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자유의 건반, 임동민

피아니스트 임동민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 기자의 어깨는 광화문 네거리에 쭉쭉 빠져 나뒹굴고, 발걸음은 질척거려 불어오는 한 올 바람에 거대한 한숨을 마구 날릴 수 밖에 없었다. 대답이 간결한 인터뷰이를 마주한 모든 인터뷰어의 심정이 바로 이럴 것. 하지만 돌아와 녹음된 대화를 들어 볼 수록, 이 사람, 진실하다. 그를 수식했던 거대한 타이틀을 접어두고, ‘진실한 임동민’을 우선순위에 놓는 이유, 이제부터 이야기 해 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1996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1998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준결승 진출, 2000년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 2002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5위에 오르며 정명훈, 백혜선에 이어 한국인으로서 세 번째 본선 수상하는 피아니스트로 세계에 그 이름을 다시 알렸다. 무엇보다 2005년 쇼팽콩쿠르에 동생 임동혁과 공동 3위에 올라 국제 무대에서 놀라움과 믿음의 이름으로 자리하게 된 피아니스트 임동민.

스물 아홉, 그가 갖고 있는 수 많은 반짝이는 명패들은 그를 ‘철저하고 계획적인 연습벌레’로의 인상으로 비춰내기 쉬울 법, 그러나 이 말을 하자마자 의외의 웃음이 쏟아진다. 
“그래요? 난 몰랐는데. 전혀 아니에요(웃음)"

많은 공식적인 연주가 있으시고, 여러 매체에서 보여지는 모습도 그러하잖아요.
“예, 항상 인생이 타이트 하죠. 빡빡한 일정, 그런 감이 있겠죠."

인생의 반은 무계획인 것 같아요.
“예,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있고요.”

세상사나 자신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예. 알고 싶지 않습니다. 호기심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피아노에 대해서도요?) 네.”

9살 때, 살던 아파트에서 피아노를 치는 게 유행이어서 자신도 취미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는 임동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여기’는 어떤 자리일까.
“연주하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왔고, 또 대학교수가 되었고, 그럴 줄은 저도 몰랐어요.”

선화예중 입학과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에서 보낸 학창시절, 독일과 미국에서 수학했던 그 모든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지금까지의 걸음이 모두 ‘어쩌다 보니’라고 자연스럽게 부는 바람에 비유한다.

주고 받는 공감일 뿐

올 해 임동민은 또 하나의 길을 걷고 있다. 대구 계명대학교 피아노과 부교수로 강단에 서는 일. 마침 인터뷰 전날, 첫 강의를 했다고 한다.

제자들도 직접 뽑으셨다는데. 학생들 반응은 어땠나요?
“어떻게 아셨나요? 허허허허. 별 반응 없었습니다.”

임동민씨가 교수 부임 후 이번 학기 수시 모집 지원률이 조금 높아졌다고 해요. '임동민 효과’라고도 하는데요.
“못 들었습니다.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학교측에서 콘서트 홀 건립과, 폴란드 쇼팽 음악원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교수진에 쇼팽 콩쿨 입상자를 원했고, 지인을 통해서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임동민. 경제적인 이유 뿐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로 교수로 서게 되었다는 그에게 학교에서의 모습을 물었다.

“글쎄요. 학생들 치는 것 보고, ‘아, 이게 이런 문제점이 있으니까 나도 이런 문제점이 있었구나’ 공감이 가는 것 뿐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교수 임동민에게 무얼 기대하는 것 같은가요?
“학생마다 다 자질이 틀리고, 특징도 틀리고. 그래서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학생이 나쁜 길로만 가지 않게 하는, 그런 역할인 것 같습니다.”

나쁜 길이라 함은?
“예를 들어서, 연주를 할 때, 이건 이렇게 치면 안 되는데, 완전 이렇게 치면 안 되는데 그랬다, 그런 것에 대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으로 제가 능력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학생 임동민은 어땠나요?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자질이 있었던 학생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학생. 특별한 자질이 있는 사람은 몇몇 안 되죠.”

젊은 거장, 천재 피아니스트라고 많이 부르는데,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거장이라는 말은 너무나 과장된, 만들어낸 얘기 일 뿐이고요, 저한테 와 닿는 말이 아니에요, 전 단지 피아니스트인 것 같아요. 그냥 성실한 거… 사실은 성실하지도 않은데(웃음). 성실할 때가 있고 또 아닐 때도 있고. 연습을 하면 항상 잘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연습이 반드시 잘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요?
“잘 돼야죠. 실전은 아니지만 실전이 되게 하는 거니까. 연습의 질과 양 모두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는 이 말에 유달리 강한 힘이 들어갔다.)


콩쿨과 리사이틀, 첫 앨범과 베토벤

콩쿨 이야기가 빠질 수 없어요.
“하나의 경험일 뿐 입니다. 자기가 한 걸 가지고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경험이죠. 기회이고.”

다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나요?
“그런진 않죠. 하지만 한국 사람이 국제 무대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 우리는 유태인이나 중국인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콩쿨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현실인 거고, 그게 아쉽죠. 기회가 될 수 있는 연결 선이 될 수도 있는 것일 수는 있죠.”

중국인 연주자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이 큰가요? 우리나라의 입지는 어떤 것 같나요?
“중국은 그 수도 많고 수월합니다. 첫째로는 시장도 크고, 나라 자체 국력도 훨씬 강하고. 그 나라는 음악에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음악계에 아직 힘이 없습니다. 그것을 만들기가 힘들죠. 우리나라에 재능있는 사람도 세계적인 무대에 들어가고,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는건 아주아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임동민씨는 아직?
“어우, 제가 그 수준에 들어갔다면 왜 한국에 왔겠습니까. 허허허허.”

조금 섭섭한데요?(웃음) 더 성장하시면…
“그건 아무도 모르죠. 아무래도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으면 외국에 있는 게 더 편하니까요. 저는 앞으로 제 생활이 어떨지… 그런데 저는 미련은 없습니다. 단지 제가 어떻게 할 건지 잘 모르겠지만,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작곡, 지휘에도 관심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단지 연주자로의 길만 갈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의 꿈은 원래 소박했거든요."

꿈은 무엇이었나요?
“원래 꿈은 시골에서 농사짓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게 꿈이었다는 피아니스트의 첫 스튜디오 레코딩이 소니비엠지뮤직에서 인터뷰일(19일) 발매되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23번 열정, 그리고 31번이 그의 터치로 살아난다.

“쇼팽 콩쿨 이후 주로 친 레퍼토리가 베토벤이었습니다. 월광은 제가 옛날부터 좋아했고, 열정은 많이 쳤던 곡이고요, 31번은 후기 소나타 중에 하나를 치고 싶었던 거였고요.”

첫 앨범 발매하시고, 곧 리사이틀도 준비하고 계시는데요. 여성팬들 많은 것 아시나요?
“아니요, 전 잘 모릅니다. 원래 클래식은 그래요. 연주자가 젊은 남성이면.”

그리고 문득, 그의 질문이 새롭다.

“(예매한) 여성팬들, 주로 10대인가요? 20대인가요? 30대?”

주로 20대요, 30대 초반. 궁금하셨어요?(웃음)
“예, 뭐 그냥(웃음)”


요즘은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많이 사랑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일이겠죠.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건 좋은 현상입니다.”

비즈니스 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되기도 합니다.
“전 좀 보수적이라서, 클래식은 자기와 작곡가가 통하고 그걸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이야기를 또 나누게 된다면, 그 때 대답이 많이 달라져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누구도 모르는 것이죠.”


나탈리 포트만과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 재미있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 “재미있다는 게 어떤 것이냐”를 물으니 곰곰이 생각하다, “좀 약간, 스펙타클한 것, 그 재밌는거 있잖아요, 재밌는거”라고 말하며 겸연쩍게 웃던 임동민. 문득, “제가 효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묵직하게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그는 누군가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곰곰이 듣고, 대답의 마침표까지 정확히 말하는 부분이 많았다.

종종 사람들은 아름다운 대상에게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지만, ‘호감’이라는 말 속에 이미 자신만의 정답을 그려놓고, 그러한 대답을 바라는 경우가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이 진중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좀 더 빠져들게 되는 것은, 그만의 열정과 노력에 대한 고집이 이뤄내는 선율 뿐 아니라, 섣부른 예상도, 오만한 확신도 없이 오로지 ‘진실’만을 표하려는 그만의 자세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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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 2008.09.23

    ㅋㅋㅋ 기사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