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카리스마를 보여줄 그녀들의 진솔한 이야기 <명성황후> 김소현, 신영숙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1만 시간, 10년간 한 분야에 몰입하여 노력하면 탁월한 경지에 이르게 되고, 이 1만 시간이 곧 성공의 열쇠가 된다는 내용이다. 뮤지컬 분야에서 독보적인 여배우로서 커리어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 동갑내기 여배우 김소현과 신영숙. 이 두 여배우 또한 10년 이상의 긴 시간을 몰입하여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었다.

성악 전공으로 우연히 뮤지컬에 데뷔하여 자신만의 강점과 무기로 고유의 색깔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그녀들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그동안 각자 서양의 왕비, 개성 강한 캐릭터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들은 이제 조선의 마지막의 국모가 되어 외세로부터, 시아버지로부터,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스스로를 가둬둔 제약으로부터 강인하게 단련하고 있는 중이다.

Q <명성황후>의 타이틀롤을 맡게 됐다.
김소현(이하 소현): <명성황후>는 이전의 선배님들께서 멋지게 잘해왔던 작품이고, 기존의 명성황후 캐릭터가 내 이미지와 부딪히는 면이 있어서 너무 부담스러웠다. 감히 내가 도전할 역할은 아닌 것 같아서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그런데 윤호진 연출님이 “나만의 느낌으로 새롭게 표현해주길 바란다”고 말씀하셔서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신영숙(이하 영숙): 1999년 <명성황후> 손탁 역으로 뮤지컬에 처음 데뷔했다. 그때 공연 마치고 회식 자리에서 당돌하게 윤호진 연출님께, “저 나중에 명성황후 할거에요.”라고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신인의 겁 없는 그 말을 기억하시고, 성장하는 모습 또한 지켜보시고는 “이제는 할 때가 됐지.”라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감동이었다. 내 꿈을 이뤄주셨으니까.

Q 실존 인물, 그것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데.
소현: 전작인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실존 인물을 연기했지만 명성황후는 우리나라 사람이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인물이기 때문에 나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그 사람의 아픈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하지만 명성황후라는 인물이 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도 하고, 역사적인 평가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고민이 많이 된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아내, 세자의 엄마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고종에게 정치적인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 나중에는 거기서 한 발 나와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다. 그리고 고종, 대원군, 미우라, 홍계훈, 세자 등 접하는 인물이 굉장히 많다. 그런 관계들를 잘 표현해야 해 조선시대 관련 역사책들부터 야사, 일기, 조선시대 여인들의 풍습과 관련된 것들도 다 찾아 읽고 있다.

영숙: 명성황후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이 ‘명성황후를 굉장히 미화시켰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보면 명성황후라는 인물을 작품으로 만든 것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 사람이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으로 만들 가치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떤 소재든 문화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한 나라의 비운의 왕비 그것은 사실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문화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명성황후가 살아온 그 역사를 보여주지 그 인물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Q 이미지와 다른 새로운 역할, 뮤지컬 데뷔작에 여주인공으로 서는 입장으로서 각자 고민되는 점이 있었을 듯 하다.
소현
: 2007년 <대장금> 초연 이후에 한 번도 우리나라 실존 인물 연기를 해 본적이 없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틀을 깨느라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라이선스 작품에서 외국 인물들을 많이 연기해서 그것에서 오는 이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상한 기운, 다른 느낌이 있다. 마음 속에서부터 끓어 나오는, ‘나도 정말 한국 사람이구나’같은 감정이 굳이 표현을 안 해도 느껴지는 게 있다.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영숙: 데뷔작에 16년 만에 여주인공으로 금의환향했다는 느낌보다는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이십 년 동안 사랑받은 국민뮤지컬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오는 부담감이 컸다. 그런데 정작 연습을 해보니까 명성황후의 마음이 빠르게 와 닿았다. 그것이 애국심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한국인이라면 가슴 안에 있는 그 무엇일 텐데, 그것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명성황후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 이유는 민족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한 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이기 때문에 그걸 되새기면서 작품에 임하고 있다.

얼마 전에 역사 공부를 하고서 경복궁을 갔다 왔다. 명성황후가 어디서 혼례를 치르고 세자를 낳고 데이트를 했고 시해를 당했는지 구석구석 살펴보고 왔다. 내 집이서 그랬는지 편안했다. (웃음) 사실적인 공간들이 명성황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Q 명성황후는 어떤 인물일까?
소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소 속의 강인함’을 가진 여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작정 강하고 세고 그런 인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나나 영숙씨나 본인이 가진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강하고 똑똑한 여자이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작품 안에서 극대화돼서 표현될 것 같다. 나는 여성적인 면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명성황후가 왜 남들 앞에서 강하게 될 수밖에 없는지, 그 내면은 어땠는지’를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부분으로 많이 표출할 것 같다.

영숙: 명성황후는 시대를 앞서갔던 여인이다. 명성황후가 여자의 능력을 백 프로 사용할 수 없었던 시대에 그 정도의 행동을 취할 수 있던 것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현대 여성이라면 그녀의 입장에서 공감이 많이 될 것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총명함과 야망뿐 아니라 인간적인 나약함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

Q <명성황후>는 노래로만 이뤄진 작품이고, 경사로 된 이중 회전 무대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겠다.
소현: 전 작품인 <마리 앙투아네트>도 경사 무대였는데 그때는 중간중간 사용했다. 지금은 시종일관 경사 무대가 쓰이고 거기에 회전도 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머리에 쓰는 가채와 한복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영숙: 명성황후의 30여 년간의 역사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건너뛰는 장면도 많고, 송쓰루 뮤지컬이기 때문에 노래로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 또 의상이 몸을 거의 다 가리기 때문에 손짓이나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오로지 목소리 톤과 음의 높낮이로 디테일한 감정 표현을 해야 해서 쉽지는 않다.

무대는 정말 끝내준다. 20년 전에 어떻게 그런 스펙터클한 무대를 만들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무대 하나로 다양한 장면이 연출된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힘든 건 앙상블이다. 안무도 엄청나게 어려운데 그 경사에서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 왕후는 더 잘해야 한다.


Q 명성황후하면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강인한 여성으로서의 이미지가 있다.
영숙
: 13일 있었던 딤프 어워즈 시상식에서 나와 소현씨가 올해의 스타상을 받았는데, 이태원 선배님께서 시상하셨다. 이태원 선배님하면 명성황후, 명성황후하면 이태원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이태원 선배님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그날 이태원 선배님이 “너만의 명성황후를 만들어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이 정답이고 가장 큰 힘이 되는 조언이었다. 매력 있는 두 명의 명성황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소현: 눈만 크게 뜬다고 해서 강인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강인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만의 새로운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싶다.

Q 두 분의 스타일과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이 참 다르다. 하지만 성악 전공으로 우연하게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공통점이 있더라.
소현: 2009년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같은 역할로는 처음이다. 워낙 둘의 이미지가 달라서 한 번도 겹치는 역할이 없었다. 2001년에 <오페라의 유령>으로 데뷔를 했는데, 처음에 <오페라의 유령>이 어떤 작품인지, 뮤지컬이 뭔지 잘 모르고 오디션을 봤다. 나이도 어렸고 신인이어서 무지에서 오는 용감함이 있었다.

영숙: 1999년에 유학을 준비하는 도중에 우연찮게 <명성황후> 오디션을 봤는데, <명성황후>는 클래식한 뮤지컬이라고 들어서 ‘그럼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 엄청나게 고민하면서 ‘나는 뮤지컬 배우가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오디션을 본 게 아니었다. 그런데 뮤지컬을 하고 나니까 ‘이거구나’라는 말로는 잘 설명이 안되는 희열이 있었던 것 같다.

소현: 어쩜 나와 정말 비슷하다. 내가 말하고 있는 줄 알았다. (웃음) 나도 <오페라의 유령>을 끝내고 유학을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뮤지컬에 빠져 버렸다. 무대에 처음 올라갔는데 잘하고 못하고 결과를 떠나 만족감이 굉장했고 행복했다. 한 번 시작하면 벗어날 수 없는 마력이 뮤지컬에 있다.

영숙: 그때 <명성황후>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든 거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무대에 섰으니까 너무 어리숙했고, ‘이게 갈 길이구나’라는 생각이 막상 드니까 할 게 너무 많은 거다. 그래서 작품 끝나고 서울예술단에 들어가서 기초를 쌓는 훈련을 했다. 무용, 연기를 거기서 배우면서 배우로서 기본기를 닦는 훈련을 하게 됐다.


Q 십 년 이상 무대를 지키고 있는데, 꾸준하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영숙: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대에서 하나도 안 떨고 강한 것처럼 보시는데, 사실 겁이 많다. 겁이 많아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부분도 있다. 오래 했다고 해서 안심을 하지 못한다. 16년이나 무대에 섰지만 늘 첫 공연을 하는 것처럼 초심을 생각한다. 부족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힘든 순간이 있어도 계속 연습을 하고 계속 배우려고 한다. 그게 지금껏 올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싶다.

소현: 결혼 전 열심히 활동하다가 어느 날 결혼해서 임신하고 그 기간 동안 무대에 못 서서 사실 우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엘리자벳>으로 복귀를 하면서 남편이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줬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서 이해를 많이 해준다. 그래서 오히려 결혼 전 만큼이나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곳이 무대이기에 그 행복을 놓칠 수 없다.

Q 여자 후배들이 롤모델로 많이 따를 것 같다. 조언을 해주자면.
소현
: 무대 위의 화려함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화려함 뒤에 너무 힘든 연습 과정과 공연 중 개인적인 생활과 조절도 필요하고, 감당할 것이 많기 때문에 정말로 뮤지컬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일 열정이 필요하다.

영숙: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자면 나는 손탁이란 작은 역으로 데뷔를 했는데 그동안 앙상블도 많이 하고 주조연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 했었다. 그래서 특히나 앙상블하는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배역에 대한 갈망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도전했다가 실패를 반복하면서 좌절감을 느끼는데 내가 생각할 때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춤, 노래, 연기든 자신만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 요즘은 스타들도 이쪽으로 오고 다들 잘하기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하다. 남들보다 자신 있는 자신의 무기가 뭔지 생각해보고 그걸 더 다듬고 발전시키는 게 필요하다.

Q 훈훈한 마무리로 서로에 대한 칭찬을 해보자면? (웃음)
소현
: 영숙씨는 카리스마가 최고다. 영숙씨 공연을 많이 봤는데 무대에 있는 모습을 보면 아우라가 느껴진다. 정말 흔하지 않은 배우다. 기본부터 찬찬히 자기 자신을 계발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것을 따라가기는 힘들 것이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라는 게 연습실에서도 느껴진다. 나와는 너무 다른 명성황후이기 때문에 영숙씨에게 배울 점이 참 많다. 참고가 많이 된다.

영숙: 소현씨는 특출난 미모와 그 자체로 너무 사랑스럽다. 또 주안이 엄마로서의 거기서 오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여배우가 아이를 낳고 다시 여주인공으로 돌아오기는 힘든데 자기 관리를 정말 잘하는 것 같다. 소현씨랑 이번에 작업하면서 애교와 사랑스러움을 배우려고 한다. 소현씨를 보면서 ‘명성황후도 저런 색으로도 표현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소현: 애교는 이번에 쓸 데가 없다. (웃음)

Q 보기에는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느껴진다.
영숙: 여배우들끼리는 서로 동질감을 많이 느낀다.
소현: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같은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비슷한 점이 진짜 많은 것 같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 영상 편집: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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