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미친 인생, 결성 30주년 맞은 부활
작성일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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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늘 시작하기에 바빴다"는 리더 김태원의 말처럼, 부활은 크고 작은 부침 속에서도 항상 대중과 함께 있었다. 언제나 부활을 꿈꾸는 30년 차 그룹 부활의 진한 향기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말과 말 사이의 깊은 침묵 속에서, 한바탕 웃음 뒤에 오는 진한 여운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대한민국 록그룹의 자존심, 음악에 미친 인생들이 모인 부활과의 만남을 여기 전한다.
Q 한동안 활발히 활동하던 예능에서 만날 수 없었다.
김태원: 2014년은 여러 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해였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가슴이 깊으면서도 얇다. 그래서 상처를 쉽게 받는다. 지금은 상처가 거의 아무는 단계인데, 새로운 보컬 김동명의 등장이 많은 역할을 했다.
Q 올해로 결성 30주년이다.
김태원: 사실 그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올 초부터 30주년 준비를 하게 되면서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부활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에너지를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큰 힘이 되고 있다. ‘부활’은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기 바빴다. 지금도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지 지난 것을 다시 생각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서재혁: 이제 16년이다. (김)동명이가 들어오긴 했지만 언제나 만년 일병 같았는데 올해로 반을 넘었기 때문에 이제는 상병을 단 느낌이다(웃음). 30년의 태원이 형만큼의 무게는 아니겠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채제민: 늘 처음처럼 열심히 하겠다.
김동명: 일단 각오가 비장하다. 부활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30주년을 맞은 부활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새로 온 내가 누를 끼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정말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
김동명
Q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보컬을 찾았다고 들었다.
서재혁: 주변에서 보컬 자리를 두고 ‘대대적으로 오디션을 했으면 좋겠다’, ‘방송을 했으면 좋겠다’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많이 있었는데, 늘 그랬듯이 우리는 ‘숨은 고수를 찾아보자’라는 생각에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숲을 계속 헤매고 다녔다.
처음에는 제민이 형이 동명이를 먼저 찾아서 보여 드렸는데 태원이 형은 “이 친구는 목소리에 영혼이 없다”고 퇴짜를 놓더라. 그러더니 한달 후에 태원이 형이 우리에게 딱 맞는 사람을 찾았다고 해서 봤더니 알고 보니 같은 사람인 거다(웃음). 동명이가 부른 곡이 많이 있다 보니까 우리랑 성격이 안 맞는 노래도 있었고. 맘에 드는 노래도 있었다. 결국은 회사를 잘 다니고 있던 동명이의 직장을 때려치우게 했다(웃음).
채제민: 원래 동명이가 인터넷상에서 유명한 친구다.
김동명: 회사에서 일하다가 재혁이 형의 전화를 받았는데 실감이 안 났다. 세 분 형님들을 비로소 처음으로 마주하게 됐을 때 그때서 실감이 났다. 그리고 작년에 처음으로 대전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진짜 ‘부활의 보컬이 됐구나’라고 느꼈다.
김태원: 보컬을 구할 때, 보컬을 집으로 치면 이미 지어진 집을 보는 게 아니다. 집터를 보고 땅을 보고 이런 걸 보면서 거기에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번듯하게 지어진 집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대기업에서는 이미 그런 집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밴드는 척박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안 된다. 재목을 만드는 거지, 재목을 찾아내는 것은 아니다. 이 친구는 지금 석축 쌓기를 하고 있는 단계이다.
채제민: 그런데 아마 동명이가 연령대가 어린 팀에 들어갔으면 왕처럼 굴었을 거다(웃음). 태원이 형이 우스개 소리로 공연 때마다 이 친구는 “부활 노래 빼고 다 잘한다”고 말한다.
김태원: 부활 노래를 정복하는 날 떠나는 거지(일동 웃음).
서재혁
Q 부활 활동을 하면서 각자 개인 활동도 하고 있다.
김태원: 개인 활동이랄 게 없다. 다 음악에 관계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재혁이처럼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재민이처럼 누군가에게 배움의 터를 주거나, 동명이는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있다. 동명이가 부활에 들어왔으니까 누군가도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주는 아이콘이 되는 거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도 오래도록 음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고 싶다. 우리는 그런 그룹이다. 그 두 글자가 부활이다.
채제민: 우리나라 음악 현실상 음악만 딱 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힘든 여건이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중심이 되는 것은 부활이다. 부활이 제일 우선 순위다. 남은 자투리 시간에 각자 일을 한다.
Q 밴드를 하면서 오래 못 가는 팀들도 많다.
서재혁: 거의 대부분이다.
김태원: 누군가가 음악을 들어줘야 하는데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부활은 30년이나 이어 왔지만 그것은 버틴 것뿐이다.
뿌리가 있는데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키우는데 30년이 걸렸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나. 뿌리가 쉽게 쑥쑥 자랄 수는 없다. 그래서 밴드하는 친구들한테 버티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서 악상이 안 떠오르면 고뇌하고,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받기 위해 늘 노력하면서 버텨야 한다.
채제민: 오래된 팀은 많지만 꾸준하게 계속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팀은 아마 우리 밖에 없을 거다. 그런 면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다행히 요즘 후배 밴드들은 그런 면은 좀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인디 밴드 친구들을 보면 레슨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거나 각자 다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인디 밴드들 중에는 십 년 넘은 친구들이 꽤 많다. 그 친구들이 살아남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거다. 우리나라도 향후에는 20년, 30년이 넘는 팀들이 꽤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Q 어떻게 버틸 수 있었나.
김태원: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가슴 아프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음악 밖에 할 게 없었다. 그룹이라고는 부활 밖에 몰랐다. 그러니까 30년을 온 거다. “저는 30년을 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했다”라고 그 어떤 거창한 말도 필요 없다. 음악을 너무 사랑하고 음악에 미쳐서 대중의 사랑을 받을 때도, 때로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음악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다. 세월이 정말 빠르다.
채제민: 가장 솔직한 대답이다.
Q 힘든 순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나.
김태원: 삶 자체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포기해도 음악은 남아 있는 거다. 음악 안에서 포기하는 거다. 음악 밖에 있을 수 없다.
채제민
Q 음악을 안 했으면 어땠을까?
김태원: 나나 이 친구들이나 음악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온전하게 살 수 없었을 거다(웃음). 나는 아마 약간 불량스러운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아마도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청소년 여러분들에게 기타를 권장한다(웃음).
채제민: 나는 운동을 하다가 음악을 했고, 재혁이는 교회 오빠로 유명했다. 음악이 사람의 성향을 선하게 바꿔준다(웃음).
김동명: 어렸을 때부터 항상 노래를 듣고 부르고 함께 생활했다. 결국은 직장 다니면서도 잡고 있는 게 노래였다.
Q ‘사랑할수록’, ‘비와 당신의 이야기’, ‘네버 엔딩 스토리’ 등 명곡들이 많다.
김태원: 명곡들은 영감을 일부러 받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상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문득 찾아온다. 시공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스토리가 되고 그러다가 인생에서 절실함을 느꼈을 때, 그런 게 합쳐져서 한 번에 스파크가 일어난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요즘은 전혀 멜로디가 안 떠오른다(웃음).
서재혁: 태원 형님을 옆에서 16년 동안 지켜 봤는데 ‘네버 엔딩 스토리’ 때는 형수님이 갑자기 캐나다로 가시는 일이 있었고, ‘아름다운 사실’ 때는 정말 유작을 쓴다는 생각으로 썼었고, ‘생각이 나’ 때도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었다. 그렇게 특별한 순간들이 있었다.
Q 각자 부활 안에서 음악을 해온 시간은 다르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채제민: 무대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관객이 정말 적게 들어온다면 슬프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무대에서 공연이 시작되고 음악을 하는 순간은 그것이 언제든 매 순간 행복했던 것 같다.
서재혁: 개인적인 성향이 비관적인 면이 있어서 ‘네버엔딩 스토리’때 음반이 오십만 장이 나가고, 만 이천 명 앞에서 공연을 하고 난 이후에 다시는 그런 큰 공연을 못할 것 같다는 뭐랄까 ‘앞으로 그런 사건은 안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하고 비겁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후에 갑자기 태원 형님이 광고에서 “혼자 왔니”로 방송에 많이 나오게 됐다. 그때 우리 자체적으로 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700석 규모였다. 그때 그 숫자는 우리에게는 큰 모험이었다. 그런데 관객들이 계단까지 다 차고 2회를 꽉꽉 채워서 공연했을 때 그때의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이후로 언제나 감사함과 희망 속에 살고 있다.
김태원: 25년간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던 분들이 때로는 “김태원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은 “부활이다”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부활이다”라고 지나가는 말이 귓가에 들렸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렇기에 ‘행복했던’ 적은 없는 거다. 언제나 행복하고 있는 중이다.
김태원
Q 앞으로 부활은 어떤 꿈을 꾸는가.
김동명: 마음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있는데 너무 거대한 것 같아서 쑥스럽다. 유럽에는 축구 리그들이 있다. 외국 밴드들을 보면 거기서 공연을 많이 한다. 우리도 그 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을 돌면서 콘서트를 해 보고 싶다. 국내에서도 뭔가 그 정도로 할 수 있는 밴드가 있다면 우리가 되고 싶다.
김태원: 이번에 폴 매카트니 형님의 내한 공연 소식을 접하면서 음악을 보는 사람도 많지만 듣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에 희망을 가졌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분명 있는 거다. 겉으로만 가식적으로 사랑을 받는 건 한계가 있다. 여러분들의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거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 영상: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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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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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ki**님 2016.02.09
아름다운 서정락 부활과 아름다운 미성과 힘의 보컬.. 그들의 순수가 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