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 앤 줄리엣>과 사랑에 빠지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깊은 사랑에 빠지는 로미오와 줄리엣. 하지만 이들 집안은 오랜 원수사이라 자신들의 사랑이 쉽게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은 품을 수 없고, 연이은 비극적인 사건들은 두 남녀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서로를 원하는 순수한 마음 하나만 가지고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이들 모습은 각박한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쉽게 닿지 못하는 용기와 아름다움의 경지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름답고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로 여전히 살아 숨쉬며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출발해 오페라, 발레,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장르 속에서 피어나고 또 붉은 장밋빛 또는 핏빛으로 물드는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1. 셰익스피어의 희곡(1597)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의 민간 설화로 추측되고 있다. 귀족 루이지 다 포르토가 기록한 베로나의 민간 설화가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고,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 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영국에 살고 있던 셰익스피어가 유난히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많이 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이탈리아의 소설가 마테오 반델로의 작품 및 아서 브루크의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화'(1562) 등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보여진다.

베로나의 몬테규가와 캐플렛가는 오랜 시간 원수로 지낸 사이로, 캐플렛가 무도회에 친구들과 함께 간 몬테규가의 로미오는 캐플렛가의 딸 줄리엣에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하지만 원수 지간인 집안으로 인해 로렌스 신부의 도움을 통해 비밀 결혼식을 올리지만, 결국 양가 친족 간에 유혈 사태가 일어나고, 로미오는 추방 명령을 받는다. 애틋한 하룻밤을 보낸 후 헤어지게 된 이들을 안타까이 여긴 로렌스 신부는 줄리엣에게 비약을 주고 가사 상태로 납골당에 안치된 후 로미오가 찾아오면 깨어나 도망가라고 이르지만, 진짜 줄리엣이 죽은 줄로 아는 로미오는 그녀의 곁에서 자살하고, 이후 깨어난 줄리엣 역시 단검으로 가슴을 찔러 자살한다.

2. 베를리오즈의 교향곡 (1839)
표제음악(시, 이야기, 풍경 등을 음악적으로 해석)의 창안자로도 알려진 베를리오즈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서정적인 음악으로 탄생시켰다. 총 4부로 이뤄진 교향곡은 '1부 서곡 투쟁: 소동, 영주의 중재, 2부 로미오의 우울함: 음악회와 무도회, 3부 사랑의 장면: 고요한 밤 저택의 정원, 4부 사랑의 요정 여왕 마버' 등으로 전개된다. 이후 구노의 오페라(1867), 프로코피예프의 발레곡(1938) 등 많은 작품의 영감이 된다.

3.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수 있다. 아서 로렌츠가 대본을 쓰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을,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를 맡았다. 뉴욕 빈민가에 거주하는 아일랜드계 카톨릭 가정과 유대인 가정 사이의 갈등을 골조로, 지역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과 갈등을 반복하는 폴란드계 이주민 중 한 명인 토니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 마리아가 사랑에 빠지나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 모습을 그린다.


4. '원조 베이글녀 올리비아 핫세',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 영화(1968)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으로 출연한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레너드 위팅이 로미오 역을 맡아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원조 베이글녀'라 할 수 있는 청순한 외모를 뽑내는 올리비아 핫세 열풍을 전 세계에 일으키기도 했다. 실제 줄리엣 역을 맡았을 당시 그녀의 나이는 극중 나이와 같은 16살이었고,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5. '레오의 리즈 시절', 바즈 루어만 감독 영화(1996)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은 당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했을 때다. 그가 석양을 등지고 그림처럼 등장하는 첫 장면과 동시에 극장 안은 뭇 여성들의 황홀한 감탄으로 채워졌던 것을 여전히 기억하는 이, 많을 것이다. 특히 수족관을 사이에 두고 줄리엣(클레어 데인즈)의 눈을 놓치지 않는 모습 등 현대적이고도 감각적인 영상미가 더욱 압권으로 전 세계 청춘들이 새롭게 변신한 고전에 열광했다. 2014년에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하기도 했다.

6.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2001)
<노트르담 드 파리>, <레 딕스>와 함께 프랑스 3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이 작사, 작곡해 2001년 1월 프랑스에서 초연한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 이 작품은, 프랑스 초연 공연 DVD와 음반들이 1억장 이상 판매되는 등 그해 유럽 음반 어워드(플래티넘 유럽 어워드, 골든 디스크, 백금 디스크, 다이아몬드 디스크 등)를 석권하기도 했다. 감미로운 샹송에서 강렬한 록까지 다양한 장르의 매력이 어우러져 있으며 국내 팬들에게도 '사랑한다는 것'(Amier), '세상의 왕들'(Rois du monde) 등의 넘버가 과거 공연에서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다.


또한 붉은 색과 푸른 색, 두 가지로 양쪽 집안의 분위기를 화려하게 극대화시킨 강렬한 의상과 무대, 현대무용, 힙합, 브레이크댄스, 아크로바틱 등 다양한 장르의 역동적이고도 시적인 안무 등이 뮤지컬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7년과 2009년 내한 공연을 통해 큰 사랑을 받았으며 6년 만인 올해 다시 한국을 찾은 이들이 9월 12일부터 10월 11일까지 블루스퀘어 무대를 뜨겁게 채울 예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탈리아 베로나가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 날아왔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으로 2009년 내한 당시 벤볼리오 역을 맡아 국내 수많은 팬들의 환호를 샀던 씨릴 니꼴라이가 이번에는 로미오 역으로 새롭게 찾아왔고, 2007년부터 ‘줄리엣’의 이름으로 살아온 조이 예스뗄이 변함없는 아름다움으로 순수하고도 비극적인 사랑의 길을 다시 걸어갈 참이다. 오랜 비행 후 귀국 하자마자 마주한 이들과 만나 나눈 첫 이야기. 잊을 수 없는 한국 팬들에 대한 애정과 더욱 새로워진 <로미오 앤 줄리엣>에 대한 이야기에 여독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Q. <로미오 앤 줄리엣>으로 6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한국이 이번 아시아 투어의 시작이라고.
조이 예스뗄
(이하 조이): 정말 6년 만인데 너무나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의 투어는 언제나 한국에서 시작한다.
씨릴 니꼴라이(이하 씨릴): 뉴욕, 런던, 서울이 세계 3대 뮤지컬 도시다. 외국 뮤지컬들이 한국에 정말 많이 소개되는 것 같다. 서울에 정기적으로 공연 때문에 왔고 올 5월에도 원래 오기로 했는데 메르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Q. <로미오앤 줄리엣>은 뮤지컬 뿐 아니라 영화,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도 등장할 만큼 굉장히 오랜 시간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다. 그 이유가 뭘까?
조이
: 남녀가 사랑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이 작품은 여전히 최고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누구나 절대적인 사랑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씨릴 : 또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이슈들을 다루고 있어서 ‘사람’과 ‘사랑’에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Q. 이들의 사랑은 ‘첫눈에 반하는’, 그리고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기도 하다.
조이
: 첫눈에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걸 난 믿는다. 작품 속 로미오와 줄리엣은 10대 중, 후반으로 어찌보면 아이들의 사랑인데, 이는 곧 순수한 사랑을 뜻하는 거다. 역할을 소화할 때도 내가 겪었던 그 순수함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한다.
씨릴 : 공연을 할 때마다 매일 조이와 사랑에 빠진다. 내 안의 순수함을 역할을 통해 찾아내고 그로 인해 조이와 새롭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굉장히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어른이 되면 생각도 많아지고 두려움이 커지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두 인물은 두려움도 없고 순수함 그 자체로 만난다는 점이 굉장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Q. 씨릴은 과거 벤볼리오 역을 소화했는데 이번엔 로미오 역을 맡았다.
씨릴
: 10년간 벤볼리오 역을 했다. 어느 날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작곡가)이 전화를 해서 “다음 한국 공연 로미오는 너야.”라고 했다. (웃음) 새로운 역을 맡는다는 건 배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로미오와 벤볼리오 두 역 다 만족하고 있다.

Q. 조이는 오랜 시간 ‘줄리엣’ 역을 맡고 있다. 누구보다 캐릭터에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반면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조이
: 전혀 그렇지 않다. 줄리엣은 매우 특별한 역이고 할 때마다 행복하다. 거의 10년 동안 줄리엣을 했는데 3개월 공연하고 1년 쉬고, 이런 식이라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또 이번에 씨릴이 로미오를 하게 됐다고 했을 때 기뻤는데, 다른 로미오와 연기하면 분명 나의 연기도 다를 것이고 상대 덕분에 나 역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무살 때부터 줄리엣 역을 했는데 줄리엣과 같이 자란 셈이다.



Q. 새롭게 연인 역으로 맞추는 둘의 호흡은 어떠한가?
조이
: 2006년부터 한 10년 간 알고 지냈다. 씨릴은 LA에 살고 난 파리에 사는데 스카이프도 하고 항상 연락하고 지내는 좋은 친구이자 조력자다. 너무 친하고 잘 통해서 공연할 때 전혀 문제가 없다. 계속 공연을 같이 다니는데 파트너와 잘 통하지 않는다면 그게 분명히 무대에서 보일 것이다.

Q. 이번 공연에서는 새롭게 추가되는 넘버가 있다고 들었다.
씨릴
: 티볼트는 싸움꾼으로 유명한데 그런 기질을 좀 더 나타내는 솔로곡(Tybalt)이 있고, 머큐쇼의 광기를 좀 더 설명해 주는 노래(La reine Mab),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헤어지고 나서 각자 다른 공간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듀엣곡(On Prie)이 추가됐다. 이 곡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노래이기도 하고 제일 마음에 든다.
 
Q.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넘버나 장면을 꼽아본다면?
조이
: 줄리엣이 죽는 장면이 굉장히 어렵고 집중도 많이 해서 잊을 수 없다.
씨릴 : 공연 초반에 티볼트와 무리들이 싸우고 결국 티볼트가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이 25분간 이어진다. 가장 기억에 남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 안에 슬픔, 잔인함 등 많은 감정의 기복이 있고 그걸 관객들과 함께 호흡을 주고 받으며 이어갈 수 있어서 굉장히 인상적이다.

조이 & 씨릴 : 무도회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첫눈에 반하는 것도 잊을 수 없다. ‘그녀 없이’(Sans Elle)는 로미오를 위한 넘버이나 마지막에 줄리엣이 노래하기도 한다. 정말 좋다.

Q. 단순한 ‘사랑 이야기’만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씨릴
: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굉장히 잔인하다. 싸우고 누굴 죽이고 또 죽고, 사랑에 대해서 굉장히 극단적인 방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로미오 앤 줄리엣>은 사랑 뿐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함축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우리 작품의 부제가 ‘사랑에서 증오까지’이다.
조이 : 인간에 대한 여러 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단점이나 복수, 사람의 어두운 면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런 여러가지 감정이 들어있는 복합적인 작품이다.



Q. 커튼콜 때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나가 배우들과 함께 노래하고 사진도 찍는 흥겨운 모습이 지난 공연에서도 인상적이었다.
조이
: 공연의 분위기는 내내 어둡고 또 그런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의 슬픔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공연 중에 관객들의 울음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흥겹게, 관객들이 좋아하는 넘버를 함께 부르며 끝나는 것은 우리도 좋다.
씨릴 : 사람들이 공연 중에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관객들이 그렇게 슬픔에 차서 돌아가는 걸 가만 둘 수 없다. (웃음)

Q. 한국에 두 사람의 팬들이 정말 많다. 오랜만에 만나는 팬들과 또 이번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조이 & 씨릴
: 웃음과 감동, 전율을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공연이 될 것을 보장한다. 관객들은 앉아만 있으면 된다. (웃음) 또 그간 너무나 한국 팬들이 보고 싶어서 지금도 무척 설렌다. 한국 팬들은 먹을 것을 선물로 많이 줘서 좋다. (웃음) 새로운 장면, 새로운 넘버, 그리고 새로운 배우들도 있으니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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