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연말, <더 소울> 콘서트장을 찾았던 관객들에게 무엇보다 큰 발견과 선물 중 하나는 분명 정엽일 것이다. 박효신, 휘성, 거미와 함께 한 이번 콘서트에서 그는 ‘거대한 물결을 몰고 오는’ 목소리로 관객들의 혼을 빼 놓았다. 저마다의 재주가 뛰어나 많은 마니아 팬들과 함께 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이자 올 해 첫 번째 솔로 앨범 발매 후 부쩍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정엽을 콘서트 시작 전에 마주했다.
<더 소울> 콘서트 공연시간이 4시간이 넘어요.
저희는 하느라고 정신 없어서 그게 4시간 반인지 10시간인지 잘 모르겠어요.
막상 보니 길게 느껴지지 않던데요.
사실 원래 더 길었어요. 줄이고, 줄이고, 더 줄인다고 한 게 지금이죠. 첫날 보다 다음 날 공연은 조금 더 줄였어요. 콘서트 끝나고 돌아가실 때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불편하시다고요.
공연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하셨나요?
저희 네 명 개인적으로 정한 곡도 있고, 계속 모여서 이 곡이 좋겠다, 저 곡이 좋겠다, 의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곡 선정하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것 같아요.
솔로무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회전 무대 위에서(웃음).
첫 날 공연에서는 너무 많이 돌았죠?(웃음) 그래서 오늘은 두 바퀴만 돌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훨씬 나아(웃음). 일단 타이틀곡을 넣었고, ‘Nothing Better’ 같은 곡은 그나마 알려진 곡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브라운 아이드 소울 때부터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히트곡이 사실 많이 없어요. 그러나 보니 주로 제가 잘 하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구성을 하게 되었죠.
객석 반응이 느껴지셨나요?
솔직히 걱정 많이 했어요. 제가 가장 인지도도 없고, 반응이 좀 애매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고 올라갔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진짜 이 매거진을 통해서라도 다시 한번 정말 너무 감사드리고 싶어요.
무표정에서 툭툭 던지는 유머도 인상 깊었어요. 평소 성격은 어떠세요?
원래 스타일이 그래요(웃음). 재미있는 거 좋아하는 편이라 어디 가서 노는 것도 좋아하고요. 자리에 가면 좀 리드하는 타입인데요, 여기(더 소울 콘서트)에서는 가장 형이고 오빠다 보니까 대우를 좀 해주는 것 같아요(웃음).
라디오 디제이도 어울릴 것 같아요.
굉장히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에요.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은 게 음악 하면서 디제이 하는 것이거든요. 저의 어떤 목표 중의 하나죠. 지금 DMB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긴 한데요, 준비를 열심히 해서 내년 쯤에는 어떻게 뚫고 디제이 자리에 들어가고 싶은(웃음), 그런 목표가 있어요.
솔로 앨범 중 ‘끝이 없나봐’는 거미씨와 함께 부르셨어요. <더 소울> 콘서트의 다른 멤버들과도 음악적 교류가 있으셨나요?
거미씨와 개인적은 친분은 없었어요. 곡을 쓰고 나서 우리나라 가수들 중 누가 괜찮을까, 생각하다 보니 거미씨가 가장 잘 어울리는 거예요.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셔서 감사했죠. 휘성씨는 안면이 있던 사이었고, 효신씨는 이번에 처음 만났어요. 친한 사이가 원래 아니었는데(웃음) 준비하면서 나름 친해졌죠.
친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신가 봐요.
원래 음악이 그런 것 같아요. 개인적인 작업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강한 만큼 서로 보호막이 큰 것 같아요. 그런 걸 한번에 허문다는 것이 그렇게 쉽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다들 너무 착해요. 오히려 저도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연장자라 그런지 잘 대해줘서 동생들한테 고맙죠.
솔로 앨범은 굉장히 잔잔하고도 담백한 느낌입니다.
사실 1집 앨범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진 않았어요. 여유 있게 작업했더라면 구성에 더 많은 신경을 썼을텐데 지금까지 만들어 놨던 곡을 싣는 게 대부분이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앨범이죠. 내년 봄 쯤 2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 중인데 여유롭게 작업해서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네오 소울의 대표주자 맥스웰과 비견되기도 하는데. ‘Nothing better’는 맥스웰에게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답변은 왔나요?
아니요(웃음). 개인적으로 맥스웰이라는 아티스트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곡이었고, 그 분을 생각하면서 곡을 썼어요. 그렇기 때문에 맥스웰에게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보냈죠. 제가 워낙 그런 보이스를 좋아하거든요.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아마도 스티비 원더의 영향이 아니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팝음악을 들었는데, 특히 소울이나 어떤 감성적인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은 스티비 원더 때문이었거든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고, 연습하는 곡도 스티비 원더의 곡이 많았어요. 죽기 전에 그 분하고 같이 무대에 서 보는 게 소원이에요. 한국에 오실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직접 가셔도 되잖아요?) 글쎄요, 그분이 절 만나주실까요?(웃음)
폐교에서 하루 종일 노래해서 귀신 나온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는데, 가수를 오래 꿈꾸셨나요?
마냥 음악을 좋아했지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어요. 성격도 굉장히 내성적이서, 음악은 듣는 것만 좋아하고 남 앞에 나서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거든요. 그런데 대학교 들어가서 1집 낸 후였던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볼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꿈이 가수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신기했어요. ‘아, 내가 꿈을 이뤘구나’ 하고요.
대중과 자주 만나는 건 최근의 일인 것 같습니다.
어떤 매체에서 브라운 아이드 소울 멤버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다고 농담으로 그러기도 했는데(웃음). 사실은 저희가 브라운 아이드 소울 하면서 1년 넘게 앨범을 준비해서 내면 한 달 후에 금방 사라지는 걸 보고 굉장히 허망했거든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TV나 라디오에 안 나가서, 대중매체에 노출이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르니까, 그냥 이렇게 없어져버리는 거죠.
예전에는 사람들이 음악을 찾아서 들었는데 요즘에는 내 귀에 갖다 대지 않으면 잘 안 듣게 되잖아요. 저희가 만들어서 방에서 헤드폰 끼고 들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공감해야 좋은 거잖아요. 대중 음악 하는 사람들이 대중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혼자 음악이고, 그래서 최대한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기로 결심한 거죠. 이것이 또 다음 앨범을 창작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요. 예술은 다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상업영화 보다는 한국의 ‘원스’ 같은, 그런 영화가 있다면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독립 영화 스타일의. 저는 앨범 자켓이나 포스터 디자인도 했는데, 그런 쪽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다양한 분야, 영상, 미디어쪽도요. 음악이 잘 묻어 있는 영상이 있으면 한번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고요한 듯 하지만 호기심이 넘치는 것 같아요.
(웃음)맞아요. 호기심 되게 많아요. 별명이 호기심 천국이에요.
음악 말고 호기심 가득한 분야는 어떤 게 있을까요?
술이요?(웃음)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 좋아해요. 소주 2병 정도가 주량인데, 그렇게 많진 않죠.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으시죠. 가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나 후배,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제 주제에 드릴 말씀은 없고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큰 것은 같아요. 가수가 되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바로 얻을 수 있고, 누군가가 날 쳐다봐 주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이면에 무언가가 굉장히 많거든요.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이면의 어둡고 힘든 점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잘만 안다면야. 어떤 직업이라 해도 직업이란 것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가수, 뮤지션, 아티스트, 디렉터…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불리고 싶으세요?
욕심이 그리 크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최고의 가수다” 이런 것은 원치 않아요. 누가 들어도, “아, 파란색이네!” 이런 것. 자기 만의 색을 갖고 있는 가수, 딱 거기까지만 하고 싶어요. 오래오래 남고 싶거든요. 나이 들면서도 그 나이에 맞는 다양한 음악을 시도해 보는 노장 가수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소울’ 음악이란.
이번 콘서트의 ‘소울’은 음악 장르의 의미보다는 가요계에서 소울 음악 쪽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감성적인 곡들을 선사하는 자리에요. 소울은 대중 음악의 하나죠. 너무 한쪽으로, 가령 흑인 음악 쪽으로만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이리 쏠리면 이리로 가고 저리 쏠리면 저리로만 가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편향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다중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양하게 듣는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포괄적인 의미에서 소울은 하나의 록이기도 하거든요. 음악의 뿌리는 하나이기 떄문이죠.
그의 솔로 1집 앨범은 이미 ‘명반’의 수식어를 받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섬세하고 담백하면서 풍부한 감성이 녹아 있어 ‘역시 정엽이다’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못내 아쉬움을 이야기 하던 정엽은 ‘정말 2집은 기대해 주셔도 좋다’며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말에 더욱 힘을 싣는다. 단독 콘서트로 있을 것이라는 측근의 귀띔도 이어진다. 내년 봄을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갑엔터테인먼트 제공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