모습 정말 좋아보여요

더보기(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