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운명과 마주하는 여인이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김지우

과거 그녀는 "난 자존감이 너무 낮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열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 세상에 자신을 노련하게 포장할 방법을 배우지도, 또 그런 재주를 타고 나지도 않았던 그이기에 자신을 향한 다양한 반응들을 온 몸으로 부딪혀내느라 지쳤던 마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음이 분명하다. 타인을 위한 배려 속엔 여유가 자리했고, 꿈을 향한 이야기엔 설렘과 다부진 각오가 꿈틀거렸다. 스스로 중심을 잘 잡고 원하는 것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으로 설 김지우에게 더욱 끌리게 된다. "엄마가 된 후 책임감이 너무나 커졌다."는 그녀, 스스로 다져온 시간과 함께 진정 아름다운 여인의 빛깔을 비춰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Q. 2년 만에 무대에 서는 거네요.
<아가씨와 건달들> 서울 공연이 2013년 말에 끝났고 지방공연이 2014년 봄에 끝났으니 횟수로 따져서 2년 만이더라고요.

Q. 아이가 아직 어려서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무대에 서실 거라 생각했거든요.
당연히 복귀는 공연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공연을 했던 사람들은 무대를 계속 갈구하는 게 있다고 하잖아요. 아기 갖고 한 5개월 쯤 됐었나? <프리실라>를 보러 갔어요. 객석에서 보는데 미치겠더라고요, 가만히 못 있겠고. (웃음) 병원에서는 양수 안에 있는 아이한테 스피커 소리가 굉장한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그랬는데 저는 커튼콜 때도 들고 뛰고, 너무 신나는 거에요. (웃음) 그걸 보면서, '아, 왜 내가 이 밑에 있어야 하지?' 그런 생각 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무대로 올 줄은 사실 몰랐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실은 저희가 먼저 하고 싶다고 어필을 한 케이스에요. 스칼렛 오하라가 여자들이라면 다 욕심날 만한 역할이고, 또 원작이나 영화나, 워낙 유명한 작품을 뮤지컬로 만든 거라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서라도, 저 같아도 궁금해서라도 가서 보고 싶을 것 같은 공연이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욕심이 났겠어요, 저도.

그래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하고 싶다고 프로포즈를 했고, 다행히 결과가 좋게 되어서 제가 하게 됐을 때, '아, 이걸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이 시작된 거에요. 그 걱정이 아직까지 있어요. (웃음)


Q. 데뷔작인 <김종욱 찾기>나 이후 <금발이 너무해> <젊음의 행진> 등의 작품에 출연했을 때는 "클래식한 작품과 역할이 나에게 올 기회가 드물지 않겠느냐"라고 했었지만, 이후 <닥터 지바고> <베르테르>에서 주연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닥터 지바고>가 계기가 됐죠. 오디뮤지컬컴퍼니에서도 저를 <닥터 지바고>에 캐스팅한다는 게 큰 모험이셨을 거에요.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사람이고 음악적인 면에서도 과연 성악발성을 해야 하는 음을 소화할 수 있을까, 우려도 있었을 거에요. 그런 모험을 해주셔서 항상 신춘수 대표님께 감사하다고 얘기 해요. (웃음)

그렇게 물꼬가 트여서 지금까지 온 것 같은데, 참 지금 연습하면서도 재밌는 건, 스칼렛이라는 인물이 제가 해 왔던 모든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밝고 명랑한 부분도, 새침데기 같은 부분도 있고. 극 뒤로 가면서 여인의 느낌을 낼 수 있는 부분들, 그런 느낌으로 인해서 나오는 음악들, 상대 배우와의 장면 하나하나에 참 복합적인 모습들이 들어있거든요. 아마 그런 것 때문에 모든 여배우들이 궁금해하고 하고 싶어할 것 같다고 말씀 드린 거에요. 한 극에서 이런 모든 것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잖아요.

Q. 스칼렛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요?
운동! (웃음) 아이를 보느라 체력도 떨어져 있었지만, 열 일곱, 열 여덟 살 스칼렛 오하라를 표현해야 하는데 펑퍼짐한 몸매의 아줌마처럼 보이면 안되잖아요. 아무리 의상으로 커버를 한다 해도요.

이 작품을 어렸을 때 책으로 먼저 봤고 나중에 영화로 봤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저 여자는 어쩜 저렇게 예쁠까, 어떻게 저렇게 눈빛 하나로 남자를 사로잡나’, 저도 그 생각을 했거든요. 다른 분들도 그런 걸 보고 오셨을 텐데, 내가 비비안 리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라도 모습을 만드는 게 예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건 정말 작품에 대한 예의고, 그래서 운동할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하는 중이고요. (김)소현 언니나 바다 언니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요. 두 분은 워낙 날씬하시고, 저는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 편이라 더 커 보이거든요. 예전에 <금발이 너무해> 원캐스트로 할 때 너무 힘들어서 47kg까지 몸무게가 빠졌었는데 그때도 전혀 말라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 나는 아무리 살이 빠져도 말라 보이는 스타일이 아니구나,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하게 몸을 관리해야겠구나’, 그때 깨달았죠. (웃음)

Q. 김소현, 바다 씨도 함께 스칼렛 오하라로 연습하고 있어요.
바다 언니랑은 <금발이 너무해> 같이 했었는데 정말 에너지가 어마어마한 사람이거든요. 언니의 그 에너지를 정말 잘 알기 때문에 초연에서 어땠을지 너무 감이 와요. 제가 지금 힘들어하는 부분이 1막 스칼렛인데, 일부러 어리게 하려고 하면 보는 사람한테 너무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바다 언니가 굉장히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언니도 그걸 많이 고민했었고 그래서 언니가 초연을 해가면서 약간씩 해결해 나갔던 팁을 저한테 굉장히 많이 주고 있어요.

소현 언니는, 제가 <사랑은 비를 타고>로 데뷔했는데, 막판에 빠질 때쯤 소현 언니가 들어오셨어요. 그래서 그때 언니를 뵈었죠. 정말 신기한 게, 이번에도 연습하면서 대본을 보다 '이 단어보다는 이런 단어를 쓰는 게 더 좋을텐데' 하고 체크해가면 정말 글자 하나 안 틀리고 소현 언니도 똑같이 그렇게 써온 거에요. 그래서 둘이 "우리 진짜 똑같다." 그랬어요. 언니하고는 그런 부분이 잘 맞아요. 두 분이 워낙 경력이 많으셔서 제가 도움 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 정말 많아요. 음악적으로나 무대 위에서 행동 하나하나까지.


Q. 스칼렛은 앞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다양한 모습을 지닌,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에요. 이 모든 스칼렛의 모습을 다 이해하게 되었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그 행동의 당위성을 못 찾았어요. 이 여자 왜 이러지? 왜 이렇게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애슐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홧김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 한진섭 연출님께 정말 감사하는 부분인데, 대본작업 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굉장히 제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셨거든요.

제가 아이를 낳아서인지, 더욱 이해가 안 간 부분이 죽은 아이 앞에서 스칼렛 모습이었는데, 책에서도 보니가 죽었을 때, ‘차라리 딴 애가 죽지, 왜 얘가 죽었을까’ 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물론 책에서는 자식이 몇 명 더 있잖아요. 그 부분을 읽었을 때 어렸을 때라도 '이게 뭐야? 엄마가 어떻게 이렇지?' 그런 생각 했던 게 어렴풋이 났거든요.

근데 연출님 말씀이,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도 아이를 8명, 10명 낳았고 그 중에서 한 두 명은 꼭 병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죽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인생을 포기하고 살았나? 그건 아니다. 마음은 너무 아프지만 살아있는 나의 아이들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위해서 모든 것을 끌고 갈 수 밖에 없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거지, 마음이 안 아픈 게 아니라고. 그때서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또 연출님은, 제가 스칼렛을 너무 제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기본적으로 어떤 평범한 캐릭터 범주 안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이라 이런 기구한 일들을 맞닥뜨리는 거고, 그 안에 있는 스칼렛을 봐야 한다고요. 만약 스칼렛을 저에 대입해서 보고 그렇게 연기하면 관객들도 "쟤(스칼렛)는 이상한 얘"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거라고. 하나의 생각차이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셔서 그 때 다시 생각을 하게 됐죠.

Q. 이번 공연은 초연과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는데, 특히 스칼렛과 레트의 딸인 보니에 대한 부분이 좀 더 자세해질 거라고 들었어요.
넘버도 새로 추가됐고 직접 등장하기도 해요. 아무래도 아이와 유기적으로 연관된 모습이 보여지고 나면, 나중에 그 아이가 잘못됐을 때 레트가 스칼렛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잘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초연 때 나온 의견 중에 이야기 전개가 너무 빠르다, 마지막에 급하게 마무리되는 거 아니냐, 그런 부분도 있더라고요. 지금 극에서도 어느 정도 빠르게 진행된다는 느낌이 있을 거에요. 그런데 책이나 영화에서도 굉장히 긴박하게 진행이 돼요. 이렇게 긴박하게 모든 상황들이 탁탁 맞닥뜨려지면서 스칼렛이 '어? 내가 레트를 사랑했네' 그렇게 느끼거든요. 그런 여러가지 상황들 때문에 마지막에 그녀가 사랑을 깨닫는 거죠. 아마 초연 때보다는 대사나 다른 부분에서 기승전결을 좀 더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Q. 무엇보다 사랑 앞에서 당차고 적극적인 모습이 스칼렛을 더욱 매력적인 여자로 만들어 주지요. 지우씨도 사랑 표현이 뚜렷한 편인가요?
그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을 했고요. 남편이 정말 좋았던 부분이 그거였어요. 남편이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젊은 남녀가 만나는데, 아, 미안해요, 물론 젊진 않아요, 내가 당신보다 8살이 많아요.(웃음) 하지만 젊은 남녀가 만나고 표현하는데 있어서, 내가 어디 가서 당신을 숨기는 건 정말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이 저와 너무 같았기 때문에 저희는 연애하면서도 굉장히 편히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다 했어요.

스칼렛도 자기 표현에 솔직한거거든요. 돌려 얘기하지 않고. 단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때문에 나중에 진짜 사랑하는 남자를 잘 보지 못하는 게 있지만 결국 레트한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잖아요. 저는 그 부분이 그 시대에 더욱 굉장히 멋진 여자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소설 속 인물이라고 해도요. 요즘에는 특히 서로 재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밀당’인데 스칼렛이 그게 없어서 정말 좋아요. 있는대로 사랑을 하다가 어, 이게 아닌 것 같아, 그러면 다시 자신의 사랑을 찾는다 하지만 최소한 바람둥이는 아니잖아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거,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

Q. 요즘엔 ‘쉐프’가 매력적인 대표 남자, 1등 신랑감으로 떠올랐어요. (웃음) 남편이 집에서도 맛있는 요리해 주시나요?
물론 호르몬 문제도 있었지만, 제가 왜 살이 쪘겠습니까. (웃음) 남편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직업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요리를 너무 즐겨요. 전 남편한테 “이제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게 싫어요.”라고 말하는데, 원래 되게 좋아했는데 언제부터 너무 노래 잘하고 싶단 생각 때문에 가기가 싫은 거에요. 그래서 “오빠는 집에서 요리하고 싶어?”라고 하니까 자긴 재밌데요.

남편을 되게 멋있다고 생각한 게, 본인이 라인에 서서 일하기 보다 밑에 계신 수 셰프님들을 라인에 서시게끔 해요. 해 봐야 는다고, 수 셰프님 하시는 거 보고 나중에 자기가 설거지 하고. 같이 있는 사람들을 키워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라인에 많이 안 서니까 집에서라도 해야 한다고 해요.


Q. 신문에 육아일기를 연재하고 계시더라고요. 출산 준비부터 육아까지 준비도 너무나 꼼꼼했고, 정말 부지런히 움직이시는구나, 놀랐어요.
제가 좀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께서 저와 동생을 그렇게 키우셨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엄마 손으로. 간식을 돈 주고 사 먹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학교 갔다 오면 항상 엄마가 계셨고, 고구마 튀김이나 오징어 튀김, 닭강정, 떡갈비, 이런 거 항상 만들어 주시고요. 예전엔 집 열쇠 들고 다니는 애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는데, 뭔가 멋있어 보였거든요. (웃음) 그런데 제가 참 복 받은 거였죠.

그래서 저도 이제까지 이유식을 다 제가 만들었어요. 장보는 것부터 해서. 오늘도 이따 가서 이유식 만들어야 해요. 남편이 저한테 좀 느슨하게 키우라고, 그러지 않으면 애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다고 그러는데 아직 그게 잘 안돼요.

Q. 이제 본격 ‘워킹맘’ 대열에 들어선 셈이군요.
네. 지금 너무 미안해요. 그래도 저는 다른 분들에 비해선 정말 편한 거에요. 아이 봐주시는 이모님이 계시니까, 오늘도 아침에 나올 때 이모님하고 바통터치 하고 나왔거든요. 그런데 애기가 엄마 나가는 걸 귀신같이 알아요. 저녁 때 들어가면 안 떨어지려고 그러고.

TV에 제가 나올 때 엄마가 일부러 틀어서 보여준 적이 있데요. 애기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화면 보면서 이리 오라고, 그러면서 울더래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마음이 너무 안 좋죠. 그런데 더 미치겠는 건 아이 때문에라도 미치겠고, 또 나와서도 너무 잘 하고 싶은 것 때문에 미치겠다는 거에요. 워킹맘들이 울면서 출근하고 울면서 집에 들어온다는 말이 정말 뭔지 알 것 같아요. 정말 워킹맘들 대단해요.

Q. 과거 인터뷰에서 ‘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소망을 말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그 소망이 이루어졌는데, 그렇다면 김지우의 다음 소망은 무엇일까요?
우리 아이가 저를 봤을 때 ‘나도 저렇게 멋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어요. 저 역시 엄마를 보면서 저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 느꼈거든요. 양쪽 일을 다 하고 싶은데, 그러긴 힘드니까 반타작이라도 해야 하나. (웃음) 근데 성격상 반타작이라고 생각되면 스스로 괴로워할 것 같아요. 잘 해서 보여줘야죠. ‘나중에 너도 이렇게 멋있게 일 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라, 서른 세 살에도 열 여덟 살 스칼렛을 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웃음)

Q. 지금, 딸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멋진 엄마의 길로 들어선 것 같나요?
아직까지는요. 볼링 공이 또랑으로 빠지진 않은 것 같아요. (웃음) 저는 되게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항상 얘길 하거든요. 연기자 출신으로 뮤지컬에서 이 정도 자리 잡는 경우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 실력보다 운이 정말 많이 따라줬다는 걸 인정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할 수 밖에 없어요. 제 주변에 있는 배우, 컴퍼니까지 나쁜 소리 듣게 둘 수 없잖아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영상: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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