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콘서트로 찾아오는 YB(윤도현 밴드)
작성일200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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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윤도현밴드)가 3년 만에 8집 앨범 ‘공존(共存)’을 발표하고 홍대에서 장기 소극장 콘서트를 갖는다. 오랜만의 앨범인데다 10년만의 소극장 콘서트이기 때문에 이들을 기대하는 이들은 하루하루를 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 어떤 때보다 YB만의 색깔로 뽑아낸 8집 앨범에 대한 주목도 크다. 용산참사, 88만원 세대, 교육문제, 촛불집회, 인터켓 악플 등 최근 국내 이슈들을 노래하는 그 정공법에 ‘과연 YB’라는 시선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홍대 카페에서 만난 YB 멤버 4명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8집 앨범에 대해 입을 연 사람은 보컬 윤도현.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고 담담하게 이어나갔다.
“속된 말로 ‘YB는 찍힌 밴드’라는 말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차피 찍혔으니까 막 나가자, 그런 건 아니거든요.”
이번 음반에 담아낸 사회 이슈를 꺼내자 그는 먼저 ‘찍힌 밴드’로 말을 시작했다. 담담하다 못해 덤덤하기까지 한 억양이다. “사실 지난 앨범이 다 그래왔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사회적인 이슈를 녹여낸 건데 이번에 유난히 주목을 받더라고요.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나, 요즘 워낙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실 지난해는 보컬 윤도현에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였다. 7년 가까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추측이 일어났고, 개인적인 구설수에도 휘말렸다. 그래서 오히려 사회 이슈에 대해 정확히 짚는 게 의외로 다가 오기도 한다.
"주변에서 그러더군요. 너네 자꾸 이런 식으로 하다가 어떻게 하려고 하냐고. 그런데 음악은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만 한다, 우리만 용기 있다, 이런 건 아니에요. 그나마 음악으로나 이야기 하지 무슨 힘이 있나요.”
진보적이고 사회를 돌아보는 그들의 목소리에 몇몇 사람들은 ‘시류에 편승한다’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 했다. 그들이 YB이기 때문에 다른 대중가수와는 다른 잣대로 비판을 받는 것도 익숙하다. 이들은 “우리가 사랑을 노래하는 대중 가요를 아직 잘 못 만드는데, 그래도 우리 색깔을 보여줄 수 있단 게 좋다”며 모든 시선을 아우른다.
지금까지, 후회없음
’후회없어’란 곡이 있어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2009년 YB식으로 만들어낸 곡이라고 보시면 되요. 도현이가 세상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던 것들, 좋았던 것들, 나빴던 것들…그런 것들이 다 우리 자신임을 인정하고 후회없이 앞으로 나가겠다란 노래거든요. 가장 감동을 받는 노래이기도 해요”(김진원)
YB처럼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은 락그룹은 아마 그들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에 10년을 넘어온 시간 동안 그들에게 그들의 곡 제목처럼 ‘후회’란 없을 것. 하지만 개성강한 뮤지션들의 모임이 항상 평온할 수는 있을까. “바로 며칠 전에도 중요한 방송을 앞두고 싸웠다”라는 윤도현의 증언에 주변에서 쿡쿡 웃음이 터진다.
“요즘 느끼는데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싸워도 싸운 후에는 서로 걱정하더라고요. 서로 안쓰럽고.” 이제 화해 했냐고 묻자 “화해 안 했음 지금쯤 한 명은 분명 티가 났을 것”이라며 장난스럽게 웃어보인다.
10년의 세월 동안 이들 밴드의 팀 색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다름 아닌 멤버교체였다. 2001년 기타리스트로 허준이 새롭게 영입되면서 팀전체의 색도 많이 달라졌다.
“락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바뀐 것죠. 그것도 전 기타리스트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로(웃음). 그래서 4집까지는 많이 하드하다 5집부터는 갑자기 소프트해져요. 지금은 그 중간 단계에 온 것 같고요.”(김진원)
그들이 꼽는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는 2005년에 가진 유럽투어다. 락밴드로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 결정적인 계기로, 그 당시 약 한달 간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등 여섯 개 나라의 클럽을 돌며 공연을 했다. 그 당시 유럽 투어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팀워크가 전에 비할 바 없이 공고해 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 연예인으로 음악을 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헝그리 락정신’을 제대로 채웠다는 점도 손꼽히는 수확이다. 텅 빈 객석에서 자신들이 관객이 되어 노래를 즐겨야 했던 것도 좋은 재산이 됐다.
“거기가 베를린이었나? 비 오는 날 옛날 우편물을 한 곳에 모아놓는 장소가 클럽으로 바뀐 곳에서 콘서트를 열었어요. 좀 커요 그곳이. 1000석이 넘었나…거기가 휑하더라고요. 우리 스텝이 관객보다 많았더랬죠. 영국의 스테랑코라는 밴드가 있는데 그 친구들이 더 관객처럼 놀아주었던 기억이 있어요.”
홍보 부족으로 대부분 빈 객석을 앞두고 공연을 펼쳐야 했지만 스스로 관객이 되고, 연주자가 되면서 팀워크를 키웠다. 이후 유럽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좋은 기회도 여러 번 생겼다.
이번 소극장 콘서트는 2005년 당시의 락정신, 혹은 유명세를 얻기 전 작은 클럽에서 노래를 하던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형 공연을 하다 보니까 놓치는 게 많다고 느껴졌어요. 크고 멋있는 건 좋은데 작은 부분은 교감하기 어려웠거든요. 이번에는 일대일로 대화하듯이 해보고 싶어요. 게다가, 옛날처럼 공연장에 출근하는 거 한번 해보고 싶어요. 소극장 공연은 대중 교통을 타고 가야 제 맛이거든요. 기타 딱 메고(웃음).”(윤도현)
YB 멤버에게 묻는 일문일답
YB를 시작하기 전에 고생담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YB밴드에서도 연습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고.
김진원 YB 시작하기 전에 속초에서 과일배달도 하고, 건설현장에서 속칭 노가다도 했죠. 드럼을 연습해야 하는데 연습실이 없어서 인력거를 빌려 드럼을 싣고 산에서 연습을 하다가 해질녘에 내려오기도 했어요. 귀신이 나온다는 집은 대부분 싸게 나오거든요. 보통 산에 있고. 그런 집을 구해서 연습 하기도 했어요. 산에서 내려올 때 공동묘지를 지나기도 하고…덕분에 담이 좀 커졌어요(웃음).
성격이 부드러우면서도 과묵하신 거 같아요. 2001년 마지막으로 합류할 때 적응하기가 어땠나요.
허준 처음에는 다 어렵고 그렇죠. 보통을 친한 사람들끼리 음악을 하잖아요. 전 모르는 사람인데 음악을 하기 위해 만난 거였고. 그래서 친해지기 까지가 좀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이야 정말 편하죠.
올해로 마흔이 넘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감회가 남다르실 거 같은데.
박태희 마흔 하나에요(웃음). 글쎄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 이야기를 들으면 최소한 마흔은 넘어야 연주자라고 인정하고, 애가 있어야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라더군요. 저도 나이가 들수록 마음은 섬세해 진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어요. 전 5~60대가 되면 더 깊은 음악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체력은 좀 떨어질지도 몰라도. 락 음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매력적이에요.
초창기에는 공연 도중 관객과 기싸움을 했다고 들었어요.
윤도현 한 두 번 그랬는데…천 번도 넘게 한 공연에 단 두 번. 소극장 공연이었는데. 다 즐기는데 유난히 관객 중 몇 명이 계속 왜 저러고 있지..그럴 정도더라고요. 그래서 공연 도중 왜 그러냐고 물어봤어요. 일어나라고 했죠. 안 일어나니까 오기가 생겨서 저 분이 안 일어나면 공연 안 하겠습니다, 이랬죠. 할 소리가 아니잖아요(웃음).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관객들 한 두 명 이 ‘아 그냥 해요’ 그러더군요. 진원 형이 경고성 드럼을 한 두 번 밟았어요. 그때 깜짝 놀라서는 정신을 차리고…에이 농담입니다. 할게요! 이러고 공연을 했죠. 매너라곤 꽝이었죠. 사실 그게 말이 안되잖아요. 관객한테... 지금 생각하면 진짜(웃음) 지금이야 당연히 안 그러죠. 그런 분이 있으면 가서 뽀뽀할 거 같아요. 따뜻하게(웃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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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 말로 ‘YB는 찍힌 밴드’라는 말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차피 찍혔으니까 막 나가자, 그런 건 아니거든요.”
이번 음반에 담아낸 사회 이슈를 꺼내자 그는 먼저 ‘찍힌 밴드’로 말을 시작했다. 담담하다 못해 덤덤하기까지 한 억양이다. “사실 지난 앨범이 다 그래왔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사회적인 이슈를 녹여낸 건데 이번에 유난히 주목을 받더라고요.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나, 요즘 워낙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실 지난해는 보컬 윤도현에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였다. 7년 가까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추측이 일어났고, 개인적인 구설수에도 휘말렸다. 그래서 오히려 사회 이슈에 대해 정확히 짚는 게 의외로 다가 오기도 한다.
"주변에서 그러더군요. 너네 자꾸 이런 식으로 하다가 어떻게 하려고 하냐고. 그런데 음악은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만 한다, 우리만 용기 있다, 이런 건 아니에요. 그나마 음악으로나 이야기 하지 무슨 힘이 있나요.”
진보적이고 사회를 돌아보는 그들의 목소리에 몇몇 사람들은 ‘시류에 편승한다’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 했다. 그들이 YB이기 때문에 다른 대중가수와는 다른 잣대로 비판을 받는 것도 익숙하다. 이들은 “우리가 사랑을 노래하는 대중 가요를 아직 잘 못 만드는데, 그래도 우리 색깔을 보여줄 수 있단 게 좋다”며 모든 시선을 아우른다.
지금까지, 후회없음
YB처럼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은 락그룹은 아마 그들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에 10년을 넘어온 시간 동안 그들에게 그들의 곡 제목처럼 ‘후회’란 없을 것. 하지만 개성강한 뮤지션들의 모임이 항상 평온할 수는 있을까. “바로 며칠 전에도 중요한 방송을 앞두고 싸웠다”라는 윤도현의 증언에 주변에서 쿡쿡 웃음이 터진다.
“요즘 느끼는데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싸워도 싸운 후에는 서로 걱정하더라고요. 서로 안쓰럽고.” 이제 화해 했냐고 묻자 “화해 안 했음 지금쯤 한 명은 분명 티가 났을 것”이라며 장난스럽게 웃어보인다.
10년의 세월 동안 이들 밴드의 팀 색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다름 아닌 멤버교체였다. 2001년 기타리스트로 허준이 새롭게 영입되면서 팀전체의 색도 많이 달라졌다.
“락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바뀐 것죠. 그것도 전 기타리스트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로(웃음). 그래서 4집까지는 많이 하드하다 5집부터는 갑자기 소프트해져요. 지금은 그 중간 단계에 온 것 같고요.”(김진원)
그들이 꼽는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는 2005년에 가진 유럽투어다. 락밴드로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 결정적인 계기로, 그 당시 약 한달 간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등 여섯 개 나라의 클럽을 돌며 공연을 했다. 그 당시 유럽 투어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팀워크가 전에 비할 바 없이 공고해 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 연예인으로 음악을 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헝그리 락정신’을 제대로 채웠다는 점도 손꼽히는 수확이다. 텅 빈 객석에서 자신들이 관객이 되어 노래를 즐겨야 했던 것도 좋은 재산이 됐다.
“거기가 베를린이었나? 비 오는 날 옛날 우편물을 한 곳에 모아놓는 장소가 클럽으로 바뀐 곳에서 콘서트를 열었어요. 좀 커요 그곳이. 1000석이 넘었나…거기가 휑하더라고요. 우리 스텝이 관객보다 많았더랬죠. 영국의 스테랑코라는 밴드가 있는데 그 친구들이 더 관객처럼 놀아주었던 기억이 있어요.”
홍보 부족으로 대부분 빈 객석을 앞두고 공연을 펼쳐야 했지만 스스로 관객이 되고, 연주자가 되면서 팀워크를 키웠다. 이후 유럽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좋은 기회도 여러 번 생겼다.
이번 소극장 콘서트는 2005년 당시의 락정신, 혹은 유명세를 얻기 전 작은 클럽에서 노래를 하던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형 공연을 하다 보니까 놓치는 게 많다고 느껴졌어요. 크고 멋있는 건 좋은데 작은 부분은 교감하기 어려웠거든요. 이번에는 일대일로 대화하듯이 해보고 싶어요. 게다가, 옛날처럼 공연장에 출근하는 거 한번 해보고 싶어요. 소극장 공연은 대중 교통을 타고 가야 제 맛이거든요. 기타 딱 메고(웃음).”(윤도현)
YB 멤버에게 묻는 일문일답
YB를 시작하기 전에 고생담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YB밴드에서도 연습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고.
김진원 YB 시작하기 전에 속초에서 과일배달도 하고, 건설현장에서 속칭 노가다도 했죠. 드럼을 연습해야 하는데 연습실이 없어서 인력거를 빌려 드럼을 싣고 산에서 연습을 하다가 해질녘에 내려오기도 했어요. 귀신이 나온다는 집은 대부분 싸게 나오거든요. 보통 산에 있고. 그런 집을 구해서 연습 하기도 했어요. 산에서 내려올 때 공동묘지를 지나기도 하고…덕분에 담이 좀 커졌어요(웃음).
해군 홍보단에서 음악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경험담 좀 이야기 해주세요.
허준 해군낙도 홍보단에서 작은 섬들을 돌면서 위문 공연을 했어요. 공연만 한 게 아니라 청소도 하고 가전제품도 고쳐주고 그랬죠.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일이죠. 성격이 부드러우면서도 과묵하신 거 같아요. 2001년 마지막으로 합류할 때 적응하기가 어땠나요.
허준 처음에는 다 어렵고 그렇죠. 보통을 친한 사람들끼리 음악을 하잖아요. 전 모르는 사람인데 음악을 하기 위해 만난 거였고. 그래서 친해지기 까지가 좀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이야 정말 편하죠.
올해로 마흔이 넘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감회가 남다르실 거 같은데.
박태희 마흔 하나에요(웃음). 글쎄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 이야기를 들으면 최소한 마흔은 넘어야 연주자라고 인정하고, 애가 있어야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라더군요. 저도 나이가 들수록 마음은 섬세해 진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어요. 전 5~60대가 되면 더 깊은 음악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체력은 좀 떨어질지도 몰라도. 락 음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매력적이에요.
초창기에는 공연 도중 관객과 기싸움을 했다고 들었어요.
윤도현 한 두 번 그랬는데…천 번도 넘게 한 공연에 단 두 번. 소극장 공연이었는데. 다 즐기는데 유난히 관객 중 몇 명이 계속 왜 저러고 있지..그럴 정도더라고요. 그래서 공연 도중 왜 그러냐고 물어봤어요. 일어나라고 했죠. 안 일어나니까 오기가 생겨서 저 분이 안 일어나면 공연 안 하겠습니다, 이랬죠. 할 소리가 아니잖아요(웃음).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관객들 한 두 명 이 ‘아 그냥 해요’ 그러더군요. 진원 형이 경고성 드럼을 한 두 번 밟았어요. 그때 깜짝 놀라서는 정신을 차리고…에이 농담입니다. 할게요! 이러고 공연을 했죠. 매너라곤 꽝이었죠. 사실 그게 말이 안되잖아요. 관객한테... 지금 생각하면 진짜(웃음) 지금이야 당연히 안 그러죠. 그런 분이 있으면 가서 뽀뽀할 거 같아요. 따뜻하게(웃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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