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루마
작성일200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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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날씨 춥네요.”
인터뷰 장소인 작은 카페에 들어선 이루마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놀랐는지 감탄사 겸 인사를 건넨다. 사람 좋은 첫 인상.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에게 풍겨오던 날 선 예민함과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사교성이 감지된다. 그는 'When The Love Falls’ 'Kiss the Rain’ 'MAY Be’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음악을 들어봤을 선율을 선사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최근 군입대와 제대, 그리고 결혼 등으로 연예인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아온 피아니스트다.
막 라디오 방송의 게스트를 마치고 돌아와 “내 곡도 연주하고 원더걸스의 노바디도 연주했다"며 흥미로워 하는 그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규정하기에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군 제대 후 2년만 돌아와 6집 앨범을 발매하고 전국 투어 콘서트를 진행 중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이루마를 만났다.
20여 개 전국투어 중이다. 군 제대 이후 바로 투어를 진행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러게..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공연이 예전 같진 않다. 피씨방(부업)을 차려서 거기서 연주를 해볼까? 하하하
그냥…계속 해 왔던 걸 하는 거다. 앨범도 콘서트도..난 방송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팬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공연밖에 없고 관객 앞에서 직접 연주하는 느낌은 레코딩과는 많이 다르다. ‘이런 음악이다’하는 걸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다.
공연 컨셉은 무엇 인가.
기존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전반부는 솔로로 진행되고, 2부에서는 현악이 들어간다. 예전엔 드럼, 베이스, 기타까지 함께 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피아노 위주로 선보이고 있다. 제대 후 처음 인사 드리는 무대라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콘서트 이름이 ‘Ribbonized(리보나이즈)’다. 6집에도 같은 이름의 곡이 있던데, 무슨 뜻인가.
‘리본화 한다’라는 뜻으로 내가 만든 단어다. 리본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끈이라고 생각한다. 선물마다, 옷마다, 신발마다 우리 삶에는 리본이 있고 그 의미는 각양각색이다. 리본을 통해 스스로 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본하면 우선 선물이 떠오르는데...선물을 많이 하거나 받았나 보다
워낙 퍼주는 걸 좋아해서 선물을 많이 했다. (옆의 매니저에게) 오늘 이분 생일인데 아직 선물 못했다. 오늘 해드릴 거다(웃음).
이루마는 최근 6집 앨범 ‘P.N.O.N.I’(피아노와 나)를 발매했다. 한없이 부드러웠던 그의 피아노 선율은 밝은 에너지를 품고 힘차졌다. 지난 2년간 군 복무와 결혼, 딸에게서 받은 영감이 반영됐을까.
피아니스트보다 작곡가로 자리를 잡고 싶다는 인터뷰를 봤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고 부르시는데, 우선 뉴에이지란 장르가 참 애매모호한 것 같다. 그래서 작곡자 겸 연주가로 불리고 싶다. 싱어송라이터처럼 음악을 쓰고 연주하는 사람으로. 이제 작곡 쪽에 좀 더 비중을 두려고 한다. 가요쪽 작업도 해보고 싶고.
이번 6집 앨범은 밝고 깨끗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로의 여행’을 주제로 밝고 긍정적인 곡들이다. 6집의 마지막 곡은 ‘HOPE’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게 희망적이고 뭘 해도 다 잘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나. 하지만 성인이 돼서 세상 물정을 알고 현실에 부딪치면서 희망이란 감정을 잊을 때가 많다. 어릴때 희망들을 다시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2년 간 군 복무와 결혼을 했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은데.
가장 큰 일들을 군대에서 2년만에 모두 해치우고…해치운다니까 이상하다(웃음). 모든 걸 치루었다. 우선 아쉬운 마음이 많다. 아내와는 신혼 때도 떨어져 있었고 아이를 가졌을 때도 거의 아내 혼자 지냈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많아서 이번 앨범 음악 속에 더 잘해주고 싶단 마음을 표현했다.
결혼과 아이가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번 6집이 그렇다. 식구가 생기니 저절로 내 어린 시절을 반추하게 되더라. 아이는 내가 어렸을 때의 생각, 처음 피아노를 접했을 때의 느낌, 모든 처음 접했을 때의 기분을 되돌아 보게 한다.
군 입대도 화제였다. (그는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군 군악대에 들어갔다) 남들이 가기 꺼려하는 군대를 지원한 것도 화제지만, 자유롭고 섬세한 아티스트가 규율과 규칙이 엄격한 군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당연히 힘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은 익숙해지나 보다. 그 당시에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웃어 넘길 수 있는 상황들이었다.
어떤 면이 힘들었나.
글쎄…아무래도 나이가 있어 군에 가니 서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보다 어린 선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를 잡으려고 했다. 어떤 선임은 나에게 귀를 파준다고 무릎에 눕게 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굴욕이다. 그 당시에는 싫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힘들었나 보다. 어느 정도 각오는 돼 있지 않았나.
가끔 어떤 일을 할 때, 미리 철저하게 알아보면 나중에 지쳐서 ‘됐다, 하지 말자’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을 몰랐다. 지금은 추억거리로 남아 있고…그때 나에게 귀를 파준다던 선임이 제대를 하고 인사를 하러 왔는데, 조금 어색은 하더라(웃음).
군 입대와 제대가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인 성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음악적으로는 크게 영향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인간적인 부분,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바뀌었다. 나에 대해 꾸미기 보다 그대로 보여주는 것,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에 좀 더 성숙해 진 것 같다.
그 동안 영화 음악, 드라마 음악 등에서 활약을 해왔다. 겨울연가 등 드라마 음악이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를 알리는 계기가 됐고.
활약한 것 보단 참여한 형식이라 아쉽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은 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이고 꽤 매력적이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스갯소리로 나에게 안 맡기면 그냥 내가 영화 만들겠다고도 했다(웃음). 이외에도 콘체르트 협주, 오케스트라 작곡도 하고 싶다. 할 일이 많다.
평소에 라디오 DJ를 하고 싶어 했다. 고정 게스트는 라디오 DJ를 위한 워밍업인가(웃음)
라디오 DJ는 나중에 꼭 한번 하고 싶은 거 맞다(웃음). 현우형과 홍진경씨 라디오에 출연해서 음악을 소개하고 연주도 하는데, 요즘 젊은 연주자분들이 많이 등장해서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다.
영화 드라마 음악, 콘서트, 새로운 장르의 작곡까지..욕심이 대단한 것 같다
욕심이 아니다. 내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최근 관심 있게 본 영화는 무엇인가.
가장 최근에 영화 ‘맘마미아’를 봤다. 사실 아바 노래를 그다지 좋아한 편은 아니었다. 영국 여성들이 맥주 한잔 마시고 호프집에서 노래를 부르면 백이면 백 ‘댄싱퀸’을 불렀다. 하도 많이 들어서 아바는 댄싱퀸만 있나 했을 정도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노래들이 모두 좋더라. 사실 뮤지컬도 봤는데, 그 땐 입대를 앞두고 봐서 몰입하지 못했다. 불안해서(폭소).
맘마미아에 딸(소피)가 나오지 않나. 나중에 우리 딸도 결혼시킬 때는 얼마나 슬플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딸 결혼은 시켜야 하지 않겠나(웃음)
그렇다. 데릴사위를 들이는 게 좋겠다. 하하
만약 딸이 아빠처럼 음악을 하겠다고 하면 어떨 것 같나.
음…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아내가 물어봤다. 로운이가 음악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난 ‘노우’ 했다. 너무 힘드니까. 음악이 직업이 되면 참 힘들 수 있다. 연주를 할 때면 항상 긴장을 해서 간혹 곡예 같단 생각도 하니까. 물론 즐길 때가 많지만. 아내가 다른 질문도 했다. 음악 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떻겠냐고. 난 역시 안 된다고 했다. ‘그럼 난 뭐야’ 하더라(웃음). 음악가 남편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나는 그나마 낫잖아’라고 아내한테 이야기 하곤 한다(웃음). 딸에게 음악을 억지로 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 나도 피아노를 억지로 한 적은 한번도 없다. 혼자서 너무 재미있어 익힌 것이었다. 그렇다고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다.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니 음악 영재학교에 입학했던 게 아니었나 (그는 11살 무렵 영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영국의 영재 음악학교 퍼셀스쿨과 런던대 킹스컬리지를 졸업했다).
아마 한국의 예술 학교라면 못 들어갔을 수도 있다. 영국이니까 가능했던 거 같다. 악기를 다루는 스킬보다, 잠재된 가능성을 봤을 거다. 사실 그 학교 아이들은 진짜 천재 맞다. 난 천재라고 하기엔 부족했던 거 같고.
어린 나이에 영국 유학생활이 힘들지 않았나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다. 영어를 한 마디로 못 해서 큰 누님이 수첩에 적어준 기본 문장 이외에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다음 수업은 뭐에요(What is next class)’ 같은 문장 밑에 한글 발음을 적어서 그대로 따라 해야 했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웃음).
영국에 10년 넘게 생활했다. 한국에서 활동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한국에 온 계기는 정말 우연이었다. 2000년에 연출 공부를 하고 계시던 이지나 연출님을 우연히 학교에서 뵙고, 그분이 만들던 작품 음악에 참여 하면서부터 한국에 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당시 안애순 선생님이 안무를 맡았는데, 그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 줄도 몰랐다(웃음). 오만석씨, 홍록기씨, 백민정씨도 계셨다. 연극이 끝나고 지나누님이 대학로에서도 공연을 한다며 한국으로 와달라고 했다. 그때 한국에 너무 오고 싶어서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무조건 왔다. 연극 끝나고 이일 저일 찾다가 고생 끝에 연주 앨범을 냈다. 사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웃음). 요즘은 영국에 다시 가서 활동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이제 음악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작은 학교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싶다. 모든 음악 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그게 마지막 길인 거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돌려주고 세상을 떠나는 것…내가 어렸을 때 다녔던 퍼셀스쿨처럼 숲 속에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싶다.
이번 전국투어 이후 계획이 있다면.
아이가 생기니 아이들 음악에도 관심이 생겨서 내년 1월에 교육용 애니메이션 음악을 할 예정이다. 새로운 음악 구상도 할 겸 여행도 다녀오고 싶다.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음악이 음악으로 끝나지 않고 인생 한 부분의 추억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분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좋아하던 음악이라고 슬픈 추억으로 음악을 떠올리던데, 이왕이면 즐거운 느낌이 됐으면 한다(웃음).
글: 송지혜 기자(인터파크INT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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