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로 비발디를 초대한 그녀, 첼리스트 장한나

2001년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는 그녀를 두고 “이런 식이라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지 나로서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장이자 지난 2월 평양에서 아리랑을 지휘하기도 한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은 “솔직히 그녀만큼 완벽한 연주를 하는 첼리스트는 내 생애에 처음”이라고 했다. 세계 거장들의 깊은 눈이 먼저 알아 본 첼리스트 장한나의 울림. 그녀가 다시 한번 잔잔하지만 강인한 파동을 일으키려 한다. 바로크, 그 안에 살던 비발디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오늘을 걸으며 말이다.


감정의 무지개 피어 오르다

“흔히 비발디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게 뭔지 아세요?”
“봄! 하하하하.”
“아니, 사계까지도 안 가고 그냥 봄인가요?”
“네! 봄이요! 짠짠 짜라라 라~(웃음), 그게 익숙하거든요, 음악가들도 그래요.”

그래서 더욱이 첼리스트 장한나가 선보이는 비발디가 낯설 수 있겠다. 12살 때 첫 앨범을 발매한 이후 지금이 꼭 7번째 음반, “와, 벌써 15년이야?”라며 스스로 놀랄 정도로 스물 일곱의 젊은 음악가는 새음반 비발디의 첼로 콘체르토로 촘촘히 쌓인 나이테에 또 한 줄을 더하고 있었다.

“비발디가 남긴 30개의 첼로 협주곡 중에 7곡을 골랐어요. 굉장히 생소하지만 그가 남긴 순수한 음악을 접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사계가 비발디의 훌륭한 묘사력을 나타낸 곡이지만, 들을 때 저마다 갖고 있는 사계절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에 표제 음악이라는 시야를 벗어나기 힘들거든요. 하지만 이번 앨범에 담긴 첼로 협주곡처럼 주제 없는 곡은 음악 그 자체를 표현한 거잖아요. 비발디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또 다양한 감정을 가졌던 음악가였고, 감정의 무지개가 담겨 있는 순수한 비발디의 음악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비발디가 표현하고자 했던 천차만별한 감정을 ‘공평하게 해석’하고 싶었다는 첼리스트 장한나. 천재라는 수식어가 이제는 자연스러운 그녀는 이렇게 ‘죽어서 비발디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한 책임감’으로 또 한번 세상 앞에 서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 음악에는 당시 1900년대 사회가 가졌던 차가운 기운과 엄청난 긴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걸 표현하기 위해 몰입하고 나면 저도 연주 후에 탈진하거든요. 이후 넘쳐나는 감성들, 푸근함을 느끼고 싶어서 낭만시대로 갔다면, 이번에 바로크 행은 조금 더 담백하게, 어쩌면 우리 시대와 더 가까운, 세련되고 모던한 비발디의 음악에 다가서고 싶었던 거죠.”

새 앨범을 함께 녹음했던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는 11월 국내 전국 투어 연주도 함께 한다. 비발디 뿐 아니라 모차르트, 헨델의 곡도 만나볼 수 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많았는데 12명이 하나인 체임버와 연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특히 런던 체임버 단원분들은 굉장히 개성이 강한데다가, 1대 1 관계가 형성되니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유롭게 아이디어도 교환하고요. 제가 원하는 맵시나는 소리, 저와 잘 맞는 소리가 나올 거예요. ”

젊음이 세상을 흔든다

올 3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끈 젊은 지휘자 유로프스키를 비롯하여 세계 클래식계에 부는 영파워(Young Power)는 무척이나 세다.
3살 때 처음 첼로를 접하고 8살에 서울시향과 협연, 11살에는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국제 콩쿠르에 최연소 대상을 수상하면서 천재 소녀로 발자국을 뗀 그녀에겐 여전히 세이지 오자와,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리카르도 무티 등 세월의 흐름을 이끈 노장들과의 협연이 익숙하지 않을까.

"지난 1년간 두다멜(베네수엘라의 27세 지휘자), 야니크 네제 세귀앵(30대 캐나다 지휘자), 투간 소키에프(30대 초반의 러시아 지휘자) 등과 연주 했어요. 같은 세대에요, 라이징 스타! 같이 연주하면 너무 좋아요. 친구 같고, 리허설 후 “힘들다, 밥 먹자” 그러면 “그래, 밥 먹자”이러고 다 같이 가고(웃음).

그런 게 편한 거예요. 평생 음악을 해 오시고 연륜도 많으신 마에스트로에게는 당연히 경애심이 있죠. 배울 점도 많고, 아버지 같은 분들이시고. 하지만 또래와 연주하면 또 신나요(웃음). 솔직히 음악가들이 굉장히 바빠서 같이 만날 때가 없는데, 연주하면서 자주 보니 더욱 반갑죠. 그리고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평생 친구같이 함께 할 시간이 더 많은 사람들이잖아요.”

젊은 음악가들의 거침없는 움직임과 놀라운 음악적 역량에 대해서 같은 ‘또래’인 장한나의 생각이 궁금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거장’과는 어울릴 법하지 않을 ‘까르르’표 웃음으로 상대방을 홀려내고야 만다. 연주 도중 오물거리는 입술과 선율에 따라 모아지고 펴지는 눈썹 등 자유롭고 풍부한 표정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라면, 이 경쾌하고도 상쾌한 웃음 역시 빠질 수 없는 장한나의 매력일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요, 제가 연주회 갔다 오면 선생님들이 절 보지도 않고 학교 온지 다 아셨대요. 웃음소리 듣고요(웃음). 목소리도 크지, 웃음소리도 크지, 그러니까 ‘아, 올게 왔구나, 왔어’ 하고요(웃음).”

10살의 어린 소녀가 미국 줄리어드 유학생활 시작으로 겪었을 낯설음과 외로움 등 어두운 세상의 손짓들은 그녀를 모두 피해간 것만 같다. 천재와 거장의 길과 함께 하는 부담과 시선이라는 무거운 동반자와도 하이 파이브를 했을 것 같은 그녀다.

“가족이 저 때문에 모두 이사를 한 거죠. 감사한 것은 따로 살지 않고 엄마, 아빠가 다 같이 미국으로 왔다는 거예요. 늘 부모님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축복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 갔다 집에 와서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 종알거리면서 다 이야기하고(웃음). 그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였던 것 같아요. 또 어렸을 때부터 연주자 생활을 하다 보니 연습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굉장히 편해졌어요. 나와 첼로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당연한, 어쩔 땐 더 없이 큰 굉장한 즐거움이에요.”

평범비범이 나를 세운다

낙천적인 것은 그녀의 심성일 뿐, 음악과 무대 앞에 선 태도는 언제나 곧고 강하여 종종 날카로웠다. 새 음반 녹음 시 손가락이 찢어져 쇠 줄이 상처를 에어도 쉬지 않고 연주했던 그녀,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 매 순간 모든 노력을 다 한다는 장한나가 지난 4년 여 간 집중적으로 공부한 끝에 2007년 지휘자로 섰다.

제 1회 성남 국제 청소년 관현악 축제에서 프로코피예프, 베토벤의 교향곡을 지휘한 장한나. 이후 우리는 몇 번 더 지휘봉을 잡은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지휘를 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같이 공연을 하는 그 순간까지 이뤄지는 변화, 단원들에게 볼 수 있는, 음악적으로 들리는 변화들이 너무나 보람 있었어요. 점점 서로를 알아가면서 신뢰하고, 그것이 다시 서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인간적인 부분들은 솔리스트로서는 느끼지 못할 점들이잖아요. 혼자, 내 연주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지휘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연주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그녀가 지휘를 말하는 도중 여러 번 힘주어 말했던 ‘연결’과 ‘소통’은 무엇보다 청소년, 그리고 클래식 사이의 가교로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분명했다.
“클래식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저는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오늘 무슨 음악을 들을까 고민할 때 클래식 음악이 팝송과 가요와 함께 하나의 선택 사항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연결고리를, 그 가이드를 제가 해 주고 싶은 거죠. 한번 가이드를 해 줘서 재미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그 이후에는 충분히 혼자 알아갈 수 있으니까요.”

솔로이스트로 음악을 대하는 것은 나의 해석, 나의 표현 등 철저히 ‘내 위주’로 다가왔기에 타인의 손을 잡고 세상과 이야기 하고 싶은 젊은 거장은 ‘남의 생각’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음대가 아닌 하버드대 철학과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철학은 남 위주인 거 같아요. 저 사람이 뭘 했고,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래서 매우 재미있어요. 음악이 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철학 공부하면서 음악이 인생의 전부가 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이 인생의 전부가 되긴 싫어요. 세상에는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이 많고, 관심만 있다면야 배울 수 있고,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다 마음의 자양분으로 남지 않겠어요?”

법대를 졸업했으나 가야금 연주자가 된 황병기는 올 봄 장한나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주에 앞서 “그녀가 음악이 아닌 철학을 전공해서 좋았다”고 말한 바 있다. 타고난 집중으로 선율에 집중해야 하는 음악가에게 넓고 깊은 시야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그도, 그녀도 그렇게 보여주고 있었다.

의미, 그것이 확신이다.

독서광으로도 널리 알려진 그녀가 최근 깊이 빠진 것은 D.H 로렌즈와 버지니아 울프다.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접했다는 이들 소설 이야기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던 그녀에게 ‘음악과 책 말고’ 지금의 큰 관심사를 물으니 단번에 ‘정치’가 나온다.
“오우~ 오바마와 매케인! 세라 페일린! 전 미국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고(웃음), 한국 투표권이 있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지 않아서 투표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또 마음대로 이야기 할 자유가 있다고요(웃음).”

새 시대가 와야 한다는 확신, 한 사람의 판단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의 움직임에 대한 토론은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귀결된다.
“지휘를 시작한 이후 이러한 움직임들이 더 재미있게 다가와요. 지휘자 한 사람의 여파로 좋은 연주가 될 수도 있지만 나쁜 연주가 될 수도 있고. 정말 황홀한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시시한 경험으로 끝날 수도 있잖아요.”

또렷한 눈동자, 확신에 찬 한마디 한마디는 앞으로 그녀가 더욱 많이 걸을 미래의 걸음을 조금은 예상할 수 있게 해 준다. 4년 후가 될 것 같다는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음반 녹음과, 그 밖에 ‘의미가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정해지지 않은 프로젝트들에 대한 기대는 음악가 장한나의 가슴을 더욱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미래를 많이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모순인 것은, 사람은 당장 오늘 저녁 일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연주자들은 2년, 3년 후의 연주를 계속 계획하고 있죠. 기계같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고 할까요?(웃음) 2년, 3년 후에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슬럼프가 없도록 미리미리 준비하고 또 생각하곤 합니다.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클래식을 전해 주고 싶은 것도 미래를 위해서죠. 지금 성장하면서 감동을 받았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클래식을 가까이 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녀의 롤 모델은 레너드 번스타인이라고 한다. 아낌없이 나누는 음악가로 생전에 그가 남긴 많은 저술, 많은 청소년 음악회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더 없는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번스타인이 보인 ‘미친 사람 같은 열정’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너무나도 푹 빠져서. 좋은 뜻으로 미친 거죠. 정열과 사랑으로 한없이 나눠줬기 때문에 번스타인은 죽을 때도 한이 없었을 것 같아요. 정말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웃음). 순간 순간에 충실하고 만끽하면서. 어머, 미래를 생각한다고 방금 말했는데(웃음). 순간에 충실하면서 미래를 생각하는 것, 바로 그거에요!(웃음)”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u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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