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발레단 첫 내한공연 <홍등>
작성일200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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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감독의 <홍등>이 드디어 한국을 찾는다. 1991년 개봉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영화 홍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영화를 만든 감독 장예모가 직접 각색, 연출, 예술총감독을 맡고 중국의 국립발레단인 중앙국립발레단이 무대를 수놓은 대형 퓨전 발레 <홍등>이다. 2008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폐막작인 이번 공연에 가슴 설레는 관객은 아마도 많을 것이다. <홍등>은 지난 2001년 중국에서 초연된 이후 대만, 홍콩,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20개 세계 주요 도시에서 공연하며 명성을 날려온 작품. 몇 해 전부턴 국내 공연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번번히 무산되곤 해 국내 관객들의 아쉬움을 자아냈었다. 드디어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홍등>은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 기념작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중국 공연의 자존심이기도 한다. 65명의 출연진과 70여명의 오케스트라라는 중국다운 스케일에 장예모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이 빛을 발하는무대를 눈 앞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대저택에서 일어나는 비극적 드라마
<홍등>은 이 작품을 만든 장예모 감독과 그의 영화 ‘홍등’에 대해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다.장예모 감독은 지난 20여년 남짓 국제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수여받은,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1987년 그의 첫 작품 ‘붉은 수수밭’으로 38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인으로서, 또한 신인감독으로서는 최초로 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두’ ‘나의아버지어머니’ ‘영웅’ ‘연인’ ‘천리주단기’ 등으로 국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중국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장예모 감독은 무대작품들의 제작과 연출에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투란도트>, <인상, 유삼저> <인상서호> 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2008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예술총감독을 맡은 일은, 중국내에서 그의 위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홍등>은 한 남자에게 시집온 네 명의 부인들의 암투와 질투, 파멸을 그림같이 아름다운 중국 저택을 배경으로 펼쳐 그 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특히 넷째 부인으로 저택에 들어와 점점 권력욕에 사로잡히고 마는 주인공 송련(공리)의 심리가 세밀하고도 집요하게 표현되어 많은 영화팬을 양산하기도 했다.
장예모는 이런 작품을 발레극으로 다시 탄생시켰다. 그가 중앙국립발레단에게 작품 제의를 받았을 때 바로 <홍등>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유는 세 가지. 이야기의 구성과 형식이 무대극으로 잘 어울리고 기존 발레관객들에게 충분히 어필하면서도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야기 속에 경극이 등장한다는 이유였다. 중국의 전통예술인 경극과 발레의 만남이란 점이 이 거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영화 홍등이 무대로 옮겨지면서 이야기는 약간 달라진다. 영화상에서 네번째 부인으로 설정됐던 주인공 송련은 무대에선 세번째 부인으로 설정, 이야기에 집중을 높인다. 또한 영화상 세번째 부인이 집안 주치의와 바람이 나서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은, 주인공이 직접 불륜의 당자자가 되는 것으로 바뀐다. 그리고 상대 남자는 의사에서 경극 배우로 바뀌며 비주얼에 신경을 썼다. 영화보다 간결해지고 드라마틱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장예모의 선택이다.
TIP 영화 홍등 살펴보기
1920년대 중국, 대학을 중퇴하고 계모의 강요에 못 이겨 지극히 봉건적인 가문인 진어른의 네번째 첩으로 들어간 송련(공리). 남편은 네 명의 부인 중 매일 한 명을 택해 잠자리를 같이 하는데 선택 당한 부인의 처소에는 그날 밤 홍등을 밝히는 가풍이 있다. 이 때문에 네 명의 부인은 서로 질투, 모략하고 송련은 자신의 존재가 한낱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감에 빠지다 셋째 부인이 부정을 저지르고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 미쳐버리고 만다. 하지만 진어른은 다섯번째 부인을 새로 맞아들이고 중국 봉건사회의 폐습은 지속된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홍등’은 한 가문의 대저택 안에서 저질러지는 중국의 폐습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려내 1991년 제 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3대 거장을 통해 만나는 중국 퓨전 무용극
<홍등>은 중국 전통의 경극과 그림자극을 발레와 접목시켜 중국과 서양의 만남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의 퓨전 무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받고 있다. 또한 연출을 맡은 장예모 감독 특유의 영화적 공간 활용과 연출기법으로 말은 없지만 지루하지 않는 발레극이라는 점도 매력. 감독 스스로가 발레 전문가가 아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작품의 ‘퓨전’은 크리에이티브팀의 면모에서도 잘 나타난다. 장예모 감독은 <투란도트> 때와 마찬가지로 주요 스텝을 인터내셔널한 인력들로 꾸렸다. 작곡은 프랑스계 중국인 진기강이 맡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 음악 총 감독을 맡기도 한 그는 오케스트라 내에 중국 전통 음악을 넣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안무는 독일계 중국인 왕신펑이 맡았다. 이로써 <홍등>은 장예모, 진기강, 왕신펑이라는 중국 문화계의 3대 천재의 만남으로도 더욱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의상은 프랑스 디자이너 제몰 카플랑이 디자인했는데, 극히 중국적이면서도 화려하고 매혹적인 색감과 라인을 살려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을 연상케 하는 붉은 색 위주로 만들어진 무대는 프랑스 무대감독 베르나르가 완성했다.
인터내셔널한 창작자들이 모여 만든 이 작품은 중국적이면서도 서양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다. 극 중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중국 전통극인 경극으로 표현한다. 여기에 음악과 의상, 무대는 과거와 현재의 중국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극 중 등장하는 마작놀이와 그림자극은 중국의 전통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매개체다. 70인조 오케스트라는 이 작품 비장의 무기. 중앙국립발레단 전속 오케스트라는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수준 높은 발레 공연과 장예모 특유의 무대 감각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발레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장예모 감독의 무대 연출력이 어떻게 구현되어 나타나는지 주의깊게 보는 것도 작품 관람의 또 다른 재미일 것.
홍등은 오늘 10월 17일 성남아트센터를 시작으로 10월 30일까지 대전과 경기, 서울을 투어한다.
TIP 중앙국립발레단은?
중국의 중앙국립발레단은 70명의 발레배우, 10명의 전문무용교사 및 리허설 인원으로 구성됐으며 서양의 고전발레에서부터 현대발레까지 소화하며 중국민족특색의 발레작품을 여럿 선보였다. 이 발레단의 특징 중 하나는 60여명으로 이루어진 중앙발레단 교향악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는 중국내에서 유일하게 발레를 전문으로 연주하는 악단으로 중앙발레단에서의 연주뿐만 아니라 외국의 발레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합작을 하거나, 단독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글: 송지혜 기자(인터파크INT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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